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2)
아마도 노래를 부르지 않고서는 살아가는 재미가 적을 것 같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노래를 부르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자동차 운전을 할 때는 반복해서 들어도 지루하지 않고 졸음까지 쫓아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온전히 새로운 노래를 배울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한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월에 따라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도 변한다. 나는 『배호』와 『조용필』, 그리고 『나훈아』를 좋아한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모두가 친숙하다. 가곡으로는 「떠나가는 배」와 「비목」 그리고 「성불사의 밤」을 즐겨 부르나 가요가 훨씬 정겹다.
몇 해 전에 제주도의 학회에 참석했다가 「떠나가는 배」의 창작 과정과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 서귀포 중문으로 갔다. 지도에 표시된 『카멜리아 힐』을 찾아갔는데 정작 찾고자 했던 문학관이 보이질 않았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어디서, 무슨 연유로 왔느냐고 묻기에 서울에서 왔으며, 평소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하니 한동안 외부에 있는 사장님과 통화를 나누고서 안내를 하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장님은 제주 출신의 양씨로 자신의 가문을 빛낸 인물의 기념관을 2014년도에 건립한 것이다. 기념관이 바로 이 관광단지 내에 있는데 사람들이 잘 찾지 않으니 평소에는 문을 걸어두고 있었다. 바로 『양중해(1927~2007) 기념관』이었다! 아예 열쇠를 맡겨두고 충분히 구경하라 해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떠나가는 배」의 노랫말은 유리 액자로 표구되어 눈이 잘 뜨이는 곳에 걸려 있었다.
『양중해』 시인은 제주 출신으로 제주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근무하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제주 제일중학교의 국어 선생으로 근무하면서, 이곳 제주도로 건너와 젊은 여대생과 몇 개월 동안 사랑의 로맨스를 나누던 『박목월』 시인과 교류하였다. 기간 중 시인의 부인은 옷가지와 생활비를 가지고 제주까지 찾아와 건네고 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 여대생과 짧은 기간 지내다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육지로 떠나간 후 『박목월』 시인이 느꼈던 쓸쓸하고 애틋한 심정을 지켜본 『양중해』 시인이 시로써 표현한 것이 바로 「떠나가는 배」이다. 마침 같은 학교에서 영어 선생을 하던 연희전문 영문과 졸업을 한 『변훈』선생이 작곡하여 위대한 가곡이 탄생한 것이다.
이 노래는 시인이 살던 제주를 넘어서 우리 민족이 사랑하는 가곡이 되었다. 노래 가사는 거친 파도처럼 힘차지만 슬프고, 가락은 꿈결처럼 아름답지만 애달프다. 제주 피난지에서의 한 유명 시인과 여대생 사이의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가 이 노래의 배경이 진실이었는지와 관계없이 입소문을 통해 퍼져나갔고, 한 편의 시와 노래는 마치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되어 전설이 되어버렸다.
문학 친구였던 『박목월』 시인은 훗날 제주대학교의 교수가 된 젊은 『양중해』시인을 59년 「사상계」에 추천하여 시인으로 등단시켰고, 동경대학으로 연구하러 떠나며 77년 인사차 들린 시인에게 “양중해씨”를 이란 시를 선물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목월이 오래전의 고마움과 애정을 담은 이 시도 기념관에 잘 전시되어 있다.
『양중해』시인은 90년대 시의 배경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전쟁을 맞은 피난민들이 연락선을 통해 섬을 떠나가는 애틋한 부두의 이별을, 전쟁이 끝나면서 제주항을 떠나는 동료 문인들과의 이별을 노래했노라고. 아마도 고인이 된 원로 시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로 에둘러 이야길 한 것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 가사에 얽힌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재회의 기약조차 없이 무심하게 수평선을 향해 떠나가는 님과의 이별을 노래하면서도, 파도와 함께 부서져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라도 수심 뜬 바다를 지키겠다는 강인함을 보여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가곡으로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가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실은 저 배야
야속해라
날 바닷가에 홀로 버리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달픈 추억이여!
한의 바다여!
아련한 꿈은 푸른 물에
아프게 사라지고
나만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저 수평선을 향하여
떠나가는 배
설운 이별
님을 보낸 바닷가를
넋 없이 거닐면
미친 듯이 울부짖는 고동소리
님이여 가고야 마느냐
세월이 흘러 서울의 가족들 곁으로 돌아온 『박목월』 시인은 떠난 여인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으로 시를 짓고, 당시 최고의 음악가인 『김성태』가 작곡하여 또 다른 명곡이 탄생하니 바로 「이별의 노래」이다. 원래 24행으로 시를 썼는데 노랫말로 곡을 부치면서 줄어들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지난 4월에 경주 부근으로 여행을 갔다가 불국사 앞에 있는 『김동리/ 박목월 문학관』을 찾아갔다. 문학의 대가다운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관련 자료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편하였다. 두 분은 이 고장이 낳은 문인으로 각각 소설과 시를 대표하는 거목들이다. 『김동리』는 「무녀도」와 「등신불」 등 토속적인 작품으로 순수문학 발전에 기여를 크게 하였다. 『박목월』은 「나그네」 「윤사월」 등 한국인의 정서를 깔끔하게 표현한 서정시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이다. 기념관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으나 「떠나가는 배」에 얽힌 사연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유명 시인의 지난 외도가 ‘옥의 티’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서울대학교에서 시인의 아드님인 『박동규』 교수로부터 「한국 현대소설의 이해」라는 과목을 한 학기 수강한 일이 있다. 한국전쟁 시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의 모친께서 자식들의 안전과 생활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본인은 평생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겠노라고 다짐을 했고, 이후 속을 썩이지 않도록 노력했으며 공부도 매진하여 서울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는 회고담을 듣기도 하였다. 모친은 자식들에게 매우 자상했으며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에도 탁월했다고 하였다. 아마도 잘생긴 『박목월』 시인은 이래저래 뭇 여성들의 표적이 되었고 가족들은 힘들어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애틋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임백호』와 『황진이』의 사연, 『김우진』과 『윤심덕』의 애련, 『백석』과 『김영한』의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들의 가슴이 뛰도록 만들고 있다. 작년에 들렸던 통영의 『청마 유치환의 문학관』에는 여류 시인이던 『이영도』와의 순수했던 사랑 이야기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남녀 사이의 사랑과 애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될 것이고, 또한 머지않아 문학작품이나 심금을 울리는 사연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이런 사연들은 정서적으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여 인성을 부드럽게 정화하는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전국에 산재한 각양각색의 기념관을 돌아보며 구경도 하고 힐링을 하면 여행도 즐겁고 유익한 추억이 될 것이라 믿는다. (2021. 5. 27)
첫댓글 나는 노래가 음치인데 1997년 연대장 끝날무렵 중고품 가라오
케를 60만원에 구입하여 108
곡 노래를 배워 퇴근후ᆞ출근전
에 애창곡을 불렀습니다.
첫번 노래가 산장의 여인, 비오는
날에는 비내리는 고모령, 옛 첫사
랑이 떠오르면 연상의 여인등을
즐겨불렀고, 요즘은 핸폰에 약 100
여곡을 저장하여 매일 1만보 걸을
때 가끔 즐겨 듣습니다.
박동규 교수는 내가 연합사 근무시
초청강의를 감동스럽게 들었네요.
남당ᆞ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남당의 노래 취향이 남다르군요. 나의 예전 애창곡에는 배호의 노래가 많았습니다. 슬픈 노래 보다는 활기찬 노래가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배호의 가슴 속 노래는 늘 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남당이 말한 옛 문인들의 로맨스들이 미투로 인해 함부로 공개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네요.
코로나 추이를 봐가면서 노래방에서 문우회 모임을 가진다면 이글이 더 빛날 것 같네요. 남당은 노래실력도 출중하셔~~~ 이별의 노래와 떠나가는 배....앙콜!
남당의 노래 취향도 사뭇 각별하시군요.
요사이 트롯트 가요가 유행하면서 과거에는 그런가부다 했던 유행가들을 즐겨 듣게 되었어요.
노래 하나하나에 쌓인 사연, 비롯된 연원이 남다르고, 그 가사 또한 모두가 절철하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또 우연한 기회에 트로트박사라고 하는 단국대 장유정교수라는 분을 소개받고 가요에 얽힌 이야기를 펴낸 그분의《낭만과 노래 사이》라는 제목의 미니 수필집도 읽어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을 노래한 것들이 바로 그런 가요, 유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노래가 팍팍한 우리들의 삶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나름의 서정과 여유를 찾아주는 것도 같습니다.
제주에 가면 노래기념관도 한 번 들러봐야겠네요~
백신맞고 타이레놀에 의지해서 견디고 있습니다. 시인은 기교를 부려 난해한 시를 쓰지만 작사가는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표현을 찾아 쉽게 쓰지요. 그래서 대중가요 가사만한 시를 만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요즘 쉽게 시를 쓰려는 시인들도 늘어났지요. 나도 <에세이 애창가요>라는 제목으로 35편의 산문을 묶어두었지요. 대부분 나의 감정과 경험의 공통집합이 많은 노래들이지요. 노래 한 곡으로 힐링이 되고 음악치료가 될 때마다, 역시 감동이 가장 빠른 예술은 음악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최희준의 <인생은 나그네길>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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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신지 모르겠으나 박시인이 제주에서 보낸시기는 분명히 다릅니다. 어떤 출처인지 확실하게 알려주시면 고맙겠네요~오류가 있으면 마땅히 사과를 해야합니다! 직접 발로 뛰어보고, 전후 사정도 알아보고, 아들 이야기도 들어보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