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꽃
이병룡
슬픔의 깊이만큼 씨앗을 뿌렸다
과꽃이 결백하게 올라왔다
한해살이다
쩗은 호흡덕분에 슬픔을 아꼈다
섬진강에 투신하는 과꽃을 보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스티커를 본다
신장 삽니다
산장 팝니다
누구의 신장이 누구의 슬픔을 걸러줄까
동네 사진관에 내걸린 아무개네 가족사진처럼
어색하게 웃다가 들키고
꽃봉오리 터지듯
실핏줄 터져 나가고
섬진강을 건너온 과꽃으로 한 해를 연명합니다
모두 한해살이다
출전 : 시인의 시집 <<외숙모>>.
시인의 시집을 보기 전에 나는 카톡을 통해 아침고요 수목원에서 제작한 듯 보이는 낭송시를 들었다.
처음 들으면서 감전이 되듯 전해지는 전율이 예사롭지 않아 몇 번이고 들으며 시를 필사하였다.
어쩌면 사건이 순차적이지 않았던 것이 필사를 하게 된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찌르르 전해지는
감전의 위치가 왔다갔다 하였기 때문이다.
1연을 스쳐 들으면서 내가 감전이 되기 시작한 곳은 2연에서 3연으로 넘어가면서부터였다.
외숙모의 장례 일정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광고 스티커를 본다.
인체의 장기(이 시에서는 신장이 되겠지만)들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한다는 광고다.
그러나 시인의 외숙모는 이미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음에도 목숨을 건지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시인은 신장을 팔고 사는 일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을 본 것이다
시인은 이를 친절하게 1연과 4연에서 두 경우를 대비시켜서 섬세하게 보여주는데
1연에서는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외숙모를 한해살이 과꽃으로 형상화하여 희망을 가지게 하고
4연에서는 신장 이식이라는 힘겨운 절차를 밟고도 끝내 삶을 내려놓게 된 외숙모를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상황의 결과를 5연에 별도로 독립시켜 놓고 다시 6연과 연결시켜 우리의 삶이 모두
한해살이일 수밖에 없는 생명체의 본질을 말해준다.
과꽃은 많은 꽃잎을 가지며 색색의 빛깔로 피어나는 화려한 꽃일는지는 모르나, 이미 그 안에는
한해살이라는 유한성의 내재된 슬픔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운명을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는 것이 바로 짧은 시간을 부여받은 그 유한성 때문인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짧은 시간을 살다 가는 비극적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짦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슬픔을 다 아낄 수밖에 없다.
슬픈 운명으로 태어났음에도 그 슬픔을 다 드러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인 것이다.
역설인지 반어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슬픔의 장막을 거둘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여
차라리 생각을 덮어버리고 기분내키는 대로 가자! 아자!!!
저녁이면 잘려나간 시간 앞에서 다시 아파하겠지.
- 2024. 6. 29 달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