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에는 영혼이 깃들어있다. 어쩌면 생명이 없는 것에도 영혼이 서릴 수 있지 않을까.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시던 돋보기 안경, 첫 월급으로 샀던 구두, 매일 출근길을 함께 달린 낡은 자동차 등 오래된 물건에는 왠지 영혼이 존재할 것만 같다. 집도 그렇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던 곳이라면 단순한 집이 아니라 가족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작가는 낙동강을 따라 삼랑진에서 물금에 이르는 경부선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길이라고 극찬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경남 양산의 원동마을. 이곳에서 가족들과의 추억이 깃든 오래된 집을 고쳐 독채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노미례(32) 씨도 본인이 자란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성인이 되어 타지에서 생활하던 때에도 항상 원동마을의 작은 기와집을 그리워했다. "부모님이 원동을 떠나시면서 집을 내놓았는데 제가 너무 안타까웠어요. 우리 가족의 흔적이 가득한 집에 다른 사람이 와서 산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다시 집에 갈 수 없으니까요. 제가 특히 원동집을 좋아해서 항상 엄마한테 나중에 내가 살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거든요." 그녀가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가족이 원동마을로 이사를 왔기에 미례 씨에게는 그 집이 고향집이나 다름없었다. 결정적으로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그곳에서 일주일간 자가격리를 하면서 폐가처럼 허물어져 가는 집을 살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집에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집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살고 싶은 집으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오래된 집을 하나하나 고쳤다. "엄마에게 듣기로는 예전에 면사무소 사택으로도 사용됐고, 술을 제조하는 곳으로도 쓰였다고 해요. 못해도 70년 이상은 된 집이라서 단열에 특히 신경을 썼어요. 나무 기둥은 일부가 썩어 철근으로 보강했고요." 70여 년 전 지어진 작은 기와집은 '만찐두빵'이라는 숙소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추억의 만화영화 <검정고무신>의 에피소드에서 따온, 세로쓰기 형태로 쓰인 만두·찐빵을 그대로 읽은 이름처럼 정감 어린 공간에서 이제는 손님들이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뚱순이 상회, 형제반점, 원동참기름 등 정겨운 가게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골목길 사이로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듯 한 노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로 단장한 옛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정원과 어우러지는 아담한 기와집을 마주하니 나의 유년시절 기억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빠진 이를 힘껏 던졌던 지붕, 봄마다 제비가 둥지를 트던 처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던 마루 등 그 옛날 우리 집과 어딘가 모르게 닮은 만찐두빵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젊은 주인장은 이 집에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미례 씨 또한 그때 그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50여 평 남짓한 터에 지어진 18평 작은 집에는 소중한 순간들이 여전히 깃들어 있다. 그녀는 눈 가는 곳, 손길 닿는 곳마다 방울방울 맺히는 옛이야기를 들려줬다. “할머니와 아빠, 엄마, 언니 둘, 저, 동생까지 총 일곱 식구가 함께 이 집에서 살았어요. 이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동생이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던 뜨락,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무서워 쳐다보지도 못했던 다락방, 나날이 자라는 동생과 제 키를 표시해둔 흙벽, 가을이 되면 탐스럽게 열린 열매를 따 먹었던 앞마당 감나무 등 모두 어제 일처럼 아른거려요."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놓은 그녀의 입가에는 해사한 미소가 어렸다. 부자 중에서도 '추억부자'가 제일이라는 말처럼 이 집에서의 행복했던 시간들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그녀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미례 씨의 소망은 만찐두빵을 찾는 손님들도 이곳에서 즐거운 기억을 품는 것. 그런 바람을 담아서 정성껏 공간을 꾸몄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곳곳에 배치했고 특별히 취미방을 마련해 피아노와 턴테이블, 우쿨렐레, 카메라, 만화책을 두어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마당에는 미니수영장과 바비큐장 등의 현대식 시설까지 새로 설치했다. 여기에 '숯에 불 붙이는 법' '가습기 사용 방법' '폴딩 도어 사용법' 등 세세한 안내 사항을 친절하게 정리해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님들이 즐겁게 머물 수 있게 준비했는데 제대로 못 즐기고 가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최대한 자세하게 정리해서 SNS에 올리거나 메모를 적어 붙여놨어요. 가끔 예약이 없을 때는 제가 직접 하룻밤 자보며 불편한 점이 없는지 살펴보기도 해요." 그 마음 씀씀이 덕분인지 문을 연 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았고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 가까운 부산은 물론이고 먼 서울에서까지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10여 년간 방치되다시피 한 집이 손님으로 복작이는 요즘, 미례 씨는 집이라는 건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제구실을 한다는 걸 새삼 실감한다. 스러져가던 옛집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이들이 그저 고마워 그녀는 더 부지런히 집안 구석구석 윤기를 내고 손님 맞을 만반의 준비를 한다. 만찐두빵을 찾는 사람들에게 포근한 시간을 선사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미례 씨가 소중한 추억이 깃든 집을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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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멋스러운 젊은 여인이군요.
몸이 불편한 노년이라 가 볼 수는
없지만 이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옛날로 돌아가는 듯 마음이 정겨워 지네요.
반갑습니다
소산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고견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즐거움과 웃음 가득한
행복한 불 금 보내셔요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소중한 멘트 감사드리며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좋은 하루보내세요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이 덥네요.
건강 조심 하시고 시원하게 보내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월요일 반갑게 뵐께요
안녕하세요
핑크하트 님 !
다녀가신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즐거움과 미소로 가득한
알찬 주말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