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30 사도행전 11:19-26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 한빛교회 윤 석 목사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우리가 생각하는 신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좋은 옷을 입고, 깨끗한 얼굴을 하고, 구두는 광이 나고, 고상한 언어를 사용하며 다가오는 사람을 신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면 신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옷을 입지는 못했을지라도, 고상한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를지라도, 행실이 올바르며 상대방에게 덕을 끼치는 사람을 신사라고 부를 것입니다.
신사의 정체성을 질문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거룩한 모양을 하고, 거룩하게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유창하게 잘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가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면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용모가 수려하지 못해도, 말씀을 많이 암송하지 못해도, 기도를 잘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인정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사건 이후 이스라엘에는 커다란 변화가 발생합니다
ㅡ첫째 빌립을 통한 사라미라 전도이고
ㅡ둘째가 사울이라는 청년의 회심이고
ㅡ셋째가 안디옥 교회를 통한 이방선교의 문이 열리는 일이었습니다.
이 셋 중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사건이 오늘의 본문에 결부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안디옥 교회에서 최초로 쓰이게 되었는데
헬, Χριστιανός 크리스티아노에서 유래한 것이니다.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와 동일시함으로 안디옥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들을 일컫는 말로서
크리스티아노이(그리스도인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명예스러운 말로 쓰였으나
반면에 유대인들의 인식은
메시야의 사람들, 나사렛 당, 나사렛 이단을 칭하는 것으로서 경멸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하나님의 진리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데
첫째.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인격은 그리스도와 연합했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였으며
새 생명 가운데 일으키심을 받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요한복음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로 표현하였는데
요 15:5-6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
그러할 때에 너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연합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표현하였는데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피조물인 헬, 크티시스는 창조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들여 그리스도와의 영접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말하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함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물질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육의 몸을 입고 있으나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로 인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가 너무 만연하여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주신 새 언약(렘 31:31)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구원받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생존 방법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함 같이
그리스도에 붙어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지금 누구와 연합하여 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싫어하시는 세상의 가치와 타락과 연합하여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기를 원하여
날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모하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소망하며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둘째. 성령의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심으로 성령의 열맺를 맺는 자입니다.
안디옥은 BC 300년 경 알랙산더 장군의 아들이 셀류쿠스애 의해서 건설된 도시로서
인구는 30만명 정도 되는 큰 도시로서 로마의 총독과 공관이 있는 곳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를 피해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에까지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19-21절을 보면 흩어진 자들이 복음을 전한 내용이 나오는데
안디옥에 처음 복음이 들어가게 된 통로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된 사도들이 아니라
흩어진 자, 즉 성령이 역사하시는 무명의 전도자들입니다.
당시 안디옥은 자유분방한 헬라 문화권에 들어있어 타락하기 쉬운 상태였지만
성령께서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 바나바를 파송하였는데
24절을 보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었고 그 후에 나오는 말은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나바는 성령이 거하시는 전도자입니다.
이처럼 무명의 흩어진 자들이나 바나바의 사역의 중심에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이나 어떠한 인간적인 방법을 내세우기 보다는 성령과 믿음으로 일을 감당하였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성령이 충만할 때 비로소 온전한 신앙의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나타나시여 역사하셨습니다.
행2:1-4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바나바의 복음 전파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그에게 성령이 충만하였기 때문이요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즈로와 안디옥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한 것은
그들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셨기 때문이요
그러한 바나바의 성령충만한 모습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그리스도인 이라 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성령충만함을 입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의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을 대적자들의 손에 넘겨주시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대속제물 되게 하셨고
죽으신지 삼일만에 살아나게 하심으로 성도의 부활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였으니 이것이 예수님의 겸손이요
하늘 보좌에 계시던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어 인간의 형체를 입으시고 인간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겸손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의료선교를 하고있던 포사이드 선교사는 오웬이라는 동료 선교사가 폐렴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광주로 가던 중 나주를 지나갈 때 길가에 쓰러져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였습니다.
말에서 내려 가까이 가보니 여자 한센병 환자였는데 머리는 감지 않아 엉켜있었고 손은 문드러지고 냄새가 코를 찔러 가까이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포사이드는 말에서 내려 고름 투성이의 그녀를 부축하여 말에 태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포사이드 선교사의 겸손입니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만 보면 돌을 던져 쫒아버리는 최흥종이라는 건달이 있었는데
마침 이 장면을 구경하고 있던 그에게 포사이드 선교사는 한센병 환자가 떨어뜨린 지팡이를 집어달라고 하였다
그가 머뭇거리고 있자 포사이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팡이를 주웠습니다.
이를 본 최흥종은 충격을 받았고 그때 받은 감동으로 사람이 변화되었고 이후 그는 목사로, 사회 사업가로 소외된 자, 병든 자,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이것이 건달이었던 자가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는 최흥종의 겸손입니다.』
바나바의 전도에 초청받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인데 그는 유대교에 심취되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고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어갈 때 돌을 던지던 사람들의 옷을 맡고 있던 그는
더욱 혈기가 왕성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려고 대제사장의 영장을 받아서 다메섹으로 급하게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울은 강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인생이 변하였고
그의 이름을 이제 바울이라 불림 받았으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하다가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복음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으니 이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바울의 겸손입니다.
누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를 돌보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한센병 환자들에게 돌을 던질 때
누가 자신의 잘못된 것을 뉘우치고 올바름의 길을 걸은 사람입니까?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 입니까?
최흥종이라는 건달이 회개하고 주의 종으로 부름받은 것처럼
사울이 예수를 믿어 변화되었을 때 사람들은 사울을 아직 경계하고 있었지만
바나바는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행 11:25~26절
25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사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1년간 무리를 가르쳤을 때
안디옥에 있던 사람들은
바나바와 바울과 그의 제자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으니
그리스도의 겸손을 닮은 자들이요
그들은 그리스도를 안 이후에 세상적인 가치관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함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천국 문에 도착한 어거스틴을 천사가 가로막으며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그리스도인 어거스틴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어거스틴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너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이 아니라 철학자 키케로의 사상으로 가득 찼구나” 라는 말을 듣고 그는 천국 문에서 쫒겨나고 말았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어거스틴은 통곡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일평생을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바울 이후에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영향력을 끼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나의 그릇에는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세상의 지식입니까? 사상입니까? 성경에서 이탈된 삶입니까?
목에 십자가를 달고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차에 십자가를 달고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예배를 드린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시 32편을 보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내 영혼에 신음이 고이게 됩니다.
허물을 하나님으로부터 사함을 받는 사람은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의 행실이 흐트러질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에 만족해하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지만,
인생은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고민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을 때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이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말씀하시고 (심령, 애통, 온유, 의에주리고 목마른,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청결한,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이어서 주신 계명이
소금과 빛으로 살아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 맹세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외식으로 금식하지 말라 / 비판하지 말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의 그릇에 담고 순종하고 따르는 삶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과 제자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을 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운 것처럼
2023년도를 살아가는 한빛교회 성도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모두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