12월 5일(목요일) 오후 1시반, 이날도 여느때와 같이 점심식사 후 소화도 시길겸 스포츠쎈타로 향하고 있었다. 이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날 오전 10시에 울산에서 재판이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친구의 직업은 변호사이다. 이놈과는 20년이 넘는 그야말로 둘도없는 친구다. 이놈 속이 뻔한 것이다. 혼자가기 심심하니 나와 같이 가자는 것이다. 내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는 계산이다. 역시 내 마음은 O.K.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서초동으로 향했다. 이놈과 도킹하기 위해서다.
경주로 향하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서로 교대로 운전해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경주는 여러번 여행을 했지만 저이 가는 동네다. 나는 경주 정씨, 이놈은 경주 이씨, 참으로 나랑은 공통점이 많은 놈이다. 이야기 주재는 역사 이야기, 특히 신라 건국 초의 이야기다. 역사라면 나도 빠지지 않는다. 경주에 도착했을 때 이미 캄캄한 밤이였다. 토함산에 올라갔다. 감포로 가기 위한 길이다. 감포로 숙소를 정했는데, 이 곳에서 뭐 기를 받겠데나. 이 녀석은 기에도 박식하다. 태백준령의 코리 부분 아닌가? 토함산은 역시 구름이 걸려 있었다. 몇년전에 관광안내원이 '토함산의 한자 의미를 설명하며, 해돗이 보기가 일년에 몇일 안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토함산 넘어 감포.. 이곳에서 숙소를 정하고 복요리집을 찾았다. 1KG에 120,000원, 조금 부담이 되지만 서울에서 20만원이라는데, 먹어야 하지 않겠어? 주인은 1.3KG을 주었다. 복회는 처음이다. 그런데 맛은 솔직히 별로였다. 11시쯤 숙소로 돌아와 내일 일정을 협의했다. 처음에는 동해선을 타고 돌아올 생각 이였는데, 강원도에 폭설이라는 일기예보에 남해안을 보기로 했다.
12월 6일(금요일), 울산으로 향했다. 산을 넘어 가는데, 계속해서 비가 오는 것이 아닌가. 울산에 도착해서 재판을 보고 재빨리 남해로 향했다. 난 공기에 아주 민감한 편인데, 친구도 그런가 보다. 뭐 이렇게 공기 않좋은 도시가 다있어? 정말 살기 싫은 동네다. 남해로 향하는 길은 맑았다. 기온도 서울과는 확실히 다르게 봄날씨 같았다. 남해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두루 돌아 다녔다. 그리고 하동 광양을 거처 순천에 도착했다. 순천에는 내 아버지가 몇달전부터 소일거리로 농사를 짖고 있다. 용돈도 드릴겸 해서 잠깐 들렀는데, 유자가 많이 열려있어서 친구와 생각지 않게 횡재했다. 고구마도 얻고 호박도 3덩이나 얻었다. 그리고 여수로 향했다. 이 곳은 내가 추천했는데, 20년전 오동도에서 해삼,멍게, 특히 개불의 맛을 잊을수 없어서이다. 오동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졌었다 그렇지만 밤에 올라본 오동도는 그런데로 멋있었다. 아쉬운 것은 오동도 올으른 길가에서 자판을 놓고 해삼, 멍개를 팔던 아낙들이 없어진 것이다. 친구와 근처에 사람들이 재법 많은 한식집에 들러 한식정식을 먹었다. 정말 남도의 특이한 맛을 볼 수 있는 음식들이 나왔다. 맞도좋고 양도 아주 많았다. 회 종류만도 20종이 넘는것 같다. 값은 1인 2만원, 친구와 정말 포식했다고 이야기 하는 중에 가재요리가 나왔다. 좀 놀랐다. 이렇게 팔아도 남어요? 하고 대미를 장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게속 음식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나같이 맛이 있어 그만둘 수도 없다. 이러다 탈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가져오라고 하고 나왔다. 천하의 정양균이 음식피해 피난하긴 처음이다. 역시 전라도 음식인심이 푸짐하다. 참고로 전라도라도 다 같지는 않다. 전주, 남원, 구례, 순천, 여수를 축으로 음식이 맛있고 푸짐하다. 숙소를 정했지만 많은 음식탓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근처 다방에 커피를 시켰더니, 뚱땡이 아가씨가 왔다. 이 곳 사정을 물었는데, '여수의 명물은 돌산에 있는 항일암 이다.'라고 했다. 전에는 돌산을 갈려면 배를 타야 했는데, 사장교가 생겨서 쉽게 갈수 있다는 것이다.
12월 7일(토요일), 아침에 해돗이을 볼려고 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돌산으로 방향을 잡고 항일암으로 향했다. 좀 먼거리가 부담이지만 뚱댕이 말을 믿었다. 보람이 있었다. 세상에.... 이럴수가... 이런 절경이 있었나? 와... 원효대사가 설립한 절인데, 원효는 어떻게 이런 곳까지 올 수 있었나 의문스럽다 원효가 해돗이을 좋아했나... 그 때는 교통이 않좋았을 텐데... 아무튼 친구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말이 필요없다 가봐고가. 이 섬은 해수욕장도 많고 곳곳이 절경이다. 이곳에서 아침을 먹었는데, 간단한 해물된장, 그런데 맛이 간단히 먹지 못하게 한다. 이유는 남도의 맛이다. 아침식사 후 다음여정 보성차밭을 향했다. 수천까지 나와 벌교로 향하는데, 이정표에 낙안읍성. 내 작은누이가 일본어 통역 가이드을 했는데, 누이가 낙안읍성이 좋다라고 한 말이 생각낳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낙안읍성에 들렀는데, 정말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민속촌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전통식으로 살고 있는 민속촌이다. 이 곳은 민박집도 있고, 주막집도 있다. 전통 베짜는 집앞은 목화밭이다. 목화는 생전 처음이다. 뜻하지 않은 좋은 곳을 온 것이다. 어사 박문수 찰령이 한창이기에 더더욱 운치가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보성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친구와 녹차 시음을 했는데, 문득 이 녀석이 여자였으면... 그러면 폼 좀 잡을 텐데... 보성차밭은 삼나무, 대나무 숲이 더 멋있었다. 곧게 뻗은 삼나무 자태가... 대나무의 굵기가 장난이 아니다. 이 곳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을것 같다. 보성을 떠나 강진으로 향했다. 그 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이곳에 들러 안 사실인데, 정약용의 외가가 강진이다. 다산의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고 재자들을 가르치던 동관 서관은 윤씨(다산 외가)가 잘 복원하여 가 볼만한 곳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점심겸 저녁으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남도의 맛을 음미하고 있을 때, 문득 유배라는 재도를 생각하게 되었다. 유배란 쬐 슬만한 재도인것 같다. 정적의 목숨도 보존해 주고, 한성문화도 지방에 전파해 줄 수도 있고, 저술활동도 꽃피울 수 있지 않은가? 지금 같으면 정적의 목숨을 취할려고 할텐데... 허긴 이런 벌이라면 일부러라도 죄를 짖지....
마지막은 해남을 거쳐 목포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세발낙지를 먹으리라. 우리가 목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는 졎다. 이곳은 꽤 바람이 불었는데, 이 바람이 노적봉을 더욱 쓸쓸하게 하는것 같다. 유달한을 오르며, 사공의 뱃노래(목포의 눈물)를 을펐다. 아주 쌘치멘탈하게... 전에 본 유달산은 힘들게만 느꼈는데, 이번은 외이리 외로워 보이는고... 유달산을 내려와 북항을 향했다. 이 곳에 회쎈타가 있고 서해고속도로를 타기 좋기 때문에... 이 곳에서 정양균이 역사적으로 세발낙지를 먹었다. 세발낙지 먹는법을 주인에게 배우고 먹었는데, 낙지에겐 좀 미안했다. 산채로 먹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게 제 운명인걸 어떻게... 개불도 먹었다. 소주에 곁들여서.. 운전때문에 술은 조금만 먹었다. 그리고 서해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서울로 서초동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장이 조금 넘었다. 1,500 킬로미터의 긴 여정이다. 집에 와 보니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맞이하며, 집사람이 물었다. 내일이 일요일인데 당신이 왠일로 이렇게 굳이 밤에 오냐고.. 그렇다 일요일날 친구가 선약이 없었으면 내가 왜들어와..재주로 날랐지. 여행은 좀 아쉬울 때 끝내는 것이 낳은것 같다. 그래야 또 기다려지지. 집사람에겐 순발력있게 대답했다. '자기와 애들이 보고 싶어서'라고....
자기야 네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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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