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도(道)가 기(氣)를 낳고, 기가 흘러 경락이 되고, 경락 곳곳에 혈(穴)이 자리 잡고, 혈(穴)의 기운(氣運)으로 생명이 숨을 쉽니다.
세종대왕 시절 의약(醫藥)에 밝아 항상 전의감(典醫
監) 제조(提調)로 있었던 황자후(黃子厚)는 “의원으로서 침놓고 뜸뜨는 구멍을 밝게 알면, 한 푼의 약도 쓰지 않고 모든 병을 고칠 것입니다.”라며 침구전문생을 양성해 내의원과 전의감과 혜민국에 배치하도록 했습니다.
임진왜란의 한 가운데서 전쟁의 참화를 겪은 조선의 고위관리 유성룡도 선조 33년(1600년)에 『침구요결(鍼灸要訣)』을 집필하면서 침뜸의 대중화를 역설했습니다. 그는 『침구요결』의 서문에서 “침과 뜸은 효험이 빠르니 향리(鄕里) 사람으로 침놓는 법을 거칠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처방을 살펴 혈자리를 구하면 스스로 가히 병을 치료할 수 있어 번거롭지 않아도 된다.”라며 침뜸의 실용성을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그는 이어 자신이 펴낸 침구요결에 대해 "경락(經絡)을 분류하고, 혈(穴) 자리 아래에 치료법을 두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번 보기만 하면 깨닫게 하여 달리 찾을 필요가 없게 하였다”라고 소개하고, “장차 언해로 번역해 내어 우매한 아낙네라도 가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침과 뜸을 백성들의 생활의술로 자리 잡도록 하려는 뜻을 피력했습니다.
이렇듯 조선의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생활의술로서 침뜸의 효용성을 높이 평가하고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조선의 국가대표 침의(鍼醫) 허임은 고난의 시절 한가운데서 펼쳐온 평생의 의술을 모아 우리나라 침뜸 전문서적의 효시가 되는『침구경험방』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조선의 침뜸을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으뜸으로 인정받도록 만들었습니다.
『침구경험방』을 나라에서 출판하는 일을 직접 주선한 사람은 당시 춘추관이면서 내의원 제조를 맡고 있던 당대의 대학자이자 정치가 백헌 이경석이었습니다. 이경석도『침구경험방』의 발문에서 “침놓는 것과 뜸뜨는 것은 구비하기가 쉬우면서도 그 효과는 매우 빠르니 그 처방은 지침 중에도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경석은 또『침구경험방』의 발문에서 예전에도 명의가 있었고 각각의 저술이 있었으나 그 처방이 오래되었고, 비결이 은밀하여 저자거리의 무리들은 접근하기 어렵게 되어 있지만 허임의『침구경험방』은 간략하고 쉽게 요약되어 있으면서도 상세하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침구경험방을 얻어서 증세에 따라 치료하면 집집마다 신의 의술을 만날 수 있어 그 구제하는 바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라며『침구경험방』출판의 취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경석은 “침과 뜸은 마땅히 세상이 공유하여 널리 전하여야 할 것이며 없애거나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만백성을 건강하게 하려는 나라의 뜻을 받들어 침구경험방을 간행하였으니 훗날 사람들은 이 뜻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명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당시 영의정의 명으로 관찰사까지 동원하여『침구경험방』을 펴낸 뜻은 한마디로 탁월한 생활의술을 세상이 공유하여 널리 쓰이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여기 조선침뜸의 기본자료를 수록하고, 경락과 경혈에 대해 이해하기 쉽고 간략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설하는 뜻은 백성들이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 온 선조들의 뜻을 이어 받은 것입니다.
지금은 특히 자기 몸을 스스로 관리하고 건강 지향적 삶 꾸려나가는 것이 시대적 요구이기도 합니다. 웰빙문화가 대세를 이루고 생명과 건강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각종의 요법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문명은 크게 편리해졌으나 현대인에게 질병은 만성화되고 그 특성이 복잡해지면서 건강악화의 인과관계 추론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서양의학적 약물투여나 수술만으로 질병의 원인을 모두 제거하기가 더욱 곤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현대 의학적 시술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몸을 관리하지 않으면 건강을 보장 받을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각성하여 건강관리를 해야 할 각자의 몫은 더욱 커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다시 전통적 웰빙문화를 이어받아 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기여하고자 생명건강문화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고, 그 일환으로 조선침뜸 베이스데이트를 개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