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달,백창렬] 검정대륙행 劍征大陸行(2권) 14. 關一飄, 잡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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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장  關一飄, 잡히다


1

한편, 단백린과 헤어진 후 검성문을 향해 빠르게 치달리고 있는 관일표의 걸음걸이는 바쁘기만 했다. 
단백린과 마찬가지로 관일표 역시 자신이 먼저 검성문에 당도해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관일표가 달려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는 것은 헤어진 단백린에 대한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삼숙…… 반드시 무사하셔야 합니다.' 
휘익!
그런 생각이 들면 들 수록 그의 발걸음은 조급하게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천년고목과 만년괴석들이 그의 눈 앞으로 부딪칠 듯 다가와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한참을 달리던 관일표의 발걸음이 문득 멈춰졌다. 
"……!"
그는 본능적으로 괴이함을 느끼며 잠시 주위를 살폈다. 
그의 눈 앞, 끝간 데 없이 펼쳐진 대나무 숲이었다. 
그 숫자가 수천 개인지, 수만 개인지조차 헤아릴 수 없었는데 대나무마다 백색천이 하나씩 매달린 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마치 끝없는 죽림(竹林) 위로 광활한 백색 바다가 펼쳐진 것과도 같은 대장관(大壯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관일표는 치밀어 오르는 긴장감으로 인해 꿀꺽 침을 삼켰다. 
'부주로 갈 땐 분명 이런 것들이 없었다.' 
그렇다. 
길이 나 있지 않은 산 속의 이곳저곳을 헤매며 지름길을 찾아 무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단백린과는 달리 관일표는 무산에서 부주로 갈 때와 똑같은 길을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갈 때는 없었는데…… 올 때는 있다!
이것이 그가 가지는 긴장감이었다. 
그리고 긴장감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관일표의 전신으로 스며드는 것은 강한 살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대나무 숲을 피해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관일표, 그가 아는 무산으로 가는 길은 바로 이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관일표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며 대나무 숲으로 진입했다. 
우우우우우―!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천지사방에서 괴괴한 귀곡성(鬼哭聲)이 울려퍼졌다. 그것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할 정도로 괴이로우며 스산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수많은 대나무들이 스으으…… 소리를 내며 한 점 흐릿한 영상으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관일표는 돌연한 변화에 등 뒤의 검자루를 잡았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흐릿하게 변했던 대나무 숲이 안개처럼 사라지며 그의 눈 앞에는 거대한 구층누각(九層樓閣)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구층누각이 주는 웅장함은 사라지고 과거의 옛 영화만을 간직한 채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폐각(廢閣)이었다.
휘이잉! 부는 일점한풍에 흙먼지만이 일어 구층누각의 귀기로움을 더했다. 
"……!"
그러나 그것을 올려다보는 관일표에게 있어서 거대한 구층누각은 심리적인 압박감을 가중시켰다. 
동시에 그는 긴장했다. 
그리고 뭔가 일이 재미없게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몇 걸음을 움직여본 그는 지금 자신이 절진(絶陣) 속에 갇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관일표는 백검령이 펼친 백인비무(百人比武)를 따라다니며 많은 절진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검성문의 제자로 입문한 후로는 체계적으로 진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이제보니 죽림(竹林)은 하나의 진법(陣法)이었어!' 
하지만 이런 류의 진법이 있다고는 들어보지 못했다. 
관일표는 폐허의 구층누각으로 다가서며 계속해서 염두를 굴렸다. 
'대체 누가 이런 진법을 만들었단 말인가? 혹시 능미랑의 일당들이……?'
능미랑을 생각하자 그는 더욱 긴장하며 온 몸에서 전의(戰意)가 불타올랐다. 
'좋아! 부딪쳐 보면 알 수 있겠지.' 
관일표는 주위를 경계하며 계속해서 구층누각 쪽으로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구층누각에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관일표는 더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에 잡힐 듯 들어오는 주위의 경물들과 구층누각의 실체는 그것이 진법이 주는 환상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구층누각으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두 개의 거대한 석상(石像)이 세워져 있었다. 
높이가 어른 키의 다섯 배가 넘어 보이는 석상이었다. 
그 중 한 개는 마면신상(馬面神像)이었고, 다른 한 개는 우면신상(牛面神像)이었다. 
바로 지옥에서 나오는 우두마면(牛頭馬面)의 악귀들을 석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석상의 석수(石手)에는 각기 사용하는 거대한 병기들이 들려 있었다.
관일표는 누각 안으로 들어가기 전, 너무도 절묘하게 조각해 놓은 그 두 신상을 올려다보았다. 움직이기만 한다면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그것은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신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번쩍!
관일표의 눈과 신상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고 느껴지던 바로 그 순간, 신상의 두 눈에서 마치 영롱한 보석이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것처럼 찬란한 빛을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와 동시였다. 
그그그그그!
신상의 몸이 관일표 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관일표는 대경실색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발 성큼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물러났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슈각!
마면신상의 거대한 석도(石刀)가 관일표의 몸을 쪼개버릴 듯 내리쳐졌다. 
관일표는 황급히 옆으로 신형을 날렸다. 
동시에 마면신상의 석도에 의해 땅바닥이 지진이 난 것처럼 쩌억!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관일표가 피한 방향을 향해 이번에는 우면신상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우면신상이 들고있는 무기는 천 근은 족히 나갈 듯한 거대한 도끼였다.
휘이이잉!
도끼는 관일표의 옆구리를 짓뭉개버리려는 듯 둔중한 바람소리를 내며 밀려들었다. 
'급하다!'
관일표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순간 누각의 돌기둥 하나가 우면신상이 휘두르는 도끼에 부딪치자 박살이 나며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관일표는 두 신상의 합공(合攻)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비록 그들의 공격에 빠르고 날카로운 맛은 없었으나, 만 근의 힘이 충분히 실려있을 듯한 그 무게에 감히 맞받아칠 엄두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관일표는 그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내심 염두를 굴렸다.
'진법이라면 이것은 당연히 환상이다……. 이것이 환상이라면…… 좋아! 어차피 환상이라면 피하지 않아도 죽지않아!' 
그것은 하나의 도박이었다. 
슈아앙!
엄청난 칼이 그의 머리 위에서 내리꽂혔다. 관일표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피하지 않고 그것에 대항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정적인 순간에 관일표는 자신도 모르게 칼바람을 피하지 않을수 없었다. 
환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정면으로 맞으면 죽어버릴거라는 공포감이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찌이익!
순간 미처 피하지 못한 그의 옷자락이 칼바람에 찢겨져 나갔다. 
'허억……! 이……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잘려진 옷자락을 내려다보는 관일표의 눈에서 섬뜩한 기운이 뿜어졌다. 
'이것들이 환상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관일표는 계속해서 염두를 굴리면서도 피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환상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 
힘에는 힘!
힘으로 우마(牛馬), 두 신상을 제압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을 굳힌 그는 단전에서부터 내공을 끌어올렸다. 
인검력을 발동하기 위해서였다. 
휘류류류류류!
주위는 순식간에 인검력이 토해내는 가공할 흡수력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였다. 
그러나 우마신상은 그 힘에 조금도 끄덕하지 않았다. 
관일표는 놀라 눈이 뒤집힐 정도였다. 
천하에 인검력에 반응을 보이지 않을 괴물아닌 괴물이 있을 줄은 미처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탄검기!"
순간 열 줄기의 강렬한 힘이 우면신상과 마면신상을 향해 빛살처럼 뻗었다. 
콰앙!
지독한 폭발음과 함께 탄검기에 정통으로 당한 우마신상이 비틀거렸다. 
관일표는 탄검기에 이어 소전륜삼천검의 제삼초인 검천섬영을 전개하며 무시무시한 벼락칼로 석도를 들고 있는 마면신상의 한 팔을 내리쳤다. 
쾨지직!
소리와 함께 마면신상의 한 팔이 밑으로 추락했다. 
관일표는 마면신상이 미처 대처도 하기 전 그의 머리 위로 올라가 놈의 두개골에 힘껏 검을 박았다. 
"크…… 크크!"
마면신상이 괴성을 질렀다. 
동시에 마면신상의 한 손이 머리 위의 관일표를 움켜잡았다.
'으으!' 
관일표는 허리가 끊어질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는 이빨이 부숴져라 깨물며 태청단원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강렬한 빛무리가 발산되었다. 
콰콰콰!
관일표의 몸을 움켜잡고 있던 마면신상의 손가락이 태청단원신공이 발산해내는 빛의 강기에 박살이 났다. 
관일표의 전신으로 엄청난 돌가루가 튀었으나 그것들은 관일표의 몸을 보호하는 호신강기(護身 氣)에 의해 튕겨질 뿐이었다. 
마면신상의 손을 벗어난 관일표는 악전고투로 풀어헤쳐진 머리를 추스릴 생각도 않은 채 그대로 화륜의 검을 전개했다. 
화류류류류류!
그 엄청난 화륜의 불꽃 속에서 우마신상이 그대로 균열하며 붕괴되었다. 
그리고 붕괴 속에서 우마신상의 모습이 환상처럼 사라졌다. 
관일표는 더 이상 경악할 수 없을 정도로 경악했다. 
도무지 자신이 싸워온 상대가 실체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관일표는 망연자실한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대저 진법이란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것이거늘……. 어찌……?" 


2

누각 안으로 진입한 관일표는 또다시 거대한 충격을 느꼈다. 
별유천지(別有天地)라는 말의 뜻을 이때 처음으로 알았다고 할까?
폐허가 된 누각의 바깥 모습과 안의 모습은 상극(相剋)이라 할 수 있었다. 
실내의 화려함과 환상적인 치장은 지금까지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온 관일표에게는 새로운 신기였다.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바닥은 번쩍번쩍 빛이 나는 돌을 잘 갈고 다듬어져 그 위에 선 사람의 모습이 비칠 정도였다. 
군데군데 지붕을 받쳐주고 있는 대리석 기둥은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살짝 만지기라도 한다면 손때가 탈까봐 저어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관일표가 내부의 화려함에 놀란 것은 찰나지간의 일이었다. 그에게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내부의 화려한 치장을 감상하며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던 것이다. 
관일표의 전 면, 이 장 앞이었다.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무릎을 꿇고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의 중앙. 
화려한 태사의에 한 명의 난장이 노인이 앉아 관일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난장이 노인의 백발은 얼마나 긴지 태사의에 앉아 있는데도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더욱이 허옇게 길러내린 수염마저 앞 가슴을 지나쳐 다리 밑에까지 흘러내리고 있었으니, 흡사 그의 모습은 백모(白毛)에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난장이 노인의 양 옆에서는 두 명의 젊은 소녀들이 파초선(芭蕉扇)을 부치며 시원한 바람을 내뿜고 있었다. 
관일표와 시선이 부딪친 난장이 노인이 괴상하게 웃었다. 
"캘캘캘! 우두마면상(牛頭馬面像)을 부수고 들어오다니 실로 대단한 꼬마놈이로다." 
처음 난장이 노인을 대면했을 때, 관일표는 움찔한 모습이었으나 잠시 시간이 흐르자 그 역시 조금도 기죽지 않고 난장이 노인을 노려보며 외쳤다. 
"노인장은 누구요? 무슨 목적으로 나를 이곳으로 유인하였소?" 
"캘캘캘!"
순간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난장이 노인은 자신의 배를 한껏 부여잡고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유인? 내가 너를 이곳으로 유인했다고 생각하느냐? 캘캘캘…… 웃기는 소리! 나는 너를 유인한 적이 없다! 단지 네 녀석이 들어왔을 뿐이지!" 
"……!"
"그래, 어떠냐? 이 꼬마놈아! 환상미궁대진(幻像迷宮大陣)에 들어온 소감이? 캘캘캘!"
"환상미궁대진?" 
"그렇다, 꼬마놈아. 네놈은 처음 들어보았을 게다. 대부분의 진법은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인간의 눈을 현혹하는 환영이지만, 환상미궁대진은 환상과 실체가 공존한다. 주위에 있는 자연의 물체가 미궁(迷宮) 속에서 변화를 일으켜 내부에 들어온 자를 죽이는 것이지. 네놈이 본 우두마면상도 그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네놈이 서있는 누각도 마찬가지! 실체는 아니지만 또한 환상도 아니다! 캘캘캘! 꼬마놈아! 이 정도면 네놈의 
안계(眼界)를 많이 넓혔다고 할 수 있을 게다!"
관일표에게 있어서 난장이 노인의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난장이 노인의 말대로라면 환상미궁대진은 지금까지 진법을 연구하는 자들의 공부를 한 단계 뛰어넘는 엄청난 단계라 할 수 있었다. 
관일표는 눈 앞의 이 난장이 노인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인물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장이 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캘캘캘! 이것에 비하면 오나라의 장군 육손을 가두었다는 제갈량의 팔진도(八陣圖) 따위는 어린애들의 장난에 불과하지." 
"난장이 늙은이! 대체 정체가 뭐냐?"
순간 난장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난장이?" 
해학적인 난장이 노인의 얼굴이 소름끼칠 정도로 섬뜩하게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지간이었다. 
난장이 노인은 다시 배꼽이 빠져라 캘캘! 거리며 웃었다. 
"캘캘캘! 네놈 사부인 군사황도 감히 노부를 그렇게 칭하지 못하거늘…… 네놈이? 캘캘캘! 난장이라니……. 너무나 솔직하고 과감하도다! 나 천무흠이 백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듣는 가장 솔직한 말이다." 
"천무흠!" 
강한 충격을 받은 듯 관일표의 얼굴이 핼쓱하게 질려갔다. 
"당신이 천무흠이라고? 당신이 배교의 교주인 천무흠이라고?" 
"맞아……. 네놈이 말한 이 난장이 늙은이가 바로 배교의 교주인 천무흠 어르신이다! 캘캘캘캘!" 
천무흠은 연신 괴소를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을 그친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섬뜩한 눈으로 관일표를 응시했다.
"네놈과 단백린이 나름대로 눈치를 채고 수작을 부리고 있지만 기울어진 대세를 되돌릴 순 없다!" 
"……!"
"군사황이 또 다른 군사황으로 변했듯이 네놈 또한 그렇게 만들어줄 것이다." 
"흥! 검성문이 어디 네놈의 손바닥에 있다더냐!"
관일표는 더 이상 참지 못하여 노성을 터트리며 그대로 검을 수직으로 한 채 천무흠을 공격했다. 
슈아아앙!
그 기운은 마치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 강맹하기 그지없었다.
순간 천무흠의 두 눈에서 무서운 형광의 빛이 번뜩였다. 
동시에 그의 한 손이 슬쩍 움직였다.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기류의 흐름도 발생하지 않았다. 
마치 늙은 노인의 힘에 겨운 손움직임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런데 펑! 소리와 함께 관일표의 몸이 뒤로 튕겨나가며 누각의 벽에 부딪쳤다.
관일표가 벌떡 일어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런! 상대의 아무런 힘도 느끼지 못했거늘 내 몸이 이렇게 튕겨나가다니…….'
"캘캘캘, 애송이놈. 네놈은 앞으로 백 년을 더 공부한다 해도 노부의 적수가 될 수 없다!"
"흥! 그건 내 너를 깔보고 잠시 방심한 탓이다!"
관일표는 이를 갈며 다시 공격했다. 
"석파천경!" 
촤라라라랏! 펑!
역시 이번에도 천무흠의 한 번 손짓에 관일표의 석파천경은 흔적도 없이 깨지고 말았다.
관일표는 뒤로 날아가 피를 토했다. 
부릅떠진 눈으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차기무영신공(借氣無影神功)!" 
그 말에 연신 기이한 괴소를 날리던 천무흠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대신 그의 입가에는 야릇한 마소(魔笑)가 매달렸다. 
"과연 군사황의 제자답게 보는 안목이 있군." 
그것은 천무흠이 자신의 무공이 차기무영신공임을 자인(自認)하는 말이었다.  
관일표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차기무영신공은 상대의 힘을 이용해 상대를 꺾는 무공이었다. 
상대의 힘이 강하면 강할 수록 상대가 받는 타격도 비례하여 강해진다. 물론 모든 신공이라 말한다면 약간의 어폐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신공을 사용해도 차기무영신공에는 당해낼 수가 없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아니, 최소한 관일표에게는 차기무영신공을 대적할 무공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천무흠이 음산하게 웃었다. 
"오십 년 만에 무림에 나타난 노부가 너같은 애송이를 상대로 손발을 움직인다는 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광오한 말이었다.
그러나 배교교주 천무흠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기에 그것은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네놈을 상대할 아이들은 따로 있다!"
천무흠은 슬쩍 눈을 돌려 가부좌를 틀고 있는 십 인의 복면인을 바라보았다. 
"놈을 잡아라! 허나, 절대로 죽여선 안된다!"
천무흠의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십 인의 복면인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뽑았다. 대청 안은 삽시간에 짙은 살기가 일며 주위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살기는 곧 엄청난 기세로 변해 관일표를 짓쳐들었다.
관일표 역시 전혀 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힘차게 그들과 맞부딪쳐 갔다. 
까깡!
관일표의 검과 복면인의 검이 부딪치자 시퍼런 불꽃이 튀었다.
순간 관일표는 경악했다. 
"천룡십삼검!" 
그렇다. 
지금 십 인의 복면인들이 사용하는 검법은 천룡십삼검이었다. 
그런데 천룡십삼검은 검성문의 독문검법이 아닌가 말이다. 
때문에 외부인들은 사용할 수도 없고, 사용하는 방법조차 알 수 없다. 
그런데 더욱 관일표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들 복면인들이 천룡십삼검에 매우 숙련된 솜씨들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놈들이 어디서 본문의 검법을 익혔단 말인가?'
관일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선 검성문의 검법이 외부로 유출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몰래 검성문에 잠입하여 훔쳐 배우지 않은 이상 알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그들과 맞부딪치고 있는 관일표의 두 손과 두 발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복면인들의 두 눈은 마치 영혼이 나간 자들 같았다. 
그들의 공격은 무자비하였고, 전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공세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싸움을 함에 있어서 수비가 없이 공격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공격자가 대단히 흥분하였다는 것이고, 그 중 두 번째는 죽기를 각오하고 상대와 동귀어진의 수법을 펼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흥분한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있으나, 후자의 경우라면 제압하기 위해 대단히 애를 먹을 것이다. 
지금 관일표의 경우가 그랬다. 
복면인들은 자신의 한 목숨을 도외시한 채 악귀처럼 관일표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복면인 중 유일하게 백의백면(白衣白面)을 한 자는 무공 또한 가공무쌍했다. 거의 관일표의 수준에 버금가는 검경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관일표는 이 한 판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콰각!
관일표의 검에 한 명의 복면인이 피화살을 뿜으며 죽었다. 허나, 그 틈을 이용하여 관일표의 뒤를 노리고 공격하는 백의 복면인에 의해 관일표 역시 한 허를 내주고 말았다. 
관일표는 장력을 퍼부으며 주르르 뒤로 밀려나간 후 백의복면인을 향해 일갈호통성을 내질렀다. 
"네놈들은 누군데 본 문의 검법을 사용하느냐?"
그러나 대답 대신 관일표를 찾아온 것은 살기어린 검초들 뿐이었다.
"더러운 악의 종자들!"
관일표의 손속은 독랄했다. 
남의 무공을 도둑질해서 사용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조금의 동정도 일지 않았다. 
"크아악!"
"으윽!"
치열한 싸움 끝에 들리는 것은 칼바람 소리와 죽어나가는 자들의 비명소리 뿐이었다. 
천무흠은 자신의 부하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태사의에 앉아 미미한 괴소를 지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양 옆에 선 시녀들이 부쳐대는 파초선의 바람에 은빛 머리카락만 가늘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치열한 싸움 끝에 살아남은 자는 백의복면인과 또 다른 흑의복면인 뿐이었다. 
그 중 백의복면인은 지독하리만큼 집요하게 관일표를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무엇을 보이려는 것일까?
백의복면인이 검을 들어 수직으로 세웠다. 
"!"
그것을 바라보는 관일표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는 백의복면인의 그 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소전륜삼천검의 인검력을 발동하기 위한 자세였던 것이다.  
'허억…… 소전륜삼천검까지!'
관일표는 넋을 잃을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좋다! 네놈이 인검력이라면!" 
관일표 역시 인검력을 발동시켰다. 
휘류류류류류…… 콰콰쾅!
서로가 서로에게 뿜어내는 가공할 인검력의 기운은 주위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며 천지번복(天地飜覆)의 폭발음을 토해냈다. 
"탄검기!"
슈슈슈슉―! 번쩍!
눈부신 빛무리 속에서 두 사람의 신형이 충돌하듯 허공 중에서 부딪친 후 뒤로 밀려나갔다. 
쿵!
백의복면인이 부상을 입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의지를 소유한 자인가? 
다시 일어나며 그대로 관일표를 공격해 들었다. 
관일표 역시 싸늘한 살기를 피워 올렸다. 
"검성문의 무학을 간악한 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검의 하늘을 섬뇌(閃雷)가 가른다! 천검섬영(劍天閃影)!" 
슈가가각!
관일표의 검이 그대로 백의복면인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크으으……."
베어진 백의복면인의 상체가 그대로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상체가 없는 하체는 두어번 헛걸음질을 하더니 그 자리에 픽 고꾸라졌다.
이때 뒤에서 흑의복면인의 공격이 감행되었다. 
이제 그 혼자 남은 이상 그는 관일표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관일표는 빙그르 몸을 돌리며 석파천경을 전개하여 그 자를 머리에서 가슴께까지 수평으로 갈랐다. 
그 자의 복면과 그 자의 얼굴이 두 조각으로 쩌억! 갈라졌다. 
반으로 잘라 길게 혈선이 그어지며 관일표에게 보여진 그 얼굴은 젊은 여인의 얼굴이었다. 
순간 관일표는 물밀 듯한 충격이 가슴을 강타하여 신형을 휘청거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도망치듯 뒤로 물러났다. 
그 얼굴의 주인! 
바로 유소옥이었다.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할 틈도 없었다. 관일표는 그저 두 눈이 텅빈 채 쓰러지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사…… 사매……."
지금 눈 앞에 벌어진 이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관일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연신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두려움이 엄습해 들었다. 
지울 수만 있다면 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유소옥이 무어라고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관일표는 생각했다. 
그러나 유소옥은 말이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몽롱한 눈빛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쿵……!
그리고 유소옥의 신형이 무너졌다. 
관일표에 대한 작은 사랑을 가슴에 숨긴 채 살아온 십 팔 년 세월이 관일표의 손에 의해 꺾여버린 것이다. 
관일표는 한기를 느끼는 사람처럼 온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는 주춤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은 시신이 되어 널브러져 있는 백의복면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관일표는 떨리는 걸음으로 백의복면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가 유소옥이라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제발…….'
관일표는 속으로 빌었다.
자신의 예상이 틀리기를 그 어떤 절대신에게 기원했다. 
그리고 그는 백의복면인의 복면을 벗겼다. 
"……."
가끔씩 신(神)은 인간의 우둔함을 조롱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위대함을 인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옹졸함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 그랬다. 
신은 관일표를 조롱하였다. 
드러난 백의복면인의 얼굴, 그것은 바로 관일표의 예상대로 그의 숙부인 유정풍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오숙!"
그는 울부짖듯이 목놓아 유정풍을 불렀다. 
그러나 죽은 자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죽은 자는 그저 보여지는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 관일표의 등 뒤에서 천무흠의 자지러지는 음성이 들렸다. 
"캘캘캘! 어떠냐, 관일표? 이제 연극의 막은 내렸다."
"네…… 네놈이……."
"실로 멋지고 다시 보기 힘든 훌륭한 연극이 아니더냐? 보다시피 그들은 모두가 검성문의 제자들이었다. 노부의 섭혼술(攝魂術)에 심령을 지배받은 것이다." 
죽은 유정풍과 천무흠을 번갈아보고 있는 관일표의 눈빛이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네가…… 네가 이들을……?"
피멍이 든 그의 눈이 천무흠을 향했다. 그 눈에는 엄청난 분노와 증오, 그리고 천무흠에 대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죽여버린다!" 
관일표는 검 끝에 필생의 공력을 담아 천무흠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 힘은 태산을 허물고, 바다를 갈라버릴 정도로 강맹했다. 
펑!
허나, 천무흠의 간단한 손 움직임에 관일표는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해 관일표의 위로 우수수 석벽이 무너져 내렸다. 
관일표는 이를 갈며 무너진 벽 속을 뚫고 나왔다.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방금 지옥에서 탈출해 나온 악귀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가 악착같이 일어서자 만면에 흐뭇한 괴소를 짓고 있던 천무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캘캘 괴소를 터뜨렸다.
"과연 대단한 근골(筋骨)이야! 차기무영신공에 당하고도 굴하지 않다니!" 
"흥! 그따위 교묘한 눈속임에 당할 관일표가 아니다! 기어이 네놈을 죽여버리고 말겠다!"
원독에 찬 음성과 함께 관일표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검을 수직으로 세운 채 쏜살같이 천무흠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이번 천무흠의 대응방법은 달랐다. 
차기무영신공이 아니었던 것이다. 
팟!
그는 맨손으로 날아오는 관일표의 검을 막아내는 것이 아닌가!
관일표는 혼백이 달아날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엄청난 내력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검을 맨손으로 막아낼 인물이 당금 천하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바였다. 
이때 천무흠은 양손을 합장하듯 가슴께로 모았다. 
"캘캘캘! 애송이놈! 군사황이라면 몰라도 네놈 정도론 어림도 없다! 배교의 영매술법(靈媒術法)이 뭔지 보여주마!" 
"!"
천무흠의 눈이 하얗게 빛나며 합장되어진 손바닥이 순식간에 앞으로 쭈욱 뻗었다. 
순간 천무흠의 손 끝에서 한 줄기 가느다란 검은연기가 피어올랐다. 
스스스스!
그 연기가 허공에서 뭉쳐지면서 거대한 악귀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누각 밖의 우두마면상 정도의 거대한 크기였다.
"캘캘캘…… 배교의 주법(呪法)으로 이루어지는 지옥의 십팔마왕 중 철뢰신왕(鐵雷神王)이다!" 
천무흠의 손 끝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연기와 연결된 거대한 마신의 유체(幽體)가 그대로 관일표를 공격해 들었다. 
흑무(黑霧)의 마신(魔神), 철뢰신왕은 자유자재로 몸을 줄였다 늘였다 하면서 관일표의 전신을 휘어감듯 밀려들었다. 
금방이라도 관일표의 신형이 흑무마신, 철뢰신왕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관일표는 속으로 경악의 부르짖음을 토했다. 
'배교의 사술주법(邪術呪法)이 이 정도란 말인가?' 
생각과 함께 관일표의 검이 철뢰신왕을 향해 사력을 다해 뻗었다.
"화륜의 검!" 
화르르르르―!
순식간에 철뢰신왕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 여파로 사방의 대리석이 불타오르며 누각 안은 온통 매캐한 연기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화륜의 검 때문에 흑무 대신 적무(赤霧)로 변한 철뢰마신이 온 몸을 활활 불태우며 관일표의 코 앞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캘캘캘! 철뢰신왕은 환상법신(幻像法身)이다! 유계(幽界)의 정령(精靈)이 뭉쳐서 이루어진 몸이란 말이다! 환상미궁대진이 깨지지않는 한 어떤 무공에도 죽지 않는다. 캘캘캘!" 
천무흠의 비웃는 듯한 괴소와 함께 철뢰신왕의 가공할 공격은 이어졌다. 
관일표는 절망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어쩌면 이렇게 버티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관일표는 문득 두려워졌다. 
죽는다는 것!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할 일은 많고, 넘어야 할 산은 바닷가의 모래알 만큼 널려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죽는다는 것은 자기도피인 것이다.
그때 문득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사력을 다하는 관일표의 뇌리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짙은 허무와 고독만을 가슴에 안은 채, 평생토록 유랑비무만을 해온 사내. 잘 빗지 않아 산발된 머리에, 냄새가 날 정도로 더러운 넝마를 걸친 사내. 
백검령!
'백숙부! 이 일표에게 힘을!'
하늘과 땅이 있기 전의 모든 것을 진체(眞體)로 여겨라.
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환(幻)으로 여겨라.
인사(人事)의 모든 것을 먼지처럼 여겨라.
천상(千狀)을 끊어라.
공(空)을 종(宗)으로 삼아라.
 
백검령이 여운처럼 남기고 떠난 검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 경지의 검결. 하얀 모래가 천 리를 잇는 곳, 바람이 불면 백사(白沙)가 몰아쳐 하늘과 땅을 가리는 곳에 살고 있다는 백사노인, 그에게 말해주라는 최고의 검결.
이 순간 왜 그것이 떠올랐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검결을 떠올리는 순간 관일표의 두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이…… 이럴 수가! 그토록 난해하던 대전륜삼천검의 제이초 지륜의 검! 그 구결이 이해가 된다.'
동시였다. 
다시 일으켜 세운 검에 관일표는 더 이상 없다싶을 정도로 엄청난 내력를 주입시켰다. 
순식간에 그의 검은 오색의 빛무리를 그리며 그 기운에 휩싸였다.
"땅의 모든 조화(造化)가 검에서 일어나니 이에 대항하는 것은 모조리 소멸하리라!" 
푹!
관일표의 빛무리에 싸인 검이 그대로 누각의 바닥에 박혔다. 
"지륜(地輪)의 검(劍)!" 
바닥에 꽂힌 검에서 엄청난 광채가 발산했다. 
순간 박힌 칼을 중심으로 동심원(同心圓)처럼 검기의 파장이 모든 것을 쳐부수며 확산되어 나갔다. 
콰콰콰콰…… 콰쾅!
누각의 모든 것이 동심원의 파장에 소멸되어 쓰러졌다. 
철뢰마신의 유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무흠은 경악했다. 
주위의 누각들이 동심원처럼 밀려오는 강기에 모조리 붕괴되는 그 장엄한 광경에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이럴 수가!" 
백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난생 처음 대하는 위대한 검의 위력에 천무흠은 대항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스스스스!
천무흠의 육체가 녹아버리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는 그렇게 환상처럼 소멸되어 지금의 자리를 피한 것이다. 
                           3
모든 것을 박살내어 천지를 초토화시켜 버리려는 것일까?
쾨콰콰콰콰…… 르릉!
지륜의 검이 이룩한 검기의 파장은 누각을 박살내고도 모자라는지 이제는 끝없는 죽림들을 파괴시키고 있었다. 
수만 개의 대나무들이 허리가 부러지며 초토화되었다. 
관일표를 중심으로 점차로 점차로 넓게 동심원을 이루며 쓰러지는 그것은 마치 돌개바람 같은 회오리가 그 크기를 더해가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모든 것은 쓰러지고 주위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단 한 사람, 관일표 뿐이었다. 
관일표는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의 발길에 툭 채이는 시신 한 구가 있었다. 
관일표는 안색을 백랍처럼 변화시키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위에 있던 십여 구의 시체가 관일표가 발출한 화륜의 검에 의해 새카맣게 타버렸다. 
"오숙! 사매!" 
관일표는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를 부여잡고 온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내가 이들을 죽이다니…… 내가……." 
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한 처절한 절규를 터뜨렸다. 
자신을 향해 수줍게 웃어주던 유소옥의 얼굴, 자상한 미소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유정풍의 자애로움이 관일표의 시린 가슴을 칼날처럼 베고 들어왔다. 
아무리 모르고 한 일이라지만 그들 부녀를 살해한 것은 천하에 다시 없는 패륜(悖倫)이었다. 
관일표는 계속되는 슬픔에서 깨어날 줄을 모르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스윽. 
관일표의 등 뒤로 나타나는 검은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너무나 큰 슬픔에 젖어 있는 관일표는 유령처럼 접근한 그림자의 실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림자는 무방비 상태로 있는 관일표의 뒤를 향해 일지(一指)를 발출했다. 
픽!
"……!"
그것은 속수무책이었다.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관일표는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늙은 고목(枯木)처럼 쓰러졌다. 
그리고 드러난 그림자의 주인!
그는 바로 검성문의 천주오검 중 넷째인 뇌일지였다. 
뇌일지는 섬뜩한 눈으로 쓰러진 관일표를 내려다보았다.
"큭큭큭…… 관일표! 아직 죽이지는 않는다. 네놈은 쓸모가 많은 놈이니까 말이다."

[슈퍼맨]

잼 납니다

[얼음골]

즐감했습니다.

[여여풍]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