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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J.S. 밀은 철학자였다. 철학사를 서술하는 사람은 누구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오귀스트 콩트는 철학자이면서 사회학자였다. 철학사에서는 중심인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소개하는 막스 베버는 철학자이기 보다는 사회학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독일에서 대표적인 사회철학자를 찾는다면 K. 마르크스를 거론해야 하겠으나, 마르크스는 다른 장에서 취급한 바 있다. 그러나 베버의 위치는 상당히 중요하며 어떤 철학자들보다도 관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거론해보는 것이다.
K. 야스퍼스도 베버가 작고했다는 소식에 접하고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더 큰 학문적 업적을 기대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한 가지 얘기해두고 싶은 것은, 우리 나라 학계와 사상계는 철학자가 따로 있고, 신학자가 별도로 있는가 하면, 역사학자도 별개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좋아한다. 그것은 마치 논과 밭을 구분지어놓고 여기는 내밭, 저기는 그 사람의 논으로 보는 것이 보통 이나, 서구사회에서는 큰 농장을 만들어놓고 이쪽에는 밀과 보리를 심고 저쪽에는 콩과 옥수수를 재배한다는 식과 같이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좁은 의미의 철학자들만을 철학의 영역에서 취급하나, 저들은 영향력이 큰 "철학적인 분야"의 학자들을 더불어 연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위상에서 본다면 M. 베버의 역할은 대단히 큰 것이었다. 내가 잘 아는 선배친구 한우근 서울대 교수는 철학을 연구하려고 생각했다가 능력의 한계가 나타나지 않을까를 근심했다는 것이다. 그때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고 역사로 전공 방향을 바꾸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책을 읽는 사람은 사회, 역사, 철학의 모든 분야에서 깊은 의의를 깨닫게 될것이다. 50년대에 하버드의 탤컷 파슨스라는 사회학자가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한 뒤부터 미국에서는 본격적인 사회학의 시대가 열렸다고 학자들은 얘기하고 있다. 대단히 주목할 만한 저작이었다. 서울대학 사학과의 중진 교수들이 대학원에 있을 때 제일 먼저 윤독한 책이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었다고 사학과 친구들로부터전해듣기도 했다. 베버는 사회학의 방법론을 정립시켜준 학자였고, 그 방법에 따라 저술한 것이 이 책이었다. 콩트와 같이 철학자이며 주관적인 이론을 앞세운 것도 아니며, 밀과 같이 전통적인 철학을 계승, 발전시킨 것도 아니다. 치밀하게 과학적인 재료와 분석력을 갖고, 왜 프로테스탄트 사회가 카톨릭 사회보다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성공적인 자본주의 정신을 탄생시켰는가를 다각도로 고찰해주고 있다. 한때는 마르크스에 도취되어 베버를 멀리한 느낌이 있으나, 앞으로는 한 번쯤은 읽어야 할 고전적인 책이라고 누구나 인정하고있다. 사회철학과 사회과학을 나누어 본다면 베버는 그 둘을 포함한 중간의 사회학자였다고 보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여기에 그 방법과 내용을 소개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연구방향과 자세이며, 어떤 주장이나 방향을 강요하거나 제시함이 없이, 독자들의 사고와 사색을 넓게 수용하면서 안내해주는 책이라는 점이다. 특히 거기에는 프로테스탄트의 신앙과 근로정신의 문제, 재물과 재산에 대한 기독교적 가치관, 삶의 다양성 속에서 평가되어야 할 경제관과 이념 등이 타당성 있게 함축되어 있다.
만일 동양의 학자들이 어째서 유교 전통사회가 불교 전통사회보다 경제적으로 우위를 차지해왔으며, 같은 불교라고 해도 대승불교 사회가 소승불교 사회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는가를 고찰 하려한다면 베버의 이 방법론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연구는 부분적인 경제학보다 더깊은 배후의 과제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때떄로 경제학과는 문외한이면서 기업인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 같은 강연을 할 때에는 베버로부터 얻은 암시가 중요했음을 느끼곤 한다. 만일 "열심히 일해서 소득을 올리되, 그것은 나와 가정을 위한 소유가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다."는 정신이 확립된다면, 자본주의는 가장 우수하고 앞선 경제체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크게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다. 베버는 그런 점에서 암시와 이상을 보여주는 사상가였다고 보아 좋을 것 같 다. 여기에 또 하나의 사회사상가로 취급해보는 이유가 뜻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