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 73돐에 돌아 보는 이나라의 보훈현실 [0]
윤문종
어제가 육이오동란으로 불렸던 6·25의 73돐이다.
필자가 78세니 다섯살에 맞은 전쟁으로 아득 하나마 외갓댁으로 피난을 갔던 기억이 있다. 밤(栗)이 많았던 고장인 외갓집은 부엌 한켠에 밤을 송이째 넣고 보관하던 제법 넓은 지하공간이 있었다. 이곳에 아버지와 다른이 서넛이 숨어 있고 안살림을 하던 ‘행랑어멈’이 사다리로 밥을 내려주던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또한 장항선 금마역에서 홍성역간에 열두다리(철교)를 폭파하는데 할머니는 내게 이불을 겹겹이 덮어 씌워주시고 연신 염불을 하셨으니 어둡고 답답한 가운데 두려운 것이 낮게 나는 폭격기의 귀를 찢는 비행음과 폭발의 굉음이었다.
바로 그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함으로써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3년 1개월이란 긴세월 계속된 전쟁으로 이를 '한국전쟁'이라고도 한다. 초반 낙동강까지 전세가 밀려 난민으로 뒤덮인 부산으로 정부가 피난을 가야 하는 풍전등화의 순간에 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지하는 바 맥아더란 불세출의 전쟁영웅이 이끄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므로서 전황이 역전되어 두만강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와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당시 중공군들은 총대신 고량주에 취한 10대까지 전쟁에 동원되어 말그대로 인간바다(人海) 처럼 밀려 왔단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으로 수많은 인명의 살상과 돌이킬 수 없는 물적 파괴를 남긴채 6·25전쟁은 일단락되었다.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6·25 전쟁기간 국군사망자는 13만7천여명에 전상자는 46만, 포로는 8천여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또한 유엔군 실종자와 포로는 각각 4천, 6천명이며 부상자는 10만 남짓으로 기록하고 있다. 생각할 수록 몸서리 처지는 동족상잔이며 인간살육이 이닐 수가 없다.
앞서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피력하였거니와 여기서 또 한사람 6·25전쟁과 더불엉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숨은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트뤼그베 초대 유엔사무총장이다. 그 유엔의 초대 사무총장 트뤼그베 리(노르웨이, 1946∼1953년)는 임기 중 이스라엘의 건국, 한국전쟁등 굵직한 일들을 다룬 인물이다. 특히 한국전이 발발하자 한국이라는 자유민주국가가 공산당의 침략을 받는 전쟁으로 규명하고 국제사회에 호소하여 세계 16개 우방이 UN군으로 참전케한 한국전의 숨은 공훈자다.
그러나 아직 우리정부는 이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공식으로 표명한 적이 없고 이사람의 모국인 놀웨이에 그어떤 치하의 예를 차린 사실이 없다. 참으로 배은망덕한 처사다. 더구나 이사람의 굳은 의지는 한국전 독려로 당시 소련의 미움을 사서 사무총장연임까지 실패한 우리로서는 결코 잊어서 않되는 은인인데 말씀이다.
이같이 전쟁이 73년이나 지나고도 당연히 은덕을 기리기는 커녕 구멍난 대한민국의 보훈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6·25전쟁에 참전한 국군 참전자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전자 가운데 아직 생존 중으로 국가보훈부에 기록된 숫자가 지난달 말 기준으로 5만1천817명이란다.
한편 월남전참전생존자는 현재 18만명 정도다.
6·25전쟁을 이야기 하다 갑자기 월남전참전생존자 숫자를 언급하는 것은 두 참전자을 합한 23만 여명이 현재 참전명예수당이란 이름하에 월 39만원의 명예수당을 받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하여 6·25 발발 73주년을 맞은 25일 "자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들의 피 묻은 군복의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고 썼다. 아울러 "우리는 참전 용사들과 그 가족들이 흘린 피와 눈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6·25의 73돐을 기념했다.
그러나 우리가 말로 기념하고 잊지 말며 기억하는 일은 참 쉽다. 영혼없는 다짐이나 인사치레로 미사여구를 나열하며 뜻을 기리고 장한이들이라며 추켜세우는 일이 무에 그리 어렵겠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참전자들이 흘린 피와 눈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대목의 진의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것이 혹자(或者)의 물음 때문이다. "당신들은 5·18이랑 비교해 국가 혜택이 여하한가"를 말이다.
솔직히 월남전참전자인 필자는 5·18로 인하여 유공자가 된이 들이 어떤 혜택을 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알려고도 하고 싶지가 않다. 명단도 발표가 없으며 공적조서 또한 변변찮은 사람들이 모두 유공자의 반열에 들어가서 5·18유공자입네 행세하고 가당찮은 예우를 받는 다니 유공자로서의 입지가 너무도 당당하고 자랑스런 참전자의 입장에서 이처럼 볼썽사난 모습을 거들떠 보기조차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그냥 값어치 없는 자존심에 불과하고 5·18만 개입하면 안되는 일이 없고 5·18만 들이대면 무소불위의 배경이 되니 참전자 정도로선 당랑거철(螳螂拒轍) 같아서 저들의 기세에 쪽을 못쓰는 못난 애비 할애비에 불과하다. 시작점을 저만치 앞에다 놓고 출발하는 단거리 경기나 마친가지니 저들에게 주어지는 가산점은 5·18과 참전자 사이의 사회신분을 극명하게 나누는 세로운 반상(班常)의 기준이다.
참으로 애비 잘 못둔 내자식 새끼들에게 염치없고 못난 어른이며 부끄러운 신분이 ”참전유공자“다. 국가는 반드시 참전자가 왜 5·18에 견주어 차별대우를 받아야 하고 참전자들이 국가에 대한 공헌도가 여하히 5·18에 비하여 평가가 떨어져 이같이 홀대(忽待)를 받는지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이는 치사한 예우에 대한 시기(猜忌)가 아니라 공평한 보훈만이 공정한 국가와 바른 사회를 만드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윤석열대통령의 선거캠프가 밝힌 공약집에 참전명예수당의 50만원 인상이 어였하게 자리잡았으니 참전늙은이들이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고 유혹 받기에 더 할 나위가 없는 대선공약이었다. 결과로 보면 이재명과의 표차이가 불과 0.7%로 국정을 수행하는데 곳곳에 걸림돌이 되는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인 24만표는 공교롭게도 그중 23만여명의 참전늙은이들로써 표차의 갭을 넓혔을지 모를 킹메이커로서의 유공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윤은 당선후 매년 3만원을 올려 향후 5년에 걸쳐 50만원을 만들어 주겠단다. 지금 6·25 참전자의 평균년령이 95세라니 100살 살면 그때가서 50만원채워 주겠다는 뜻이다. 생물학적 순응을 거부한 비현실적 사실이며 유공자에 대한 우롱이고 노인에 대한 불공(不恭)이다.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72주년을 맞는 작년 6.25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표하고 영웅을 존경하는 사회적 인식을 증진시키기 위해 참전용사를 위한 제복을 제작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보훈처가 보훈부로 승격되며 피부로 느껴야 하는 것이 늙은이 구멍난 지갑에 단돈 일만원을 채우게 하여 국밥 한 그릇을 대접하는 일이다. 제복을 입히고 겉멋을 내는 일은 정말로 보훈이 잘되고 넉넉한 생활을 하는 나라나 하는 호사지 당장 식당 앞에서 점심값을 따져야하는 고물가 시대의 늙은이들은 비단이 한끼라고 제복보다는 현금 일만원이 더 절실하다.
최정식 국가보훈처 소통 총괄팀장은 옷을 해주는 의의가 "선진국들의 공통적인 점은 공동체 안에서 희생하신 분들을 제일 먼저 예우하는 보훈문화"라 했다, 그러나 오일팔에게 주는 가산점은 신분을 차별하고 공동체내에 희생을 가벼히 여기며 이나라가 국가를 살린 유공자보다 기회주의자을 먼저 예우하는 이상한 보훈문화다.
6·25 전쟁은 국민이 한국전쟁을 상기하여 멸공과 반공정신을 되새기는 기념일로, 매년 6월 25일에 거행되며, 받아야 마땅한 대상이 보훈대상이 되는 기념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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