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물 베기/ 우은문
대형마트에서 축산물 팔아 내 술값 대기에 등골이 빠지는 아내와 몹시 다툰 날 밤에 각 방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꿈속에서 아내와 화해하려 했다 아내는 짤따란 머리카락을 뽀글거리게 한 후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여고 졸업하지 못한 채로 맏이를 갖게 한 일에 이어 쉰도 되기 전에 할머니로 불리게 된 것이 모두 다 네 탓이라며 원망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구구절절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땐 나도 어려서 사랑하는 방법이 서툴렀다는 말로 일관했다 그래도 아이들 키워놓고 여고졸업 했으니 그만 하자고도 했다 아들이 애비를 닮아 일찍 장가를 든 일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에둘러 말하다가 깜짝 꿈에서 깼다
고양이 걸음으로 아내 자는 방으로 건너갔다 허리를 새우등처럼 굽히고 잠든 아내의 발을 살며시 만졌다 내 푸석한 손 안에 쏘옥 들어 안기는 아내의 조그만 발이 가슴 깊이 들어와 앉았다 하루 온종일을 동동 걸음으로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별로 맛나게 생기지 않은 살코기를 들고 값이 싸고 맛도 좋다고 외치며 또 얼마나 속이 끓었을까
이젠 꿈속일망정 변명 말아야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뒤척이듯 한쪽 발마저 내게 맡기며 끙 하고 허리를 펴는 아내의 두 발을 내 두 손이 움켜쥐었다. 이때에 찌르르 머리 꼭대기부터 가슴을 울리는 것이 있었다 너흰 이날 이때껏 물만 베는 무딘 칼 둘이였다는 소리였다
첫댓글 반가운 마음에 회장님의 글을 읽다가..... 왜 눈물이 날까요......?
손 안에 폭 안겨오는 발을 만져주는 선생님과 그 따뜻함에 굽었던 새우등이 조금씩 펴졌을것만 같은 사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이 시렸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큰 제 발이 더욱 미워집니다. ㅋㅋ
좋은 글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갑니다. ^^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써놓고 보면 늘 지워버리고 싶기에 눈 찔끔 감고 올려버렸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정시인님 시 늘 감상하다가 모처럼 제 시 읽으시니 기분이 괜찮은 걸요~~
에고 사는 일이 다 저런 모습일까요??
그래도 둘이여서 보기 좋습니다!!
그렇지요.
요즘은 사람인 자(人)가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알만합니다.
끝내는 둘이 남아 서로 의지하며 살다가 가야할 일~~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할 자손들이 더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