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안무
유럽 최대 대중음악 경연대회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15년 행사의 최고 스타는 가수가 아니라
수어통역사 토미 크롱이었다.
그는 훈남도 아니고 노래를 잘하지도 않는데
‘크롱 신드롬’이란 말이 나올 만큼 인기를 끌었다.
청각장애 부모를 둔 배우 겸 영화감독인 그는 스웨덴 예선에서
유명가수의 열창에 맞춰 현란한 수어통역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열정적인 몸동작과 다양한 표정연기의 ‘수어 노래’는 유튜브를 통해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노래 수어통역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칭송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노래를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노래의 느낌까지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수화라고도 불리는 수어는 음성 대신 손의 움직임을 포함한 신체적
신호를 이용해 의사를 전달하는 시각언어다.
심리학자 앤드루 솔로몬은 저서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서 “수어는
섬세하고 정교한 문법을 가진 언어”라며 “청각장애인은 어엿한 언어와
문화를 보유한 소수집단”이라고 했다.
정확한 의미 전달은 수어의 생명이다.
하지만 엉터리 수어통역으로 청각장애인들에게 혼란을 준 사례도 있다.
2013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추모식은 기괴한 수어통역으로
웃음거리가 됐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손짓, 팔짓이 무려 4시간이나 전 세계로 전파를 탔다.
조사 결과, 정신분열증 환자가 연출한 가짜 수어였다.
문제의 수어통역사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는 환상을 봤다”며 횡설수설했다.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인 만델라의 가는 길이 황당무계한 세기적
쇼로 전락한 것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신곡 ‘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수어 안무가 세계적으로 화제다.
엘튼 존 등 스타들이 극찬한 데 이어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BTS는 ‘즐겁다’, ‘춤추다’,
‘평화’를 의미하는 국제수어를 안무에 접목시켰다.
전 세계 청각장애인들은 “정말 기분이 좋고 고맙다”
“내가 춤출 수 있게 만든다”며 환호했다.
“평소 좋아하던 K팝 아이돌 신곡에서 수어 안무를 볼 줄 몰랐다”며
눈물도 흘렸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BTS의 선한 영향력이 한국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
김환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