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묻힌 청량사에 지금도 워낭소리 그윽하다영화 ‘워낭소리’ - (23) 봉화 청량사
노부부가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청량산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청량사를 향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할배, 얼른 오소. 소가 죽으니까 안됐제 하는 생각이 나는 겨?” 뒤쳐져서 느릿한 걸음으로 오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가 묻는다. “그럼 안됐제, 사람이나 짐승이나 죽고나서까지 말할 거 머 있나?” 두 노인은 석탑 앞에 서서 정성껏 절을 올린다. 떠나간 소의 왕생을 빈다. 화면이 바뀌고 할아버지 손에는 작은 방울이 들려있다.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에 놓인 낡은 방울 워낭이다. 움직일 때마다 딸랑딸랑 워낭소리를 내던 소는 지난 30여년간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다.
영화 ‘워낭소리’에서 최 노인이 평생 도반인 소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나서 소박하나마 천도재를 올린 곳이 바로 봉화 청량사 유리보전 앞이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청량산은 영암 월출산, 청송 주왕산과 함께 3대 기악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작은 금강산이라는 의미로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꽃잎 같은 열두 바위봉우리가 둥글게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꽃술부분에 청량사가 천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7월26일 청량사 일주문이 있는 선학정 앞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20여분간 걸어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길이다. 영화 ‘워낭소리’의 최 노인은 이 가파른 길을 오르며 늙은 친구, 소의 영혼까지 짊어지었다. 짧은 거리지만 무더위로 오르는 일이 쉽지 않다. ‘30여년 도반’, 노인과 소의 사랑·이별 두 생명 보시·자비의 삶 오롯이 보여 사람과 짐승도 마음 나누며 공생하다 철도 침목으로 만든 계단과 기와로 이어 만든 물길이 나오면서 청량사의 모습이 나타난다. 사찰을 감싸고 있는 바위들은 한번 눈길을 주면 좀처럼 다른 곳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다. 조선시대 유학자 주세붕이 청량사를 유람하고 남긴 <유청량산록>에 보면 자소봉 아래 11개, 경일봉 아래 3개, 금탑봉 아래 5개 등 19개 암자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이후 1608년 간행된 <영가지>에는 총 25곳의 암자가 등장한다. 봉우리 계곡 곳곳에 수행자들의 정진열기로 가득했으리라.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유교의 보편화로 인해 점차 사찰들은 사라지고 청량사와 응진전만이 겨우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있을 무렵 청량사는 최근 다시 유명해졌다.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청량사 산사음악회다. 지금은 많은 사찰에서 산사음악회 뿐 아니라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열고 있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사찰에서 보기 드문 음악회였다. 교통도 불편하고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하는 이 곳에서 열린 음악회는 뜻밖에 대성황을 이루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을 무대배경으로 가을밤 깊은 산속에서 울려펴지는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그림같은 추억을 선물받았다. 사실 청량사는 무대를 설치할 변변한 장소도 없을 뿐 아니라 관객이 앉을만한 자리도 없는 경사가 심한 곳에 위치한 작은 사찰이다. 그럼에도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회의 주인공이 되어 가을밤을 수놓았다.
청량사의 본전인 유리보전을 참배하고 영화 ‘워낭소리’에서 소를 위해 정성을 올렸던 석탑으로 향한다. 우연인지 바로 이 곳 청량사에도 소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석탑 옆에 세 갈래로 자란 노송 한 그루가 있다. 절에서는 이 자리를 ‘삼각우총(三角牛塚)’이라 부르니, 곧 세 개의 뿔을 가진 소무덤이다. 산아래 마을에 집에 뿔이 세 개가 난 송아지가 태어났다. 점차 자라면서 다른 소와 달리 몇 달만에 낙타만큼 커졌다. 이 소는 힘은 매우 셌지만, 성격이 매우 사나웠다. 이 소식을 들은 주지 스님이 주인의 양해를 얻고 송아지를 절로 데려와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데 사용하였다. 송아지는 이후부터 매우 양순하고 부지런히 일했다. 세월이 흘러 소가 숨을 거뒀고, 절에서는 정성껏 묻어 왕생을 축원해 주었다. 얼마 후 소를 묻었던 자리에서 소나무가 자라나 세 갈래의 가지가 돋았고, 지금까지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탑에 인사를 올리고 응진전이 있는 금탑봉으로 향한다. 금탑봉 중층에 위치한 어풍대에 서면 청량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의 연꽃 같은 봉우리와 연꽃 꽃술에 자리한 듯한 청량사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푹 빠져 드는 느낌이다. 영화 ‘워낭소리’에서 최 노인은 30년을 하루같이 함께 울고웃으며 살아온 소를 위해 온갖 정성을 쏟는다. 소가 힘들까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나누어 메고 오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생명있는 모든 이들 마음 깊은 곳에는 똑같이 정감어린 샘물이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