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12팀의 핵심선수를 1팀당 3명씩 분석하며
핵심선수들 중에서는
팀내에서 활약이 가장 좋은 선수들이나
작년시즌까지 뛰었던 선수들
K리그에서 뛴적이 있는데 당시 활약이 좋았던 선수들에 대해 적겠습니다.
단 2002년까지 K리그에 뛰어본적이 전혀없는
선수들이나 용병은 핵심선수명단에서 제외하겠습니다.
<성남일화>
1993~1995년,2001년~2002년 정규시즌 우승팀
1996년 아시안클럽선수권, 아시안슈퍼컵 우승팀입니다.
윤정환,데니스,싸빅,이기형,김도훈같은 기량좋은 선수들을 영입하여
2003년 정규시즌 우승후보 1순위로 꼽히고 있는팀이 성남일화 입니다.
우수선수들을 적어보자면
김대의,샤샤,김도훈,윤정환,신태용,싸빅,이기형,데니스,김현수등을 들수 있으며
그 이외에 박충균,박남열,김해운,황연석,김용희 등도 실력은 좋은 선수임엔 분명합니다.
이 선수들중에 핵심선수 3명을 골라내자면
김대의 : 2002년 정규시즌 MVP
윤정환 :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하지만 경기에 뛴적은 없음)
신태용 : 1995,2001년 정규시즌 MVP,1992년 신인왕
나머지 선수들을 뺀 이유는 올시즌 부진이나 노쇠함이 예상되는 선수가 있는 반면에
성남으로 이적을 했는데 성남스타일에 잘 맞지 않을수도 있는 선수
그리고 핵심선수가 될만한 선수일 정도로 실력은 좋은 선수이지만
제가 선정한 3명의 핵심선수 보다 영향력이나 결정적인 면에서 떨어지는 선수
이렇게 들수 있습니다.
1992~1993년 청대대표, 1994~1995년 올대대표,
1997년 유니버시아드대표,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에 나갔던 선수로서
엘리트코스를 밟았던 선수입니다.
축구팬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1997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도쿄에서 열린 한일전 이었죠
후반전에 교체들어와서 60m를 시원스럽게 돌파한뒤에 위협적인 슈팅을 날려
일본GK가와구치를 놀라게 했던 장본인이 김대의 선수입니다.
이 선수는 한일은행팀이 해체되자 K리그 진출이 아닌 일본 J리그에 진출을 하였죠
J리그의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에서 뛰게되었는데
그곳에서 부진한 원인은
부상의 이유가 있었고
당시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의 감독이 네덜란드인 이었는데
그 감독이 원하는 선수가 따로 있었는데다
의사소통이 힘들어 일본적응에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적응 실패뒤에 한국으로 와서 아마추어팀인 미포조선에서 뛰다가
2000년 성남일화에 입단하게 되어 지금까지 성남일화에서 뛰고 있죠.
김대의의 2001년 플레이는 스피드가 좋았지만 기술부족과 실수가 많다는 평을 받았고
주로 후반에 출장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좋은 활약은 해주었던 선수입니다.
샤샤의 대표적인 약점인 돌파력에 대해 그것을 보조할수 있는 선수가 김대의 선수였죠.
2002년 아디다스컵에 출전할때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서 좋은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하였죠
2002년 김대의 자신이 달라질수 있었던 이유는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기에 큰 힘이 되는 자신감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장점은 스피드이고 결정적인 찬스를 잘 만들어주며
상대수비수들의 방어를 흔들어놓게 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김대의 선수입니다.
또한 성남일화의 공격적인 스타일에 잘 맞으며 윙을 보는 선수로서는 제격인 선수입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2002년 정규시즌 우승의 1등공신이었다는 점이고
2002년 MVP를 받은 경력이 있습니다.
이 선수는 2003년에 조심해야 할것이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체력입니다.
작년에 많은 경기에서 좋은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경기없는 기간에 제대로 쉬지 않았으면 올시즌은 부진할 확률이 높으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번에 성남일화가 AFC챔피언스리그, 월드피스킹컵, A3 MAZDA Champions Cup 2003에
출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성남일화로선 다른 K리그 팀들보다 경기수가 많아
특히 팀의 주축선수인 김대의 선수로서는 출전할 경기가 많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부상입니다.
2002년에 좋은활약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상대팀에서 김대의를 막기위한 대비를 할텐데
그중 하나가 상대방수비수들이 김대의에게 거친태클 등을 이용하여
김대의에게 부상을 입히게 하는 점입니다.(특히 무릎을 노릴수도 있음)
그가 좋은활약을 못보였던 시기에는 무릎부상때문에 부진을 했었습니다.
오른쪽,왼쪽 무릎과 발목등 총 7번을 수술했고 맨발을 보면 수술자국들이 있다고 합니다.
더 중요한것은 오른쪽 무릎 연골이 없는 선수라는 것이죠
2003년에 좋은활약을 보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부상을 많이당한 무릎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가 2003년에 좋은활약을 보이기 위해서는
2002년에 좋은활약을 했다고 자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며
부상주의와 체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2. 윤정환
생년월일 : 1973.2.16
신장/체중 : 173/63
(출처 : 야후)
1994년,1998년 월드컵대표 명단에는 감독스타일에 맞지 않는 선수이기 때문에
명단에 못들었고 2002년 월드컵대표 명단에는 들었지만 단 1경기도 출장을 못했던 비운의 선수입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때 비쇼베츠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고
기량이 많이 성장했었으며 그때의 활약은 뛰어났던 선수입니다.
부천SK시절에는 니폼니시 감독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은 물론 기량이 성장했었던 선수이고요.
특히 니폼니시 감독은 윤정환선수의 특성을 알아
윤정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을 했던 지도자입니다.
2000년부터 J리그의 세레소오사카에 뛰게되다가 2002년 12월에 성남일화와 계약을 했고
J리그에서는 2001년 조모컵대회 MVP에 선정된적이 있었고
그해에 팀을 천황배 결승까지 이끌었던 역할의 선두주자가 윤정환선수라 할수 있습니다.
2002년부터는 팀이 2부리그에서 경기를 할수 있게 되었지만
2003년도부터는 1부리그에서 경기를 할수 있게 되었죠.
물론 1부리그 승격은 다른선수들의 활약도 있었지만 윤정환선수의 활약도 이에 못지 않았죠.
그에게 2002년 월드컵이란 존재는 기억하기 싫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윤정환선수 본인은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시기라고 인터뷰한적이 있었고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합니다.
윤정환선수는 전방으로 주는 패스가 위력적이고, 기술이 뛰어난 테크니션이고
공격적인 플레이메이커입니다.
특히 그의 장점인 패스에 대해서 적자면
공격수들이 원할만한 곳에 패스를 밀어주고 날카로우며
상대선수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빠른 패스연결이 자주나와 찬스가 많아지게 하는 역할을 했고
패스의 타이밍과 강약, 정확성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미드필드 진영에서 경기운영이 뛰어났으며 발재간이 좋고 시야가 넓은 선수입니다.
그의 단점을 적자면
수비가담, 체력, 성격을 들수 있는데
특히 성격에 대해서는 윤정환선수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내성적이고 특히 지도자와 얘기를 잘 주고받지 않는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차범근 전 국대감독은 윤정환에 대해 이런면에서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남일화 소속으로서 2003년에 좋은 활약이 예상되며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성남일화에서 쏟아낼 가능성이 높아지며
성남일화가 우승할경우 김대의와 MVP를 다툴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성남일화가 정규시즌에서 우승했던 해에는
그해에 MVP를 받은 선수들이 성남일화 선수였는데
2003년에 성남일화가 우승할경우 MVP는 성남일화 선수중에서 나올 확률이 많습니다.
3. 신태용
생년월일 : 1970.10.11
신장/체중 : 174/66.5
(출처 : 성남일화 공식홈피)
성남일화 선수중에서 K리그 경력이 가장 화려한 선수를 들자면
신태용선수가 대표적인 선수라 볼수 있습니다.
1992년 신인왕, 1995년,2001년 정규시즌 MVP,
1992년~1996년, 2000년~2002년 베스트11에 들었던 선수
1996년 정규시즌 득점왕
1996년 아시안클럽선수권대회, 1996년 아프로-아시안컵, 1999년 FA컵,
1993년~1995년, 2001~2002년 정규시즌 우승과 그외 대회 등등
성남일화 축구단이 우승한 대회중에 대부분은 신태용선수의 공헌이 높았다고 볼수있죠
U-16,U-19청대대표, U-23올대대표, 국가대표 경력이 있으며
성남일화축구단이 정규시즌 5번우승하는데
성남일화 유니폼에 별이 다섯개가 들어간 1등공신을 꼽으라면
신태용선수를 꼽을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90분을 뛰면 힘든 나머지 체력에서 상대선수들에게 밀리며
파워가 약하다는 약점이 있던 선수였지만
경험을 쌓아갈수록 약점을 받아왔던 부분을 개선할수 있게 되었으며
체력안배를 잘하고 있고
또한 자기관리를 효율적으로 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볼센스가 좋고
기술을 앞세운 플레이, 두뇌플레이가 좋으며
팀공헌도가 높고, 경기때 승부를 결정지을수 있는 능력이 좋으며
경기 분위기를 잘 만드는 선수라 볼수 있으며
득점력과 도움력또한 뛰어나다고 볼수 있습니다.
특히 2001년에 50-50클럽에 가입을 했으며
현재 60-60클럽 가입을 노리는 중이죠.
또한 리더쉽이 강한 선수로서 팀을 잘 이끌 기질이 있는 선수이며
선수를 위하는 정신이 있고, 동업자 정신이 있는 선수라 볼수 있습니다.
이렇게 경력이 활했던 선수에게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1997년 경기도중 부상당한뒤에 병원에서 발목 연골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일본에서 연골재생주사를 맞고 몸관리나 개인훈련을 잘 소화하여
재기에 성공할수 있었고
2001년,2002년 팀이 정규시즌에서 우승하는데 큰 공헌을 해주었습니다.
그거 재기할수 있었던건 정신적인 힘이 크게 도움이 되주었던 것이라 볼수 있죠.
2000년 J리그 진출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2000년 11월
당시 J2의 오이타 트리니티가 러브콜을 보냈으나
신태용은 K리그에서 MVP,득점왕,신인왕까지 했는데
일본 프로축구 2부리그에서 뛴다는 것은 말도안된다며 거절을 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에이전트는 이영중 이었습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국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였고
현재 국내 프로축구 최고 연봉선수이며(4억 1000만원)
선수은퇴 뒤에는 더욱 유능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유럽으로 유학가고 싶다는 얘기를 인터뷰에서 언급했으며
영국으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이유는 영어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2003년 정규시즌에서는 몸을 제대로 관리해주거나 부상을 조심한다면
좋은 활약을 할것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원삼성>
1998년,1999년 정규시즌 우승팀이며
2001년,2002년 2회연속으로 아시안클럽선수권과 아시안슈퍼컵 우승
2002년 FA컵 우승팀입니다.
올시즌에는 상위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큰팀이죠.
우수선수들을 적어보자면
이운재,가비,서정원,뚜따,조병국,김두현,최성용,고종수등을 꼽을수 있지만
(고종수는 일본진출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수원에 잔류할 가능성이 있으니
우수선수에 분류하겠습니다.)
이 선수들중에 핵심선수3명을 꼽자면
이운재 : 1994,2002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
가비 :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했던 루마니아 선수이자
한국프로축구에 진출한 용병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지녔다고 볼수 있는 선수
서정원 : 1994,1998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
나머지 선수들을 뺀 이유는
아직은 경험이 더욱더 필요한 선수이거나
K리그에서 더욱더 좋은 활약이 필요하며
전성기 시절에 비해 활약도가 높지 않은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종수 선수를 핵심선수에 끼지 못한것이 아쉽습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명단에 들기도 했고
독일전에서 후반전에 출장한적이 있는 선수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대한민국팀의 주전GK로 나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죠
독일의 올리버칸과 야신상을 다툴정도로 기량은 좋은 선수입니다.
그외의 경력을 보면
2000년 아시안컵대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로 나왔죠
IFFHS가 선정한 2002년 세계최고골키퍼 랭킹이 12위에 올라왔었고
2002년에 백상체육대상 구기개인부문 수상자에 선정된 선수죠
아시안클럽선수권 결승전 승부차기와
아시안슈퍼컵2차전 승부차기
월드컵 8강 스폐인전 승부차기에서
좋은 선방을 했었는데
그가 승부차기에 강한 이유는 침착하고 안정적인 것이 주원인이라 볼수 있으며
상대선수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성실하고 듬직하며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난 선수라 볼수 있습니다.
상무에 입단할때는 체중이 빠져서 몸의 군더기가 없어졌기 때문에
과거의 모습보단 살이 빠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주전골키퍼이자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주전골키퍼이고
2003년에 수원이 좋은 활약을 하는데에는
이운재선수의 영향력이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2. 가비
본명 : 가브리엘 포페스쿠
생년월일 : 1973.12.15
신장/체중 : 177/74
국적 : 루마니아
(주요경력)
루마니아 CRAIOVA 15경기 3득점
스페인 1부 SALAMANCA 15경기 7득점
스페인 1부 VALENCIA 28경기 1득점
스페인 1부 NUMANCIA 12경기 1득점
루마니아 DINAMO BUCHAREST 10경기 1득점
루마니아 NATIONAL BUCHAREST 55경기 9득점
U-21 대표 : 37경기 출장, 6득점
국가대표 : 21경기 출장, 4득점
(출처 : 수원삼성공식홈피)
한국 프로축구에 진출한 용병중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이 있는 선수이며
팬들이 뽑은 2002년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외국인 용병 1위에 선정되기도 했던 선수입니다.
루마니아 U-21대표를 본적이 있었고, 국대 활약 경력이 있었고(21경기 4득점)
라리가에서 활약한 경력이 있는 선수죠.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를 볼수 있는 선수이며
시야가 넓고, 승부근성이 있으며, 볼배급과 패스가 좋고 득점력이 있는 선수입니다.
또한 드리블,개인기, 기습적인 중거리슛이 일품이죠.
당시 수원삼성에 있던 루츠가 향수병을 이기지 못하여
루마니아의 내셔널 부크레스트에 있는 가비와 맞교환하면서
15만달러를 추가 지급해 영입을 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기존의 수원선수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아 수원삼성으로서도 애를 먹었지만
차츰 K리그에 적응하면서 좋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2003년에는 더욱 좋은 활약이 예상되며
가비가 있는한 수원의 미드필드진은 막강하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1998년 월드컵에 출전한 경력이 있으며
(1990년 월드컵경기에 나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대한축구협회 홈피에서
1990년 월드컵 출전멤버를 보니 서정원이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1987년 청대대표,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대표
1993년과 1997년엔 프로축구대상 인기상수상,
2001년 타이거풀스 프로축구대상 MVP등의 경력이 있고
대표적인 별명은 날쌘돌이입니다.
그만큼 스피드가 빨랐던 선수라는 것이죠.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 진출한적이 있었지만
그곳 코칭스태프와의 불화로 인해 수원삼성으로 오게 되었죠.
(수원삼성으로 오게됨에 따라 안양LG와 좋지않은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 부분은 서정원선수에 대한 내용이 끝나고 자세하게 적겠습니다.)
수원삼성으로 이적한 초반에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1999년 8월 왼쪽 무릎을 다쳐
6개월동안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6개월보다 더욱더 긴 시간이었습니다.
거기다 체력저하로 인해 2000년 초에도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고
황선홍,이진행등의 부상이 이어져 수원삼성의 전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2000년 복귀이후 8월 성남전에서 후반전 상대 수비수와 볼 다툼 도중 무릎을 부딪쳐
결국 왼쪽 무릎 바깥쪽 인대에 손상을 입었다는 진단을 받게되었습니다.
한동안 경기출전한적이 없다가 가을에 경기에 다시 나오긴 했지만
2000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팀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기 힘들었으며
부상때문에 부진했던 해였습니다.
이때부터 서정원이 한물갔구나 하는
대부분의 축구팬들의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국대가 칼스버그컵이나 이집트4개국축구같은 대회에 나갈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맡았을 초기에
서정원이 국대에 있었지만
히딩크감독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었으며
특히 이집트전에서는 돌파나 드리블이 자주 끊기는 좋지않은 모습들을 보여왔죠
결국 국대에서 탈락되었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서정원의 실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된해는 2001년입니다.
수원의 아디다스컵 우승에 공헌을 해주었고
정규시즌 중반부터 서정원의 실력이 살아나기 시작하자
초반에 성적이 부진하던 소속팀의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했죠.
뿐만 아니라 2001년 아시안클럽선수권대회에서 고종수,데니스,산드로 등과 함께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아시안슈퍼컵에서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었는데
특히 아시안슈퍼컵 2차전은 원정의 불리함과 1명퇴장으로 인해 열세를 보였지만
서정원의 2골로인해 수원이 사우디의 알 샤밥을 2:1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회 MVP에 선정이 되었고
AFC선정 8월의 선수에 뽑혔던적이 있습니다.
이 선수의 장점은 역시 빠른 스피드와 득점력을 꼽을수가 있고요
(하지만 스피드는 예전보다는 빠르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빠르긴 합니다.)
시야가 넓고, 공격시 움직임이 빠르고 활발하며
볼컨트롤을 여유있게 합니다만
공격시 스피드를 낼때 자신보다 스피드가 앞서는 수비수들에겐 무기력하다는 약점을 갖는 선수입니다.
2002년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골감각은 전성기못지 않은 좋은 골감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2년 FA컵에서 MVP를 받기도 했었죠.
이 선수가 2000년 부상의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그후에 좋은활약을 보일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를 들수 있겠지만
정신적으로 자신감이 생기면서 부터 좋아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편이고요.
앞으로 그는 약 2년여동안 선수생활을 더할 예정이며 체력에 자신이 있다고 하며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몸관리를 잘한다면
2003년에도 좋은활약을 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서정원과 LG의 이적료분쟁>
스투에 있는 기사들을 모아 적습니다.
2000년초 안양축구단을 운영하는 (주)LG스포츠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수원삼성으로 이적한 서정원을 상대로 미리 지불한 이적료중에 절반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냈었습니다.
LG스포츠 측에선 1991년 서정원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외국으로 이적했다가
귀국시 복귀하는 조건으로 이적료 절반을 내주기로 약정을 맺었고
서정원이 프랑스로 이적할때 받았던 이적료의 절반인 당시 환율로 약 7억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죠.
이어 서정원이 안양에 복귀하지 않고 수원에 들어간 만큼
최소한 이적료 7억여원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서정원측은 "이면계약"등을 문제삼아 안양LG를 피파에 제소하기로 했습니다.
에이전트 이영중은 안양구단이 소송을 제기해 법정 싸움이 불가피해졌다며
피파에 정식 제소해 법적으로 맞대응하기로 했다고 결정했죠.
서정원측에서 주장한것은
1991년 안양 입단시 "외국에 나갈때 이적료를 구단과 선수가 50:50으로 정하여 복귀시에
안양에 들어와야 한다"는 약속은 정식 계약조건이 아닌
이면합의에 불과하다는 점이며, 이면계약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피파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이며
그리고 서정원이 프랑스로 이적할 때 안양 구단의 무자격 에이전트를 고용했다는 것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정원측은 안양LG를 피파에 제소하였고 제소장을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보냈습니다.
원래 안양은 1999년 K리그 시즌 초, 그러니까 서정원이 수원삼성으로 복귀할 즈음에
"서정원을 당장이라도 제소하고 싶지만 1위팀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상을 줄까봐 시즌뒤로 미룬다"는
언급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결국 서정원의 이적파동문제가 크게 제기된 것이죠.
2000년 4월 대한축구협회의 중재안에 의하면
"서정원은 9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할 당시 안양LG로 부터 받은 이적료 중에 절반은 반환하고
공식 사과하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서정원은 그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당시 서정원선수의 인터뷰를 보면 협회가 일방적으로 안양구단의 얘기만 들었지
선수의 입장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으며 그동안 자신이 안양으로부터 당한 불이익을 고려한다면
일방적인 결정(안양에게 이적료 절반을 반환하고 공식사과하라는 협회의 중재안)이
나올수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안양 입단시 외국에 보내준다는 입단조건을 내세웠으나
안양이 그것을 계속 미루다 겨우 해외진출 할수 있었고
당초 약속한 독일이 아닌 프랑스였다는 점
그동안 외국이적 문제 때문에 연봉계약에서 손해본점등이
안양으로부터 당한 불이익이라고 밝혔습니다.
2001년 4월 서정원과 안양LG구단의 이적료를 둘러싼 법적분쟁은
서정원의 승소로 판가름이 났으며
서울지방법원에서는 LG스포츠가 서정원을 상대로 낸 이적료 반환청구 소송에서
청구기각으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서정원이 안양LG를 상대로 낸
이적료 반환소송도 기각시켰습니다.
재판부는 서정원씨가 프랑스 이적시 LG축구단으로 복귀하지 않을때는
서정원씨가 받은 절반의 이적료를 반환하기로 약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약정서 내용상 근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주)LG스포츠 측은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를 했으며
2001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서 서정원은 안양에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으며
LG에 복귀하지 않을경우 이적료를 구단에 반환키로 약속한 것으로 볼수는 없으며
그러나 서정원이 구단 복귀계약을 위반해 구단에 손해를 끼친 사실이 인정되므로
입단및 귀국경위 등을 고려할때 3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습니다.
<안양LG>
1985년,1990년,2000년 정규시즌 우승팀이며
올시즌 상위권진입이 가능성이 있는팀이라 볼수 있습니다.
이팀의 우수선수들을 적자면
최태욱,히카르도,진순진,박용호,최원권,신의손,박요셉,김치곤등을 들수 있지만
핵심선수 3명을 들자면
최태욱 : 이천수,박용호와 함께 부평고 3인방에 들었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
히카르도 : 뛰어나다고 볼수있는 수비형미드필더
박용호 : 이천수,최태욱과 함께 부평고 3인방에 들었던 수비수이며
앞으로 무한히 성장할 잠재력이 큼
나머지선수들을 핵심선수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경험이 더욱 필요하고 더욱 실력을 닦아야할 선수가 있고
전성기때 활약은 좋았지만 노쇠한기량을 선보이는 선수가 있어서
핵심선수에서 제외했습니다.
(특히 수비수중에서 박용호와 박요셉,김치곤 중에 한선수는 핵심선수에 포함시키고 싶었는데
박용호가 더 났지 않느냐 싶은 생각이 들어
할수없이 박요셉과 김치곤은 제외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던 축구유망주였으며
중학교때도 좋은활약을 보여 주목을 받아왔었고
1999년 춘계연맹전 득점상, 백운기대회 MVP를 차지했던 선수이며
이천수,박용호등과 함께 부평고가 1999년 춘계대회,백운기,전국체전에서 3관왕을 이룩하였던
주축선수였으며(이천수,최태욱,박용호를 "부평고 3인방"라 한다.)
원래 연세대에 진학할 예정이었다가 1999년 11월 안양에 입단하였는데
대학보단 프로를 원해 안양에 입단한 선수입니다.
2000년 올대대표, 2000년 아시아청대대표를 거쳐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에 끼었지만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수도 있었지만
월드컵에 출장한 시간은 11~12분 교체출장이었는데다
3,4위전 단 1경기 교체출장으로
아쉬움이 있었던 선수입니다.
고교시절에 빠른발을 지닌 스피드가 있는 선수로 인정을 받았으며
패스, 골감각, 기술이 있는 선수이며
슈팅 타이밍이 좋고 발목의 스냅을 잘 이용하는 편이라 볼수 있습니다.
프로에 입단할 초기에는 상대 수비진에게 위협을 주지 못하지만
점차 프로경험이 쌓이면서부터는 위협능력이 좋아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며
저돌적인 돌파와 수비수 2~3명을 제치는 개인기를 씁니다.
스트라이커,윙,윙백,처진스트라이커등을 볼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며
상대문전 침투 능력이 좋지만
몸싸움에 밀리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 선수의 대표적인 라이벌은 울산현대의 이천수입니다.
중딩때까지 최태욱은 주목을 받아왔던 선수였지만
이천수는 최태욱에 비해 그리 주목을 받지 않았던 선수였죠.
하지만 둘다 부평고에 들어오면서부터 서로 경쟁심이 있었고
최태욱 같은경우 자정이 될때까지 개인훈련을 하였고
이천수의 장점을 자기것으로 만들기위해 훈련했다고 합니다.
반면 이천수는 최태욱에게 죽어도 지기를 싫어하는 마음때문인지
낮에는 최태욱보다 더 뛸려고 했고 밤에는 최태욱의 장단점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이천수는 고2때와서야 부평고 코칭스태프로부터 경기에 뛸수있는 기회를 주어
(그전에는 거의 벤치신세)
자신의 장점을 잘살려
경기에서 좋은활약을 펼쳐
최태욱의 라이벌로 발돋움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최태욱보다는 이천수의 기량이 더좋다는 말들이 지배적이지만
최태욱이나 이천수는 실력이 좋은 선수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2000년 안양에 입단하였으며
현재는 안양LG에 없어서는 안될 미드필드 선수이고
수비형미드필더를 잘 보는 선수라 할수 있습니다.
장신선수(189cm)라는 것은 신체적으로 다른 선수들보다는 유리할수 있었고
안양선수들중에 필요한선수를 꼽으라면 이 선수도 얼마든지 들수 있으며
어느 포지션이라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합니다.
브라질에서의 포지션은 처진스트라이커였지만
안양에 입단하면서 부터는 수비형미드필더쪽으로 가게 되었고
(어떤때에는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던 선수입니다.
또한 수비형미드필더로 오게되면서
탄탄한 안양수비를 더욱더 두텁게 했으며
팀의 공격과 수비안정에 조화를 이루게 하는 역할을
이 선수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공에 대한 집념이나 탄력이 좋으며
유연하고 드리블도 괜찮은 편이고
안양의 역습에 도움을 주는 선수라 볼수 있습니다.
또한 성격이 낙천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료선수들과 잘 지낸다고 합니다.
수비형미드필더로서의 역할을 잘한다고 볼수있으며
2003년에도 좋은활약을 할것으로 보입니다.
이천수,최태욱과 함께 "부평고 3인방"에 속한 수비수이며
(하지만 이천수와 최태욱에 비하면 존재감이 그리 많지는 않은 선수입니다.)
청대를 거쳐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 경력이 있습니다.
수비수로서의 개인능력은 좋고 세트플레이시에 골을 넣은적이 있으며
점프력은 떨어지긴 하지만 헤딩 타이밍을 잘 잡는 선수입니다.
패싱력이 좋고 잠재적인 능력이 있으며
경험에서 나오는 위기관리능력이 있으며
위치선정이 좋다고 볼수 있지만
몸싸움이 약하다는 것을 단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는 머지않아
크게될 수비수가 될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단점을 잘 개선해 주고
힘든 훈련을 이겨낸다면
나중에 좋은성과가 올것임엔 분명합니다.
<부천SK>
강성길 부천SK단장이란 존재때문에
고생을 하는 축구단이라 볼수 있으며
올시즌 하위권이 예상되는 구단입니다.
물론 투자또한 다른K리그팀들에 비해 적으며
특히 축구단을 운영하는 마인드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죠.
터키출산의 트나즈 트루판감독을 영입하여
성적올리기에 박차를 올리고
선수들도 지금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지만
잘못된 구단의 운영마인드가 있는한 하위권을 벗어나는 방법은 쉽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조금이라도 더욱더 올바른 방향으로
팀을 위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하지만 이팀에도 잘하는 선수들은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우수선수를 적는 것은 제외하겠습니다.
핵심선수를 적자면
다보 : 부천의 뛰어난 공격수
남기일 : 미드필드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
한동진 : 앞으로의 미래가 긍정적인 젊은선수
말리 청대출신이자 말리리그 득점왕출신이며
국대로 나와 2002년 네이션스컵에 출전했던 선수입니다.
아프리카 출신답게 몸놀림이 비교적 유연한 선수이며
문전에서의 판단력이 좋고 스피드가 좋은 선수이며
몸싸움에 강하며 골결정력이 좋은 선수이며
오른발을 잘 사용합니다.
이 선수의 특징은 잘 웃는것인데
경기중 거친 태클에 넘어지더라도 화를 내지 않고 잘 웃는다는 것입니다.
성격이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선수라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며
K리그에 비교적 빨리 적응을 하게 되었으며
엘리트 가정에서 자라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불어교사, 큰형은 신문사기자)
영어,불어,말리토속언어를 잘 구사했으며
터키에서 활약한적이 있어 터키어도 잘하며
(이렇게 되면 4개국어를 잘한다는 것이죠)
한국어도 공부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마스터하면 5개국어를 잘하게 되는 셈입니다.
터키의 1부리그 겐치레르빌리이에서 뛴다음 부천SK로 오게된 선수이죠.
트나즈 트루판감독이 부천SK의 지휘봉을 잡게되면서부터
부천의 공격력이 더욱 좋아졌다고 볼수있는데
골이 많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천공격의 핵심인 다보선수의 골결정력에 달렸다고 봅니다.
경희대시절 꽤 날렸던 선수였지만
1997년 입단이후 2000년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여왔으며
2001년 초반까지 허리,발목등의 부상이 잦았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2001년 정규시즌부터 득점력이 좋아지며 좋은 활약을 보였던 나머지
험멜-스포츠투데이 축구대상에서 "올해의 재기상"에 수상되는 영광을 안았죠.
또한 2001년 정규시즌 막판 12경기 연속무패를(5승 7무)를 이끈 주축선수입니다.
이 선수는 득점력이 있으며
미드필드 운영능력이 좋고, 패스력도 좋으며
부천의 미드필더중에 뛰어난 선수임엔 분명합니다만
2002년 9월 K리그 포항과의 경기에서 후반전에 보여준행동은 좋지않게 생각이 됩니다.
남기일이 포항 골문에 슈팅을 했지만 포항 수비수였던 홍명보가 막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문제였죠
남기일이 홍명보를 향해 좋지않은 소리를 하는 눈살 찌푸린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포항의 김병지와 부천의 이임생까지 나서는등
중앙성에서 양팀선수들끼리의 관중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죠.
올해 이선수는 주전을 계속하게 될것이고
트나즈 트루판감독으로부터 잘 훈련받아
보다 높은 발전을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1998년 청대에 발탁되어 가능성을 보였지만 김용대에게 밀려
주전골키퍼로 잘 나오지 못했지만
대학시절 좋은 실력을 보여주며 인정을 받았었고
2002년 상지대학교 졸업이후 부천에 입단한 선수입니다.
2002년 봄 프로선발출전 이전에 연습경기 도중
상대 공격수와 심하게 부딪치며 오른쪽 무릎 인대가 늘어나 3개월동안 재활훈련을 했으며
8월에 오른쪽 옆구리 타박상을 입는등
부상때문에 고생을 했던 선수입니다.
최현의 부상을 틈타 주전골키퍼가 되어 경기때 좋은 선방을 보여주었고
위치선정이 좋으며 방어능력이 좋다고 볼수 있지만
경험이 더 필요한 선수임엔 분명하며
시즌이 끝날때쯤 자신의 실력을 잘 발휘했던 선수입니다.
올시즌 주전골키퍼가 예상되는 만큼
동계훈련때 힘든 골키퍼 훈련을 소화해야 할것으로 보이며
충분히 좋은 가능성을 보일 골키퍼라 생각합니다.
<대전시티즌>
2001년 FA컵 우승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정규시즌이나 컵대회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었고
하위권에 있는일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2002년 정규시즌은 10개팀중에 10위를 하였죠
올시즌에도 성적이 하위권이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이팀에는 열심히 뛰는 선수들이 있으며
서포터들도 열성적입니다.
이팀의 우수선수들을 보면
김은중,이관우,장철우,공오균,콜리,최은성등이 있지만
이중에서 핵심선수들을 적어보자면
김은중 : 2001년 FA컵우승의 주역이자 대회MVP
이관우 : 활약이 좋은 미드필더
콜리 : 실력좋은 수비수
이렇게 3명을 꼽고 싶습니다.
그외 나머지 선수들은 이선수들에 비해 활약상이 적으며
개인적으로 최은성 선수를 집어넣지 못한것이 아쉽습니다.
상당히 성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포지션에서 묵묵히 훈련하고 경기에서 좋은활약을 보이는 선수인데
3명으로 한정되어야 하니
이 선수에 대해 못적은게 아쉽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대한민국팀의 최종엔트리에 들어갔던 선수인데...아쉽네요
1.김은중
생년월일 : 1979.4.8
신장/체중 : 184/72
(이상 출처 : 예전의 대전시티즌 공식 홈피)
1997년 대전시티즌 창단이후 팀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르는 일들이 많았지만
2001년 팀의 FA컵우승의 1등공신이며 MVP와 득점왕을 수상한 선수입니다.
대전시티즌 입단초기에는 체중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적었으며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밀려다녔던 선수입니다.
1998년 AG대표때나 청대시절때나 이동국과 투톱을 보며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부상으로 인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었고 고질적인 왼쪽무릎 부상으로 재활훈련에만 전념했었습니다.
2000년까지 프로에서 제대로된 활약을 못보여주었었죠.
하지만 2001년에 좋은 활약을 보이게 된 이유는
이태호감독이 대전시티즌감독을 맡으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태호감독은 김은중에게 공격수의 근성을 키우기위해 노력을 했던 나머지
과거 몸싸움을 싫어하던 김은중이
이제는 몸싸움을 할려고 노력을 하고 강해질수있도록 지도를 해주었습니다.
또한 동계훈련때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주로하여
체중을 10kg을 쪄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체격조건을 만들었죠.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공격을 위한 스피드가 빠르며
체력이 프로데뷔이후에 좋아지기 시작했으며
1:1돌파와 패스가 좋다곤 볼수 있지만
위치선정을 보완해야 하며 슈팅타이밍을 더욱 정확하게 해줄 필요가 있으며
발목의 힘을 더욱 강하게 활용해야 하며
동료선수들간의 호흡이 잘맞아야하며
문전볼처리와 빠른 측면 센터링을 보완하고 몸놀림이 좀더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김은중하면 가장 기억나는것이
한쪽눈이 멀다는 것이죠.
여기에 대한글을 적어보자면
"초등학교 3학년때 축구를 시작한 김은중은 6학년때 공에 왼쪽눈을 맞아 처음 부상을 당했다고 했는데 그땐 시력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동북중 3학년때 다시 왼쪽 눈을 얻어맞으면서 시력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수술을 받았지만 97년 동북고 2학년을 중퇴하고 예전에 입단할 무렵엔 왼쪽눈으로 하프라인에서 골대를 볼수없을 만큼 악화됐다. 98년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것도 왼쪽 눈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은중은 왼쪽 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러나 김은중은 훈련으로 눈의 약점을 보완했다. 김은중은 2년쯤 훈련하다보니 '감'이 생긴다. 최근에 그는 쏜살같이 날아오는 패스를 '느낌'으로 때린다."(2001.11.26 조선일보)
"내가 눈이 안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눈이 안 좋으니까 조금 못해도 봐준다는 말이 있을거 같아 한동안 비밀로 했다. 솔직히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2001.11.28 사커로 인터뷰)
프로데뷔후에도 자신의 실명사실을 감추었으며
2001년 FA컵때가서야 김은중선수의 실명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이태호감독은 선수시절 경기 도중 오른쪽 눈을 다쳐 외눈 골잡이였고요.
김은중선수로서는 이태호감독을 잘 만났다고 볼수 있으며
두사람 모두 선수때 눈을 다친적이 있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알것이며
김은중의 실력을 더욱 발전시킨 지도자중에서는 이태호감독을 뽑을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는 2003년 김은중선수의 활약은 100%긍정적으로 보고싶지 않습니다.
현재 대전시티즌감독은 이태호감독이 아닌 최윤겸감독이지만
이태호감독이 없는 김은중선수가 제대로 할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최윤겸선수가 김은중선수를 좋은방향으로 지도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1995년 아시아학생대표, 1995년 고교 전국선수권대회 MVP
1996년 아시아청대대표, 1997년 세계청대대표, 1999년 올대대표
1996년과 1997년 이관우선수의 청대시절에는
그가 보여준 잠재력과 무한한가능성이
많은 축구팬들로부터 주목을 받아오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말레이시아 세계청대선수권대회에 출전했지만
당시 팀이 스트라이커 부족으로 인해
이관우선수의 주포지션이 아닌 스트라이커로 출전한 경기가 있었는데
경기도중에 실수를 하는 장면이 나오자
많은 축구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또한 일본 J리그 후쿠오카 아비스파와의 계약파동을 겪어
진로가 불투명하기도 했지만
2000년 대전시티즌 입단때에는
이영표,양현정등과 신인왕1순위후보로 꼽히며 주목을 받았었죠.
대전시티즌에 입단할때에는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2순위로 낙점되었습니다.
2000년 4월 아시안컵 예선전 라오스와의 경기에서
전반전 초반에 오른쪽 발목을 접질린끝에
발목의 내외축 인대가 모두 끊어졌으며
부상의 영향으로 인해
결국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것으로 이어졌습니다.
2001년 정규시즌 초반 대전의 돌풍을 이끌었지만
7월 전남전에서는 김남일로부터
왼쪽발목 부상을 당했습니다.
(2001년 여름에 김남일에게 부상당한 대전시티즌 선수가 3명이었는데
탁준석과 성한수도 김남일에게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관우와 탁준석은 당일날 전남전에서 김남일에게 부상을 당했으며
성한수는 8월에 벌어진 올스타전에서 김남일에게 부상을 당했습니다.)
2000년과 2001년을 보면 부상때문에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질 못했습니다.
그 영향 때문에 대전시티즌의 성적이 떨어지게 되었죠.
하지만 2002년 정규시즌에 출전하여 자신의 진가를 잘 발휘하였으며
미드필드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정규시즌이 끝나고 K리그 3~4팀이 이관우를 영입하려 했지만
그는 대전시티즌과 팬들에게 정이 들었던 것이었는지
대전에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개인기와 슈팅력, 센스
상대진영을 왼쪽과 오른쪽을 휘젓는 플레이와 중거리 슈팅이 좋고
드리블을 할때와 패스를 할때를 잘 구분하는 좋은 플레이메이커 이지만
체력이 부족하고 잦은 부상이 단점이라 할수 있습니다.
2003년에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면
2003년엔 좋은 플레이를 할것이며
앞으로는 팀성적에 치명적인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네갈 국대와 청대출전 경력이 있으며
대전시티즌의 용병 1호입니다.
전 소속팀은 예전의 대전시티즌 공식홈피에서 확인한 결과
튀니지 1부리그인 Olympique de kef라고 하네요
2001년도에 뛸때에는 임대로 들어왔었지만 2002년 초에 대전으로 완전이적한 선수입니다.
대전시티즌의 포르투갈 전지훈련때 영입이 결정되었던 선수이고요.
판단력,태클,패스,집중력,개인기,기본능력이 좋다고 볼수있는 편이며
수비능력과 태클, 상대방이 볼을 가지고 있거나 몰고들어갈때
그것을 뺐은후 동료에게 이어주는 볼 배급능력이 좋으며
세트플레이때 공격에 가담하는 일이 있고
스피드와 헤딩력이 좋고
대인방어능력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2003년도 대전시티즌의 수비를 책임질 선수이며
상대팀의 공격수들은 대전과의 경기에서
콜리를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북현대>
조윤환 감독의 용병술과 전술이 돋보이며
선수들의 기량은 상위권팀들에게는 결코 밀리지 않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팀의 우수선수들은
에드밀손,최진철,이용발,박동혁,양현정등을 들수 있지만
핵심선수는
에드밀손 : 2002년 정규시즌 득점왕
최진철 :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함
박동혁 :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
이렇게 들수 있고
나머지선수들은
이들에 비해 활약이 미치지 못하거나
부진이 예상되는 선수가 있어서 핵심선수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때 대한민국의 4강신화의 주역인 선수이기도 하죠
초중고 시절에는 스트라이커를 봤으며
숭실대 시절에는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던 선수입니다.
1993년에 국대2진에 발탁되었고
1996년 전북현대입단시 1순위로 들어온 선수이며
1997년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엔트리에 발표되고도 단 1게임도 뛰어보지 못했던 선수입니다.
김도훈이 J리그를 떠난뒤 공격수쪽에 공백이 생기자
1998년과 1999년에는 공격수를 보게 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헤트트릭을 한번한적이 있었고 8골 2도움을 기록
1999년에는 팀내 공격포인트1위에 9골 6도움을 기록했으며
2000년 FA컵때는 팀의 우승에 공헌을 해주었던 선수입니다.
제공권장악력과 공중볼 수비가 좋으며
세트플레이때의 공격가담력이 좋고 과감한 태클능력이 있는 선수이며
근성이 있고 웬만한 유럽선수에게도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며
위치선정이 좋고 상대편 공격의 흐름을 잘 끊습니다.
성실하고 예의바르며 지역방어 능력이 좋고
밀착방어와 노련한플레이가 좋다고 봅니다.
거기다 전북의 주장을 맡고 있으면서 책임감은 더욱 좋아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작년시즌까지 동료 센터벡인 호제리우와 호흡이 잘 맞았고
두 선수가 있음으로 해서
전북의 중앙수비가 탄탄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조윤환 감독은 최진철에 대해 신뢰감을 잘 나타냅니다.
하지만 이 선수는
2001년부터 아팠던 오른쪽 허벅지 부상때문에 고생을 한적이 있었는데
최근 다시 아프다고 합니다.
이번 정규시즌까지 이어지면
본인으로서도 좋지않게 될것이고
팀으로서도 좋지않게 되지만
이 선수가 2003년도에 좋은활약을 하느냐 부진하느냐에 따라서는
부상을 회복하는 시기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1999년 청대,2000년 시드니올대에 선발되어
좋은 기량을 선보였음에도 가끔 불안한 모습들이 보이긴 했지만 경험은 잘 쌓은 선수입니다.
2000년 6월 춘계대학연맹전에서는 고려대를 정상에 올리며 수비상을 받은 경력이 있죠.
공격수로도 좋은 활약을 보였는데
1997년 추계연맹전 득점왕을 받은 경력이 있으며 포지션은 공격수입니다.
포지션을 수비수로 전환하게 된건 고려대시절이 되겠고요.
수비수나 수비형미드필더를 맡을수있는 선수이며
공격가담능력과 스피드, 제공능력, 체력이 좋으며
상대공격수에 대한 집중마크능력이 좋으며 압박을 잘합니다.
2003년에 좋은플레이를 펼칠 가능성이 높으며
조윤환감독에게 좋은신뢰를 계속 받을수가 있다고 보며
잘하면 국대에 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전남드래곤즈>
1997년 FA컵 우승과 1999년 아시안위너스컵 준우승의 수상경력이 있지만
2002년 정규시즌에선 중위권을 거두었으며
올시즌에도 중위권이 예상되는 팀입니다.
특히 이 팀은 이번시즌끝나고 감독이 해임될 가능성이 높은 팀이죠.
이 팀의 우수선수들은 김태영,마시엘,강철,박종문,비에라,신병호,김도근 등을 들수 있지만
이중에서 핵심선수를 꼽아보자면
김태영 : 1998,2002년 월드컵에 출전
신병호 : 2002년 전남공격의 핵
김도근 : 1998년 월드컵에 출전
이렇게 들수 있으며
나머지선수들을 제외한 이유는
노쇠화가 예상되거나 핵심선수에 비해 활약도가 낮다고 볼수 있습니다.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2년간 선수생활을 하다가
1995년 전남드래곤즈에 입단한 창단멤버가 되었습니다.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까지 활약했으나 본선 엔트리에서 빠진 이유는
소문에 의하면 대표선수 가운데 실업선수(국민은행)였다는 것이 제외 이유라 합니다.
1996년 와일드카드로 나와 애틀란타 올대대표를 지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대표를 거쳐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신화를 이룩한 주역 가운데에서는 김태영 선수가 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코뼈가 부러진뒤 스폐인전부터 마스크를 썼으며
별명이 "마스크맨","배트맨"등으로 불려지기도 했죠.
체력,저돌적인 플레이,악착같은 대인마크가 좋고
유니폼을 잡고 늘어지며 뚫리면 파울로 공격을 끊고
사람을 보고 달려드는 수비에
상대 공격수들이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는 대표적인 수비수를 들자면
김태영선수를 꼽을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반칙을 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성이 좋지만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시의 패스가 부정확하며
위험한 지역에서 거친 플레이를 하여 지적을 받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2003년에는 전남의 수비를 더욱 탄탄하게 하기 위해
3백을 보는 마시엘,강철등과 같이 호흡을 맞출수도 있지만
저번 잉글랜드 진출 실패이후
팀에대한 마음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김태영 선수 본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2003년이 달라질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2.신병호
생년월일 : 1977.4.26
신장/체중 : 177/75
(이상 출처 : 전남드래곤즈 공식홈피)
1999년 가을 중국과의 경기에서(올대) 멋진 헤딩골을 넣어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할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선수입니다.
건국대 4학년때 국내 프로축구 드래프트를 신청하지 않고 해외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유럽구단과 접촉을 했지만 실패
(유럽구단은 네덜란드의 PSV아인트호벤입니다.)
일본에서도 실패
중국의 충칭 룽신에 들어가려 했지만 실패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연습생으로 들어감
2001년 브라질 3부리그 그레미우 클럽행
3개월후 일본 2부리그 미토 홀리호크 입단(29경기 출장)
울산에 입단
1년다 못채우고 전남으로 이적
이렇게 정신없이 팀을 옮겨다니며 연습장소가 없어
모교인 건국대에 다시 들어가 팀훈련을 함께 하기도 하며
고향인 제주도에서 개인훈련을 했고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고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2002년 전남드래곤즈에서 재기에 성공하였으며
전남공격의 핵이 되었습니다.
또한 2002년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 대열에 낀 선수이기도 합니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대표이며 1995년 전남에 입단을 하였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나왔던 선수입니다.
1997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선수죠.
1999년 최용수와 함께 잉글랜드 웨스트햄 이적 파동을 겪으며 슬럼프에 빠졌고
1999년 말에는 거의 다 성사되었던 빗셀 고베행이 막판에 진통을 겪으며 J리그 진출에 실패했지만
2000년 대한화재컵에서 예전의 좋은기량을 다시 되찾았던 선수입니다.
2000년 베르디 가와사키에 입단하였지만
(베르디 가와사키는 스트라이커 김현석의 뒤를 잘 호흡해줄수 있는 선수를
김도근 선수라 생각하고 영입을 했습니다.)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으며 J리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 그가 베르디 가와사키를 떠나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한 이유는
이국수 총감독의 퇴임이후 장외룡 총감독의 거취가 불투명 해진데다가
새로 감독이 된 마츠키 감독이 한국선수들을 잘 기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츠키 감독이 세레소 오사카 감독시절 고정운,하석주 기용을 놓고 문제가 되면서
고정운은 한국행, 하석주는 빗셀고베행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세레소 오사카에서 좋은활약을 보일려고 노력을 했지만
2001년 7월 팀이 스트라이커가 부족해서 성적이 안좋다보니
외국인 골잡이 영입을 위해 윤정환을 제외하고 다른 한국인 용병인
김도근과 노정윤을 다른팀으로 보냈습니다.
결국 김도근은 전남드래곤즈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왼쪽 미드필더로 많이 뛰었지만
2002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으며
포지션 변경이후 플레이하기에 여유가 생겨졌고 팀의 공격을 더욱 배가시킬수 있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이 김도근 뒤에서 잘 받치다보니
김도근에겐 조금 편한존재로 느끼게 되었을 겁니다.
빠른발을 이용한 돌파능력과 슈팅이 빠르고 침투시의 패스가 좋으며
저돌적이고 수비력이 좋다고 볼수 있지만
공격시의 패스가 자주 끊기는 것을 단점으로 들수 있습니다.
2003년에도 그의 존재는 전남으로서 중요할것입니다.
<상무불사조>
올시즌부터 K리그에서 경기를 하는 팀이며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팀의 우수선수를 들자면
이동국,박성배,김영철,김상식,조재진등을 들수 있지만
(서기복과 박재홍은 4월에 제대하고 전북에 입단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제외하겠습니다.)
핵심선수를 들자면
이동국 :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
김상식 : K리그 선수들중 능력이 좋은 수비형미드필더
조재진 : 미래에 좋은 활약이 기대되는 공격수
나머지 선수들을 넣지 않은 이유는
활약이 이 선수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볼수 있지만
조재진 선수를 넣은 이유는
상무입대전에 수원삼성에서 부진을 했었지만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며
가장 결정적인 점은
기존에 상무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핵심선수에 포함을 시켰습니다.
기존에 있던 선수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겠죠.
(박성배 선수는 핵심선수에 낄만한 선수이지만 핵심선수가 1팀당 3명씩 정해져 있는이상
우수선수로만 분류하겠습니다.)
포철공고 3학년때 KBS중고 봄철 연맹전 결승전에서 연장골든골을 터뜨려
팀의 우승을 이끌며 주목을 받았고
기타 대회에서도 주목을 받았으며
앞으로 한국축구를 이끌 유망주로 알려졌었습니다.
고교랭킹1위로 연세대,고려대,한양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지만
연세대 진학이 결정되려다 막판에 포항스틸러스에 입단이 확정되었습니다.
1998년 포항팀 입단뒤 월드컵전에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
결국 프랑스월드컵 엔트리에 끼게 되었고
네덜란드전에 후반교체출장을 했던적이 있었습니다.
1998년 K리그 신인왕
1998년,2002년 아시안게임 대표, 1998년 아시아청소년대회(U-19)출전
1999년 세계청소년대회(U-20)출전 등의 경력이 있었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였지만(1부리그 베르더 브레멘에 진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실패하고 포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부상회복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대 주전 경쟁을 펼치다
결국 2002년 한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을 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탈락이유는 동작이 크고 수비가담능력이 떨어지며 순간스피드가 떨어진다는 것,
무거운 몸놀림등이 주된 이유라 볼수 있습니다.)
그 이후 K리그에선 좋은 활약을 보여왔습니다.
움직임이 예전보다 더욱 넓어졌고 몸싸움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노력을 했으며
예전같은 지치는 플레이는 하지않을려고 애를 쓴 흔적들이 있었고
정신력도 좋았었고 수비라인까지 내려오는 적극성을 발휘하여
예전보다 더욱 개선된 플레이로 인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좋은활약을 보여줄것으로 예상되며
대한민국의 금메달수상을 이끌어 병역을 면제받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러나 부산 아시안게임 3위로인해
그는 병역을 면제받을수 없게 되었으며
월드컵이후 그가 달라진 플레이에 대해서는
아시안게임 전에 비해
축구팬들로부터 얘기거리되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대신 상무입대가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축구팬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고 있는 선수라고 볼수 있습니다.
근성부족으로 인해
이동국 본인 스스로 노력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
특히 최순호감독으로부터 지적을 받아왔었죠.
(최순호감독은 이동국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왔었으며 관리를 잘 해볼려고 애를 써왔죠)
전성기 시절에는 골결정력과 슈팅이 좋았고 중거리슛도 정확했고
체중이 불어나기 이전에는 지금보다 더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그의 대표적인 단점은 근성부족이라 볼수 있습니다.
2003년 3월에 입대하는 이동국선수의 상무생활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줄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정신적인면이 도움이 되어줄것이고
황선홍은 자신의 후계자를 이동국을 지목하면서
상무생활이 그에게 도움이 될것이라고 했으며
정신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2000년 올대대표와(와일드카드)
2000년 아시안컵대표를 지낸선수이며
상무입대전에는 성남일화의 주전 수비형미드필더였으며
김상식이 없는 성남으로선 전력에 공백이 어느정도는 있을것이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그가 성남의 수비형미드필더로 나와서 좋은 활약을 했고
팀이 좋은성적을 내는데 공헌을 해주었다는 것이 되겠죠.
하지만 2000년 12월 한일전 퇴장뒤 심판판정때문에
축구팬들로부터 한동안 얘기거리가 많이 되기도 하였고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001년 9월 나이지리아와의 1차평가전에서
김상식의 파울플레이로 인해 퇴장당해 팀을 위기로 몰아넣자
많은 축구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수비형미드필더와 수비수를 볼수 있으며
수비력과 근성이 뛰어나며 헤딩을 할때 공을 맞추는 부분이 정확하며
상대의 공격흐름을 잘 차단시키는 역할을 잘해왔던 선수입니다.
대인방어능력이 좋고 스루패스를 잘 연결하고
유럽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선수입니다.
2003년 상무의 주전선수로 나와
군인정신이 밑바탕되어
기존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2000년 수원삼성에 입단한 고졸선수였으며
청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선수입니다.
2000년 아시아청소년대회(U-19)에 참가했으며
파키스탄전에서 2골을 넣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소속팀 수원삼성의 전지훈련 때 오른쪽 무릎을 다쳐 청대에서 제외되는등
부진한 모습을 보여왔지만
재활훈련을 열심히 해주어
다시 청대에 뽑힌 선수입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수원삼성에서 별다른 활약이 없이
2001년 11월 상무에 입대하였고
2002년 FA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메스컴에서 주목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최근 아테네올림픽 대표에 뽑혔고
최근 아프리카 4개국 대회에서 대한민국 올대가 우승하는데 공헌을 했으며
대회 MVP를 받은
앞으로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선수라 볼수 있습니다.
스트라이커로서의 좋은 체격조건을 갖추었고
슛이 강력하여 점프력이 뛰어나 공중볼 다툼에서 밀리지 않는 경우들이 눈에 들어오며
돌파력과 스피드가 좋고
문전에서 여유있게 슈팅을 때리며
힘이 있고 시야가 넓습니다.
하지만 볼 컨트롤이 좋지않고 경기운영능력이 대체적으로 미흡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단점으로 거론되어왔던 경기때의 움직임과 근성은
현재 개선되어왔다고 볼수있습니다.
앞으로 올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일것으로 예상이 되며
상무에 뛸때도 이동국과 같이 호흡을 맞추며
공격수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포항스틸러스>
이번 시즌 중위권혹은 중하위권이 예상되며
홍명보,이동국,싸빅등의 주축선수들이 포항을 떠났지만
우성용,이민성같은 선수들을 영입했죠.
또한 이 팀은 고려대 코치로 활약했던 김병수씨를 코치로 영입했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 대한민국팀의 코치이자
부산아시안게임 감독이었던 박항서씨를 수석코치로 영입했습니다.
하지만 이 팀은 올해 홍명보선수가 나간 공백을 메꾸기가 힘들것으로 보이며
특히 수비라인을 제대로 이끌어야 할텐데
이민성 선수가 새로 들어왔다고 하지만
누군가 중앙수비수로 나온다 하더라도
홍명보선수의 공백을 못메꿀 가능성이 크며
최순호감독은 감독으로서 더 배워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의 지도력은 좋지 못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올시즌 상위권은 힘들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 팀의 우수선수를 적어보자면
김병지,코난,메도,이민성,우성용,김상록,김기동 등이 있지만
핵심선수를 꼽으라면
코난 : 포항의 득점력을 배가시킬수 있는 선수
메도 : K리그 최고의 왼발로 꼽을 자격이 있는 선수
우성용 : 장신선수, 득점력이 좋은 선수
이렇게 꼽을수 있으며
나머지 선수들은
활약도가 부족하거나
올시즌 부진이 예상되는 선수들입니다.
2001년 포항에 입단한
마케도니아 출신의 국대출신 스트라이커이며
본명은 고란 페트레스키 입니다.
예전 현대의 유고용병 고란과 이름이 비슷하였고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위해
최순호감독이 코난이라는 이름으로 지어 K리그에서 선수활동하기로 했었습니다.
슈팅이 강하고 볼키핑이 안정적이고 골결정력이 좋고
위치선정과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선수이며
드리블능력과 문전돌파력이 좋고
한번 공격기회를 잡으면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플레이가 두드러지게 보이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득점기회를 혼자서 만들고 직접 처리할 줄 아는 선수죠.
기복이 다소 심하다는 단점이 있고
드리블능력은 좋으나
드리블이 길어 공격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있는것이
그의 단점이라 볼수 있습니다.
2001년 수비가담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지만
K리그 적응이 끝난 2002년엔 공격과 수비에서 맹활약을 보여주었던 선수입니다.
2003년에도 팀의 득점을 더욱 배가시킬 가능성이 크고
동료선수들과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합니다.
크로아티아 청대출신에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국대 경력(6게임 출장)이 있는 선수입니다.
한일월드컵 이전에 세네갈 월드컵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왼쪽 미드필더로 나와 파괴력있는 돌파를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던 선수죠.
포항선수중에서 움직임이 가장 돋보이는 선수이며
주로 왼쪽 미드필더에 위치하며 왼발킥이 정확하고 볼배급이 정확합니다.
포항의 투톱선수(2002년엔 이동국,코난 2003년엔 우성용,코난으로 예상됨)에게
왼쪽에서 좋은 센터링,패스를 이어주어
팀의 득점력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잘 도와줍니다.
상대방을 압박하는 수비능력도 좋죠.
이 선수의 센터링 특징은
강하게 날라가거나 회전을 많이 넣어 곡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것이 대표적이며
슈팅성 왼발 센터링을 잘 때립니다.
반칙이 잦은것이 단점이라 볼수 있고
정규시즌 후반에는 수비수들에게 집중적인 방어를 받아 부진하여
팀 성적이 부진하게 되었는데
(포항과 경기하는 팀의 오른쪽 윙백은 공격가담을 평소보다 줄이고
메도를 방어하는 데 많은 힘을 썼습니다.)
이 선수는 올시즌 포항의 성적을 좌지우지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 선수가 어느정도 하느냐에 따라 포항의 득점력이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고
포항전력에 영향이 큰 선수라 볼수 있습니다.
메도선수는 상대방의 집중적인 방어를 뚫는 연습을 확실하게 해두어
실전에서 발휘하여야 할것입니다.
1994년 올대의 비쇼베츠 감독이 우성용선수에 대해
유럽형 대형 스트라이커와 비슷하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1996년 아주대학교 졸업뒤 부산에 입단했지만 한동안의 성적은 좋지 않았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부진에 탈출하여 지금은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 대열에 있는 선수이죠
또한 올시즌부터는 부산이 아닌 포항에서 뛰게 되는 선수입니다.
192cm의 장신 스트라이커이며 득점력이 좋고 볼에 대한 집착이 좋으며
큰 키를 이용한 공중볼 처리에 강하며
교묘하게 빈 공간에 침투한 뒤에 골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장 인상이 깊은 장면은
팀이 세트플레이 상에서 헤딩슛을 하여 골을 성공시키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라 볼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헤딩슛은 K리그 최고라고 볼수 있습니다.
또한 골에 대한 자신감이 강하죠.
부산시절에는
마니치,하리,우르모브 등이 올려주는 패스나 센터링을
우성용선수가 골을 넣기에 유리하도록 동료들이 잘 밀어 넣어
우성용선수의 득점을 더욱 높일수 있었으며
팀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중 마니치선수와의 호흡은 잘 맞는 편입니다.
이 선수는 공중에서 몸싸움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2001년 웨이트 트레이닝을 충실히 이용하였고
몸무게를 3kg정도 불려 몸싸움이 더욱 유리하도록 노력했고
헤딩능력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2002년 아디다스컵 경기에 출장하지 않은 이유는
1월 남해전지훈련에서 인대부상을 당해
오른쪽 발목 인대부상 때문입니다.
2002년 정규시즌에서 헤딩골이 많지 않은이유는
그동안 헤딩골에만 치중하였던 득점루트가
더욱 다양화되어 득점력을 더욱 높였습니다.
올해 FA선수가 되자
새로운 부산감독인 이안 포터필드 감독으로부터 큰 신임을 받았지만
부산과의 우선협상 과정에서
부산측의 계약조건이 우성용과 마찰을 나타내자
우성용은 포항으로 가게되었습니다.
2003년 새로운팀인 포항에서 주전공격수를 맡을 가능성이 크고
메도같은 공격수들에게 센터링,패스를 잘 이어주는
선수들이 있을 경우
위협적인 헤딩골이나 득점력을 더욱 높일 확률이 있습니다.
<울산현대>
올시즌 중상위권이 예상되며
경기능력은 작년시즌보다 더 떨어질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정남감독의 지도력이 문제가 될만하며
유상철 선수나 이천수 선수같은 실력이 좋은 선수에 의존하는 전술을 쓸 경우
오히려 상대팀에게 더욱 높은 헛점을 보일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대팀은 울산과 경기할때
유상철,이천수 선수같은 실력이 좋은 선수를 집중적으로 방어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팀의 우수선수는
서동명,유상철,파울링뇨,이천수,현영민,박규선,박진섭,김현석등을 들수 있으며
핵심선수는
이천수 :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
유상철 : 1998,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
김현석 : K리그 최초로 50-50클럽 가입
이렇게 들수 있으며
나머지 선수들은 이 선수들에 비해 활약도가 부족합니다.
1. 이천수
생년월일 : 1981.7.9
신장/체중 : 172/62
(이상 출처 : 야후)
청대,올대,국대까지 엘리트코스를 밟은 선수이며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후반전에 교체출장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빠르고 재치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이천수 선수가 교체출장하기 이전에 팀 분위가 침체되어 있으면
이천수 선수가 투입이되서 빠른 몸놀림을 보여주어 팀의 기동력을 살려주는 선수였지만
독단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가 축구팬들로부터 알려지기 시작한것은 청대시절입니다.
부평고 2학년때 1998년 추계중고연맹전을 우승으로 이끌고 득점왕을 탔으며
1999년 고교대회 3관왕에 오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선수가 이천수 선수입니다.
부평고에서 좋은활약을 보여주었던 3명의선수가 있는데
현재 울산현대의 이천수선수와 안양LG의 최태욱, 박용호 선수가
주인공 이었죠
특히 이천수 선수같은경우는 안양LG행이냐 고려대행이냐를 놓고
축구팬들에게 관심이 끌었던 유망주였죠
그의 이름이 더욱더 높아진것은
2000년초 일본 신년 청소년축구대회에 참가한 대표팀이
파라과이전에서 이천수선수가 2골을 넣었고
결승전인 이탈리아전에서 한국이 1:0으로 승리하는데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이천수 선수입니다.
이때부터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기량이 좋은 선수로
차차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2000년 유고와의 A매치 경기에 나와서 좋은활약을 보여주어
그 경기를 관전했던 중국의 보라 밀루티노비치 감독으로 부터 좋은인상을 심어주었던 선수입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할때는
모로코전에서 김도훈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이천수선수가 골을 넣었지만
칠레전 전반전에 불필요한 플레이로 퇴장을 당해 많은 득점이 가능했을 상황에서
팀에게 악영향을 주었던 선수가 이천수 선수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앞에 적어놓았지만 좋은활약을 펼쳤지만
4강 독일전에서 보여준 것에서
후반전에 자신보다 공격할수 있는 위치선정이 더욱더 유리한
이영표선수나 안정환선수에게 볼을 주지 않고
자신이 직접 볼을 몰고 들어가다가
발락선수의 태클로 저지를 당하여 기회를 잃었던 점에 대해서는
이천수 선수의 대표적인 단점플레이로 꼽혀왔던 것이었습니다.
이천수 선수가 축구팬들로부터 크게 욕먹은 일은
이천수 선수가 쓴 자서전 이었습니다.
2002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대부분의 관중들에게 야유를 받았으며
축구사이트에서도 이천수 선수를 비난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으며
이천수 선수의 인격에 대한 얘기들도 있었습니다.
2002년 7월 10일 수원과의 경기가 끝나고
이천수 선수가 인터뷰에서
"교체투입되기 전 김정남 감독님이 오른쪽 포지션에서 뛰라고 했는데, 내가 다시 가서 중앙 공격수로 뛰겠다고 말했다. 골까지 넣어 기쁘다"
그 이외에도 자신의 라이벌은 모 선수다.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에 대한 것이나 모 선수에 대한 얘기 등등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었죠.
시간이 지나서
욕을 먹어서인지 조금이라도 성숙해진 마음이 있었고
지적을 받아왔던 나홀로플레이에서 벗어나
아시안게임 부터는 어느때라도 패스를 연결하고 동료의 골기회를 잘 만들어주고 활동반경이 넓어지며
이전과는 다른 플레이를 하고 있으며
기량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부 울산서포터들은 정규시즌 후반기의 이천수 선수를 보며
너무 패스를 많이한다는 말까지 했었을정도죠)
또한 2002년 어시스트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신인왕까지 받았던 실력은 좋은 선수임을 입증했습니다.
한때 릴이나 사우스햄튼같은 유럽팀에 입단할뻔했지만
번번히 유럽진출에 실패했으며
유럽에서 뛰게될경우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여 충분히 성공할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만
걸림돌은 울산현대라는 존재의 영향이 큽니다.
폭발적인 순간스피드와 팀의 기동력을 살리는데 영향력이 있는 선수이며
체력과 돌파능력, 재치있는 슈팅능력은 그의 대표적인 장점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중앙보단 측면쪽에서 좋은 활약을 하는 선수죠.
하지만 습관성 어깨 탈구에 대한 재활훈련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자기관리를 잘해야하는 책임감이 이천수선수 본인이 들어야 할겁니다.
연예계쪽에 나오게 되면 자기관리 능력에 차질이 있을 가능성이 크고
선수생활에 지장이 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잘 알겠지만
축구선수라는 본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03년에 많은 경기에 나와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기량이 더욱더 발전하기를 바라며
해외진출이 2003년안에 이루어질경우에 대해서는
그의 기량과 잠재성을 볼땐 긍정적으로 볼수 있습니다.
해외진출이 계속 미루어질 경우에는
앞으로 이천수선수의 축구인생에 좋은일이 되어주질 못할 것입니다.
2. 유상철
생년월일 : 1971.10.18
신장/체중 : 184/78
(이상 출처 : 야후)
1994년 미국 월드컵 엔트리에 뽑힐뻔했지만 탈락되었던 선수이며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하여 벨기에전에서 동점골을 넣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팀의 2번째 골을 넣었던 선수가 유상철선수입니다.
통산 A매치는 100경기 넘게 출전을 하여
경험이 풍부한 선수라 할수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전에는 "홈런왕"이라는 좋지않은 말이 불려져
축구팬들에게 욕을 잘먹던 선수였으며
"홈런왕유상철"이라는 게임이 인터넷에 나돌정도로
그를 욕하는 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인해
유상철선수를 비난하는 일들이 줄어들었고
축구사이트에서도 유상철선수를 비난하는 글들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상철 선수는 현대축구에서 원하는 멀티플레이어의 역할을 보여주는 선수이며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 포워드 등등을 봐도
능률적이고 좋은 활약을 볼수 있는 선수입니다.
김정남 울산감독은 유상철에 대해 어떤 포지션을 맡겨도 믿음이 갈정도로
유상철선수에게 신뢰를 주는 지도자라 볼수 있으며
헤딩력이 좋고, 경기를 지배하는 결정력이 좋고, 득점력이 좋은 선수라 볼수 있습니다.
1998년에는 K리그 득점왕
2002년 K리그에서는 후반기에 울산현대에서 뛰게되어
8경기 출장하여 9골을 넣었고
그중 7골은 후반전에, 4골은 결승골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또한 유상철선수가 8경기 출장한날은
울산이 8연승을 거두어 팀 성적이 2위까지 크게상승하여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우승팀을 알수없게 할 정도로 팬들을 재미있게 해주었던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 선수는
2002년 월드컵 끝나고 가시와레이솔에서 고별전을 치른뒤에
유럽진출을 노렸지만
그것이 실패하여 무적선수가 되었고
부산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에서 탈락이 되어
충격을 받았지만
피파 무적선수 이적 시한 폐지 조치로 인해 울산현대에 입단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2002년에 좋은활약을 보여주었기에 2003년에 좋은활약을 보여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상대팀은 울산과 상대할때
울산 전력의 핵인 유상철선수가 공격할때
상대수비수들은 그에게 집중마크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만큼 유상철선수가 울산으로서는 중요한 존재이고
울산의 성적을 올릴수 있었던 장본인이 유상철이었죠.
그의 활약은 2003년에도
2002년 정규시즌 후반기처럼 좋을것으로 예상되고
부상을 조심해야 할것이고
자기관리를 잘 해야 할것입니다.
*정규시즌이 끝나고 유상철선수의 인터뷰에서
"축구는 홀로하는 운동이 아니다. 선수들이 호흡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이천수가 많은 일을 했다"(스포츠서울)
이천수선수의 10월 23일 인터뷰에서
"상철이형의 합류로 팀 전체가 안정감을 찾았고 플레이에 여유가 생겼다. 본 받을 점이 많은 선배다"
울산현대의 유상철,이천수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
두선수의 호흡이 잘 맞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 두선수가 2003년에 많은경기에 나와 좋은활약을 보여주게 되고 부상을 조심할 경우
울산현대의 우승확률은 더욱더 높다고 볼수 있습니다.
1990년 울산 입단후 울산의 기둥인 선수이며
1995년,1998년 아디다스컵 득점왕, 1997년 정규시즌 득점왕
1989~1996년, 1999년 국가대표
1996년 정규시즌 MVP와 1995~1998년 베스트11
1996년 울산현대의 정규시즌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입니다.
또한 2001년 7월 21일 전남전에서
국내최초 50-50클럽 가입과 통산 300경기 출장을 했으며
2001년 7월 25일 부천SK전에서
국내최초 100-50클럽에 가입한 선수죠.
2001년 10월 13일 대전시티즌 전에서는 프로최다골을 기록했습니다.
(그 이전에 현재 은퇴한 안양선수였던 윤상철의 101골이 종전 최다골 이었습니다.)
삼척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선수들이 입고 있던 화려한 유니폼에 매료되었으며
축구부연습이 끝나면 빵,우유를 주는게 좋아 축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선수가 축구팬들로부터 국내용이라 불리는 이유는
프로에선 좋은 활약을 했지만 국대에선 프로에 비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여
국내용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게임리딩능력이 있고, 골감각이 좋은 선수이지만
2002년 수비수로 변신하고 나서부터는
경기할때 몸을 날려 상대 슈팅을 막아내는 일을 종종하며
상대편에서 날라오는 볼을 막을때 신체적으로 충격을 받아도
몸을 사리지 않고 뛰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이런 모습이 후배들에게 자연스럽게 투지가 생기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팀의 전력이 상승된다고 하여
몸을 날려 상대편의 볼을 막는다고 합니다.
또한 상대방 공격의 흐름을 잘 끊는 역할을 잘하는 편이고
수비수 보직 변경이후 몸싸움이 더욱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고
위치선정이 뛰어났습니다.
수비수로 변경한 이유는
2001시즌 공격형 미드필더를 봤지만
공격수보다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을 요구하였으며
한게임 뛰는데 4kg이 빠져
체력적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경험을 살리기 위해
2002년도부터 수비수를 보았습니다.
김정남 울산감독은
김현석을 수비수로 보직변경시킨 이유가
수비수들의 패스가 정확하지 않아 경험이 많고 패스가 정확한 김현석을
중앙수비수로 배치하고
김현석의 스피드 부족을 메우기 위해 끌레베르와 서덕규같은
발 빠른 선수들을 김현석 옆에 배치 시켰습니다.
2000년 1월 J리그 베르디 가와사키로 이적하여
킥력이 좋고 문전에서 동물적인 골감각을 갖추었다는 평을 받는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2000년 6월 감바오사카 전에서 상대 골키퍼 스즈키와 충돌하여
오른쪽 늑골을 심하게 다쳐 전치 3주 부상을 당했고
11월 8일 후쿠오카 아비스파 전에서
수원에서 뛴적이 있는 바데아에게 오른족 새끼 발가락을 부상당했습니다만
J리그 전후기리그 득점왕 상위권에 들었으며
전기리그 득점왕에 올랐던 선수입니다.
이 선수가 베르디 가와사키를 떠난 이유는
이국수 총감독의 퇴임이후 장외룡 감독의 진로가 불투명하게 되자
새로운 감독인 전 세레소오사카의 마츠키감독이 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츠키 감독은 세레소 오사카 감독시절
고정운,하석주와의 마찰로 인해
고정운은 한국으로 이적, 하석주는 빗셀고베로 이적하는등
한국선수를 잘 기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편견이 많은 감독입니다.
하지만 마츠키 감독은
김현석이 2000년 좋은 활약을 하였으며
그동안 득점력이 부족한 팀이 김현석의 영입으로 인해 득점력 부진에서 탈출했기 때문에
잔류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베르디 가와사키측은 외국인 선수 전원을
브라질 용병으로 바꾸었고
김현석선수는 울산현대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2~3년후 은퇴시에 유럽 지도자 연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2001년 아디다스컵때 공격포인트 없이 부진했었지만
정규시즌부터 좋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이 선수는 보양식을 잘 먹는 선수로 유명한데
일본진출 이전에는 뱀, 보신탕을 잘 먹는 등
보양식을 잘 먹기로 소문이 났지만
일본진출 이후 도핑테스트 때문에
보양식,한약제를 못먹게 되어
팀 영양사가 주는 비타민,프로틴을 섭취하였고
운동뒤에는 아미노산,고단백 분말등을 섭취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내로 복귀하여
2001년도 같은경우는 밀양에 사는 김현석후배가 주었던
가물치 즙을 여름나기용 보약으로 잘 먹어왔으며
평소에는 육류를 많이 섭취하였다고 합니다.
2001년 추석을 지나서는 개소주를 잘 먹었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을 편하게 대해주며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끈다고 하며
근성이 좋고
팀을 위하는 정신이 좋으며
팀 동료들을 잘 챙기는 정신이 좋습니다.
2002년부터 플레잉코치를 맡고 있으며
2003년에도 수비수로서 좋은 활약이 예상되며
은퇴하는날까지 투지가 넘치는 활약을 펼칠것으로 예상됩니다.
<부산아이콘스>
유럽출신의 이안 포터필드 감독영입으로 인해
팀의 전력이 작년보다 더욱 상승되었다고 볼수 있으며
올해 상위권 도약 가능성이 큰 팀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 팀의 우수선수는
하리,우르모브,심재원,노정윤,이임생,곽경근등을 들수 있지만
핵심선수를 꼽으라면
하리: 발재간이 좋은 부산을 대표할수 있는 용병
우르모브 : 왼쪽측면을 잘보는 부산용병
심재원 : 2000년 올대대표
이렇게 꼽을수 있으며
나머지 선수는 이 선수들에 비해 활약도가 모자라거나
K리그에 뛴 경력이 없기때문에
(앞에 기준을 보시면 아실겁니다.)
핵심선수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2000년 수원삼성에 입단하였지만 입단초기에 K리그 적응이 늦어져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고
수원은 하리를 포항스틸러스에 임대할 예정이었으나
하리가 수원을 제외한 다른 K리그 팀에 안가고 제3국을 원하게 되자
한때는 아비스파 후쿠오카로로 팀을 옮길뻔 했었지만
부산아이콘스의 신범철,류웅렬과 2:1 트레이드를 하게 되었습니다.
K리그 적응이 끝나게 되고 부산으로 오게 되면서부터
그의 진가를 잘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키가 작지만 돌파력,슈팅력이 뛰어나며
남미선수 특유의 발재간을 잘 이용하여
상대 수비수들을 뚫은뒤 공격수들에게 침투패스를 잘 연결시키며
몸놀림이 좋습니다.
개인기, 볼트래핑이 좋고,
활동폭이나 움직임 같은것이 넓은 선수이며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볼수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중앙미드필더의 핵심으로 자리잡아
동료선수들과의 호흡이 잘 맞는 편이죠.
자신에 대한 컨트롤이 약하고 자기관리가 뛰어나지 못하며
이 선수가 반칙한 뒤에는 그라운드를 어지럽게 하는 일들로 인해
(반칙당한 선수 때리기, 주심을 밀고 항의하는 일들 등등)
몇경기 출장정지를 판정을 받아 팀에게 좋지않은 악영향을 가져다 주게 됩니다.
하리 선수는 이 점을 반성해야 할겁니다.
돌파력이 뛰어나고 활동폭이 넓으며
하리가 중간에서 주는 패스를 놓치지 않고 개인기를 잘 발휘하는 선수입니다.
세트플레이시의 킥을 강하게 차며
문전에서 위협적으로 돌파하고, 슈팅타이밍이 비교적 빠르며
상대문전에 강한 압박을 주는 선수입니다.
그의 왼발 센터링은 각도가 잘 휘는 편이고
왼족측면에서 킥이 정확하고 패스가 날카롭고
스피드가 빠른 선수입니다.
두뇌플레이가 뛰어난 머리를 잘 쓸줄아는 영리한 선수죠.
하지만 경기당일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너무 심하며
심판의 판정에 민감하여 자신에게 불리한 판정이 나오게 되어
자신의 마음이 좋지않아 지게되어 플레이가 잘 안풀리는 점이
그의 단점이라 볼수 있습니다.
2003년 포터필드감독에게 좋은 신임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좋은 활약을 할것으로 보입니다.
2000년 부산에 입단하였으며
신인 드래프트에서 부산 1순위로 뽑혔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하였고 2000년 아시안컵에도 출전하였던 선수이죠.
올대시절에는
수비로서의 안정된 플레가 돋보였고
순발력, 스피드, 헤딩이 좋고 순간판단능력이 좋으나
기복이 심하며 몸싸움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스피드가 있는 상대선수를 잘 방어합니다.
2000년 아시안컵 이란전에서는
알리다에이를 잘 마크하여 좋은 평을 받아
오버래핑과 헤딩력이 좋은 선수라는 평을 받았지만
히딩크감독이 국대감독을 맡고 난뒤의 경기에서
(심재원 출전경기)
한국이 실점한 거의 대부분의 골들은 심재원과 관련이 있었으며
빠른 공격전환이 좋지만 집중력이 떨어지고 결정적인 실수가 잦았으며
1:1대인마크가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2001년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프랑크푸르트에 1년임대로 진출하여
유럽에 진출하였습니다.
독일에서는 1:1대인마크가 강력하고, 위치선정이 비교적 빠르며
헤딩과 슈팅능력, 스피드, 근성이 뛰어났지만
경험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002년 1월 한국국대에서 심재원에게 잦은 차출을 요구하자
감독이 심재원을 주전으로 투입하려는 것을 좋지않게 생각하게 되어 왔으며
매니저와의 결별, 우루과이전에서 부상을 당해
심재원 선수 본인은 고생을 해왔지만
부산측이 심재원의 복귀를 원해
결국 2002년 복귀를 했지만 한동안 주전으로 잘 뛰었지만
9월 1일 수원전에서 왼쪽발목 인대 파열로 전치6주 진단을 받았습니다.
올시즌에는 부상이 다 회복되어
이안 포터필드 감독으로부터 많은것을 배우고 익힐 가능성이 크며
부산의 수비를 책임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대구FC>
신생팀이며
올시즌 12개팀중에서 12위가 예상되는 팀입니다.
1975년 당시 팀전력이 좋지않았던 서울시청을 우승시켰으며
1983년 세계청소년대회 4강
1993~1995년 일화축구단이 정규시즌 3연패를 했던 감독인
박종환씨가 감독이지만
팀전력상 12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제리오 선수를 제외하곤 우수선수와 핵심선수를 뽑기가 힘들지만
팀내의 선수들을 기준으로 하면
이팀의 우수선수가 될만한 선수들은
호제리오,서동원,김건형,정대훈,이경수등을 꼽을수 있고
핵심선수가 될만한 선수는
호제리오 : 수비력이 좋은 용병
김건형 : 1999년 세계청소년대회(U-20)출전
정대훈 : 한때 올대였던 선수
이렇게 꼽을수 있으며
나머지 선수에 대해서는 활약도가 부족하거나
젊지 않은 선수들입니다.
1. 호제리오
생년월일 : 1973/3/9
신장/체중 : 185/85
(이상 출처 : 사커월드)
전북현대 시절 최진철과 함께 중앙 수비수를 보았고
서로 호흡이 잘맞았던 선수입니다.
힘과 수비장악능력이 좋고 체구가 육중하고
상대방의 마크는 K리그 최고급에 속할만하며
집중력이 좋은 선수이지만
태클이 과격하고 몸싸움을 잘 펼쳐 반칙이 많아 팀에 도움이 안되는 선수입니다.
현재 대구에서 뛰고있으며
대구선수들중에서 컨디션이 제일 좋은선수가 호제리오 선수입니다.
대구에선 중요한 용병선수임엔 틀림이 없으며
중앙수비를 책임질 선수입니다.
첫댓글 아아...이관우...몸을 혹사시켜가며 경기를 안해도 되는...한마디로 팀원이 어느정도 받쳐주는 그런팀으로 이적을 했으면 하는 소망이...좋은 유망주 하나 잃을지도 모른다는게 안타깝네여...
아주 좋은 글 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2003 k리그가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