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기 '백로' 아침에...
오늘은 하얀 이슬이 내린다는 절기 백로(白露)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왔음을 알리는 24절기 중 열다섯 번째 절기로 처서와 추분 사이에 있는 백로 이 무렵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데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대풍이라는 속설도 있다.
경남 섬지방에서는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늘린다"라는 말이 전해오면서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했다. 또한 백로 무렵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시작하며 다가오는 추석 명절을 준비한다.
그런데 24절기중 열다섯 번째를 왜 백로(白露)라 했을까? 24절기도 중반을 넘어 늙어 간다는 의미는 아닐까? 인간도 태어나 살다보면 자연스레 나이를 먹고 나이를 먹다보면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파뿌리가 된다.
사실 어느 털이나 제일 안(속)에는 공기가 조금씩 들어있다. 살 밑에서 털이 만들어져서 자라 가는 과정을 보면 멜라닌(melanin)이라는 검은 색소가 털뿌리(毛根)에 쌓이고 공기도 조금 묻어 들어간다. 병을 앓거나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면 또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색소 침착이 제대로 안되고 공기는 더 많이 들어가 안이 대나무 속처럼 비어버린다.
먹는 무(蔔 무 복)도 속에 바람이 들듯이 늙어지면 바람이 들고 바람이 들면 머리가 희어진다. 즉 속 빈 털이 백모(白毛)다. 물론 유전이 가장 큰 몫이라도 속일수 없고 피할수 없는 것이 DNA 요술방망이 인데 머리터럭 하나에도 이놈이 묻어 나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 씨는 속일수가 없다.
그런데 털이 하얀 것은 멜라닌도 멜라닌이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바람이 주범이다. 공기가 햇살을 받으면 빛을 산란하기에 털이 희게 보인다. 눈송이가 희게 보이는 것도 송이송이 사이 틈에 든 공기의 빛 산란이며 흰 꽃의 꽃잎이 뽀얗게 보이는 것도 세포 틈새를 채우고 있는 공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놈의 바람이 문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젊게 보이려고 피부에 해롭고 백내장을 일키는 염색약을 그 보드라운 털에 발라 제키니 보름도 안가서 백모는 온통 자라 나고 한달이 지나면 다시 제모습을 찾는다.
늙음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순리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심심함을 풀기 위해서라거나 뭔가에 정신을 모둘 때 흔히 자기의 손가락을 꺾는 사람이 있다.
딱! 하고 소리가 난다. 물론 발가락도 비틀면 그런 소리를 낸다. 이건 또 왜 그럴까? 손마디는 다름 아닌 관절 무릎, 팔, 목 등 모두 구부리고 펴고, 틀수 있는 뼈마디가 모두 관절이다. 관절의 두 뼈끝에는 몰랑몰랑한 연골이 붙어있고 연골과 연골 사에는 액체가 들어있어 움직임을 원활케 한다.
심한 마찰을 피할수가 있다는 뜻인데 역시 나이 먹으면 그 사이에 공기가 들어차게 된다. 손가락을 비틀어 꺾으면 두 뼈 사이에 들어있던 공기가 눌려 밖으로 비겨 나가면서 딱! 하고 소리를 내는 일종의 마찰음이다.
이를 물리학에서는 '마찰적 파동(음파)'이라고 하는데 소리가 난 손가락뼈는 곧바로 다시 비틀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공기가 뼈 사이, 안으로 들어온 후) 다시 소리를 내는 것만 봐도 그 소리가 '공기' 탓이라는 것을 짐작할수가 있다.
우리의 몸과 공기와의 관계를 좀더 들여다보면 늙어빠지면 피하지방도 고갈되어 살 꺼풀이 종잇장이 되고 간덩이의 양분 저장능력이 떨어져서 자주 허기를 느낀다. 아무튼 배가 고프다 싶으면 뱃속에서는 창피하게도 '꼬르륵' 소리를 내는건 보일러를 보면 데운 물을 방바닥에 설치된 호수로 물을 돌릴때 가끔은 공기를 뽑아낸다. '에어(air)'를 뽑아줘야 물이 힘들이지 않고 잘 돌고 그때도 방바닥에서 꾸르르 물 흐르는 소리가 날때도 있다.
우리 뱃속에서 나는 소리도 보일러의 물소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는데 뱃소리는 크게 두 가지로하나는 위에서 소장(십이지장)으로 음식을 내려가는 때 내는 소리고 또 하나는 대장에서 나는 소리다(내과 의사는 청진기로 우리 귀로 잘 들리지 않는 내장의 운동소리도 듣는다).
대저 늙음이란 어떤 것일까? 머리털에 기름기 빠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지며 속 비어 굽어지는 허리뼈에서만 늙음을 보는 것이 아니다. 머리털 속이 텅텅 비고 뼈마디에 바람들고, 대장에 가스 차는 것도 늙어짐이 아닐까?
아무튼 소슬한 바람이 불어예는 이 가을 바람이 들어 늙어짐이 아니라 늙음으로 바람이 든다는 것을 명심하고 바람불어 좋은날이 아니라 바람불어 늙어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