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임시정부 청사로 쓰였던 경교장이 역사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사적 제465호로 등록되어 우리가 지켜야할 문화재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경교장은 임시정부 청사라는 의미도 있지만 1949년 6월 26일 2층 집무실 남쪽 창가에서 같은 민족이자 육군 소위였던 안두희의 흉탄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곳이기도 합니다.
가슴에 담아둔 먹먹함이 있어 잠시 짬을내서 경교장을 찾았습니다.
하루에 세번에 걸쳐 20명 내외로 예약을 받아 관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경교장은 강북 삼성병원 내에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찾기가 쉽지 않네요. (종로구 평동 108)
백범이 우리에게 어떤 사람인지,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너무도 부족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을 지내며 독립운동을 지휘하시고 해방 이후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인 신탁통치에 반대하고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 협상에 임하기도 하였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말씀하신 것만 봐도 그에 꺽이지 않는 독립의지와 통일되고 자주적인 한반도를 염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구 주석의 호는 '백범'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하얀 호랑이로 생각하기 쉬우나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평범한 보통사람을 의미하는 범부의 범(凡)을 썼습니다.
자신을 가장 낮은 자로 표현하는 호, '백범' 그 한마디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정치가이며 철학자였고 국민의 아버지였으며 대한민국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흉탄에 맞아 서거한 창가에는 그 때의 총탄 흔적이 아직도 유리창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일제의 총탄도 피했건만 같은 동포의 총탄에 허무하게 쓰러졌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봐도 울분이 솟구칩니다.
육군소위 안두희(미군 방첩대 CIC 정보요원)가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신탁을 주장하던 미국의 사주와 이승만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