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후 8년만에 옛 남광주역에 돌아온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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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에 놀러온 꼬마친구들. 웃음만발이다. ⓒ광주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
"이 기차 언제 출발해요?"
아이들이 물음을 쏟아낸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남광주역에 기차가 돌아왔다.
1922년 광주~송정리간 운행이 시작됐고 2000년 광주역에서 효천역까지 도심을 가로지르던 철길이 폐선되고 이설됐다. 그 후 8년. 우범지대가 될 수 있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남광주역사가 사라진 그곳에 기차가 돌아온 것이다.
(사)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가 철도청으로부터 객차 2량을 기증받았고 지난해 12월 광주역에 있던 객차를 남광주역으로 옮겨 리모델링을 한 후 지난 2월 28일부터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차는 푸른길 방문객센터, 어린이도서관, 전시 등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까지 푸른길을 직접 답사하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전시 ‘기차가 돌아왔다’전이 열리기도 했다.
기찻길은 사라졌지만 도심을 가로질렀던 광주~여수 구간은 광주 근대 역사와 맞닿아 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꿈을 안고 살았던 이들의 고향이 기찻길 주변이었고 교통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때, 기차는 시민들의 이동을 도와주는 든든한 발이었다.
옛 남광주역에 찾아온 기차는 그런 광주의 과거, 추억을 복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남광주역에 돌아온 푸른길기차 내부를 주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영대
잊고 지냈던 추억을 오늘에 되살려
기차를 찾은 시민들은 “좋다, 좋다”는 반응.
중장년층은 역사마저 없어져 허전했는데 이렇게 기차라도 오니 옛 생각도 나고 좋다고 하고, 젊은층들은 도시 한복판에 등장한 기차가 신기해 사진 찍으러 많이 온단다. 어린이들은 부모 혹은 유치원 교사와 함께 기차를 찾는다고.
기차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어렸을 때 아이들 데리고 전남 시골집에 가거나 여행 갈 때 항상 남광주역에 와서 기차를 탔어. 지금도 그렇지만 집이 이 근처였어"라며 "그때는 기차 타고 가면서 아이들에게 차창 밖 보면서 자연 공부 시켜주고 참 여유롭고 낭만적이었는데 요즘엔 참 여유가 없이 사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는 아니었지만, 자가용으로 목적지에 씽 가버리는 지금보다 어쩌면 시간은 좀 걸릴 지 모르나 기다림, 쉼이 있던 그때가 돌아온 기차를 통해 다시 한 번 시민들의 머리 속에 스치는가 보다.
1940년대 후반에 남광주역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했던 한 할아버지도 기차를 찾았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는 어려운 시절 화순 등지에서 도둑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던 아이들이 많았고 다치는 일도 있었다는 얘기를 하셨다고.
"역사가 없어진 것이 너무 아쉬웠는데 기차라도 돌아오니까 이렇게 와보게 되고, 잊고 지냈던 추억이 떠오르네."
마당서 놀아보자!
하루에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기차를 찾는다고 한다. 너무나 도시가 빠르게 변해서 몇 십년 전에 내가 살았던 집, 고향이 사라지는 일도 많다. 남광주역사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때 달렸던 기차는 아니지만 뭔가 과거를 끄집어내고 추억할 수 있는 뭔가가 나타났다는 것은 반가운 일일 것이다.
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철길 주변 사람들이 복닥복닥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것처럼 푸른길이 지향하는 생태문화공동체의 거점이 기차가 되는 것이다. 다양한 세대가 기차에서 만나 이웃과 마을, 동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인 것. 또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기차에서 푸른길에서 할 수 있는 기획을 짜서 운영해보도록 하고, 남광주시장 상인들과 함께 축제도 열게 될 것이다.
기차와 기차 주변이 광주시민들의 공동의 마당이 되는 것이 운동본부의 바람이다.
'기차가 돌아왔다'전을 열었던 '잇다'팀은 전시글에서 ‘폐선의 길, 10.8km’ 답사는 ‘어머니의 치마끈’을 찾아가는 것이었다고 했다.
<현재, 광주 사람들 중 푸른길을 과거에 기차가 다녔던 길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성장’ ‘개발’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흐름, 그리고 도시에서 과거라는 것은 굳이 기억하고 찾아낼 필요가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광주의 근대 역사는 기찻길 주변에서 시작됐다.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공간이 그곳이었다. 기차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고 공부하는게 어렵기도 했지만 주인집에, 세 들어 사는 집에, 대여섯 명의 하숙생까지, 그렇게 한 집에 여러 식구가 모여 저녁에는 복닥복닥 전도 부쳐 먹고 가족처럼 서로를 챙겼다…>-전시글 중에서.
남광주역에 돌아온 기차, 그리고 과거와 현재 기찻길 주변의 이야기와 모습을 담은 첫 전시회는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그 무엇을 말하고 있었다.
글 뉴스레터 무지쎄 별이
사진 뉴스레터 무지쎄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