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에서 제9회 전영택문학상 수상후보자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서를 우리 대구문협으로 보내어 왔습니다.
뜻있는 분께서는 최근 2년간 이내 발행한 작품집을
9월 12일까지 우리 문협 사무실로 제출해 주시면
9월 15일까지 한국문협에 도착되도록 발송하겠습니다.
아래 공문과 추천서 보시고
해당 내용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전영택 소설가에 대해 소개드립니다.
전영택田榮澤/ 소설가·목사.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따뜻한 인간애를 그려냈다. 본관은 담양. 호는 늘봄·추호·장춘·불수레.
아버지 석영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910년 평양대성중학교 3년을 수료하고 진남포 삼숭학교에서 잠시 교사로 근무했다.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 고등부 문과를 거쳐 1918년 아오야마학원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곧 신학부에 입학했다. 이때 김동인·주요한·김환 등과 한국 최초의 문예동인지인 〈창조〉 동인으로 참여했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도쿄[東京]에서 진행된 유학생독립선언에 참여했으며, 잠시 귀국하여 채혜수와 결혼했다. 일본에 다시 건너가 1922년 신학부를 졸업한 뒤, 서울에 있는 협성신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1927년 아현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1930년 미국으로 건너가 퍼시픽 신학교에 입학하고 재학시절 흥사단에 입단했으며, 1932년 수료하고 귀국했다. 그리스도교 잡지 〈새사람〉·〈예수〉의 발간에 힘썼고, 일제 강점기말에는 평양 근교에 숨어살며 목회했다.
8·15해방 이후 1946년 미군정 문교부 편수관, 1947년 국립맹아학교 교장, 1948년 중앙신학교 교수, 1949년 감리교신학교 교수, 1954년 대한기독교서회 편집국장 등 학계와 언론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61년 한국문인협회 초대 이사장과 1963년 기독교계명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68년 종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으며, 크리스천 문학가협회의 주선으로 경기도 금촌에 묘비가 세워졌다.
문학세계
1918년 〈창조〉 동인이 되어 문단활동을 시작한 그는 단편 〈혜선의 사〉(창조, 1919. 2)·〈천치? 천재?〉(창조, 1919. 3) 등을 발표해 문단에 나왔다.
〈혜선의 사〉는 연애사상을 다루되 여주인공의 자살로 끝맺고 있고, 〈천치? 천재?〉는 특이한 개성을 지녀 천치인지 천재인지 알 수 없는 학생의 비극을 그렸다. 이어 〈생명의 봄〉(창조, 1920. 3~7)·〈흰닭〉(조선문단, 1924. 10)·〈화수분〉(조선문단, 1925. 1)·〈크리스마스 전야〉(조광, 1935. 12)·〈소〉(백민, 1950. 2)·〈쥐이야기〉(현대문학, 1956. 10) 등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들은 문체가 간결하고 낯익은 느낌을 주며 허구보다는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주제를 다루었다.
대표작 〈화수분〉은 행랑살이를 하는 어멈과 다른 곳에서 일하던 남편 화수분이 추운 겨울날 고개에서 얼어죽고 어린아이만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로서, 작가 자신이 "인생,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보려 했다"고 말한 것처럼 사실주의적 수법이 뛰어나다. 그외에 강원도 두메산골을 배경으로 한 〈소〉는 6·25전쟁 때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갈라지는 민족분단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이광수의 작중인물들이 대부분 영웅숭배의 인물들로 강자임에 반해 전영택의 작중인물들은 어질고 서글픈 약자인 점이 특징이다.
소설집으로 〈생명의 봄〉(1926)·〈하늘을 바라보는 여인〉(1958)·〈화수분〉(1977) 등과 1965년 어문각에서 펴낸 〈전영택창작선집〉이 있고, 수필집으로 〈의(義)의 태양〉(195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