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4년부터 메이지 6년까지, 일본 과도정부에서 유럽과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 특명전권대사인 이와쿠라 도모미의 이름을 따서 이와쿠라사절단이라고 부른다. 네덜란드 선교사 휘도 베르덱이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서유럽으로 보낸 대사절단에 착안하여 제안하였다고 알려졌다.
메이지 유신 이전에도 에도 막부는 1860년에 미국 파견 사절단을, 1862년에 제1차 유럽 파견 사절단과 1863년에 제2차 유럽 파견 사절단을 보낸 적이 있었다.
◆개요=1871년 12월 23일에 미국 태평양 우선회사(Pacific Mail Steamship Company)의 증기선 ‘아메리카 호’(SS America)를 타고 요코하마 항을 출발하여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그 후 미국을 횡단하여 워싱턴 D.C.를 방문했고, 미국에서 8개월간 체류를 하게 된다.
그 후 대서양을 건너 유럽 각국을 순방했다. 유럽에서 방문국은 영국(4개월), 프랑스(2개월),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3주), 러시아(2주),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비엔나 만국박람회를 시찰), 스위스 등 12개국에 이른다.
귀로는 지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홍해를 거쳐 아시아 각지에 있는 유럽 국가의 식민지(실론, 싱가포르, 사이공, 홍콩, 상하이 등)에 대한 방문도 이루어졌지만, 이곳의 숙박은 유럽 각국에 비해 짧았다.
원래 오쿠마 시게노부가 발의한 소규모 사절단을 파견할 예정이었지만, 정치적 의도 등에 의해 대규모 사절단이 되었다. 한 나라의 정부의 수장들이 모두 나라를 떠나 장기간 외유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직접 서양 문명과 사상에 접하고, 게다가 많은 국정을 비교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그들에게 끼친 영향은 컸다. 또한 동행한 유학생도 귀국 후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여 일본의 문명개화에 크게 공헌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권한을 넘어 조약을 개정하고, 협상을 하려고 시도하였기 때문에 과도 정부와의 마찰을 빗었다. 또한 외유 기간의 대폭적인 연장과 기도 다카요시와 오쿠보 도시미치의 불화 등의 정치적 문제를 야기했다.
당시 “조약은 마무리되었지만, 돈만 버리고 세간에 대사가 무슨 이와쿠라(세간에 대해 뭐라고 변명) ”라고 광가(狂歌)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사절단의 대부분은 삭발을 하고, 양장을 입었다. 이와쿠라는 일본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투와 기모노를 입은 모습으로 도항을 했다. 이 모습은 미국의 신문 삽화에도 남아 있다.
그러나 미국에 유학하고 있던 아들 이와쿠라 도모사다 등에게 “미개 국가로 멸시를 받는다”고 설득당하여, 시카고에서 삭발하고, 이후는 양장을 차려입었다.
◆목적=이와쿠라 사절단에게 맡겨진 임무는, 기존에 체결된 불평등조약을 재협상하는 일과 교육, 과학기술, 문화, 군사, 사회와 경제구조 정보를 수집하여 일본 근대화를 촉진하는 일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이전 에도 막부와 협약된 각종 조약을 새 정부의 상황에 따라 대체하기 위해 메이지 첫해부터 순차적으로 협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1872년 7월 1일(메이지 5년)을 기해 구미 15개국과 수교 조약의 개정 시기를 맞아 이후 1개년 통보로 조약을 개정할 수 있다고 동의했었기 때문에 메이지 정부는 이것을 기회로 불평등 조약의 개정을 시도한 것이다.
◆구성=후에 언론인, 문필가로 활약하고입헌제정당의 창당에도 참가한 후쿠치 겐이치로,
후에 외교관으로 활약하며 1902년 영일동맹 체결 시 주영 공사였던 하야시 다다스, 귀국 후 미구회람실기를 펴낸 구메 구니다케,
세이난 전쟁에서 죽은 무라타 신파치,
도시샤 영어학교를 열고, 기독교 선교에 평생을 바친 니이지마조.
사절단 46명, 수행원 18명, 유학생 43명이었다. 사절은 사쓰마를 중심으로 서기관 등은 이전 막부의 신료들이 선정되었다. 이와쿠라 도모미와 그 사람을 돕는 부특명전권대사 3명이 동행하였다. 부특명전권대사는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로 당시 정권의 장관이었다. 이와 행정가들과 학자들도 대동하였는데 그 총수는 48명이었고 함께 데려간 유학생 60명은 미국과 유럽에서 유학하고 나서 귀국하여 일본을 지도하는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