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四 章.
暴風天龍幡의 出現
“흥! 흥!”
아침 식사를 하러 나온 헌원소천은 고신항아를 보자 콧방귀부터 날렸다.
“남편을 다른 여자한테 던져 줘? 내가 먹다버린 뼈다귀야 뭐야?”
산산이 고신항아와 맺은 계약을 얘기해주자 헌원소천은 기분이 몹시 나쁠 수밖에 없었다.
고신항아는 그런 그를 잔잔한 미소로 맞아 주었다.
“산산 동생이 잘 모시지 못했나 보죠? 그럼 산산동생을 당신의 첩으로 삼게 해주는 것을 재고해봐야 겠네요?”
고신항아의 입에서 농담이나 거짓말이 나오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산산에게 부여한 자리를 심사숙고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옆에 있던 산산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린 것은 당연했다.
“어, 언니!”
광풍마룡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성녀! 걱정마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세상에 있는 방중비법을 몽땅 구해서 산산에게 익히도록 하겠습니다. 천하의 한량도 산산과 하룻밤만 자고나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뻑가게 만들어놓을 테니까 제발 산산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다운 사고(思考)였고 발상(發想)이었다.
헌원소천도 얼른 손을 내저으며 끼어든다.
“아냐! 만족했다구. 툭히 산산의 큰 가슴은 정말 죽였다구. 진짜야. 확실하다구.”
헌원소천까지 거듭 강조하면서 거들고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단주(團主)! 비상 사태입니다.”
밖에서 늙그수레한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뭐냐?”
산산의 일로 다급해져 있는 광풍마룡의 음성이 퉁명스럽게 튀어나갔다.
반백의 머리카락이 수세미처럼 얽혀 있는 주름살 투성이의 육순가량 노인이 들어와 부복한다.
-풍노백(風老伯)!
그는 그렇게 불리고 있는 광풍흑골단의 두뇌(頭腦)였다.
사실 그는 마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는 위인이었다.
원래의 신분은 한림원(翰林院) 시강대학사(試講大學師)로서 대명제국에서도 최고의 현자(賢者)에 속하던 인물이었다.
그가 너무도 대쪽같은 성품으로 황제의 잘못을 상소하는지라 노한 황제가 일시적인 분을 참지 못하고 옥문관 밖으로 유배를 보내면서 그의 인생유전은 변했다.
그를 호송하던 관졸들이 용권풍에 휘말려 흩어지고, 다 죽어가는 그를 구한 것이 바로 광풍마룡이 이끄는 마적단이었던 것이다.
그는 중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광풍흑골단의 군사(軍師)가 되어 버렸다.
“신강사비역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놈들이 언젠 가만 있었냐?”
“그게....신성금율(神聖禁律)을 깨뜨리고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는지라....”
“신성금율을 깨고 한곳으로....?”
“그렇습니다. 이상한 소문과 함께 그들이 집결하고 있는데....”
“가자! 감히 고놈들이 본좌의 밥줄이 걸린 보호구역을 침범해?”
항시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광풍마룡이었다. 지금은 몹시 곤란한 상황이었으니 엉덩이가 더욱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헌원소천을 채근했다.
“처남! 이젠 처남도 우리 가족이 되었으니 이 위기를 그냥 보고만 있진 않겠지?”
아주 당당하게 동행을 요구한다.
헌원소천의 입꼬리가 묘하게 비틀린다.
“제길! 마적하고 한 식구가 되다니! 아버님이 알면 곤장을 맞을 일이여.”
그러면서도 따라나서는 헌원소천이다.
***
-백풍마지(白風魔地).
그야말로 사막의 절애고도(絶崖孤島)같은 곳이다. 사시사철 뿌연 안개가 깔려 있어 바로 눈앞의 사람조차 구별할 수 없는 절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곳 백풍마지에서 사막의 운명이 새롭게 열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안개는 일년중 하루만 사라진다. 칠월칠석(七月七夕)이라고 하는 날만.....
화라락!
모래 바람에 짖겨질 듯 펄럭이는 거대한 깃발이 하나 있다. 흡사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인 듯 깃발은 신비하고도 위풍당당했다.
“폭풍천룡번(暴風天龍幡)!”
“으음..... 위대한 누란왕국(樓蘭王國)의 호국신병(護國神兵)이 일천오백여년만에 출세(出世)하다니....!”
“저것이 어떻게 여기 있단 말인가?”
사 인(四人).
백풍마지의 동서남북(東西南北)에 서서 새하얀 안개의 대지 중앙을 바라보며 탄성을 발하는 사 인이 있었다.
직경이 십여리에 불과한 백풍마지는 그리 넓다고 할 수 없고 하나 하나가 최절정의 고수들인 그들 사인은 마주 선 서로를 너무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이들 사인은 바로 신강무림의 패왕들이었다.
황금대상단주 - 황금천룡!
수정유리부주 - 검천제왕!
천산대목장주 - 천산마신!
암흑상막주 - 암흑마성!
바로 그들이었다.
중원대륙에 필적하는 드넓은 신강의 대지를 사분하여 지배하고 있는 그들이 거의 동시에 백풍마지에 당도한 것이다.
현재 그들이 이끌고 온 신강사비역의 정예전사들이 백풍마지를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으음! 놈들이 어찌 알고 이곳엘.)
구 척에 달하는 육중한 거구를 지닌 황금천룡(黃金天龍)의 금안(金眼)은 곤혹으로 이지러져 있었다.
그랬다. 그는 은밀한 경로로 폭풍천룡번의 출현 소식을 접했던 것이고, 즉시 최대한의 속력으로 백풍마지에 다다라 있었다.
한데 얼굴조차 보기 싫었던 신강사비역 중 나머지 삼패세도 동시에 백풍마지에 들이닥친 것이 아닌가?
결국 그들은 사면을 장악한 채 서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문득 황금천룡의 눈가로 강렬한 금광이 솟구쳐올랐다.
“후후! 지금 그대들은 사막의 신성금율(神聖禁律)을 깼다고 생각지 않소?”
세 방향을 향해 웅혼한 사자후로 토해지는 그의 음성엔 짙은 살기가 서려 있었다.
사막의 신성금율!
그렇다. 그것은 지난 천오백 년을 이어내려온 사막의 무너질 수 없는 율법이었다.
누란왕국이 사라진 이후 사막은 넷으로 균열되었고, 그로부터 신강사비역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구역을 범하지 않는 신성불가침의 묵계가 이루어졌다.
한데 그것이 천오백여년만에 깨어졌다. 백풍마지는 엄밀히 말해 황금대상단의 권역에 있는데 그것을 나머지 삼대패세가 침범한 것이었다.
황금천룡의 말은 어쩌면 당연한 분노였다.
“큿큿! 신성금율이라....!”
암흑상막의 주인인 암흑마성(暗黑魔星)의 입가로 송곳니가 삐져나왔다.
사막의 미친 늑대라 불리는 암흑마성의 나이는 비록 삼십대 초반이었으나 누구도 그에겐 하대를 하지 않았다. 그의 우수에 들려진 핏빛의 낭아봉(狼牙棒)에 찍힌 자 치고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황금천룡! 당신의 말도 옳소! 하지만 신성금율엔 한 가지 예외가 있음도 모르시오?”
암흑마성의 말에 북쪽에 서 있던 백의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은발, 은미, 은염에 드러난 피부조차 눈이 내린 듯 새하얗다.
스으으!
그 노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빙무에 닿는 지면이 얼음조각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 빙인(氷人)은 천산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천산마신(天山馬神)!
천산대목장의 주인인 그는 암흑마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흑상막주의 말이 옳네! 누란왕국 신화에 관련된 건이 출세할 시엔 신성금율의 율법이 무시될 수 있지!”
“흣! 황금천룡! 이 자리에선 선성금율 따윈 필요없소!”
유생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서 있던 청의중년인도 입을 열었다. 그의 일신에서 발해지는 가공할 기세는 잘 갈려진 비수의 날같았다.
검천제왕(劍天帝王)!
서역검도계의 지배자인 그가 입을 열었던 것이다.
“이제 오직..... 검의 이름으로 말할 뿐이외다! 세 분.”
그의 말뜻은 분명했다. 검을 잡은 무인에게 있어 말은 필요없다. 오직 힘에 의해 모든 것은 대변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힘에 의한 결정은 검천제왕은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 사 인은 내심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하늘에 태양은 오직 하나였고,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선 오직 힘에의 결전 뿐임을!
“...!”
“...!”
사 인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백풍마지의 중앙에 꽂힌 채 찢어질 듯이 펄럭이며 나부끼는 거대한 깃발로....!
이 깃발의 깃봉은 황금의 휘황함으로 빛나오르고, 그 끝의 창날같이 날카로움은 지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철왕강모(鐵王鋼母)로 제련된 것이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검은색의 기폭의 바탕은 황금빛이었고, 그 중앙엔 시커먼 흑룡(黑龍)이 수놓여져 있었다.
-폭풍천룡번(暴風天龍幡)!
신강의 사라진 신화의 유물이 거기에 있는 것이었다.
누란왕국의 실질적인 시조로 알려져 있는 폭풍제왕이 남겼다고 알려져 있는 전설 속의 신병!
그 폭풍천룡번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다.
육각(六角)의 별모양으로 만들어졌다는 목걸이! 곧 황제 헌원씨의 신비가 깃든 폭풍육망수파(暴風六網手帕) 뿐인 것이다.
폭풍천룡번!
영광과 비운의 역사를 내재한 그 천고의 보물을 노려보는 황금천룡을 비롯한 사 인의 눈은 불꽃같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무인으로선 당연히 원하는 야망의 불길이었다.
한데 사건은 돌연히 반전되고 말았다.
“....!”
“....!”
신강무림의 네 지존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번갯불과 같은 섬광을 작렬시키고 있을 때,
쐐애액!
돌연 사막의 모래 일각이 쩍 갈라지며 한 줄기 혈영(血影)이 벼락처럼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헛! 누구냐?”
“어, 어떤 놈이 감히!”
네 패왕들은 일시에 경악성을 토했다.
백풍마지를 사방에서 철통같이 방호하고 있는 신강사비역의 전사들의 경계망을 뚫고 돌입하는 인물이 있으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쐐액!
모래 속에서 치솟아오룬 그 혈영은 벼락같이 백풍마지 중앙으로 날아가 모래 바닥에 꽃혀 있는 폭풍천룡번을 뽑아들었다.
“크하하하!”
쿠르르르!
사막를 떨어울리는 엄청난 웃음소리가 혈영으로부터 터져나왔다.
온몸을 피빛 강기로 두른 그 자의 인상은 아주 흉악했다. 교룡같은 두 가닥 수염에 강시같이 삐적 마른 중년인인데 전체적인 인상은 한 마리 피에 굶주린 이리같았다.
“크크크! 놈들! 모조리 모였구나!”
파라락!
혈영인은 우수에 폭풍천룡번을 움켜쥔 채 득의의 미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감히 사막지존의 신물에 손을 대다니!”
츠팟!
성질이 폭급한 암흑마성이 낭아봉을 움켜쥐며 몸을 날렸다.
쩌저쩡!
대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늑대의 송곳니가 번득이며 혈영인의 정수리를 쪼개갔다.
“크크! 날뛰지 마라 애송이!”
혈영인은 키득이며 우수의 폭풍천룡번을 휘둘렀다.
파라락!
순간 활짝 펼쳐져 휘날리는 기폭이 혈영괴인의 앞을 가리웠다. 삼각의 황금깃폭이 쫘악 펴지자 한 마리 등천할 듯 꿈틀거리는 흑룡(黑龍)의 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닜다.
쐐액!
암흑마성의 낭아봉은 그 흑룡의 눈알을 찢어발길 듯 찍어가고 있었다.
“어엇!”
암흑마성은 질겁하며 황급히 낭아봉을 회수했다.
쿵쿵!
분노로 내쳐진 공세를 무리하게 거둬들인 암흑마성의 신형은 연신 뒷걸음질 치며 물러서고 말았다.
그의 입가로는 검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창졸간에 회수한 공세는 그의 내부를 뒤흔들어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크으! 비겁하게 지존신물로 방호하다니!”
암흑마성은 입가에 피를 주먹으로 문지르며 이를 갈았다.
그렇다. 사막의 미친 늑대라 불리우는 암흑마성이 내상을 각오하며 공세를 회수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폭풍천룡번!
사막에 존재하는 모든 폭풍왕전사들에겐 영광의 천위를 지닌 신물이다. 그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는 공세를 거둔 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는 혈영인의 눈가로 희미란 혈광이 스쳐갔다.
(역시 철왕군사의 말대로다! 사막은 아직도 누란왕국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다.)
혈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 그렇다면 나 혈잠룡(血潛龍)이 신강사비역을 장악하는 것은 여반장이나 다름없겠군.)
그 자는 입가로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혈잠룡!
이건 어디선가 거론되었던 이름이 아닌가?
뇌정십지마련(雷霆十地魔聯)!
그 공포와 전율의 악마혈세!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마의 뿌리이자 대부인 그 열 개의 마지(魔地) 중 한곳으로 피의 땅(血地)이란 고이 있다.
혈지라 불리는 그곳의 수장이 바로 혈잠룡이었다.
아수라의 화신 뇌정천마황의 명으로 사막의 장악을 위해 파견된 피의 룡! 그자가 드디어 흉게를 드러낸 것이었다.
“크크크! 본좌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이곳에 모인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
혈잠룡은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말문을 열었다.
“역시 음모였는가?”
천산마신의 백미가 파르르 떨렸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모인 것이 저 놈의 계획이었단 말인가?”
“으음! 어쩐지 너무 쉽게 사라진 신화의 유물이 등장했다 했더니만....”
나머지 삼 인도 침음을 삼켜야 했다. 설마했던 것이 진실이었음을 그들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크카카! 복종하라!”
혈잠룡은 광소를 터뜨리며 폭풍천룡번을 치켜올렸다.
“사막은 이제부터 본 혈지로 귀속될 것이다!”
혈잠룡은 자신있게 외치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이 순간 모든 사막의 용자들이 무릎을 꿇고 자신을 우러러 경배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듯했다.
하나 환상의 꿈은 종종 깨어지는 것임을 그는 깨달아야 했다.
“허허.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천산마신의 눈가로 비릿한 조소가 흘렀다.
“후후! 폭풍천룡번은 신강무림인의 손에 들려져야만이 권위가 서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자군.”
조용한 검천제왕의 음성이 나직히 울렸다.
“크흐흐, 네놈에게 있어 폭풍천룡번은 보호받을 권위만 있을 분 명령의 권한은 없다! 미꾸라지 같은 놈!”
늑대가 으렁거리는 듯한 암흑마성의 음색은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이놈들이!”
혈잠룡은 돌연한 사태에 흠칫했다.
하나 이내 그의 얼굴로 잔인한 살소가 푸들거렸다.
“크크크, 굳이 벌주를 마시고서야 말을 듣겠단 말이지?”
그의 얼굴에 서린 미소는 자신감에 찬 웃음이었다. 네 패왕들에게 둘러싸이고 신강사비역의 전사들에게 겹겹이 포위되어 공포에 질린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뭔가 또 다른 음모가?)
사막의 네 명의 패존들은 흠칫하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촤촤촤촤! 쿠르르르!
백풍마지의 모래가 일순 핏빛으로 물들고 폭풍같이 혈지가 들꿇어 올랐다. 백풍마지 전역이 삽시에 피의 땅으로 화해버린 것이 아닌가?
촤아악!
그와 동시에 모래 속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핏빛의 물체들이 있었다.
“저, 저것은?”
피꿇는 혈지로 화한 백풍마지를 직시하는 천산마신을 비롯한 사 인은 경악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백풍마지를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는 신강사비역의 수많은 전사들이 보였다. 한데 그들을 외곽에서 포위하듯 솟아 오른 핏빛의 거대한 구체(球體)들이 있었다.
백.... 이백.... 오백.... 천.... 이천....!
그 구체들은 무려 이천개에 달하고 있었다. 지네 등껍질인 듯 둥그런 혈갑으로 둘러싸인, 그 크기가 능히 삼십 장이 넘는 핏빛 구체들이!
사막이 일시에 핏빛으로 물든 것은 바로 그것들 때문이었다.
흡사 피빛 지네가 목과 발을 집어 넣고 껍질만 떠 있는 것과 같았다. 한눈에 보기해도 그것을 싸고 있는 혈갑은 보검이라도 퉁겨 버릴 듯한 특별한 철재로 제조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놀라움은 그 다음이었다.
끼이익!
혈갑구체의 중앙이 그대로 균열되고, 그것은 이내 오 장 정도의 넓이로 좌우로 갈라졌다.
그그긍!
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포신(砲身)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중앙엔 오척 넓이의 중포가 자리해 있고, 그것을 여덟 개의 작은 자포가 감겨져 있는 육중한 거포.
이천 척에 달하는 혈갑구체! 그것들이 모조리 악마의 아가리를 벌리듯 열리고, 그 내부에서 솟아오른 육중한 포신을 모조리 신강사비역의 전선으로 조준해 있는 것이었다.
“자모연환구중포(子母連環九重砲)!”
“으음. 저것을 장착한 전선이 있다니!”
“일격에 방원 십장 이내의 모든 것을 파괴시켜 버릴 수 있는 공포의 화포가 어떻게 이곳에....”
천산마신을 필두로 검천제왕, 황금천룡, 암흑마성의 입에서 경악의 신음성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모연환구중포!
일명 포중제왕이라 불리우는 지상최강의 화기(火器)다.
이것이 탄생된 역사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제조하기 위해선 많은 제약이 따라야 했다.
이천장 지심(地深)에서 채취된 만년묵강철모로 포신을 제조해야 했고, 위력 만큼이나 엄청난 발동의 충격을 감당할 받침대가 존재해야 했다.
중앙에 모포(母砲)를 설치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여덟 개의 자포(子砲)가 휘돌려 감긴다.
그리고 한 문(門)의 자모연환구중포만으로 일개의 성(城)이 초토화 될 수 있었다. 모포에서 발사된 폭발력으로도 방원 십 장 이내의 모든 것이 파멸되고, 그 주위 일백 장 이내는 여덟 개의 자포가 완벽하게 부숴버린다.
한데 그것이 한 문도 아니고, 무려 이천 문이 장전된 채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그 앞에서 전율치 않겠는가?
“크크크! 모두 무릎을 꿇어라!”
혈잠룡이 득의의 흉소를 터뜨리며 대갈일성을 토했다.
“지금 당장 본좌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각기 손가락 하나만을 꾾어 바친다면 위대한 뇌정천마황(雷霆天魔皇)님의 군림천하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혈잠룡은 확신에 차 있었다.
목숨보다도 중한 것은 그에겐 없었다. 당연히 그는 신강사비역의 네 패왕들이 무릎을 꿇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환상은 또다시 깨어지고 말았다.
암흑마성의 걸음이 혈잠룡으로 향했다.
“크크크! 죽음의 사막에서 죽음을 노래하며 살아온 본좌다! 천하에 본좌의 무릎을 꿇게 할 것은 오직 사막의 유일신화! 누란왕국의 지존 뿐이다!”
그를 필두로.
“허허! 천산의 찬바람은 노부의 허리를 얼어 버렸지! 목숨은 아깝지만 허리가 굽혀지질 않는군!”
츠으으!
천산마신의 붉은 적안에서 불길을 담은 혈룡의 기세가 가일층 배가 되었다.
“흣! 검이란 놈은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는 습관은 없다!”
검천제왕은 천천히 검을 빼어들었다.
휘익! 툭.....
그는 아무렇게나 검집을 던져 버렸다. 검수(劒手)가 검집을 버리는 의미는 오직 한 가지 결심에 의해서만 취해지는 행동이었다.
죽음을 초월한 행동! 죽을 줄 알면서도 죽음에 도전하는 검수가 취하는 마지막 행위가 그것이 아닌가?
검을 사랑하는 자에겐 검은 곧 목숨 이상이었다. 그 검의 검집을 버리고 검천제왕은 혈잠룡에게 다가들고 있는 것이었다.
“후하하! 자모연환구중포가 터지면 오직 죽음의 파멸이 도래할 태지. 하지만...!”
옷을 제끼는 구 척의 금의 거한 황금천룡도 금빛 수발을 휘날리며 이를 갈아붙였다.
“그 전에 네놈부터 죽여야 직성이 풀리겠다! 네놈은 지옥으로 가는 다리로 삼으리라! 감히 사막을 능멸하다니.”
츠츠츠!
황금천룡의 모습은 이미 형체가 사라져 있었다. 황금의 강기막에 둘러싸인 그의 형상은 그대로 황금인간이었다.
“이, 이런! 미친 놈들!”
혈잠룡은 아연실색했다.
일순 그의 눈가로는 잔혹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좋다! 믿지 못하겠다면 우선은 시범을 보여주지!”
이어 그는 북천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새하얀 백마(白馬) 칠천여 마리가 운집해 있었다.
칠천칠백칠십칠(七千七百七十七) 천산백마군단(天山白馬軍團)!
그것으로 연환기마술을 펼치면 거치는 모든 것을 초토화시켜버린다. 천산대목장이라 불리는 천산의 무적신화를 이룩한 무적기마군단이었다.
“본보기로 천산의 신화를 부셔버려라! 혈지의 잠마전단(潛魔戰團)이여!”
혈잠룡의 대갈이 울려퍼졌다.
끼이이익! 그그그!
이천의 혈지잠마전단이 제자리에서 한 곳을 향해 돌아갔다. 무적의 기마군단을 향해 이천 문의 자모연환구중포가 포문을 연 것이었다.
콰쾅!
사막 전역을 떨어울리는 엄청난 굉음이 대기를 찢어발겼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쾅! 콰르르릉!
그것은 차라리 지옥의 장관이었다. 이천 문의 모포가 포화를 울리고 그 뒤를 이어 일만 육천 문에 달하는 자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천산에서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경외감을 일으키는 천산대목장의 기마군단으로 집중된 지상최강의 화기 자모연환구중포!
백풍마지는 더 이상 백색의 안개지대가 될 수 없었다. 시뻘건 화염의 불꽃이 굉음과 함께 타올랐다.
푸스스스!
모래조차 불길에 휩싸여 시커먼 화연 속으로 휨날려 들었다.
사막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매케한 화염 속에 갇혔다.
“이..... 이!”
천산마신의 악다문 입술은 이빨에 짓씹히면서 진홍빛의 선혈이 흘렀다. 눈같이 하얀 그의 얼굴색은 아예 핏기조차 상실한 밀랍인형인 듯 창백하게 굳어졌다. 아울러 그의 탐스럽게 자라 있는 긴 은발은 바람과는 상관없이 떨리고 있었다.
콰콰콰!
시커먼 포연 속에서 시뻘건 지옥의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기마군단이 있던 자리가 희뿌연 포연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천산마신!
자신의 생명일지라도 바꿀 수 없는 천산의 모든 것이라 대변될 수 있는 기마군단이 자모연환구중포의 집중포화 속에 갇히우는 것을 묵도한 그의 눈시울은 붉게 젖어들고 있었다.
그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천산대목장이 자랑하는 무적의 기마대란 명칭을 들을 정도로 날래고 강건한 기마(騎馬)라곤 하지만 지상최강의 화기 자모연환구중포의 집중포화 속에서는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아울러 그것은 신강사비역의 파멸을 알리는 전주곡이고, 사막의 위대한 영광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리란 것도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적은 존재하고 있었다.
휘류류류! 푸스스!
매캐한 포연이 차츰 흩어지고 칙칙한 검은 구름처럼 시커먼 산맥이 천산기마대를 가로막은 채 오연히 자리해 있는 것이 아닌가?
대체 저 검은 바위같은 것이 무엇이기에 그 엄청난 자모연환구중포의 포격 속에서 천산기마대를 방호했단 말인가?
쿠웅! 쿵! 쿵!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무비한 검은 산악은 모래를 가르며 기둥같은 거대한 다리를 흔들며 나아간다.
“허억! 저, 저것은!”
“저, 전설적인 영물이 천산대목장을 방호해 주다니!”
“흑왕지주!”
천산마신의 눈에서는 진한 감격의 기운이 물결쳤다.
황금천룡을 비롯한 삼 인의 입에서는 경악의 탄성이 흘렀다.
“저 짖어죽일.... 거미(蜘蛛) 새끼가!”
혈잠룡의 가느다란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그런 그 자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에는 거대무비한 여덞개의 발을 저으며 이천개의 혈지잠마전단을 향해 진격해 가고 있는 어둠의 산맥이 보였다.
-흑왕지주!
사막의 공포!
놈의 발 하나에 깔리면 철왕강모일지라도 박살난다. 아울러 놈의 흑묵갑주는 벼락일지라도 퉁겨내는 무적의 철갑이었다.
사막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 중 최강의 영물인 바로 그것이 출현한 것이었다.
자모연환구중포의 포화를 퉁겨낼 수 있는 환우천하에 유일한 생물체!
생전 처음으로 엄청난 포격에 난타되어 내부가 뒤흔들리는 충격에 흑왕지주는 분노해 있는 상태였다.
쿠아아아!
육중한 검은 철기둥같은 발을 치켜든 채 놈은 폭풍과도 같이 짖쳐나갔다.
“빠, 빨리 포신을 돌려라!”
“우우! 조준하여 빨리 쏘아라!”
겁에 질려 허둥대는 마졸들의 경호성이 울렸다.
끼끼끽! 그그그긍!
혈지잠마전단의 벌어진 틈으로 빠져나온 육중한 자모연환구중포가 짓쳐드는 흑왕지주에게로 굉음을 내며 조준되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촤르르르!
돌연 모래바닥이 부글부글 꿇어오르며 출렁였다.
콰르르르! 퍼펑!
이어 이천개의 혈지잠마전단이 허공으로 퉁겨지듯 솟구쳐 올랐다.
사막은 더 이상 피의 바닷가 아니었다.
피의 혈갑구체를 밀어올리고 솟구쳐 오르는 금광의 노을! 사막은 그대로 황금의 바다였다.
쉬이이이!
지네(蜈蚣)다. 최소 십장에 달하는 거대한 황금지네들이 무려 수천 마리가 떼를 지어 출몰한 것이었다.
혈지잠마전단은 육상에서 질주하게 바퀴가 장치되어 있음은 물론, 모래속에서도 다닐 수 있는 특수한 기계였다.
껍질은 화산이 폭발할 시 지저에서 녹아 흘러내린다는 화혈강철모로 제련된 갑주가 덮여져 있었다.
하나 이 순간 사막과 육지를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혈지잠마전단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자모연환구중포!
지상최강의 화기!
그 공포와 전율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죽음의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래속으로 도망하기 위해선 벌어진 틈을 닫아야만 했다. 하지만 자모연환구중포를 완전히 선내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최소한 일각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워낙 창졸간에 밀어닥친 위기.
구우우우!
기성을 발하며 요동치는 황금지네들.
-금령천독오공(金靈天毒蜈蚣)!
바로 그 놈들이 혈지잠마전단을 등으로 밀어올려 거꾸로 뒤덮어 버리고 있었다.
콰르르르!
당연히 열려진 틈으로 모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들어간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촤르르르!
돌연 백풍마지의 외곽히 급격히 소용돌이치며 휘돌았다.
드러나는 백색의 거대무비한 물체!
전갈!
그것도 최소한 오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전갈 일천 마리가 바다를 광란시키며 쇄도해 드는 것이 아닌가?
-독왕전갈!
일명 백색의 공포! 사막최대의 몸집을 지닌 전갈들 중의 왕중제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키이이이!
일천 마리의 독왕전갈들이 일시에 반쯤 모래 속에 파묻힌 혈지잠마전단으로 쇄도해 짓쳐들었다.
콰앙! 콰지지직!
용권풍 속에서도 부숴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고, 모래 속 오십장 이레에서도 찌그러들지 않을 강인한 철갑으로 둘려진 무적의 철갑기계인 혈지잠마전단!
하나 날뛰는 독왕전갈들의 거대한 동체에 양 옆으로 부딪쳐가자 그것들은 그들의 가운데서 수수깡처럼 으깨져 침몰하고 있었다.
“크아악!”
콰드드득!
“케에엑!”
콰콰콰!
전선에 타고 있던 마졸들은 찌그러지며 부숴지는 철편에 전신이 어육이 되어 박살나고 있었다.
“피하라!”
“나와서 도망가라!”
“으으! 독왕전갈의 힘에는 혈지잠마구체일지라도 종이조각일 뿐이다!”
휘이익!
혈지잠마구체에 타고 있던 마졸들은 황급히 탈출하여 모래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금령천독오공에 의해 뒤집혀진 혈지잠마전은 전율의 대상일 수 없었다.
거기에 양 옆에서 밀어 계란을 으깨듯 박살내 버리는 독왕전갈들. 어차피 안에 있어도 압사되어 죽는다는 것을 마졸들은 너무도 잘 알 수 있었다.
하나 죽음을 피해 뛰어든 모래는 그들에게 피안이 될 수 없었다.
카아아!
독왕전갈이 집게발을 들어올리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금령천독오공도 마찬가지였다.
사막의 생물이 지네, 전갈, 거미같은 것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사막의 독물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들이 바로 이곳에 있는 세 종류다.
놈들은 마음껏 포식을 즐기고 있었다.
“피, 피하라! 크아악!”
허우적거리는 한 명 마졸의 머리가 거대한 독왕전갈의 꼬리 독침에 찍혀 놈의 입 속으로 삼켜졌다.
우드득!
두 개골이 으깨어지는 파골음이 터져나왔다.
“아악!”
“으으! 죽음의 지네떼가...... 크아악!”
쿠르르!
삽시간에 사막은 처절한 공포와 죽음의 비명과 절규로 차올랐다.
누런 사막은 매캐한 혈향과 함께 핏빛으로 번져갔다.
혈해(血海) - 피의 바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옥(地獄) - 백풍마지는 차라리 아수라지옥의 참극을 연출시키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겨우 참화를 모면한 백여개의 혈지잠마구체는 쾌속하게 백풍마지의 외곽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헌데 그들을 향해 진격해 오는 암흑의 폭풍이 있었다.
두두두두!
“우하하! 감히 사막를 능멸하다니! 내 비록 마적이나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모조리 죽여라!”
웅후한 대갈일성이 떨어울렸다.
촤아아!
일시에 실체를 드러내는 일만 마리에 달하는 검은 낙타군단.
휘날리는 검은 해골의 깃발을 매고 있는 선두에 선 채 눈을 부릅뜨고 우뚝 서 있는 묵철갑주를 걸친 초거한의 우수에는 일 장이 넘는 거대한 철부가 비껴 쥐어져 있었다.
-광풍마룡!
사막의 무법자인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카핫! 모조리 죽여라!”
“크흐흐흐! 사막에서 감히 본단을 거치지 않고 사업을 하려 해?”
츠파팟!
일만기의 흑풍낙타에서 솟구쳐 오르는 수천 줄기의 흑영들은 각기 거치도를 움켜 쥐고는 다짜고짜 도주하는 혈지잠마구체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미 전의가 상실된 혈지의 마졸들이다.
“케에엑!”
“으으! 존야는 사막을 너무 가볍게 생각.... 크아악!”
콰콰쾅!
파멸!
역사상 최극강의 마세를 구축한 뇌정십지마련!
그 열 개의 천마십패지 중 혈지(血地)의 전멸은 너무도 쉽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즐독요
줄겁게 열독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감사 감사 ~~~
감사합니다
즐 감 합니다
ㅈㄷㄳ
잘봅니다
ㄳ
감사
즐감하고 있습니다~
최극마강
즐독...........
광오 합니다
잘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초반부터 강한 위력을
ㅈㄷ
감사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