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冒芥原先生編年圖錄八闋
熊璉(웅련)은 淸나라 江蘇省 如皐人으로 자를 商珍, 호를 澹仙 또는
茹雪山人이라 하였다. 시집으로 澹仙詩鈔가 있다.
熊璉은 일찍이 같은 마을의 陳遵(진준)과 許字하였는데, 遵이 폐질을 얻었다.
遵의 부친이 파혼을 청했으나 璉이 한사코 거부하고 혼인하였다.
遵이 졸하였으나 陳家에 머물렀다. 그 덕을 흠모하여 어질다 하였다.
(閨秀百家詞選 澹仙詞에서)
그 사연을 題冒芥原先生編年圖錄이라는 제목의 詞로 지었는데,
여덟 가지 詞牌로 각각 한 수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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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一 [更漏子]
雪窗夜課 눈 오는 밤의 수업
夜窗虛 밤 창은 허전한데
嚴訓督 엄훈으로 보살피시는
膝畔依依課讀 슬하에서 조심스레 과제를 읽는다
添活火 센 불을 더하니
裊爐烟 화로 연기 간드러지고
宵深未許眠 밤이 깊어도 잠을 허락하시지 않네
竹頻敲 죽비소리 자주 나고
風乍咽 바람소리 잠깐 목메더니
閣外亂飄瓊屑 문 밖에 흰 눈이 어지러이 날리네
燈影碧 그림자 희미해지고
紙聲酸 책장 소리도 괴로울 때
翻書呵手寒 책을 덮고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인다
依依: 마음이 조마조마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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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二 [清平樂]
泮水芹香 반수의 미나리 향기
文壇勁敵 문단에 강적이 나타났다
總角花生筆 이 총각의 붓대에 꽃이 피었단다
短短春衫垂柳色 짤막한 춘삼은 버들색으로 드리우고
兩袖芹香應滴 두 소매에 미나리 향기 응당 튀었겠지
桃花馬上揚鞭 도화마에 올라 채찍을 휘두르면
高樓卷盡珠簾 높은 다락들 주렴을 다 걷어올리고
偕問誰家玉樹 어느 댁 옥수냐고 다 함께 묻겠지
篁宮第一靑年 반궁에서 제일가는 청년이라오
泮水: 泮宮 둘레의 물길 또는 해자. 미나리를 심었다.
泮宮: 周의 국학. 이후 국학, 태학, 국자감, 성균관 등의 별칭.
勁敵: 상대하기가 만만찮은 적.
花生筆: 開元天寶遺事 하권에 나오는 夢聲音清揚而長筆頭生花 이야기.
이태백이 젊었을 때, 늘 쓰던 붓대에 꽃이 핀 꿈을 꾸었다.
그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하여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고 한다.
夢筆生花, 枯筆夢生花, 筆端花 등의 표현으로도 쓰인다
春衫: 관리의 복식.
柳色: 綠色, 최하급 관리의 관복색, 泮宮 학생의 관복색.
桃花馬: 흰 털에 붉은 점이 있는 명마. 과거 합격자가 유가할 때 타는 말.
玉樹: 소년의 재주나 용모가 아름다운 것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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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三 [減字木蘭花]
萱闈侍疾 모친이 병간호하다
蓼莪堪痛 육아의 아픔을 어이 견디리
榻畔雁行形影共 평상 머리에 기러기와 그림자 함께 줄지어 날고
血是鵑啼 두견이 피 맺히게 울 때
腸斷靈萱欲悴時 애끊는 어머님도 수척해지려 하네
何曾解帶 일찍 출사하지 못하고
報答劬勞剛一載 구로에 보답하려고 한 해를 굳세게 버텼네
回憶心酸 돌이켜 생각하면 마음만 쓰라려
長夜西風陣陣寒 긴긴밤 가을바람에 가끔씩 춥구나
萱闈, 靈萱: 萱堂.
蓼莪: 詩經 小雅의 篇名. 효도하지 못함을 애통해 한다.
劬勞: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勞苦, 辛勤. 蓼莪篇에 나온다.
"蓼蓼者莪 匪莪伊蒿 哀哀父母 生我劬勞"
形影: 형체와 그림자, 몸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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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四 [浣溪沙]
篡修應聘 혼인승낙을 받아내다
學識才兼始擅長 학식과 재주를 겸해야 비로소 천장이 되지
風雲月露總尋常 풍운월로를 아무리 읊어도 그저 심상할 뿐이라
乾坤大義付平章 천지의 정도를 평론에 부칠 수 있나
爲念重泉薶烈魄 중천에 열백을 묻을 각오를 하고
更搜潛德發幽光 잠덕을 다시 찾으면 그윽한 광채를 발하여
千秋筆底姓名香 천추의 붓 아래 이름을 향기롭게 하리라
擅長: 어떤 영역이나 기술에 전문적으로 정진함. 또는 그런 사람.
重泉: 地下, 死人所住.
烈魄: 魂魄.
潛德: 숨기려해도 저절로 드러나는 미덕.
幽光: 숨겨진 인간 품성의 광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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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五 [點絳唇]
秀水親迎 수수에 친영하다
月滿良宵 달이 밝아 아름다운 밤
樓高秀水香塵繞 다락 높은 수수에 향진을 두르고
鳳簫縹緲 맑은 퉁소 길게 불며
咫尺仙車到 지척에서 선거를 타고 오시네
寸草同心 풀잎 같은 마음
未得春暉照 봄볕을 쬐지도 못했는데
傷懷抱 상처를 품에 안은
思親夢杳 부모를 생각하니 꿈조차 어두워
淚滴鴛帷曉 눈물이 원앙 휘장에 새벽까지 방울진다
秀水: 如皐에 있는 水名 겸 地名.
香塵: 향기 나는 먼지, 흔히 여자가 걸을 때 신발에서 이는 먼지를 뜻한다.
縹緲: 1. 멀리 높게 숨어서 갑자기 잘 보이지 않다. 2. 소리가 맑고 높으며 길다.
仙車: 駕臨, 枉臨.
寸草, 春暉: 각각 자녀와 부모를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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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六 [畫堂春]
圜橋受餼 원교에서 이바지 음식을 받다
黑貂裘弊幾多年 흑초구 해지려면 몇 해나 걸릴까
一朝領袖文壇 하루아침에 문단의 영수가 되어도
儒生風味只清寒 유생의 멋은 다만 청한함에 있지
鬢髮將斑 귀밑머리 셀 때까지
遲暮纔霑天祿 늘그막에 겨우 얻은 천록인데
高堂已隔重泉 고당은 이미 중천을 격했네
回思往事益心酸 지난 일을 되새기면 마음은 더욱 쓰라려
茶水無歡 차를 마셔도 즐겁지 않다
圜橋: 秀水에 놓인 다리.
黑貂裘弊: 戰國策에 나온다. 蘇秦이 秦王에게 유세하는 글을 열번이나 올려도 이루어지지 않자,
"黑貂之裘弊, 黃金百斤盡, 資用乏絕"라고 하면서 秦을 떠나 돌아갔다는 고사.
여기서는 "10년이 걸려도 출세하지 못하거나 하루아침에 출세를 하거나 상관 없이 ..." 정도.
高堂: 부모, 시부모 어느 쪽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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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七 [望江南]
城闉送別 성인에서 송별하다
牽袂處 소매를 붙잡아도
風急雁飛遙 바람은 세차고 기러기는 멀리 날아가네
幾度牀前重握手 몇 번이나 침상 앞에서 거듭 손을 잡았던가
臨歧一別已魂銷 갈림길에서 한번 헤어지니 넋은 이미 스러지고
永訣是河橋 영결하여 오작교에서 만나리라
城闉: 城廓의 문, 통상적으로 출입하는 城門은 아님.
河橋: 황하에 놓인 다리. 여기서는 그냥 교량 또는 은하수교.
詞牌名 望江南 = 憶江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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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八 [浪淘沙]
藐孤受託 묘고를 부탁 받다
榻畔記叮嚀 잊지 말라고 침상에서 간곡히 당부하니
字字凄清 한마디 한마디 처절하기 그지없었네
遺孤付託任非輕 유복자의 부탁을 맡음이 가볍지 않아
累世宗祧香火繫 대를 이어 사당에 향화가 끊이지 않고
一脈相承 한 줄기로 서로 받들게 하리라
念念孔懷情 지극한 그리움을 잊지 않고
死者如生 낭군이 살아있는 듯
白頭猶自撫零丁 외로운 시부모를 이전처럼 위무하리니
克盡友慈原是孝 극진한 사랑이 원래 효도인지라
永慰幽冥 유명에 있어도 영원히 위로가 되리라
藐孤: 어린 고아
念念: 늘 마음속으로 생각함. 또는 그 생각.
猶自: 仍舊, 고치지 않고 이전대로 둠.
友慈: 두 사람의 관계가 許字(友)에서 婚約(慈)으로 발전했으므로 이렇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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冒芥原先生(淸朝書畫家筆錄에서)
陳遵(진준): 淸 江蘇無錫人. 자尚濱 또는 上賓. 雍正(1723-1735) 연간에 國子生.
젊어서 시를 좋아하고, 글씨에 솜씨가 있어 二王(왕희지, 왕헌지)을 배웠다.
冒芥原: 陳遵의 묘원.
冒芥原先生編年圖錄: 熊璉이 편찬한 陳遵의 서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