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대학연맹
지난 16일 천안 단국대캠퍼스 주변의 한 모텔. 오는 30일부터 스페인 비고에서 열리는 세계대학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을 앞두고 대학대표팀 감독과 코치, 트레이너 그리고 대학연맹 상임부회장과 전무이사가 한 자리에 모였다. 대회 출전준비를 위한 회의였다. 그날부터 단국대 태권도체육관에서 시작된 7일간의 합숙훈련 계획을 논의하고 25일 결전장인 스페인 비고로 떠나기 전 마지막 점검인 셈이었다.
옆자리에서 앉았던 기자는 이들의 대화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회의 참석자 모두가 이번 세계대학선수권대회에서 어떤 전자호구를 사용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라저스트사의 전자호구를 사용하니 그 전자호구에 대비토록 하자”며 호구와 관련된 준비사항의 논의를 계속했다. 안타까운 생각에 회의에 끼어들어 “라저스트가 아니라 대도사의 전자호구를 사용한다”고 일러 주었다. 그제서야 여기 저기 대회 사용 전자호구를 확인하느라 법석이 벌어졌다. 신문만 제대로 찾아 읽어도 쉽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을.
지난 3월 대학대표 선발전을 마친 대학연맹이 3개월 가까이 무엇을 준비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까지 무슨 전자호구가 사용되는지도 모르고 있다니.
전자호구라고 다 같은 전자호구가 아니다. 라저스트사 전자호구와 대도사의 전자호구는 감응방식부터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대회 준비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전자호구에는 깜깜인 채 유니폼은 뭐냐, 단복을 어디서 맞추자는 것들을 먼저 논의하다니 한심한 생각마저 들었다.
한국대학연맹은 지난 1월 오경호 전 회장의 사퇴로 정한성(58) 씨를 새 회장으로 추대했다. 정 회장은 선출 전 공약으로 대학 태권도 선수단 훈련비 및 연구비 지원, 명확한 판정제도를 위한 비디오 판독 등 제도적 장치 마련, 웹사이트 개설 등 통한 대학연맹의 정보화, 지방대학과 2년제 대학 및 각 대학 내 동아리 특별지원 등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취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고 있다. 실업연맹과 협의해 단체 리그전을 벌이겠다던 계획도 추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정 회장의 공약 불이행의 원인으로 잘못된 집행부 구성을 첫 번째로 꼽고 있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집행부가 아니고 친분 관계로 구성된 조직이라는 것이다. 또 회장을 영입한 실질적인 세력들이 회장을 로버트처럼 세워두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말한다.
정한성 회장의 임기는 2년 넘게 남아 있다. 아직도 늦지 않다.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대학 스포츠를 관장하는 단체답게 개인의 영달을 버리고 대학 태권도인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일을 찾아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대학 관계자들이 두루 참여할 수 있도록 집행부의 문을 활짝 열고 투명하고 봉사하는 행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