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현 한화 이글스 소속 우완 투수. 등번호는 SK에서 46번을 달고 KIA로 이적해서는 14번을 달았으나 두 달만에 46번으로 변경했다. 이후 윤석민이 메이저리그 행을 선언하면서 비게 된 21번을 송은범이 잠시 달았었다.
별명으로는 송은범가너, 송시구, 송돼지, 송은뱀[4], 애완돼지[5] 등. KIA로 이적한 후부터 송은BOMB, 송=Bomb, 송은범버맨, 송은방화범, 송은품, 속은범, 송은밤, 썩은밤이란 별명이 추가되었다. 한화로 이적한 후부터는 김정은범, 속죄남[6], 뚱냥이 등의 별명이 추가되었다.
인천광역시 출신으로 서흥초 3학년때부터 야구를 했다고 한다. 본래 포지션은 내야수였으며 이후 투수로 전향했다. 인천 동산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2003년에 SK에 입단하기 전까지 고교야구 빅3 중 한명이기도 했다. 150km/h에 육박하는 구속과 뛰어난 타격, 대담한 성격과 오른손 타자 몸으로 강하게 들러붙는 스터프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도 관심을 표했을 정도로 뛰어났다.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도 스카우터들이 관심을 표했는데 이미 학생때부터 매우 놀기 좋아하는 선수라고 인천에 정평이 쫙 나있었다.
2000년 제 22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 선발투수로 나와서 대전고와의 대결에서 9회까지 보여준 능력은 대단했는데, 이때 9회까지 피안타는 고작 7개였고 1실점을 했지만 완투승을 거뒀다. 당연히 7월 18일에 모교에 우승을 안겼고, 본인은 우수 투수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2001년에는 청소년 야구 대표팀에 포함되었고, 12월 박찬호 야구장학금 수여 대상자로 선출되기도 했다. 2002년이던 3학년 시절에는 성남고의 노경은, 광주일고의 김대우와 함께 빅3를 형성, 자연스레 연고구단 SK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연고지 구단 SK는 2002년 7월 25일 당시, 이런 송은범에게 계약금 4억원, 연봉 2천 만원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며 1차 지명으로 영입. 그에게 큰 기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입단 이후 팬들에게 게으르고 놀기 좋아해서 풍류은범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등 게으른 천재 취급을 받았다.
이런 이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알려져 있다. 송은범은 부모님이 어릴 적에 이혼한 탓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막노동하면서 손주를 뒷바라지한 할아버지는 그에게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당시 SK 감독이던 조범현 감독이 선수단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경기가 우천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송은범을 할아버지 발인에 가지 못하게 하였다.[7] 이것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송은범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던 것은 당연할 터.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왜 야구를 해야하는지 등으로 고민했고 이후 오랜 기간동안 마음을 못 잡고 방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불타는 그라운드 11회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니 찾아볼 사람은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송은범은 야구도 잘했지만 학창시절부터 잘 노는 걸로 유명해서 신인 시절부터 구단 차원의 관리대상이었기에 송은범이 게을러진 이유를 모두 저 에피소드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송은범의 실력과 별개로 발인에 가지 못하게 한것은 잘못이다. 선수가 아무리 잘 놀든, 게으르든간에 일단 직계가족. 그것도 부모와 다름없을 정도로 중요한 조부가 돌아가셨는데 발인식에도 못 가게 한 건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기아, KT 감독을 거치며 많이 바뀌었지만 SK 시절 조범현 감독은 선수관리에서 미흡한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이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조범현 감독이 성적부진 등을 이유로 SK감독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조감독의 스승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게 되면서 마음을 고쳐잡고 야구에 집중, SK 선발진의 핵으로 성장하게 된다.[8] 그러나 고등학교 때도 어떤 상황에서든 실실 웃으며 즐기듯 던지던 것을 보면 타고난 성격도 꽤 낙천적인 듯 싶다.
우완 정통파 선발투수로 140km/h 후반의 직구와 낙차 큰 커브가 주무기.[9] 삼진을 많이 잡는 스타일은 아니고 경기운용능력이 좋은 타입. 입단 당시의 높은 순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두자리 승수는 가능한 재능이라고 평가받았다.
2008년까지는 전형적인 공만 빠른 투수로 가벼운 구위와 떨어지는 제구력을 지적받았지만 2009 시즌부터는 환골탈태. 향상된 제구력과 묵직한 구위를 바탕으로 채병용이 불펜으로 빠지면서 공석이 된 SK의 우완 선발 자리를 확실하게 꿰차게 된다. 이 와중에 살이 쪄서 혹자는 외모와 야구 실력을 바꾸는 악마의 거래를 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나온 별명이 송돼지. 커리어 중 유일하게 올스타전 멤버에 발탁된 해이다.
1위 탈환이냐 1위 고수냐가 결정적이던 2009년 9월 9일 KIA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한 송은범은 선두 타자 이용규에게 3루타를 맞고 뒤이은 2번 타자 김원섭에게 적시타. 3번 타자 나지완에게 볼넷을 내주며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도 못하고 공 11개만에 정우람과 교체되며 팬들의 조롱은 더욱 거세졌으며, 이후 '송시구'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10] 2009년 9월 16일 꾸역꾸역 5이닝 동안 무실점하고 내려가서 근 한 달 만에 승리를 거두는듯 했으나 불펜으로 나온 정우람이 페타지니에게 홈런을 맞으면서 승리가 날아갔다.
포스트 시즌에서도 암울함을 이어갈 것으로 생각되었고 실제로 플레이오프에선 부상을 이유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부름을 받고 2차전에 출전했지만 최희섭에게 적시 2루타맞고 떡실신. 패전 투수로 기록되었지만 투구 내용(4 ⅓이닝 1실점 2피안타 1볼넷)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11]. 그렇지만 2승 3패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맞은 6차전에서 5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KS 시리즈 전적 3승 3패로 7차전까지 끌고가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우승은 실패.
그래도 2009 시즌 SK를 지탱했던 선발임에는 틀림이 없다. 2009 시즌 영입했던 존슨과 니코스키를 방출하고[12]카도쿠라와 글로버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선발진의 공백[13]과 불펜진의 난조로 보직이 변경된 채병용의 우완 선발자리, 그리고 김광현의 부상으로 구멍 투성이가 되어버린 SK 선발진[14]을 지탱한 것은 커리어 하이를 찍으면서 이닝을 먹어준 송은범이었기 때문이다.
10월 15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5:9로 앞선 8회 초 1사 1루 상황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 ⅔이닝 16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5:9로 이겼다.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3점 차로 앞선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11투구수 1탈삼진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했다.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4:1로 앞선 8회 말 1사 1루 상황에서 6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4번 타자 최형우와 5번 타자 박한이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 이닝을 끝내고 여전히 스코어 4:1인 9회 말에 선두 타자 신명철의 대타 채태인마저 삼진으로 잡았기에 이대로 무난하게 경기를 끝내는가 했지만, 조영훈, 현재윤에게 연속 안타, 9번 타자 박진만 타석 때 폭투 후 볼넷, 이영욱 타석 때 초구 폭투로 실점을 하는 등 갑작스런 제구 난조로 무너지면서 이승호로 교체되었다.
다행히도 교체된 이승호가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고 경기를 끝냈기에 송은범의 실점은 늘지 않았고, 이날 송은범은 1이닝 23투구수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홀드를 기록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로 선발되었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깔끔하게 병역 혜택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SK는 송은범, 최정, 김강민이 군면제를 받아 정우람, 나주환이 군대가야하는 상황에서 강제로 전면 리빌딩되는 사태는 막을수 있게 되었다.그런데 2011년 8월 프런트가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면서 그놈의 프런트 때문에 강제 리빌딩이 시작되었다.[17]
추신수와 류현진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건데, 류현진이 방에서 제일 어린 방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류현진 잘 던지라고 빨래, 잡일을 송은범이 다했다 카더라…. # 그래도 면제 되었으니 해피엔딩인 듯하다.
4월 14일 한화전 선발로 류현진과의 대결에서 6이닝동안 1실점 퀄리티 스타트를 하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5월 12일에는 원래 송은범이 선발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정작 경기를 시작하니 송은범은 없었고고효준이 나오는 요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상대팀 류중일 감독과 심판들은 대체 왜 고효준이 나오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탓에 결국 송은범이 한 타자는 상대하고 내려가야만 했다. 그 이후 2군으로 내려갔으니 부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긴 하지만, 이를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김성근 감독의 실책이 낳은 소동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후 1군에서 말소되었으며 정말 위장 선발이라 다음 로테에 나왔으면 욕먹어도 좋았겠지만 일본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6월 3일, 1군 콜업후 KIA전에 선발로 나왔다. 6이닝 2실점(1자책)으로 호투했으나 타선 지원이 0점이라 패전 투수가 되었다.
준 플레이오프부터 감기와 팔꿈치 통증 등으로 몸이 성치도 않은데 진통제를 맞아가며 투혼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팀의 무너진 선발진 때문인 듯. 은뱀아 우야노 예까지 왔는데
팀이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10월 9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서 6이닝 동안 83개의 공을 던지고 5피안타 1피홈런 1볼넷 5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였다. 승패는 기록하지 못하였고 팀은 연장 승부 끝에 2:3으로 승리하여 준 플레이오프 전적 1승 1패를 기록하였다. 이날 경기가 송은범의 2011년 준 플레이오프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9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출장, 성치 않은 몸으로 최고 구속 155km/h를 찍었고, 6이닝동안 98개의 공을 뿌리며 1회 말의 만루 위기를 넘기는 등 3피안타 3볼넷 2사구(死球) 4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팀의 스코어 0:3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가 송은범의 2011년 플레이오프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지던 10월 2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5이닝 94투구수 4피안타 4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이날 팀이 1:2로 승리하였고 송은범은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날 경기가 송은범의 2011년 한국시리즈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송은범은 2011년 포스트 시즌에서 3경기 17이닝 12피안타 1피홈런 8볼넷 2사구(死球) 11K 2실점 2자책점 평균 자책점 1.06, 2승을 기록하였다.
팔꿈치 뼈 조각 제거 수술 후 재활하다 4월 말에 1군 등록. 조금 빠른 듯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도 4월 28일 삼성전에서 5이닝 85투구수 3실점으로 승리를 거두며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어 좋은 모습을 보이나 싶었다.
4번째 경기인 5월 18일 한화전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1아웃 남겨놓고 갑작스런 팔꿈치 통증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날 성적은 5 ⅔이닝 105투구수 3실점, 승.
오른쪽 굴곡근의 손상으로 3주만에 다시 재활군으로 내려갔지만 6월 30일 1군에 복귀하였다.
9월 23일 잠실 구장에서의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6 ⅔이닝 동안 호투하며 시즌 8승을 거뒀다. 부상에서 복귀한 후 윤희상과 함께 SK 와이번스의 상승세를 이끄는 선발 원투 펀치로 활약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2년 10월 19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78투구수 6피안타 4탈삼진 3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1:4로 패하여 송은범은 이날의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날 경기가 송은범의 2012년 플레이오프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송은범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모두 중간계투로 등판하여 4이닝 2피안타 2볼넷 1사구(死球) 2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6.75, 1승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송은범은 2012년 포스트 시즌에서 4경기 8이닝 8피안타 2볼넷 1사구(死球) 6탈삼진 6실점 5자책점 평균 자책점 5.63, 1승 1홀드 1패를 기록했다.
FA를 1년밖에 안 남긴 상황에서 2013년 5월 6일 SK와 KIA 사이에 이루어진 2:2 대형 맞트레이드를 통해 고향 연고팀인 SK를 떠나게 되었다. 이때 KIA 타이거즈가 김상현과 진해수를, SK 와이번스가 송은범과 신승현을 각각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는데, SK팬들의 상실감과 충격은 엄청났다. 인천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에다가 불과 FA를 1년 밖에 남기지 않은 예비 FA였기에 당연할 터[18].
트레이드가 터진 직후, KIA감독인 선동열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내가 직접 송은범을 택했다"고 말하며 송은범이 선발, 중간, 마무리가 모두 가능하다고 언급하며 큰 기대를 걸었다. 더불어서 이때 트레이드 뒷 이야기도 나왔는데 트레이드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됐다고 한다[19].
이때 KIA쪽에서 원했던 선수는 원래 SK의 신진급 우완 투수. 그래서 SK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해당 선수를 점찍고 트레이드 문의를 했는데 SK가 "김상현을 달라"고 제의해서[20], 트레이드 판이 커지게 되었고, 결국 선 감독이 송은범을 달라고 요구해서 조율 끝에 트레이드가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조율 끝에 먼저 김상현-송은범 카드가 성립되었고, 이어서 SK는 좌완투수 보강, KIA는 우완 사이드암 보강이 또 다른 숙제였기 때문에 진해수와 신승현이 추가로 트레이드 대상자가 되었다.
시즌 끝나고 FA를 선언했고 원소속 우선 협상 마지막날인 11월 26일에 FA 시장으로 나올 것을 밝혔다. 그러자 KIA 팬들은 '(2년 동안) 7점대 방어율 기록한 너 따위가 감히 FA 시장으로 나가냐'는 식으로 송은범을 깠다.
처음 원소속 우선협상 기간 동안에 KIA에서 45억을 제시받았으나 그대로 시장으로 나와 처음에는 한화에 처음에 50억을 요구했으나 결국은 12월 2일에 4년 34억(보장 30억 옵션 4억)에 한화 이글스와 계약하며 김성근과 다시 한번 함께 하게 되었다. 한화가 처음에는 송은범에게 40억을 불렀지만, 송은범이 뻐팅기다가 결국 FA 미아 직전까지 가자 34억으로 후려쳐서 불렀고 KIA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송은범이 한화의 조건을 받아들인 것. 사실 KIA의 제시액은 옵션제외 보장액은 20억이었고 계약 기간도 3년+1년이라서[21] 2년간 딱히 좋은 성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조건이 아니었고 한화는 총액은 적으나 30억 보장인점도 고려했을것이다.
일단 김성근 팬을 제외한한화 팬들은 대부분 떨떠름하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지난 2년간 7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바닥을 친 투수를 예상보다 높은 값으로 사왔다는 것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으며, 반면 KIA 팬들은 다른 팀 가줘서 고맙다며 쾌재를 부르는 분위기이다. KIA의 입장에선 송은범이 FA가 아니었다면 KT 특별지명의 보호선수 명단에 들어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고, KT에서 지명할 경우 10억을 받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 그런데 FA를 비싼 가격에 한화에서 영입해주면서 보상금 + 유망주 지명을 하게 되어 KIA 쪽에서 오히려 더 이득을 본 거 아니냐는 평가가 많다. KBO 리그 역사 내내 7점대 이상의 방어율을 2년 연속으로 찍고 부활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다보니...
정통파 우완 투수로서 KBO에서도 손꼽히는 현역 강속구 투수이지만 괜히 송시구가 아니다 부드럽고 작은 투구폼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시구 자세로 던지는 것과 달리 최고 구속은 150 km/h 초반대이며 선발로 나왔을 때 평균 구속은 140대 초중반을 던진다. 더불어서 불펜 등판을 했을 때는 140대 후반을 던진다.
참고로 현 SK 와이번스 소속 투수인 문광은은 가장 닮고 싶은 선수가 송은범이라고 했는데. 그 작고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정말 가볍게 던지는 거 같은데 140 후반을 던지는 게 신기하다고 하였을정도. 아마 그의 현재 활약상을 보면 마음이 바꿨을지도?
150 km/h 초반대를 던지는 투수답게 패스트볼의 위력도 수준급(?)이지만, 변화구도 다양하게 던져서 여러모로 윤석민과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22]. 구종을 살펴보면 패스트볼와 종 슬라이더, 슬로우 커브, 스플리터, 체인지업을 던진다. 더불어서 종과 횡, 두 방향으로 떨어지는 커브와 타자 바로 앞에서 떨어지는 종 슬라이더가 주무기. 특히, 종 슬라이더의 움직임은 팀 내 동료 투수인 김광현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고, KIA 이적 이후에는 서재응, 김진우 등 팀 동료들에게 슬라이더 비법 지도를 하기도 했을 정도로 수준급의 슬라이더 피쳐이기도 하다.
다만, 탈삼진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리그 정상급인 SK 수비진의 덕을 많이 본 터라 FIP로 본다면 송은범은 어느 정도 과대평가된 면이 있는 투수이다. 그러나 문학구장은 투수구장이라 파크팩터 보정이 없는 FIP로만 보면 손해를 보는 것도 있어서(...) 아래에 설명할 투수와 비교하는 것은 실례이다.동명이인이다. 같은 사람일리가 없다.
KIA와 한화 시절에는 신기하게 제구까지 잡힌 145 km/h 이상의 직구를 던지면서도 그 빠른 직구가 정말 깨끗하게 정타로 맞아나간다. [23] 그것도 쭉쭉 뻗는다.(...)구속대비 신비로운 피치밸류 무브먼트가 없다, 회전수가 부족하다(구속에 비해 체감 구위는 영 아니라는 뜻), 투구폼이 깨끗해서 타이밍 맞추기가 너무 쉽다, 쿠세가 읽혔다 등 별의별 해석이 다 동원되지만 아직까지 각종 지표 측정이 부실한 KBO에서 그 신비로운비밀(...)을 완벽히 밝혀내기는 어렵다. 어쨌든 ERA와 FIP 등을 보면 SK 시절의 송은범과는 그냥 다른 투수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 하나만큼은 정말로 멀쩡하기에 등판하는 날마다 구속 잘 나온다 -> 팬들 기대 -> 근데 털린다(...)의 패턴이 무한반복되는 중이다.
성적이 추락한 이후의 송은범을 상대해 본 타자들의 말에 의하면, 공은 빠르지만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수직 무브먼트가 전혀 없는 작대기 직구를 던져서 타자의 눈을 전혀 현혹 시키지 못한다는 말. 결국 미스테리 했던 부진의 이유가 드러난 셈이다. 일단 NC 전력분석팀이 에스밀 로저스의 구위 저하 이후 타자들에게 송은범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있게치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송은범의 직구 수직 무브먼트가 거의 없다고 평가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KBO 어플을 보면 회전 수가 개판이라고 한다. 이말들을 종합해서 보자면 송은범은 구속은 좋아도 구위는 전혀 좋은 게 아니다. 한 마디로 구속이 조금 빠른 배팅볼(...)
또한 전성기에도 선발 투수로 쓰기 애매한 이닝 소화 능력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2009년 149.1이닝이 최고일 정도로 안습한 내구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윤석민도 그렇듯 감독들이 불펜으로 많이 활용하려 한 점은 감안해야 한다.
결국 리그 수준급의 선발 투수가 아닌, 그냥 선발도 계투도 아닌 투수(...)라는 의견까지 나왔다. 송은범이 SK에서 잘한 이유가 박경완 때문이라는 말을 김성근과 김정준이 하기도 했으며,[24] 본인도 모든 포수가 박경완으로 보일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SK 시절 말년엔 박경완은 거의 은퇴상태로 정상호, 이재원이 포수로 공을 받은 경우가 많아서 그냥 변명에 불과... 그냥 먹튀.
[1]KIA 송은범~ 타이거즈 송은범~ 긍정의 힘으로 워워워워~ KIA 송은범~ 타이거즈 송은범~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KIA 시절 응원가, 전년도에 이용규에게 주었으나 하루 쓰고 버려진 응원가의 재탕이다(...) 공교롭게도 송은범은 이 응원가를 받은 다음 해, 이용규와 같은 팀인 한화로 이적했다.[2]V-리그 남자부 배구단인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서도 응원가로 쓰고 있는 곡이다.[3] 김성근의 SK 감독 경질 이후 대놓고 친 김성근 성향을 표출한 투수가 송은범이었고, 곧 김성근 감독 팬들을 중심으로 SK가 김성근 지지파와 반대파로 분열됐다는 썰이 터져나왔고, 이후 감독 이만수는 김성근을 따르는 송은범에게 화가 나 트레이드시켰다는 옹졸한 인간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송은범은 트레이드 이전부터 분명히 하향세였으나 결국 쉴드에 가려진 것. 한화 감독 부임 후 FA 송은범 영입에 이 영향이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김성근이 송은범을 쓴 것이 아니다. 송은범이 김성근을 쓴 것이다[4] 그냥 이름 때문에 붙은 별명, 네이버 자동검색에도 뜰 정도로 꽤 유명한 별명인데 무슨 일인지 나무 위키에는 등록이 늦었다.[5] (김성근 감독의) 애완돼지. 양준혁 재단이 주최한 자선 야구대회 인터뷰 영상에서 김성근 감독의 옆에 딱 붙어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고, 이 모습이 김 감독이 SK의 사령탑일 적 유난히 김 감독을 잘 따랐던 모습과 고양구장으로 김 감독을 찾아가 직접 선물을 가져다 준 모습과 겹치며 애완돼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6] 불암콩콩코믹스에 2015년 8월 14일자 최진행과 김성근을 비판하는 카툰에서 최진행 대신 속죄하는 방어율 8점대의 불꽃남자로 묘사되었다.(...)[7] 장례식을 못갔다는 이야기로 와전되어 있는데 장례식은 다녀왔다. 그게 단 하루뿐이었고 식장에서 무덤으로 이동하는 발인식에 참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화가 난다고 했다. 불타는 그라운드 방송에서도 본인이 "할아버지 발인식에 못가게 했다."라고 말했고 이후 기사에서도 장례식을 다녀왔는데 발인을 못했다 라고 밝혔다.[8] 기량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였기에 딱히 김성근이 아니더라도 조범현만 아니면 누구였던 상관은 없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송은범의 마음을 돌린 계기가 김성근 감독이 훈련 뒤에 하는 강의라고 한 걸 보면 김성근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9]최일언코치가 손수 전수해준 슬로우 커브.[10] 이 날 경기는 SK가 3:1로 승리 송은범이 경기 방어율 99.99를 기록하며 내준 1점이 KIA 타선의 유일한 점수였다. 송은범에겐 야속하게도 불펜진이 9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버렸으니 까임은 필연적일수밖에.[11] 상대적으로 7안타를 맞았지만 7이닝을 무실점으로 꾸역꾸역 먹어 준 윤석민이 잘한 것.[12] 이 와중에 니코스키는 두산에 영입됐다.[13] 그나마 존슨이 시즌 초반에 일찍 방출되어 카도쿠라를 대체 선수로 빨리 영입할 수 있었다.[14] 2008시즌만 하더라도 리그 최강의 선발진이었다.[15] 경미한 허리 부상으로 인하여 완급 조절이 힘들다고 한다.[16] 경기 끝나고 김성근 감독한테 꿀밤을 맞았다. 강자의 여유[17] 리빌딩 면에선 김성근 감독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게, 김성근의 특성 상 1군에서 뛸만하겠다 싶으면 군입대를 좀 미루는 경향이 있어서 김성근의 임기 당시 젊은 선수들의 군입대는 그렇게 원활하지는 않았다.[18] 물론 이때 KIA팬들도 2009 우승 주역이자 팀의 상징적인 선수인 김상현 트레이드로 충격을 먹은 것은 SK팬들 못지 않았다.[19] 선동렬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 등 KIA 수뇌진은 개막부터 불펜진 강화를 위해 고민에 빠졌다. 더욱이 2013년 당시 불펜투수들이 잇따라 무너지고 최향남마저 재활군으로 내려가자 트레이드 방침을 굳혔다. 우승을 위해서는 우완 불펜투수 강화가 절실하다고 판단했기에 트레이드를 시도했다고 한다.[20] 당시 SK는 이호준의 NC 이적으로 우타 빅뱃이 부족했다.[21] 광주일보 기자 김여울 보도[22] 송은범이 KIA로 온 뒤, 윤석민과 나란히 불펜 등판을 했을 때 KIA측은 이 부분을 걱정하기도 했다.[23] KIA 시절엔 심지어 완벽하게 코너웍 된 꽉 찬 바깥쪽 공을 150 km/h로 던졌는데도 밀어서 홈런을 맞았다.[24] 김정준은 송은범 부진이유를 묻는 2014년 인터뷰에서 "송은범은 섬세한 투수라 사용법이 따로 있는데 KIA 코치진들은 잘 모르는거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가 2015년 같은팀에서 뛰게되어도 별 차이가 없자 박경완 포수 전지 전능론을 변명으로 비웃음을 샀다.
첫댓글 송은범은 고맙고 소중하고 짠한 우리 이글스선수입니다.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
작년에는 KIA때의 습성이 나와서 본의아니게 먹튀가 되었으나, 이제 한화에서는 KIA에서의 때에서 벗어나 SK시절의 좋은 투구가 생각나니, 계속 호투하여 김성근 감독님의 3000게임 출장시합에서 승투가 되기를.....................
투수에게 승리가 중요하지만 어제처럼 6이닝 무실점이면
성공이지요 그리고 선발 로테이션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등판해 준다면 감독으로선 가장 고마운 선수가 아닐까요???
송시구 ㅋㅋㅋㅋ 너무 웃기는 별명이다.
장례식 참석은 시켰으나 발인식 참석을 안 시켰다니. 장례식이라는 것이 친족입장에서는 발인이 그 장례식 절차 중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그걸 어린 선수한테 막다니. 마지막 작별의 절차인데. 나 같으면 절대 용서 못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