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브레이브스 명예의 전당 멤버인 폴 스나이더와 함께 계속하도록 한다.
전쟁에서 장군들은 호사스러운 전기문을 얻고, 밑바닥 병사들은 무거운 짐만 진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야구에서도 아주 적절한 말이다. 불가피하게도, 대부분의 관심들은 프런트라인에 주어지기 마련이다. 스타 슬러거와 파워피쳐들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백만장자가 된다. 페넌트레이스를 승리하는 감독들은 프런트 오피스로 이동할 수도 있고, 브라이언 캐쉬먼이나 테오 엡스타인처럼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거나 그들에게 코멘트를 해줄 수도 있게 된다.
요즘, 방송가들이나 선수들의 에이전트조차 사인을 해주고 현란한 기자회견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야구계의 밑바닥 병사인 스카우팅 스태프에게 있어 그런 일들은 딴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아, 내부 인사들은 아마 스카우트, 드래프트, 사인을 담당하거나 젊은 선수들을 발전시키는 조직 사람들에게 가끔 찬사를 늘어놓기도 하겠지만, 그뿐이다. 오직 가장 헌신적인 팬들만이 그들의 응원팀 스카우팅 디렉터나 마이너리그 디렉터의 이름을 알고있다.
고단하게 전국의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를, 그리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무명의 인물일 뿐이다. 스카우트들은 아마도 야구계의 새로운 재능을 채워주는 기반일 테지만, 명성과 행운은 그들의 직업을 소개하는데 전혀 필요가 없는 단어들이다. 만일 언젠가 덜익은 재능들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그에 맞는 대가를 얻을 때가 온다면, HOF에서 그들이 마땅히 차지해야 할 부분보다 훨씬 덜 차지하고 있는 지금, 그 선구자로서 찬양받아 마땅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브레이브스의 폴 스나이더이다.
스나이더의 야구경력은 그가 18살이던 1957년에 1루수 유망주로 사인하던 때 시작되었다. 뛰어난 마이너리거였던 스나이더는 부상때문에 발이 묶였고, 결국 1963년에 현역 선수에서 은퇴를 결심했다. 몇시즌이 지난 후, 마이너에서 감독직을 맡고있던 스나이더는 스카우트로서, 마이너리그 부행정관으로서, 스카우팅 및 선수발전 담당 디렉터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1999년에 은퇴한 이후 그는 브레이브스 단장 존 슈어홀츠와 스카우팅 디렉터 데이튼 무어의 특별고문역을 맡고 있다.
누구의 말을 빌더라도, 폴 스나이더는 수년, 또는 수십년동안 쌓여온 브레이브스 선수 발전 시스템을 구축한 단 한명이다. 그리고 그게 팀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Very' 1991년 이후 14년 연속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제패라는 깨지기 힘든 기록을 만들어낸 브레이브스 조직은 팀의 성공 뒤에는 선수를 성공적으로 육성하는 팜 시스템이 있다는 매우 강력하고도 옳은 힌트를 전달해준다.
브레이브스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꾸준한 레귤러 시즌의 승자였던 이유가 그들이 역사상 가장 꾸준하게 재능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을 갖고있었다는데 - 1991년에서 2004년까지 무려 13년동안 브레이브스 출신의 루키가 ROY 투표에 후보로 올라갔었다 -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그 많은 유망주들은 결국 스타가 되었고 (데이빗 저스티스, 탐 글래빈, 앤드류 존스, 치퍼 존스, 저메인 다이, 하비 로페즈), 올스타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들 (제프 블라우저, 스티브 에이버리, 라파엘 퍼칼, 라이언 클레스코, 마커스 자일스, 마크 월러스, 마이크 스탠튼)도 많았다.
2005 시즌은 아마도 브레이브스의 당해낼 수 없는 스카우팅 및 선수발전 시스템을 완벽하게 증명해준 시즌이었을 것이다. 치퍼 존스와 3명의 선발투수들이 부상으로 나가떨어졌던 65게임을 치른 이후, 이 팀은 겨우 5할을 넘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은 여름 중반에 제프 프랑쿠어와 12명 이상의 어린 선수들이 합류함으로서 또다시 NL East를 제패했다. 또다시 애틀랜타는 재능이 넘치는 팀이 되었고, 이기는 팀이 된 것이다.
이것은 특히 대단한, 기나긴 메이저리그 역사에도 견줄 상대가 없는 기록이다. 브레이브스 역시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이 슈퍼 스카우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7월에 그에게 스카우트로서는 전례가 없는 HOF행 티켓을 끊어주었다.
폴 스나이더의 많은 친구들은 그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낙관적이고, 친절한 마음씨의 소유자라고 말해왔다. 우리의 오랜 대화로 미루어볼 때, 나 또한 이에 대해 논쟁할 생각은 없다. 8월 29일, 이 베테랑 경력의 야구 달인은 그가 야구계에 살아오면서 얻은 것들에 대한 지혜들을 말해주었다.
Q : 언제 처음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아마 3~4살때 쯤에 할아버지 댁의 뒷마당에서 야구를 시작했을 때일 겁니다. 나의 부모님은 그때 할아버지와 함께 사셨고, 삼촌과 이웃들이 나에게 공을 던져주고 어린이용 배트로 그걸 스윙해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부터 나는 인생동안 야구를 하고싶다는 것을 알았나봅니다. 학교에 진학해서는 풋볼 장학금을 받았지만 언제나 야구를 사랑했었죠.
Q : 언제 처음 당신이 메이저리거로서의 자질을 갖고있다고 느꼈나요?
거기에 대해선 사연이 좀 있지요!! 내가 15살 때 게임당 $50, $60, $70의 돈을 받고 전에 세미프로에서 뛰었던 선수들과 게임을 했었어요. 스털링 아놀드라는 친구가 그때 같이 게임을 뛰었죠. 그 친구는 3~4년 카디널스에서 뛰었는데 내가 21~22살일 무렵에 나를 보러 펜실베니아의 요크 카운티로 돌아왔어요. 스털링은 계속 나를 따라다니면서 '넌 이곳에 있을 애가 아니야.'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모든걸 그에게 걸었죠. 사실 나는 브레이브스 명예의 전당 수여식 전에 그를 불렀어요. (그는 지금 85~86살이죠) 난 그에게 '당신이 또 해냈어'라고 말했고 그가 '내가 뭘 했는데?'라고 물었죠. 나는 그에게 내가 얻은 영예에 대해 말했고, 그가 이렇게 답했죠. '여기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거군 (웃음)' 나는 실제로 내 모든걸 그에게 걸었죠. 아버지의 뒤를 따라 배관공이 될 뻔 했었지만, 스털링 아놀드는 내가 야구계로 첫발을 내딛도록 설득해주었어요.
Q : 음.. 당신은 정말 좋은 마이너리그 커리어를 쌓았지만, 단 한번도 메이저에 서지 못했습니다. 왜 당신은 현역 선수에서 그대로 은퇴하기로 마음먹었습니까?
나는 끝이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1963년에, 나는 텍사스 리그에 있었고, 1년동안 .312에 18홈런, 113타점을 올렸죠. 나는 덴버에서 Jack Tighe 밑에서 뛰고 있었는데 잭이 나를 한쪽으로 끌고가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제 슬슬 감독 커리어를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어?' 그는 내 얼굴이 약간 붉어진걸 보더니 샤워를 하고 오라더군요. 그리고는 게임이 끝난 후에 먹을 것을 약간 사주었죠. 그는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더군요. 내가 단 한가지의 툴 - 배트를 휘두르는 것 - 만을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Q : 마이너리그 감독들은 그동안 보내온 날들에 비해서 굉장히 이질적인 직업이었을 것 같은데, 왜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그곳에 남아있기를 택한겁니까?
1959년 가을과 1960년 초에 나는 밀워키의 병원에서 돌기 용해술로부터 회복중이었습니다. 모든게 비참했었죠. 그래서 로널드 해먼드 - 향후 브레이브스의 어시스턴트 스카우팅 디렉터가 된 - 가 나에게 은퇴 후에라도 야구계에 머물러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바가 없습니다만, 아마 하고싶을 것 같군요. 아는건 없지만'
Q : 해먼드씨는 물론 그 스스로도 전설적인 재능 평가원이었지만, 미래에 화이트삭스와 오리올스의 GM으로 커리어를 쌓을 분이었죠
나는 그분의 많은 것들을 모델로 삼으려고 했어요. 우리 모두를 잘 돌봐주신 인도주의자였죠. (한때 브레이브스의 마이너리그 감독이던) 해리 마이너는 나에게 어떻게 젊은 선수들을 다룰 것이며, 어떻게 선수들이 스스로 신사로서의 품위를 지키게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잭 티에는 물론 나에게 비지니스에서 정직함이 갖는 의미를 알려주었죠.
Q : 당신이 은퇴한 뒤, 몇년 후에 곧 마이너리그의 감독이 되었는데, 그게 당신의 향후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습니까?
나는 방출되었지만, 슬퍼할 틈도 없었습니다. 곧바로 방출서명에 사인을 하고 다시 매니저 계약에 서명해야 했으니까요.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었죠. 마이너 감독은 스카우트와 유망주에 대해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모든 스카우트들은 반드시 감독직을 거쳐봐야 하고, 모든 감독들은 스카우트들을 거쳐봐야 합니다. 나는 감독들에게 100번도 더 들었어요 - 누가 이넘을 추천한거야? 라고 말이죠. 유망주가 필드 스카우팅에서 탈락한다면 감독들은 누가 그녀석을 추천했는지 알고싶어할 뿐 아니라 그를 추천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알고싶어할 겁니다.
Q : 스카우팅 디렉터로서, 당신은 고용을 담당했습니다. 당신의 미래 중 일부를 를 스카우트에서 발견해가는 것은 어땠었나요?
그게 나의 직업이었죠. 선수들을 체크하러 밖에 나가면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선수를 체크하고 누가 또 남아있는지 둘러보려 합니다. 그 지역에 딱 한명의 스카우트만 필요한 상황이라도 말이죠 - 어떻게 한사람이 27아웃을 전부 챙겨볼 수 있겠어요? 만일 우리가 반대편 펜스쪽에서 스카우트를 발견하게 된다면 혹시 그들이 주목하는 선수가 브레이브스와는 다른 선수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쪽 팀에서는 조심해야해요. 왜냐면 우리가 이미 그들이 노리는 선수에게 오퍼를 날렸을 수도 있거든요.
Q : 스카우트들데게는 선수 출신이라는 뒷배경이 필요합니까?
대체적으로 그들 중 대부분이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프로 레벨의 선수로 뛰는 것은 더이상 필수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번도 선수로 뛰어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고용했고, 그들은 어떻게 선수를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만 알고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에게는 야구인인거죠. 내 말은, 존(GM 존 슈어홀츠)도 프로로 뛰어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의 이해력은 그야말로 놀라울 뿐이죠.
Q : 어쨌든 스카우트라는건 기본적으로 고된 직업입니다. 그들 모두가 계속 여행을 다녀야 하고 그것도 소도시나 촌구석을 장시간 다녀야 하죠.
우리는 그들 대부분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1년에 11개월은 나다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종류의, 상당히 일에 몰두하는 스타일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빌 클락이 우리의 국제 프로그램을 마련했을 때, 그는 아마 1년동안 주말 3번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을 거에요. 그는 타고난 전사이죠. 그들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합니다. 그들이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이죠. 당신도 스카우트가 백만장자로 은퇴하는건 본 일이 없을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볼파크에서 일을 하는 동안은 행복한 표정을 짓는 스카우트들을 많이 볼 수 있죠.
Q : 팀의 정책을 읽어보면, 스카우트들의 임무가 브레이브스 조직의 상징같아보이는데요.
스카우트에 의지해야 하죠. 스카우트들은 야구 조직의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고 스타 플레이어들을 조직에 끌어들일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바비와 존 (바비 콕스 & 존 슈어홀츠)이 우리 스카우트들에게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형제처럼 대한다는 것을 알고있어요. 그들은 항상 우리 스카우트들을 반겨주고 필요로 합니다. 존이 야구계의 이쪽 면에 있었고, 우리처럼 고생햇다는 사실은 신만이 알고있을 겁니다. 그는 직접 겪어봤기에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알고있죠.
Q : 모든 팀들이 반드시 스카우트들을 고용해야하는건 아니라는 철학이 있는데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많은 팀들이 스탯을 사용한 분석이 좀더 객관적이고 효과적이라는 믿음 하에서 현장 평가원들의 규모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의 젊은 단장들이 그들의 나이든 스카우트들을 해고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왜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스탯 뿐 아니라)경험에도 의존을 해야해요. 베테랑 스카우트들이 갖고있는 개인적 정보와 관계들은 돈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나는 한번 누군가 이런 소리를 하는걸 들었죠. '당신은 나머지 사람들을 긴장시키기 위해 매년 당신 밑에 있는 한두명을 해고해야 한다. ' 이건 아주 단편적인 말일 뿐입니다. 그럴거면 애시당초 왜 고용을 했던거죠?
Q : 고등학교나 대학교 코치들이 가치평가에 있어서 너무 많은 도움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지는 않나요?
이 나라를 통틀어서 제가 오랜동안 진실하게 이야기하고, 솔직하게 대할 수 있는 코치들은 얼마 안됩니다. 그들은 나에게 살갑게 대하려고 애쓰거나 그들의 선수를 팔아넘기려고 노력하지도 않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웃음) 나는 내가 직접 아이들의 능력을 평가하려고 노력합니다.
Q : 야구 재능에 관해 가장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바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죠. 위대한 스카우트들은 그 각자 다른 경기들에서 그 차이점을 발견해낼 수 있지요. 어떤 스카우트들은 똑같은 선수에 대해서라도 다른 스카우트들이 슬럼프라고 판단할 때 조차 뭔가 뜨거운 것을 발견해내는데요, 당신은 어떻게 차이점을 발견해내곤 합니까?
가끔은 논쟁이 벌어지곤 합니다만 드래프트 당일에 방에 있으면 우리 팀의 모든 스카우트들은 같은 페이지를 펼칩니다. 우리는 반나절동안 한명의 특별한 유망주를 위해 논쟁하며 앉아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몇년 전, 우리는 한 젊은 친구 - 나중에 뛰어난 메이저리그 투수로 판명된 - 를 중복체크했던 적이 있었어요. 한명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젠장, 폴. 난 내가 본 것만 봤어.' 우리는 그 선수를 관찰하기 위해 3게임에 3명의 스카우트를 파견했었고, 그들은 역시 그들이 보는 것만 봤죠. 나는 그에게 다른 면을 관찰하라며 돌려보냈고 그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나머지 부분들을 보고 난 후에 돌아왔어요.
결국에는 항상 '우리'가 해내는거죠. '나'는 혼자서는 야구계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당신과 나'는 함께 뭔가를 해낼 수 있죠.
Q : 나는 스카우트들이 자신의 능력이 평가받을 때는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람들은 자신의 스카우트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굳이 팀의 일선에 그를 놔둘 필요가 없는거죠. 하지만, 드래프트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의견을 피력해야 해요. 스카우트를 다그칠 때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가 어째서 탑 플레이어를 놓쳤는가를 알아내기 위함이죠. 그가 스카우팅 디렉터, 어시스턴트 스카우팅 디렉터, 4명의 내셔널 교차체크 담당관들과 대면하고 있고, 우리가 그를 질책할 때라도 우리는 그가 옳다는 것을 확신하고 싶어합니다.
누군가를 '눈먼 개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정말 드물죠.(웃음) 그리고 나서 30분 후에는 그와 함께 점심을 먹습니다.
Q : 당신도 그런 시험에서 질책당하는 편에 서본 적이 있습니까?
정말 많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투수를 영입하는데 실수를 했죠. 나는 그에게 1mil을 쥐어줬는데, 예산을 13만불 오버했어요. 그 젊은이는 곧 빅 리그에 올라갔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런 선수는 아니었죠. 나는 돌아와서 음악을 틀고 교회에 간 좀도둑처럼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장) 스탠 캐스턴이 말했죠. '분명히 당신은 그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거잖아' 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전 확신했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하더군요. '실제로 그러길 바라네'
Q : 잠시 스카우팅 작업으로 돌아가봅시다. 당신의 접근방법에서 약간 다른 점은 젊은 선수들을 평가할 때 반드시 레이더건을 쓰지는 않는다는 것인데요.
예, 맞습니다.
Q : 그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아마도 나의 그런 생각 중 50%는 브레이브스의 전 중복조사단 멤버였던 빌 화이트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역시 바비 매틱에게 가르침을 받았죠. 나는 투수들이 3~5번 타자들을 상대하는 것을 살펴보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보라고 배웠습니다. 빌은 항상 이렇게 말했죠. '레이더건은 필요없어' 왜 십대가 얼마나 빠르게 던지는지를 고민해야 하죠? 가장 객관적인 사실은 그가 타자들을 아웃시켰다는 것인데 말입니다.
Q : 게임에서 선수에 대한 감을 어떻게 짚어내는지가 궁금합니다. 선수의 능력이나 게임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좀더 잘하려는 의지를 어떻게 캐치해내시는지요?
몇년간 선수를 본다면 좀더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선수는 아무 말 없이도 뭔가를 전달해주죠. 만일 스카우트가 당신의 직업이라면, 당신 또한 말 한미디 없이도 뭔가 - 내가 말하는건 바디 랭귀지같은 그런 것들이죠 - 를 알아챌 수 있을 겁니다. 게임, 또는 일반적인 삶에서의 접근방식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것도 알아낼 수 있지요.
수년간 나는 드래프트 전의 워크아웃에서는 모두들 클럽하우스에서 공과 배트를 놓고 있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플레이하는건 이미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이죠. 우리가 선수들과 잠시 걷거나 이야기만 해보더라도 해가 질 무렵 쯤에는 그들에 대해 좀더 잘 알고있을 겁니다.
Q : 유망주들의 필드 바깥에서의 가치를 결정할 때 품성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나요?
상당히 크죠. 인격은 정말 대단히,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좋지못한 여자친구나 와이프, 나쁜 습관들, 마약, 알콜, 현대생활에 따라오는 질병들(성병 이야기인 듯) 때문에 수많은 재능있는 선수들을 잃어왔어요. 우리는 확실히 신체적 결함보다는 이러한 것들 때문에 선수들에 대한 손실을 입곤 합니다.
Q : 여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필드 바깥에서는 나쁜 버릇을 갖고있지만, 필드 안에서는 오직 운동능력만으로도 메이저리거가 될만한 선수를 스카우트해본 적이 있나요?
(웃음). 오.. 아니요.. 만일 젊은이가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아마 마이너리거는 되겠지만 결국 계속 마이너리거로 남을 겁니다. 당신은 이렇게 질문해야해요. '당신은 당신의 딸이 그와 데이트하기를 원합니까?' 그게 답이죠.
Q : 그럼 반대로, 좋은 품성과 습관으로 인해 예상외로 베이저리그 레벨에 도달한 선수 중 당신 마음속에 남아있는 선수가 있나요?
Mark Lemke가 기억납니다. 1983년 27라운더였죠. 우리는 그가 백업 내야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우리를 놀라게 했죠. 그는 포기할 줄을 몰랐어요. 마이너리그에서, 지금은 불펜코치인 바비 듀스는 글렌 허바드같은 선수들을 엄격하게 훈련시켜야만 했어요. 왜냐면 그 선수가 또 가외연습을 하는걸 막아야 했거든요. 나중에 Macon에서 감독이 된 글렌은 가외 연습을 통해서 마커스 자일스같은 선수를 개발해냈죠.
Q : 당신이 저평가했다고 생각되는 선수들이 있나요?
오.. 다 잊어버렸어요. 왜냐면 다 잊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죠.(웃음)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누군가가 있죠. 바로 한명의 GM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스카우팅 디렉터가 되었을때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했겠죠. 그러니 뭐 비긴거 아니겠어요? 베테랑 GM인 폴 리차드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죠. '한가지를 잃어버리면 그건 마음속에서 지워버려라.' 라고요. 나는 그때 얻은 가장 소중한 충고를 실천하려고 애썼습니다.
Q : 유망주들을 평가한 뒤에, 샤이닝 보너스에 대한 오퍼는 어떻게 결정하나요?
언제나 선수들에 대한 가치를 평가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말이죠. 우리가 선수를 평가할 때, 우리는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죠. 그리고 한명의 스카우트와 4명의 내셔널 교차 평가단이 틀을 짜놓은 것에 기초해서 결론을 내린 후에 샤이닝 보너스를 제시합니다. 매우 공정한 금액으로 말이죠.
Q : 그들과 사인하는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겠군요.
(한숨). 오.. 피터.. 나는 수백만달러의 돈을 고집하는 선수들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나 내 앞에 돈을 내민다면 우리는 물론 그걸 받겠죠. 남은 커리어가 겨우 1~2년 뿐이라면 말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고 싶은건 바로 이거에요. '이번 계약이 앞으로 네가 사인할 마지막 대형계약인가?' 라고 말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네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겠죠.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만약 어린 선수들이 앞으로 샤이닝 보너스만큼 벌지 못할 것을 두려한다면, 메이저에서 그런 계약을 따낼 자신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런 녀석은 필요 없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죠. 우리는 그가 그 자신을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Q : 당신의 스카우트들은 마이너리그 발전 스태프와 얼마나 가깝게 지냅니까?
대체적으로 우리 스카우트들은 일류 마이너리그 인스트럭터들이 뭘 할 수 있는지 알고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협력은 어쨌거나 또다른 이익을 만들어내죠. 우리 인스트럭터들은 스카우트들의 평판을 좋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만큼요. 한번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어떻게 브레이브스는 매번 원하는 만큼의 투수들을 만들어내는거지?' (AAA) 리치몬드에 빌 피셔의 머리색을 구경하러 가본 적이 있습니까? 그에게 머리가 남아있던가요? 아니면 (A) 미틀 비치에 브루스 달 캔튼을 보러 가본 적이 있나요? 그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정말 더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머리가 세었습니다.
어린 마이너리그 감독을 고용할 수도 잇고, 어린 코치들을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투수코치만큼은 베테랑이 맡는게 좋죠. 자기가 전성기를 맞이해본 사람이 어린 선수들에게도 전성기를 맞게 해줄 수 잇습니다. 우리 조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들의 초첨은 그들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야구계의 미래에 맞추어져 있지요.
Q : 그들이 바로 장인(Lifer)들이죠.
말 잘했습니다. 빌 피셔에게 뭐가 필요하겠어요? 그는 돈도 필요없어요. 그는 게임을 사랑하고 가르치는걸 좋아할 뿐이죠.
Q : 가르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시다. 브레이브스는 모든 부문에 뛰어난 운동선수에게 야구선수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본 적이 있나요?
시도는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1981년에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녀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야구선수로 바꿔놓으려고 5만달러와 1라운드 픽을 바쳤죠. 그래서 우리는 제이 로버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 대표 러닝백이자 라인백이었고, 주 대표 농구선수이자 440야드의 투창 신기록을 갖고있는 녀석이었어요. 그는 고등학교때 야구를 하지 않았지만 6피트 3인치에 190파운드의 몸을 갖고있었죠. 결국 로버츠는 야구에서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실패라는건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였죠.
Q : 나는 항상 야구선수가 메이저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희생 -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라도 마이너를 거쳐야 하는 - 에 대해 놀라워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희생이라.. 희생이 맞겠죠. 비록 결국 10~11퍼센트의 선수들만이 그 문에 도달하게 되니 말입니다. 인생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은 전혀 영광스러운 부분이 아니죠. 나도 6년간 뛰어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있습니다.
Q : 야구계에서 또다른 유일한 점 - 스카우트들이 가끔 진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스카우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해주죠.
맞습니다. 정확하게 맞는 말씀이죠. (브레이브스 어시스턴트 GM) 데이튼 무어와 (유망주) 제프 프랭쿠어를 만났던게 기억납니다. 우리는 이 만남을 전혀 미화시키지 않았고, 제프 역시 그가 뭘 얻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가능한 한 정직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나 자신에게 갖고있는 프라이드이기도 하지요. 나는 이제껏 어떤 선수에게도 거짓말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군요. 만일 어린 선수에게 그의 기회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면 문제거리를 만드는 일일 겁니다. (이 부분 번역은 매끄럽지 못한 관계로 원문을 참조하길 바랍니다 - 역자 주)
Q : 동시에 좀 교활한 면도 있어야 겠죠. 만일 외부인들이 당신이 누군가와 계약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게 드래프트나 사인을 좀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당신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하비 로페즈를 보기 위해 표백업자들 밑으로 기어다닌 사실을 들었나보군요. (웃음) 맞아요. 우리는 뭔가 하고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하죠. 우린 시즌이 끝나기 1주일 전이나 10일 전, 또는 시즌 전이 되기까지는 납작 엎드려있곤 합니다. 그리고 스카우트들과 교류를 하면서 개인적인 경로를 찾곤 하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엔 일이 잘 되고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죠.
Q : 종종 회자되는 이야기들 중에서, 드물지만 유망주들이 그들이 바라는 조건 때문에 계약을 단념하는 경우가 있죠. 그럴때면 대부분 팀이 선수들의 등 뒤에서 유니폼을 찢어야 한다더군요.
좀 솔직하게 바라봐야 하죠. 나는 그들에게 최선의 노력을 바랍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말이죠. 나도 (선수시절)5년간 최고 대우를 받고싶어했다는 걸 알고있습니다. 뭐 나는 실패했지만, 대신 여기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43년이 있지 않습니까!
Q : 당신이 드래프트한 픽일지라도 얼마나 희생적이고 열심히 노력했냐에 관계없이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죠.
아.. 내 아내는 선수를 방출하기 전날 밤이 되면 항상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면 내가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을 못이루니까요. 지금 50년간 야구계에 몸담아왔지만, 그리고 100년이 되어도 나는 야구계에 있을테지만 이건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내가 과거에 꾸었던 그 꿈을 누군가도 한껏 꾸고있었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내가 포기하기 힘들었던 만큼 그들도 저버리기 쉽지 않겠죠. 난 여기 앉아있었지만 그들과 함께 울었어요. 피터, 정말 그들과 함께 울었단 말입니다.
Q : 동시에 당신은 어린 선수들이 꿈을 이루는 것을 볼 기회도 있었죠. 16~17세의 선수들이 생산적인 메어지리거로 변해가는 것 말입니다.
오.. 그런 날들은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죠. 정말, 정말로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Q : 의심의 여지 없이 당신은 아마 수년간 가장 인기있는 스카우트일텐데요.
나는 그 상(브레이브스 명예의 전당)이 발표되는 순간 뭔가에 강하게 얻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고, 내가 그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말해주었죠. 내가 받은 감사들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에요. 그것도 야구계에서 명성을 얻은 사람들로부터 말입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지만 말이죠.
Q : 야구를 떠난 이후에, 건강을 위해 뭘 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아..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하는게 좋겠군요. 내 아내가 목소리가 닿는 곳에 있거든요. (웃음)
나는 좋은 아내를 가졌습니다. 내가 페티를 만났을 때 나는 마이너에 있었죠. 나는 그녀에게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구선수와 결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웃음) Hall of Fame 축하연에서, 나는 나의 아내와 자식들, 아들의 가족들과 딸의 가족들에게 감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미친놈처럼 야구경기를 보기위해 이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을 이해해준 데 대해서 말이죠.
당신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해야겠군요.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게 다 좋았어요. 나는 항상 이 위대한 게임 - 야구 - 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