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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여행(길이야기) 스크랩 가막만을 막고 여자만을 훔치다 / 여수 개도
박경희(51회) 추천 0 조회 21 07.07.28 13: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전남 여수] 가막만을 막고 여자만을 훔치다 / 여수 개도

▲ 개도는 가막만과 여자만을 사이에 두고 두 바다의 삶을 가름한다. 가막만의 문을 굳게 빗장
걸고, 여자만을 넘어 거문도로 열린 큰 바다를 넘보는 개도.
ⓒ 김준

펄을 잔뜩 품은 서해의 바다색은 동해나 제주의 바다색과 다르다. 그렇다고 서해와 남해의 바다색 또한 같지 않다. 바다색은 단순히 색깔에 머무르지 않는다. 바다가 품은 생명이 차이가 있듯,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이 다르다. 개도(여수 화정면)는 가막만과 여자만을 사이에 두고 두 바다의 삶을 가름한다.  

여객터미널 맞은편 수산시장에는 떨이를 하려는 상인들로 분주하다. 물 좋고 싱싱함을 경쟁력으로 삼는 수산물들이라 하룻밤이면 냉동실로 옮겨가야 하기 때문이다. 금오도와 개도 등 뱃길로 한두 시간 거리의 섬 산행을 마치고 막배로 포구에 내린 사람들이 좁은 시장통으로 몰려든다. 한 사내는 저녁노을처럼 벌건 얼굴로 함지박이 좁아 냅다 꼬리를 치며 버둥거리는 참돔, 숭어, 농어, 광어에 눈을 맞추고 흥정을 한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아줌마는 활어보다는 쫄깃한 개불에 입맛을 다신다. 아줌마가 철을 알고 입맛을 아는 사람이다. 싱싱한 활어를 떠서 2층으로 올라간다. 소주 한 병 옆에 두고 멀어지는 ‘섬의 가을’을 술에 부어 마신다. 겨울을 나기 위해 잔뜩 몸을 부풀린 녀석들을 한 입 몰아넣고 우물우물, 그래 이 맛이야.

▲ 개도에 큰 바다농사는 없다. 모든 고만고만하다. 고기도 잡고 전복양식도 하고, 멸치도 잡는
다. 멸치를 말리는 개도 주민.
ⓒ 김준

ⓒ 김준

허락 없이 들어간 자는 장 100대의 형을 받았던 섬

섬으로만 이루어진 화정면, 개도는 그 중 가장 큰 섬이다. 천제산과 봉화산 골을 따라 골골이 화산, 여석, 월항, 모전, 호령, 신흥 등 여섯 개의 크고 작은 마을들이 똬리를 틀었다. 여수에서 가장 큰 섬은 말할 것도 없이 육지로 변한 돌산이다. 다음이 금오도, 그 뒤를 이은 섬이 개도다.

가막만과 여자만의 길목에 떡하고 자리를 잡은 개도는 순천만과 합류지점에 위치해 있다. 개도는 가막만의 문을 굳게 빗장 걸고 여자만을 넘어 거문도로 열린 큰 바다를 넘본다. 가막만과 여자만은 바다라기보다는 호수에 가깝다. 고흥반도와 화양반도, 여수반도가 감싸고 낭도, 개도, 금오도, 돌산도가 징검다리처럼 바다에 떠있기 때문이다.

이들 섬들을 연결해 다리를 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섬주민들의 입장에서 불편한 뱃길보다 편리한 찻길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냉큼 두 손을 들어 환영하기 어렵다. 다리가 섬사람보다는 ‘육지것’들이 편하게 들어와 쉽게 나갈 수 있도록 놓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인근에 작은 섬을 거느린다고 하여 덮을 개(蓋), 개도라고 했다. 임진왜란 때 이동예라는 사람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한다.

개도만이 아니라 서남해역의 대부분 섬들은 여말선초에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에 따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본격적으로 섬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명나라의 해금정책을 모방한 공도정책은 고려말에는 서남해 해상세력과 왜구 등과 연대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고, 조선초에는 법률로 금지했다. 그래도 몰래 들어가 섬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간섭이 없는 섬이야말로 지상낙원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관의 허락 없이 들어간 자에게는 장 100대의 형으로 엄하게 다스렸다 한다.

▲ 한때 김발을 막고, 낙지를 잡으며 돈 마를 줄 모르게 했던 큰개, 농지조성을 위해 물길을 막
았지만 40여 년 동안 버려진 땅으로 남아 있다. 그 땅을 보면 주민들은 갯벌의 시절이 그립다.
ⓒ 김준

고만고만하게 고기잡이도 하고 전복양식도 하고 멸치잡이도 하고…

농촌도 그렇지만 작은 섬 학교들은 대부분 폐교 직전이다. 면소재지나 알려진 관광지라도 된다면 그 속도가 좀 더디겠지만, 개도처럼 소재지도 관광지도 아닌 경우는 폐교가 되기는 시간문제다. 개도에는 화정면에서 제일 큰 화정초등학교가 있다. 이름을 보면 금방 눈치를 챘겠지만 한때 이곳에 면사무소가 있었다. 1932년에 설립된 화정초등학교는 한때 제도분교, 자봉분교를 두기도 했다. 2000년 여수개도 중학교와 통합되었으며, 2005년 남학생 5명과 여학생 2명 등 70회 졸업생 7명이 배출되면서 총 졸업생은 3945명에 이른다.

금년 10월 화정초등학교에서는 개교 74주년을 기념하는 총동창회 겸 체육대회가 열렸다. 백발이 성성한 1회 졸업생부터 유치원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주민들은 물론 서울과 부산, 광주 등 팔도에 흩어져 있던 졸업생들도 함께 했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 백발의 노인이 되었지만 금방 ‘이놈 저놈’이다. 여자 동창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친구들이 좋은 모양이다. 행사라고 해야 줄다리기, 배구, 마을별 릴레이, 윷놀이 등이 전부라지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겨운 모양이다.

개도는 최근 참전복정보화마을로 지정되었다. 전체 400여 가구 중 20여 가구가 30여 ha의 전복양식을 하고 있으며, 모전과 호령마을 등은 멸치잡이, 월항·여석·화산마을은 가두리양식과 이각망과 퉁바리(통발)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180여 호가 거주하는 화산마을은 개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보건소와 농협 등 면사무소(백야도에 있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유일하게 수리시설을 갖춘 농지와 전복과 다시마 양식장을 가지고 있다. 개도의 대부분 마을들은 큰 양식어장이나 고깃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만고만하게 고기잡이도 하고 전복양식도 하고 멸치잡이를 한다.

ⓒ 김준

“큰개(갯벌)에 바닷물 넣으면 주민들 먹고 살제”

화산마을 앞에는 제법 큰 갯벌이 막혀 간척지가 되었지만, 개답공사가 전혀 진행되지 않는 채 40여 년을 방치하고 있다. 한때 김발을 막고 낙지를 잡으며 돈 마를 줄 몰랐던 갯벌은 농지를 조성하기 위해 물길을 막고 40여 년을 기다리는 동안 갈대밭으로 변했다. 주민 김연수(화산·80)씨는 이렇게 방치할 바에야 수문을 열어 물이 들게 해달라고 중앙에는 물론 지역에도 여러 차례 건의를 했지만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울분을 토한다. 좋은 농지도 묵히는 판에 왜 그대로 두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 갯바닥이 대롱에서 바지락까지 안 나오는 것이 없어. 갯지렁이 잡지, 파래 뜯어먹지. 낙지 잡지 안 잽히는 것이 없다니까. 500호가 살 때 300호가 이 갯벌 뜯어먹고 살았지. 육지로 만들면 시청에서 팔아먹을 수 있고, 바닷물을 넣으면 주민들 먹고 살제.”
이곳 갯벌은 개도리 ‘큰개’라고 불렀다. 막히기 전 개도리 500여 호가 살던 시절에 큰개 주변에 화산리와 신흥리에 300호가 모여 살았다. 농지도 귀하던 시절에 이들이 의지하고 살았던 곳이 큰개 갯벌이었다.

쌀이 귀하던 시절엔 IBRD차관을 받아 밀가루를 주며 주민들을 동원해 막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농지조성이 되지 않자 1980년대 후반 차라리 물길을 열어달라고 탄원을 내기도 했다.
여객선을 타기 위해서는 방조제 둑방의 지름길을 이용해야 했던 신흥마을 주민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자동차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농지를 제대로 조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침내 1990년 농지조성사업이 시작되어 2년 만에 4만여 평이 조성되고 등기마저 마쳤다. 이번에는 농업용수 확보가 어려워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농업용수 확보가 어려워 간척을 해서는 안 될 갯벌이었다. 이렇게 조성된 간척지는 여수시 소유의 땅으로 되어 있다. 주민들은 농지로 이용하지 못할 바엔 지금이라도 물길을 열어 양식장으로 만들거나 갯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김준

쌀은 천덕꾸러기, 고구마는 귀한 대접

섬이라고 해서 모두 바다에 나가 고기만 잡는 것이 아니다. 가파른 산비탈을 일궈 고구마도 심고 콩도 심는다. 지금은 보리를 심지 않기 때문에 겨울이면 헐벗은 산비탈이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만다. 개도 사람들은 대부분 산비탈을 일궈 고구마를 심고 콩과 깨를 심는다. 특히 농협에서 수매를 해 소주공장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섬사람들이 선호하는 작물이다. 요즘 이렇게 수매해주는 작물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쌀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지만 개도에서 고구마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화산리 마을 앞 갯벌이 좋았는데 매립을 해 버렸고, 선착장 등 가막만 일부 지역에서 전복양식을 할 뿐이다. 물길이 싸고 바다 생태계가 아직은 건강해 조류를 타고 멸치들이 많이 들고나기 때문에 멸치낭장망이 발달해 있다.

개도는 먼 바다로 드나드는 길목에 있어 이렇다 할 양식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도 금년부터 허가된 규모 이상 엄격하게 규제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어졌다. 보통 멸치 잡는 사람들은 3∼5틀 정도의 멸치그물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정작 허가는 1∼2틀로 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낚시꾼들이 개도를 많이 찾고 있다. 갯바위 낚시를 하거나 배낚시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객선을 타고 오기도 하지만 무리를 지어 배를 빌려 타고 들어온다. 여수에서 들어올 때부터 선박을 대여하고 갖은 먹거리를 준비해오기 때문에 주민들의 삶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도움은 고사하고 피해라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다. 쓰레기만 버리고 가기 때문이다. 주민도 살고 관광객들도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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