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먹는 하마’라고 가솔린 SUV를 부르던 때가 있었다. 프레임 골격과 사륜구동이 당연하던 시절, 무거운 차체를 가솔린 엔진으로 이끌려니 효율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사뭇 다르다. 도시화, 소형화에 이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까지 생겨나 효율이 급격히 올랐다. 오늘날 ‘휘발유만으로 달리는 SUV,’ 즉 전기 충전 필요 없는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가솔린 SUV 연비 순위를 살폈다(기본 2WD 모델 기준).
글, 정리 윤지수 기자, 사진 각 제조사
연비 순위를 낸 결과 기아 니로가 효율이 가장 높았다
전기 모터 위력, 하이브리드 SUV
비싼 값어치를 했다. 국내 가솔린 SUV 전체 효율을 살펴본 결과, 1·2위 모두 하이브리드다. 1위는 1L로 19.5㎞를 달리는 기아 니로, 2위는 16.7㎞/L 렉서스 UX 250h다. 특히 전기 모터와 더불어 차체 높이를 세단 수준으로 낮추어 효율을 잔뜩 끌어올렸다. 두 차 높이가 니로 1,545㎜, UX는 1,520㎜에 불과해, 키 큰 소형 세단 쉐보레 아베오(1,515㎜)와 비슷한 수준이다. 공기 저항 계수도 니로 0.29, UX 0.33에 그친다.
길이 4,890㎜ 렉서스 RX 450h는 6기통 3.5L 엔진을 품고도 L당 12.8㎞를 달릴 수 있다
전기 힘은 큰 차 효율도 높인다. 중형급 SUV 토요타 라브4 하이브리드와 대형급 SUV RX 450h가 각각 13.0㎞/L, 12.8㎞/L 효율로 가솔린 SUV 순위 5위, 6위에 올랐다. 네 바퀴를 굴리고 덩치가 큼에도 가솔린 소형 SUV와 효율이 비슷한 셈이다. 물론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품은 다른 SUV도 휘발유만 태우는 같은 모델보다 연비가 월등히 높다(12㎞/L 렉서스 NX 300h, 10.5㎞/L 인피니티 QX60 하이브리드).
단, 하이브리드 모델은 일반 가솔린 모델보다 비싸기 때문에 주행 환경에 따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니로와 UX는 각각 2,530만~3,130만 원, 4,510만~5,410만 원으로 동급 경쟁 차종보다 가격대가 높고, 라브4 하이브리드와 RX 450h 역시 같은 모델 가솔린 모델보다 각각 310만 원, 530만 원 더 비싸다.
하이브리드를 제외한 가솔린 SUV 1위는 기아 스토닉 1.0 T-GDI다
작은 차가 ‘장땡’
하이브리드를 제외하면 역시 작고 가벼운 소형 SUV가 상위권을 휩쓴다. 3위에 오른 기아 스토닉 1.0 T-GDI를 시작으로 4위 혼다 HR-V, 6위 기아 스토닉 1.4 MPI, 현대 코나 1.6 T-GDI, 그리고 9위 기아 쏘울 부스터가 가솔린 SUV 연비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SOHC 엔진과 무단변속기로 높은 효율을 끌어낸 혼다 HR-V
특히 각각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색다르다. 3위 스토닉 1.0L 터보는 경차급 배기량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과 동력 손실 적은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로 13.5㎞/L 효율을 끌어낸다. 반면 4위 HR-V는 효율 높은 1.8L SOHC 엔진과 무단 변속기 조합으로 L당 13.1㎞를 달릴 수 있다. 휘발유 1L로 12.8㎞를 달리는 스토닉 1.4는 작은 자연흡기 엔진과 일반 변속기를 맞물려 1,150㎏에 불과한 가벼운 무게에 집중한 모양새다.
이어 20위까지도 쉐보레 트랙스와 쌍용 티볼리, 미니 컨트리맨 등 소형 SUV가 주를 이룬다.
하이브리드가 아닌 중형 SUV 중 가장 높은 효율을 자랑하는 혼다 CR-V 터보
다운사이징 터보, 정말 좋아?
가솔린 SUV 9위로 순위를 올린 혼다 CR-V 터보. 하이브리드가 아닌 중형 SUV로서는 가장 높은 12.4㎞/L 연비를 자랑한다. 동급 경쟁차인 토요타 라브4 일반 모델이 9.6㎞/L에 불과한 효율로 가솔린 SUV 연비 순위 32등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다.
핵심 비결은 다운사이징 터보다. 최고출력 179마력을 내는 2.5L 자연흡기 엔진을 얹은 라브4와 달리, 최고출력 190마력을 내는 1.5L 터보 엔진을 얹었다. 2.5L 엔진보다 힘과 연비를 모두 앞서, 진정한 다운사이징이라 부를만한 셈이다. 이렇듯 대부분 터보 모델은 비슷한 힘을 내는 일반 자연흡기 모델보다 효율이 더 높았다.
현대 싼타페
현대 팰리세이드
그러나 예외도 있다. 최고출력 235마력을 내는 싼타페 2.0L 가솔린 터보 모델은 최고출력 295마력 팰리세이드 3.6 자연흡기 모델보다 효율이 낮다. 연비는 각각 9.5㎞/L, 9.6㎞/L로 팰리세이드가 0.1㎞/L 높다. 싼타페가 작은 엔진, 가벼운 차체, 낮은 출력임에도 효율이 떨어지는 셈이다(두 차 모두 2WD, 18인치 휠 기준). 다만, 팰리세이드는 앳킨슨 사이클 기술(압축 행정에서 흡기 밸브를 늦게 닫아 압축할 때 발생하는 동력 손실을 줄이는 기술)을 넣어 일반 동급 엔진보다는 효율이 소폭 높은 편이다.
무단 자동변속기로 효율을 높인 르노삼성 QM6
의외의 비결
하이브리드가 아닌데도 동급 SUV보다 효율 높은 모델이 있다. 13.1㎞/L 혼다 HR-V, 12.4㎞/L 혼다 CR-V 터보, 11.7㎞/L 르노삼성 QM6 2.0 GDe, 11.1㎞/L 닛산 엑스트레일 등이다. 공통점은 바로 CVT, 즉 무단 자동 변속기다.
11.1㎞/L 효율을 자랑하는 닛산 엑스트레일
특히 자연흡기 엔진을 쓰는 QM6와 엑스트레일 효율이 눈에 띈다. 중형 SUV QM6는 소형 SUV 티볼리 가솔린 자동(11.4㎞/L) 모델보다 효율이 0.3㎞/L 높고, 2.5L 엑스트레일도 2.0L 스포티지 가솔린(10.8㎞/L)보다 0.3㎞/L 효율이 높다. 두 차 모두 비교한 차들보다 더 무겁고 배기량 크며, 출력이 높은데도 효율이 조금씩 더 높았다.
CVT 무단변속기 구조. 원뿔형 풀리가 서로 간격을 조정해 기어비를 바꾼다
참고로 무단 변속기란 두 개의 지름을 바꾸는 풀리 사이를 벨트로 연결한 방식. 쉽게 말해 21단 자전거 앞뒤 기어가 원뿔형으로 바뀌어 시시각각 체인벨트 위치를 바꾸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기어비가 연속적으로 변하기에 효율이 높고 변속 충격도 없다. 다만, 아직 고출력을 감당하기 힘들며, 가속감이 이질적인 단점이 있다.
V12 6.75L 트윈 터보 엔진을 얹은 롤스로이스 컬리넌. L당 5.6㎞를 달릴 수 있다
한편, 가솔린 SUV 연비 순위 아래쪽은 거대한 덩치와 넉넉한 배기량으로 여전히 기름을 게걸스럽게 해치운다. 뒤에서 다섯 개 순위를 살펴보면 12기통 터보 엔진을 쓰는 롤스로이스 컬리넌(5.6㎞/L)과 벤틀리 벤테이가(6.1㎞/L)가 자리 잡았고, V8 엔진에 터보 또는 수퍼차저를 더한 마세라티 르반떼 GTS(5.7㎞/L)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5.0 SC(5.6㎞/L),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6.1㎞/L) 등이 있다.
아래 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는 가솔린 SUV 전체 순위를 표로 정리했다. 4WD가 기본인 모델을 제외하면 2WD 기준이다. 판매 중단한 모델은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