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송금 의혹 특검 중 불거져 나온 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150억 수뢰 의혹
⊙ 121억은 박 전 장관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아 관리했다는 김영완씨가 검찰에 반납한 돈
⊙ 검찰, 박 전 장관 150억 수뢰, 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 200억 수뢰 혐의로 기소
⊙ 1, 2심 유죄 판결 났지만 박 전 장관은 2006년 9월 대법원서 무죄, 권 전 고문은 2004년 10월 유죄
판결
⊙ 권 전 고문 판결에서는 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 진술 인정, 박지원에게는 불인정
⊙ 판결대로라면 김영완은 남의 돈 29억원을 공짜로 쓴 셈
⊙ 2011년 11월 귀국 검찰 조사받은 김영완씨, “150억원은 박 전 장관 돈”이라며 환부 청구권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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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 당시 검찰에서 설전을 벌였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2003년 10월 6일 오후 국회 법사위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지난 2월 15일자 관보(官報)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명의의 압수물건 환부(還付) 청구 공고가 실렸다. 압수 물건 관련 사건의 피의자는 박지원(朴智元) 전(前) 문화관광부 장관(현 민주통합당 의원)이었고, 죄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특가법·뇌물)이었다. 압수물은 현금 36억여 원, 5억원권 자기앞수표 4장, 국민주택 1000만원권 400장 등 총 121억4330만원에 달했다. 이 공고에는 3개월 이내에 환부 청구를 하지 않으면 형사소송법 제486조에 따라 국고로 귀속된다는 안내도 곁들여 있었다.
이 공고가 눈길을 끈 것은 ‘박지원’이라는 이름도 이름이려니와 121억이 넘는 금액의 규모와 그런 거액이 찾아갈 주인이 없어 국고로 귀속될 전망이 높다는 점에서였다.
같은 날짜 관보 이 공고 바로 뒤에 이어진 환부 청구 공고가 알리고 있는 특수절도죄 관련 압수 물건 검은색 여성용 반바지 1개, 흰색 여성용 팬티 1개 등과는 액수에서 비교할 수 없는 압수 물건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121억원의 주인은 누구이기에 자신의 돈이 국고로 귀속되는 과정을 눈뜨고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해 법적으로 이 121억원의 ‘생산자’는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고 그 돈을 관리하던 인물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인은 없다고 한다.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이 121억원의 주인은 어떻게 사라지게 된 걸까.
발단은 노무현(盧武鉉) 정부 시절이던 2003년 3월 14일 ‘대북(對北) 송금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임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대북 송금 관련 의혹을 규명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특검은 같은 해 6월 25일,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성사 대가로 북측에 1억 달러를 송금하는 등 4억5000만 달러의 현금과 5000만 달러어치의 현물을 북에 제공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과정에서 특검팀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2000년 4월 8일 북측과 정상회담을 최종 조율하는 과정에서 북측에 1억 달러 지급을 약속한 뒤 현대 계열사에 대한 여신지원을 통해 북측에 돈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해 박 전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특검 조사 과정 막바지에는 박 전 장관이 현대로부터 150억원을 수뢰했다는 혐의도 드러났다. 이번에 정부가 관보를 통해 찾아가라고 한 121억원이 그 150억원의 일부다. 특검 조사로 기소된 사람은 임동원(林東源) 전 국가정보원장,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 등 총 8명이었다. 특검으로서는 수사 막바지에 불거져 나온 박 전 장관 150억 수뢰 의혹 사건 등을 규명하기 위해 활동 기간 연장이 필요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특검 연장을 거부했다. 박 전 장관의 150억원 수뢰 혐의 등의 조사는 대검 중수부로 넘어갔다. 이른바 ‘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비자금 3000만 달러, 200억, 150억 조성 |
2003년 6월 2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기자실에서 송두환 특별검사가 대북 비밀송금 의혹에 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현대 비자금 사건’은 크게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6·15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4월경 박 전 장관이 현대그룹으로부터 금강산 유람선의 카지노 사업 허가 등을 부탁받으며 150억원을 받았다는 것이 그 한 줄기이고,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이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3월 역시 박 전 장관과 같은 부탁을 받고 현대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200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또 다른 줄기다. 또 하나는 2000년 1월 정 회장이 권 전 고문의 부탁을 받고 김대중 정부 실세들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무기 중개상 김영완씨가 건네준 스위스 계좌로 3000만 달러를 보냈다는 의혹이다.
현대그룹의 뇌물 공여 시기로 보면 사건의 발생 순서는 3000만 달러, 200억원, 150억원 순이지만 그 시간 차는 불과 한 달여다. 이 가운데 3000만 달러 스위스은행 송금 사건은 정 회장의 사망과 송금 관련 핵심 서류를 쥐고 있는 당시 현대상선 사장 김충식(金忠植)씨의 미국 체류 등으로 검찰이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다.
150억원 사건과 200억원 사건의 당사자인 박 전 장관과 권 전 고문 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인물이 정 회장과 전 현대증권 회장인 이익치(李益治)씨, 김영완씨다. 김영완씨는 정 회장은 비자금 200억원을 현대상선을 통해, 150억원은 현대건설을 통해 조성하도록 지시했고, 이익치씨는 현대 측의 비자금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자신은 박 전 장관과 권 전 고문의 의사를 현대 측에 전달하는 창구이자 두 사람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김영완씨는 대북 송금 특검이 시작되기 직전 해외로 출국했다.
150억 사건의 경우는 박 전 장관이 김영완씨를 통해 정 회장에게 150억원 지원을 요청했고, 정 회장은 이 돈을 이익치씨를 통해 1억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 150장으로 바꿔 박 전 장관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이 돈을 김영완씨에게 관리를 맡겨 필요할 때마다 김씨로부터 돈을 받아 사용해 왔는데 그 액수가 30억원가량 된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었다. 검찰은 정 회장과 이익치씨의 진술서와 해외에 나가 있던 김영완씨의 자술서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영완씨는 2003년 8월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에서 150억원 사건과 관련해 이렇게 증언했다.
“박 장관이나 저는 150억원이라고 구체적인 액수를 특정하지도 않았고, 150억원을 무기명 CD로 달라고 하는 등 돈을 주는 방법에 관하여도 구체적으로 말을 하였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러나 박 장관이 정 회장으로부터 150억원을 무기명 CD로 받은 것은 사실인데 저는 정 회장이 박 장관에게 150억원을 주었는지 그것도 무기명 CD로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중략)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받은 무기명 CD는 만기일이 1개월, 3개월, 6개월짜리로서 각 50억원씩 3종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억 사건의 경우는 권 전 고문이 김영완씨를 통해 현대그룹 정 회장에게 200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고, 정 회장이 김충식씨에게 지시해 조성한 자금을 이익치씨를 통해 김영완씨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김영완씨는 이 돈 중 150억원은 총선 직전 권 전 고문에게 전달했고 나머지 50억원은 보관 중이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정 회장과 이익치씨, 김충식씨의 진술서와 김영완씨의 자술서 등을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대법원에서 갈라진 두 사건의 판결 두 사건 재판에 가장 영향을 끼친 증거는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씨의 진술과 김영완씨의 자술서였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검찰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두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정몽헌 회장의 지시를 받아 박 전 장관과 권 전 고문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이익치씨의 진술과 이 돈을 받아 관리했다는 김영완씨의 자술서를 증거로 채택했던 것이다. 두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박 전 장관에게는 무죄를, 권 전 고문에게는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1, 2심이 유죄로 판단하는 데 증거로 채택했던 이익치씨의 진술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 결과다.
2006년 9월, 150억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이익치씨의 진술 내용에 대해 “사리에 맞지 않고 일관성이 없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김영완씨의 자술서에 대해 법원은 “일본에서 주일(駐日) 영사가 김씨를 상대로 이루어진 영사신문 진술서(외국의 한국영사관에서 증인이 자진 출석해 신문을 받는 제도)도 박 전 장관 측이 반대 신문할 기회가 없이 이루어졌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보다 앞선 2004년 10월, 200억원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이익치씨 등의 진술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를 확정했다. “이씨 등의 진술 내용이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상세하다”고 판시했다. 김영완씨의 자술서는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자술서 및 영사 진술서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지만 김영완씨는 현대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CD 150억원어치를 박 전 장관으로부터 받아 자신이 관리해 왔다는 자술서를 검찰에 보내는 한편, 그 가운데 필요에 따라 박 전 장관에게 건네준 30여억 원을 제외하고 남은 돈 121억여 원을 2003년 9월에 검찰에 제출했고 검찰은 이를 압수했다.
검찰이 압수한 121억원에 대해서는 박 전 장관이 무죄 선고를 받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법원의 압수물 몰수 선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상 압수물 몰수 선고가 없으면 압수가 해제되기 때문에 검찰은 121억원을 검찰에 제출한 김영완씨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법원의 무죄 선고 후 검찰은 이 돈의 환부를 검토했지만 돌려받아야 할 김영완씨는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 기소중지 상태로 해외에 체류 중이어서 이행이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김영완씨의 환부 청구권 포기 대북 송금 특검이 시작되기 직전인 2003년 3월 출국했던 김영완씨가 8년8개월여 만인 2011년 11월 귀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은 것이다. 기소중지자 신분인 그가 검찰 조사를 받은 후 다시 출국할 수 있었던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200억 사건과 150억 사건에서 대법원이 그의 자술서 및 진술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던 것과는 별개로 김영완씨와 정 회장과의 인간관계, 박 전 장관과의 인간관계, 남북정상 회담 준비 과정 참여 등의 행적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현대 비자금 사건의 핵’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권 전 고문과 박 전 장관의 비자금 관리인을 자처한 인물이었다.
김영완씨의 갑작스런 귀국을 놓고 김대중 정권 실세와 이명박 정부 실세의 밀약설 등이 나돌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스위스 계좌로 보낸 3000만 달러 사건과 150억원 사건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김영완씨가 검찰의 조사를 받은 후 같은 해 12월 초 3000만 달러 자금 전달에 관여했던 이익치씨도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것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150억원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았다는 것은 김씨가 2011년 11월 검찰 조사에서 검찰이 보관하고 있던 압수물에 대해 환부 청구권 포기 각서를 작성해 제출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검찰의 압수물 121억원이 박 전 장관 소유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인 것이다. 현대가 비자금을 조성해 박 전 장관에게 뇌물로 공여했다는 150억원의 주인이 없어진 셈이다. 김영완씨는 주인 없는 돈 30억여 원을 공짜로 사용한 셈이다.
비자금을 조성해 뇌물을 공여한 사람(현대그룹)은 있고 뇌물을 받았다는 사람으로부터 그 돈을 받아 관리했다는 사람(김영완)은 있지만 뇌물을 받은 사람은 없는 희한한 돈이 탄생해 국고를 살찌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정몽헌 회장의 진술서, “권노갑, 박지원에게 200억, 150억 주었다” |
2003년 8월 14일 오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법원으로 들어가며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김영완씨는 검찰에서 환부 청구권 포기 각서를 쓰면서 여전히 그 돈의 주인으로 박 전 장관을 지목했다. 검찰 조사에서 비자금 조성을 통한 뇌물 공여를 인정했던 정몽헌 회장은 사망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기억을 가진 자와 기억을 할 수 없는 자가 혼재하지만 기록은 남아 있다. 기억은 각자의 진실이지만 기록은 공통의 진실이다. 대질신문 등 이들이 얽히고설켜 서로 무죄와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의 현대 비자금 수사 기록 등은 흥미로운 진실을 담고 있다. 검찰과 피의자 신분이었던 박지원 전 장관, 권노갑 전 고문과의 공방, 이익치씨와 피의자들의 공방, 정몽헌 회장의 진술서 등을 소개한다.
정몽헌 회장은 2003년 7월 26일 1차, 8월 1일 2차, 사망 이틀 전인 8월 2일 3차 등 총 3차례에 걸쳐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1차 소환 조사에서는 권 전 고문에게 3000만 달러와 200억원을 제공한 부분에 대해, 2차와 3차 소환 조사 때는 박 전 장관에게 150억원을 건네준 부분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다음은 7월 26일 있었던 정 회장의 검찰 진술 조서 내용 중 권 전 고문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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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회장은 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가 진행되던 중 사망했다. |
<검사: 2000년 1월경과 같은 해 3월경 두 차례에 걸쳐서 현대상선 자금 3000만 달러와 현금 200억원을 권노갑에게 준 사실이 있나요.
정 회장: 네, 그렇습니다.
—3000만 달러를 주게 된 경위는 무엇인가요.
“1999년 12월 말인지 2000년 1월 초경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납니다. 그 무렵 김영완으로부터 권 고문이 나를 보자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신라호텔 라운지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권 고문은 ‘총선이 얼마 안 남았는데 현대그룹에서 좀 도와달라. 여당을 도와주어야 대북 사업도 잘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알았다.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겠다’고 답했고요.”
—그 후 김영완이나 권노갑으로부터 돈을 잘 받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있습니까.
“돈을 준 다음에 김영완으로부터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권노갑은 3월경에 200억원을 추가로 준 적이 있는데, 그때 권노갑이 ‘저번에는 고마웠다’면서 ‘돈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음은 정 회장이 사망하기 이틀 전에 작성된 3차 진술서다. 아래는 150억 수뢰 혐의와 관련해 박 전 장관에 대해 정 회장이 진술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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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전 장관이 2003년 6월 18일 밤 현대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특검팀에 의해 구속된 뒤 구치소로 향하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박지원이 김영완을 통해 피의자에게 금품을 요구한 시기 및 경위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있나요.
“예, 2000년 4월 3일 오전 10시경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 12층에 있는 저의 사무실로 김영완이 찾아왔습니다. 김영완은 ‘사업은 어떠냐’고 의례적인 인사치레로 물었는데, 저는 금강산 관광사업은 전과 마찬가지로 어렵다고 하고, 특히 카지노와 면세점 허가를 받지 못하여 애로가 많다고 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현대그룹의 지분정리 관계로 내분이 정리되지 않았고 현대건설의 유동성도 악화돼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현대건설도 어렵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영완이 저에게 ‘사실은 박 장관의 심부름으로 왔다’고 하면서 ‘박 장관이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필요한데 150억원을 도와달라고 한다’면서 돈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김영완이 피의자를 찾아와서 박지원 장관이 150억원을 CD(양도성 예금증서)로 도와달라고 요구하였다는 것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피의자가 김영완이 박지원의 심부름이라면서 150억원이라는 거액을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로 달라고 요구한 것만 보고 박지원이 김영완을 시켜 피의자에게 돈을 요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던가요.
“당시 ‘국민의 정부’에서 대통령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실세로 알려진 박지원 장관을 김영완이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저에게 두 번이나 박 장관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박 장관과 김영완은 아주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박 장관이 김영완을 시켜 저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특히 김영완이 박 장관의 심부름이라면서 돈을 요구하였지만, 150억원을 무기명 CD로 만들어서 제가 직접 박 장관에게 전해 주라고 해 저는 돈을 받는 사람이 박 장관이라는 점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익치 진술서, “정 회장은 150억에 이어 200억이 드러날까 봐 김영완이라는 존재를 감추려고 했다” 2003년 8월 20일에는 이익치씨에 대한 3차 검찰 소환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조사에서는 정몽헌 회장이 특검 조사 과정에서 김영완씨의 이름을 끝까지 숨기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익치씨는 정 회장이 왜 그랬는지를 나름 설명하고 있다. 관련된 부분의 질문과 답변이 장황하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검사: 그러면 진술인은 정몽헌이 특검에서 위 150억원에 대한 조사를 받을 당시 정몽헌은 김영완으로부터 박지원의 돈 요구 사실을 전해 들었는데도 김영완의 개입 사실을 숨기고 마치 진술인이 김영완의 역할을 한 것처럼 허위진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요.
이익치: 저는 그때 박지원 장관이 김영완을 통하여 정 회장에게 돈을 요구하였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정몽헌 회장이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직접 돈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마지막 특검에서 조사받던 날에도 정 회장은 계속 김영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채 제가 박 장관의 돈 요구를 정 회장에게 전달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는 진술만 반복하여서 특검에서도 저를 의심하였습니다만, 마침 그날 오후 4~5시경 자금추적팀에서 자금추적 결과 김영완의 실명을 확인하고 수사관들이 저에게 김영완을 아느냐고 물어서 저는 89~90년경에 김영완을 알게 되었는데 정몽헌 회장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더니 다시 정 회장에게 가서 김영완을 아느냐고 묻자 그때야 정 회장은 ‘사실은 김영완이 박 장관의 심부름이라며 돈을 요구하였다’고 진술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는 정 회장이 김영완의 개입 사실을 거론하기 전에는 박 장관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정 회장에게 돈을 요구하였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 회장이 (판독 불능)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정몽헌이 특검에서 조사받을 때 150억원 상당의 CD를 진술인이 박지원에게 전달하였다고 진술하여 동 사실이 확인되었는데도 김영완이 정 회장에게 박지원의 돈 요구를 전달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계속 숨겨왔고, 정몽헌은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도 마찬가지로 김영완의 개입 사실에 대하여 계속 숨겨왔는데, 진술인이 보기에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요.
“정 회장이 특검에서 김영완의 개입사실을 숨겨왔던 이유는 김영완이 위 150억원에 개입된 사실이 밝혀질 경우 그 당시 수사 과정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정 회장은 그 이전에도 김영완을 통하여 권노갑 민주당 고문에게 위 150억원과는 별개로 200억원과 그 이외에도 거액을 또 건네주었던 사실이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이 밝혀질 것을 염려하여 김영완에 대해 사실대로 진술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특검에서 제가 정 회장에게 박 장관의 돈 요구를 전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 회장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제가 그런 일을 했던 것처럼 기억된다는 취지로 허위진술을 하는 것을 보고 정 회장이 무엇 때문에 허위진술을 하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는데 그 후 결국 김영완이 개입한 150억 부분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이미 그전에 정 회장이 김영완을 통하여 권노갑 민주당 고문에게 별도로 200억원을 준 사실마저도 추가로 밝혀질 것을 염려하여 김영완을 숨겨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정 회장이 권노갑 고문에게 200억원을 교부할 때 저도 관여한 사실이 있어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질신문-박지원 “완전 소설이다” 對 이익치 “돈을 건네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CD 150억원어치를 직접 건네주었다는 이익치 회장과 받은 적이 없다는 박 전 장관의 대질신문은 대북 송금 특검이 막바지로 치닫던 2003년 6월 17일에 이루어진다.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두 사람의 대질신문에서 박 전 장관은 이익치씨의 주장에 대해 “완전히 소설이다. 이익치를 개별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검사: CD를 교부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박지원: 전혀 없습니다.
—2000년 4월 중순경 서울플라자호텔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바에서 이익치 회장을 만난 기억이 있는가요.
“플라자호텔 맨 꼭대기 층 스카이라운지 한쪽에 바가 있기는 한데, 제가 그곳에서 이익치 회장을 만났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개별적으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이익치 회장과 대질 조사를 하여도 상관이 없겠는가요.
“예, 상관이 없습니다.”
검사: 진술인이 이익치인가요.
이익치: 예, 제가 이익치 본인이 맞습니다.
—진술인은 옆에 앉아 있는 박지원 장관에게 CD를 전달한 사실이 있는가요.
“예,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쯤으로 기억하고 있는가요.
“2000년 4월 중순경 서울플라자호텔 맨 꼭대기 층 스카이라운지 바에서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CD를 건네드렸습니다.”
—CD 금액은 얼마 정도 되었는가요.
“1억원짜리 150매로 150억원이었습니다.”
검사: 이익치 회장의 진술을 들어보니 어떤가요.
박지원: 완전히 소설입니다. 전혀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서울플라자호텔에서 이익치 회장을 만난 사실이 전혀 없다는 건가요.
“개별적으로 만난 기억도 없고, 만난 사실도 없습니다.”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만난 사실 자체가 없다는 말인가요.
“예, 없습니다.”
검사: 진술인이 서울플라자호텔 스카이라운지 바를 이용해 본 적이 있었는가요.
이익치: 그 이전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소한 곳이기 때문에 더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고, 박 장관께서 그곳을 아느냐고 물어서 처음이라고 하니까, 스카이라운지로 들어오면 조그만 방이 하나 있다고 설명을 해준 사실도 있으셨습니다.
—박 장관을 만나서 어떻게 하였는가요.
“먼저 인사를 드리고 정몽헌 회장께서 전해드리라고 해서 심부름 왔습니다 라고 하면서 김재수 본부장으로부터 건네받은 봉투를 그대로 건네드리니까 받아서 한쪽으로 놓는 것을 보고 저는 가겠습니다 하고는 바로 나왔으며, 그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검사: 진술인에게 돈을 건네준 구체적인 상황까지 진술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박지원: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똑똑하신 이 회장의 현재 얼굴 표정은 왜 저러며, 손을 왜 떨고 계십니까.
—이익치 회장이 전혀 사실무근인 이야기를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어떤가요.
“자금 추적을 하고 있다고 하시니까 한번 끝까지 해보시고, 저는 전혀 그런 것을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검사: 박지원 전 장관은 진술인으로부터 CD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이익치: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CD를 준비했던 것이고, 저는 정 회장님의 지시를 이행만 한 것으로서 제가 그런 지시를 받고서 이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박 장관님 스스로가 더 잘 아실 것 같습니다.>
권노갑 “내가 실세라고?” 對 이익치 “없던 사실 꾸며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익치씨와 권 전 고문의 대질신문은 권 전 고문이 구속되기 나흘 전인 2003년 8월 12일 대검 청사에서 이루어진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실세’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검사: 고인이 된 정몽헌 회장도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민주당의 실세인 피의자를 만나면 대북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만나러 갔다고 진술한 바 있는데 어떤가요.
권노갑: 이치에 맞지 않고 정황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구치소와 병원에서 나와 집에서 근신하고 있는데 제가 무슨 실세라는 것입니까. 저는 현대의 대북 사업이 무엇인지 그 내용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현대의 정몽헌이 그 당시 이미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하고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검사: (이익치에게) 진술인은 방금 피의자의 진술을 들었는가요.
이익치: 정몽헌 회장이 분명히 저에게 김영완이 “권 고문이 대통령을 측근에서 40년간 모신 분으로서 실질적으로 권력의 제2인자다. 권 고문의 도움이 있으면 대북 사업을 하는 데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니 한번 인사를 하자”라고 하면서 피의자를 만나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대질신문은 이튿날인 8월 13일까지 이어졌다.
<권노갑: 지금까지 대질 과정에서의 이익치 회장의 진술은 전부 거짓입니다. 모든 진술 내용이 논리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전후가 모순됩니다. 첫째, 우리 집에 온 일자, 병원에 왔다는 일자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1998년 3~4월경은 제가 집에서 근신할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집에 있을 때 병원에 왔다는 것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중략) 그리고 신라호텔 중식당과 일식당에서 세 번 식사를 하였다면 누가 예약을 했는지도 확인해 주기 바랍니다. 또한 다섯 차례 이상 매번 무슨 목적으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구체적으로 조사하여 주기 바랍니다.
이익치: 제가 피의자에 대하여 어떤 감정이 있어서 없던 사실을 꾸며내 진술한 것이 아니고 제가 처음 검찰 진술 시에는 피의자와 만난 것을 진술하지 않다가 정몽헌 회장이 피의자와 만난 사실을 사실대로 진술하여 저도 사실대로 진술한 것입니다. 제가 없던 사실을 꾸며내어 진술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정 회장 사망 후 바뀐 박지원의 진술 |
2003년 8월 6일 서울 현대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정몽헌 회장의 빈소를 찾은 조계종 스님들이 합장하며 명복을 빌고 있다. |
박 전 장관이나 권 전 고문은 대질신문에서처럼 수차례에 걸친 검찰 조사에서도 수뢰 사실을 부인한다. 박 전 장관의 검찰 진술 중 눈에 띄는 대목은 카지노 허가 청탁과 관련한 정몽헌 회장과의 만남 시점이 변경됐다는 점이다. 특검에서는 6·15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만났다고 하다가 검찰 조사에서는 정상회담 이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이런 시점 변경에 대해 “정몽헌 회장이 사망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2003년 8월 19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제1과 조사실에서 이루어진 박 전 장관에 대한 신문 내용 중 일부다.
<검사: 피의자는 대북 비밀송금 특별검사에게도 본 건에 관하여 진술한 사실이 있지요.
박지원: 예,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피의자는 대북 비밀송금 특검에서 정몽헌 회장이 김영완과 같이 플라자호텔 객실에서 피의자를 만나 금강산 유람선에 카지노 허가와 면세점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등의 부탁을 하였으며 그 시기는 99년 말경이라고 진술하였는데, 피의자는 정몽헌의 진술을 듣고 동인으로부터 카지노 허가와 관련된 부탁을 받은 시기는 99년 말경 이후이고 그때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위와 같은 부탁을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이 있지요.
“예, 특검에서는 그렇게 진술하였습니다.”
—피의자는 특검에서 정몽헌으로부터 카지노 허가와 면세점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시기를 99년 말경 이후라고 진술하였다가 굳이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라고 변경하여 진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검에서는 제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서 정 회장의 진술이 맞는 것 같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정상회담 이후인 것으로 생각되어 그렇게 진술하는 것입니다.”
—피의자는 2000년 4월 중순경 정몽헌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았다는 문제로 특검에서 여러 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정몽헌으로부터 카지노 허가와 면세점 허가에 대한 부탁을 받은 시기를 99년 말경 이후라고 진술하였는데 그와 같은 진술을 하면 피의자가 정몽헌으로부터 카지노 허가와 면세점 허가를 부탁한 후에 위 150억원을 받은 결과가 되기 때문에 부탁을 받은 시기를 돈 받은 시기 이후로 변경하여 진술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피의자는 특검에서의 진술과 달리 진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검에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되어 진술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피의자는 특검에서 진술한 내용을 지금 와서 변경하여 진술하는 이유는 특검에서 진술할 때는 정몽헌 회장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진술을 하였지만 지금은 정몽헌이 사망하여 동인의 진술을 청취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진술을 변경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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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평양에 도착한 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 나란히 앉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
150억원은 이익치 회장이 착복했다? 8월 2일에 있었던 박 전 장관에 대한 2차 신문에서는 박 전 장관이 특검 시절 제기했던 ‘이익치 회장의 150억 착복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오간다.
<검사: 정몽헌과 현대건설 구조조정본부장인 김재수의 진술 및 현대건설 직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2000년 4월 7일 정몽헌의 지시로 현대건설에서 비자금 150억원을 조성한 후 무기명 CD를 구입하여 이익치에게 전달된 사실은 분명하고, 다만 정몽헌과 이익치의 진술에 의하면 그 CD를 이익치가 피의자에게 전달하였다는 것이고 피의자는 이익치로부터 그 CD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 이 사건의 쟁점인데 그렇다면 피의자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볼 때 그 CD를 이익치가 빼돌렸다는 결과가 되는데 맞는가요.
박지원: 저는 이익치가 빼돌렸는지 어떻게 했는지는 아는 바가 없고 분명한 것은 저는 이익치로부터든 누구로부터든지 CD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 CD의 자금 추적 결과 김영완에 의해 세탁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만약 피의자가 동 CD를 이익치로부터 받지 않았다면 이익치에게까지 전달된 동 CD의 세탁을 김영완이 담당하였던 점에 비추어 이익치가 김영완과 공모하여 피의자에게 전달하지 않고 임의로 착복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데 그러한가요.
“그것은 제가 진술할 입장이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피의자는 대북 비밀송금 특별검사팀에 제출한 고소장에서 이익치가 정몽헌으로부터 받은 CD 150억원을 중간에서 착복하였다고 주장한 바가 있는데 피의자에게 전달하라고 가져간 위 CD를 피의자에게 전달하지 않았다면 이익치가 착복하였다는 말이지요.
“고소장을 작성할 때 제 변호사와 상의하여 작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익치가 착복하였는지는 제가 지금 진술하기 어려워 변호사와 상의를 하고 다시 진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소장을 작성할 당시에 변호사와 충분한 상의를 하고 고소장을 작성하였을 것이 아닌가요.
“예, 그때는 상의를 한다고 하였지만 제가 CD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도 이익치가 착복을 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제가 성급하게 진술할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되니까 변호사와 상의하여 진술하겠습니다.”
—김영완은 이 CD 사건에 개입하기에 앞서 이미 2000년 3월경 정몽헌 회장이 권노갑에게 교부하는 200억원을 중간에 교부받아 이를 전달한 사실이 있어서 이 사건 CD도 중간에서 착복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정몽헌 회장에게 피의자에게 전달했다고 거짓말하면서 돈을 자신에게 직접 달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을 상황이고 정몽헌도 이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익치 “그럼 그 돈이 날아갔습니까?” 박 전 장관은 이 돈과 관련해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고, 유죄 판결을 받았던 권 전 고문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서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권 전 고문은 200억 수뢰 사건으로 구속돼 3년5개월간 형을 살다가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후 《월간조선》 2007년 5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영완이는 외국에서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저에게 돈을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주장이 옳다면, 그 역시 범죄자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왜 지금까지 김영완이에 대해 범죄인 인도요청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김영완이만 잡아오면 모든 사실이 명명백백 밝혀질 것입니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김영완이를 하루빨리 잡아와 사건을 재수사해야 합니다.”
—검찰이 돈을 받지도 않은 권 고문을 억지로 구속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검찰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을 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니 진실은 내가 현대그룹으로부터 단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뇌물 공여에 관여했다고 스스로 검찰에서 자백했던 이익치씨는 박 전 장관의 뇌물죄 무죄 판결이 내려진 후에 있었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박 전 장관에게 150억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이익치씨가 《신동아》 2007년 9월호와 가진 인터뷰 중 일부다.
<—대법원은 이 회장님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시죠?
“몰라요. 법정에 세 번인가 증인으로 나갔는데 다 사실대로 얘기했어요.”
—재판부는 우선 이 회장께서 다른 건 다 잘 기억하면서 유독 박지원씨한테 CD를 전달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앞뒤 날들은 행사(남북정상회담 준비)가 있었기에 기억하는 겁니다. 당시 현대아산에서 작성한 일지가 있거든요. 중요한 건, 이겁니다. 그 150억 CD 어디서 나왔습니까.”
—현대건설에서 마련했지요.
“아니, 최종적으로 누가 갖고 있었냐고요?”
—김영완씨요.
“그럼 됐지요, 뭘. 그리로 갔잖아요. 김영완이 그걸 어떻게 썼다고 다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는 (박지원씨에게) 현금으로 주고, 얼마는 채권으로 갖고 있었고…. 거기(김영완 자술서)에 다 나와 있어요.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가요. 그 돈이 혹시 내 계좌에서 나왔다면 모르죠. 하지만 김영완이라는 사람한테서 나왔잖아요. 그 돈이 날아갔습니까, 그럼?”>
현대 비자금 사건 중 200억 사건은 유죄로, 150억 사건은 무죄로 끝났다. 3000만 달러 스위스 은행 송금 사건은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영완씨는 지난해 1월 말에도 일시 귀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법적으로는 이미 주인 없는 돈이 되어 국고로 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121억원의 주인도 3000만 달러 사건의 진실과 함께 밝혀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