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나 저수지에 가보면 잔잔한 물위를 걷는 소금쟁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수면의 표면 장력을 이용하여 유유히 물위를 움직이는 소금쟁이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르다. 소금쟁이가 사는 세상은 2차원의 세계이다. 소금쟁이에게는 전후좌우만 있을 뿐 ‘상하’의 개념이 없다. 3차원의 세계를 사는 우리가 소금쟁이의 2차원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소금쟁이 역시 3차원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금쟁이는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물고기의 삶을 인지하지 못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존재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이따금씩 물고기나 새들의 먹이가 되어 최후를 맞이하는 그 순간, 비로소 자신이 몰랐던 3차원의 세계를 깨닫게 된다. 깨달음의 순간이 곧 최후의 순간이 되는 소금쟁이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설적이고, 한편으로는 처연하다.
3차원의 공간에서 2차원적 사고방식을 추구해오다
소금쟁이의 최후라는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그만큼 차원의 개념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마치 매순간 숨을 쉬면서도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처럼, 우리는 3차원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인지하는 3차원의 세계가 차원 개념의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현대 이론물리학의 최전선인 초끈이론은 10차원을 넘어선 세계를 가정하기도 한다). 3차원 이상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황당하게 들리나, 이론물리학의 세계에서는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다. 사실 소금쟁이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도 3차원 너머의 차원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인간의 인지 범위가 닿는 세계를 현실 세계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3차원의 공간조차 인간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말이다.
수 천 년 전에 처음 발명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어 온 종이와 그 위에 쓰여지고 그려지는 글자와 그림은 인간의 내적 사고 활동이 바깥으로 표현되는 장이었다. 하지만 종이 위의 글자와 그림은 전후좌우를 벗어나지 못하는 2차원적 대상이다. 3차원의 공간을 인지하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지만, 실상은 펜으로 쓰인 종이 위의 2차원적 사고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렇듯 3차원의 공간 자체를 인지하는 것과 3차원적으로 사고 활동을 하는 것의 별개의 문제로 여겨졌다.
인간의 내적 인지 범위를 확장시키는 신(新) 3차원 입력 시스템의 등장
1. 배경: SW프로그램을 이용한 3차원 입력 시스템의 한계
하나, 입력 단계의 확장으로 인한 문제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종이에서만 구현되던 사고 활동의 장은 점점 디스플레이(Display)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서 이전에는 단순히 펜으로 ‘쓰기’와 ‘그리기’를 통해 이루어지던 사고 결과의 입력이 키보드, 마우스, 터치패드 등의 다양한 도구를 통해서 점점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시각화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건축 시뮬레이션, 그래프 시뮬레이션 등의 프로그램)의 발전은 과거의 2차원적 출력물을 넘어서서 3차원의 출력물을 시각화하여 구현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켜서 키보드나 마우스 등으로 입력된 값을 시각화된 산출물로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인지 활동을 혁명적으로 넓혀주었다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펜과 종이를 이용하여 개인의 사고 활동을 보조하고, 그 산출물을 기록하는 것은 ‘사고 –> 입력 –> 시각화된 결과물’이라는 3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3차원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입력 방법은 ‘사고 –> 프로그램의 이해 –> 입력(키보드, 마우스 등) –> 프로그램의 작동 –> 시각화된 결과물’ 의 다소 복잡한 5단계를 거친다. 문제는 단계가 늘어남으로 인해, 처음에 의도했던 사고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둘, 직관적이지 못한 입력 방식
단계의 확장보다 더 큰 문제는, 입력 방식의 직관성이다. 펜으로 입력하면 그 출력물(글이나 그림)이 곧바로 나타나지만, 키보드나 마우스를 이용한 입력은 사용자가 입력한 것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키보드로 자신의 생각을 입력하거나 마우스로 움직여야 한다. 입력 도구를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약간의 더딤은 사고의 자유로운 확장을 막는 원인이 된다. 인류는 거의 만년에 가까운 시간을 펜(나뭇가지, 붓을 포함하여)을 사용해왔다. 우리의 선조들이 후대에 각인시킨 유전자는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의 움직임과 펜의 움직임은 사람들에게 하나로 인식될 정도로 긴밀하다. 하지만 키보드나 마우스 등의 입력장치는 한계가 있다. 입력 도구의 사용 방식이 직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3차원 SW 프로그램의 사용은 사용자의 내적 사고를 발현하는 장으로서는 조금 모자라다.
2. 해결 방안: 직관적인 입력이 가능한 신(新) 3차원 입력 시스템의 사용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2차원적 사고 입력 방식을 추구해야할까. 이를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업계에서는 3차원 입력 시스템의 폭넓고 손 쉬운 사용을 가능케하는 여러가지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해결방안은 자칫 속빈강정이나 빛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의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로운 3차원 입력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선 머릿 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곧바로 입력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인 직관적인 내적 사고의 입력을 위해서는 첫째, 적은 단계로 입력이 가능해야 하며, 둘째로 입력방식이 직관적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고루 만족해야만 자유로운 사고의 표현과 입력이 가능해진다. 이를 해결한다면 새로운 방식의 사고 입력 시스템인 신(新) 3차원 입력 시스템의 사용이 가능해진다.
신(新) 3차원 입력 시스템의 사례
1. 홀로그램 장치를 이용하여 직관적인 입력을 가능케하다. Displair
이미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에서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홀로그램(Hologram) 기술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하지만 손바닥 안에 컴퓨터를 갖게 된 지금도 홀로그램이 상용화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홀로그램 기술이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하여 사용자가 입력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회사가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겨우 3년밖에 되지않은 러시아의 스타트업 기업인 Displair이다. Displair는 동명의 홀로그램 제품을 개발하였는데, 전 러시아 대통령인 메드메데프가 임기 중 참석한 포럼에서 직접 소개할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Displair는 홀로그램을 구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맨손으로도 사용자가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탑재하고 있다. 아직 업력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Displair는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홀로그램 영상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3차원 입력 시스템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2. 기존 디스플레이 인프라를 이용하여 직관적인 3D 입력시스템을 구현하다. LEAP Motion
3차원 영상은 홀로그램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디스플레이를 통해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에 있는 디스플레이 인프라를 이용해서 3차원 입력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든 제품이 바로 LEAP Motion이다. LEAP Motion은 사용자가 입력하기 원하는 디스플레이(컴퓨터, 노트북 등)에 USB로 장치를 연결한 다음 허공에 손 동작을 취하면, 이를 파악하여 프로그램에 입력할 수 있게 한다. 앞서 Displair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입력을 위해서 사용자가 부가적인 행동을 취하거나 장치를 입을 필요가 없다. 적은 입력 단계를 거침으로서 원래 의도했던 생각의 본질이 흐려지지도 않으면서 직관적인 입력방식(손 동작)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각을 표출하는 과정의 지연이나 더딤도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1인 다(多)디바이스 시대에, 기존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이용하여 입력이 가능하다는 점은 종이의 휴대성과 간편성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장점이 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할 신 3차원 입력 시스템
- 신 3차원 입력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현한 디지털 비서 자비스 (출처- 영화 아이언맨)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는 자비스라는 디지털 비서를 가지고 있다. 토니가 하는 말을 100퍼센트에 가깝게 이해하고, 로봇 팔을 이용하여 작업에 도움을 주는 자비스는, 실재한다면 누구나 탐을 낼만한 매력적인 디지털 비서이다. 특히 자비스는 홀로그램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3D로 시각화된 정보를 구현하기도 하는데 토니는 이 3D영상을 양 손을 이용하여 움직이고, 잘라내고, 비틀고, 재구성하여 자신의 가슴에 달린 핵융합 원자로에 의한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독제를 발견하게 된다(영화 아이언맨 2 참조). 만약 토니 스타크에게 자비스의 3D 영상 출력 기능과 입력시스템이 없었다면 원자로 중독으로 인해 짧고 굵었던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토니 스타크처럼 비록 생존이 달린 문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신 3차원 입력 시스템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육 분야에서 3차원 입력 시스템이 사용된다면, 다양한 3차원 영상 교육 자료에 학생들이 직접 정보를 입력하거나 변형을 가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 유발 뿐만이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 등의 단순 시각자료를 이용한 교육보다 학업 성취도나 이해도 역시 월등히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 현장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기 위해 포스트잇과 펜을 이용하여 브레인 스토밍을 하고 아이디어를 필터링하는 것을 넘어서,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3차원 출력물에 곧바로 입력하고 적용함으로써 훨씬 더 직관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의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다. 통신 기술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동료들과도 3차원 영상을 이용한 회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외에도 건축, 의료, 예술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신 3차원 입력 시스템은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고 방식의 대변혁
수 만 년전, 인류의 조상은 자신의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을까. 아마 돌이나 나뭇가지 등을 이용하여 바닥이나 동굴 벽에 생각하는 형상을 그렸을 것이다. 언어가 등장하기 전인 선사시대에도 인류는 내적 사고를 발현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에 나뭇가지는 펜으로, 바닥은 종이와 노트로 바뀌었다. 이제 수 만 년의 시간이 흘러 인간은 2차원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3차원적 사고 방식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 시대에 진입하였다. 하나의 차원, 그 사고의 영역을 넘기 위해 수 만 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만큼 3차원 입력 시스템의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우리의 머릿 속에 담겨 있는 3차원적 사고 방식을 그대로 구현하고 입력할 수 있는 신 3차원 입력 시스템의 시대가 이제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있다. 사고의 표현 방식의 변화가 가져올 사고 방식의 대변혁을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