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천강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 박혜영
■대상
수취인불명 (아일랜드에서 온 편지)
KLM항공 KL856편 비행기가 지면을 밟았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더블린은 온통 초록이었다. 격자무늬로 곧게 뻗은 회색빛 도로를 푸른 평원이 감싸고 있었다. 높낮이가 다른 석조건물에 삼각형 모양의 지붕들이 점점이 박혔다. 조금 있으면 착륙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경유한 비행기가 고도를 낮췄을 때, 잠잠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덮개를 올린 창문에 금세 물방울이 맺혔다. 비는 창문에 스치듯 흔적을 남긴 채 아래로 떨어졌다. 물기를 머금은 초록 풍경이 짙어졌다. 밋밋한 그림에 명암을 주려고 물감으로 덧칠하는 것처럼.
스피커에서 약간의 소음 발생 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곧 활주로에 도달한다는 내용과 함께, 빗물로 인해 기체가 다소 흔들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조용하던 기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집에 돌아왔다는 귀향자의 안도, 꿈꾸던 곳에 다다른 여행자의 흥분, 출장차들른 비즈니스맨의 피로, 멀미에 시달린 사람들의 구원과, 이유 없이 우는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부모의 마지막 인내. 기내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감정의 공기로 들떠 있었다.
나도 비스듬히 누워 있던 의자를 바로 세웠다. 정신이 멍했다. 급하게 마셔댄 진저에일 때문일까. 승무원이 건네주는 위스키라도 마시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10시간, 환승 대기 후 다시 4시간. 실로 살인적인 비행이었다. 하지만 퓨즈가 나간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아득한 건, 단지 술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한순간 덜컹, 하는 충격과 함께 바퀴가 닿았다. 비행기는 비에 젖어 미끄러운 노면을 빠르게 굴러가다 점차 속도를 떨어뜨렸다. 활주로를 배회하던 비행기가 이내 멈췄다. 여행객들 중 몇몇이 박수를 쳤다.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었고, 아이들이 안전벨트를 풀고 뛰어다녔다. 피곤해 보였지만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성격 급한 승객들은 미리 일어나 짐칸에서 캐리어를 내렸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산소가 부족한 우주선을 탈출하는 것처럼 승객들은 끝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사람들에 떠밀려 걸음을 옮겼다. 밀리고 밀려서, 마침내 새로운 행성에 당도하듯이.
“go raibh maith agat(고맙습니다).”
승무원이 게일어로 인사를 했다. 땡큐, 나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본처럼 매듭지어진 노란색의 머리핀이 단정하게 빗어 올린 승무원의 금발머리를 고정시켰다. 푸른 눈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제부터 얼마나 많이, 저런 색의 눈과 마주하게 될까. 나는 비행기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왔다. 허공에 떠 있던 발이 드디어 단단한 땅을밟았다.
사람들이 서둘러 출구를 찾아 떠났다. 한 손에 끌고 가는 캐리어 소리가 경쾌했다. 뒤쳐져 걷던 나는 길을 잃고 잠시 헤맸다. 더블린 공항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고, 빠져나가는 통로는 길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갑 안에 끼워 넣은 홈스테이 주소가 있는데도 불안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이렇게 멀리 떠나온 건 처음이었다. 발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졌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통행로 중간에 위치한 화장실로 향했다. 오랜 비행 탓일까,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피부는 푸석했다. 찬물에 몇 차례 세수를 했다. 입가를 헹궈, 남은 알코올을 털어냈다. 세면대 위 사각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한쪽만 쌍꺼풀이 진 눈에 포니테일 형태로 묶은 까만 머리카락. 한 입 베어 물면 과즙이 흘러나올 것 같은 살구색 피부. 165센티의, 한국에선 나름대로 컸던, 하지만 여기에선 결코 크지 않은 키. 30대 중반. 눈가에, 또 입가에 조금씩 자취를 드리우는 주름들. 거뭇한 눈 밑의 자국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다.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하얗고 붉은 피부, 빨갛거나 갈색인 머리, 초록색 혹은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들. 이국의 얼굴들. 아니, 이곳은 그들의 나라고 이상한 것은 내 모습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똑바로 거울을 응시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이곳에서 완벽한 이방인이다.
남편이 한순간에 실종되지 않았다면, 삶은 그저 무난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35년의 내 인생이 지금껏 그랬듯이. 남편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제약회사의 인사팀에 근무했고, 나는 우편취급국에서 계리직 공무원으로 있었다. 평범하다 못해 어쩌면 심심한 인생이었다. 잔잔한 호수처럼 차분하고 나지막한. 때로 조금씩 파장이 일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지나가 버리면 말 뿐, 생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결국 바다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아침의 통화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남편의 회사가 외국의 어느 기업을 인수하고, 직원 현지 채용을 위해 네덜란드로 간 지 한 달하고도 삼 일째. 금요일이었다. 몸살 기운이 있다는 얘기에 남편은 내일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그 정도는 아니고, 나는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순간 의아했다. 내겐 오늘이, 그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였으니까.
스카이프 영상통화 건너편의 배경은 어두웠다. 그곳은 한국과 여덟 시간 차이가 난다고 했다. 또 무슨 얘기를 했더라. 이번에 발행된 네잎클로버 모양 기념우표에 대한 얘기를 했던 것도 같다. 클로버의 문양이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은 기원 전 드루이드교 사제들로부터 생겨났다고 했다. 그들이 누구냐고 물으니 남편은 켈트족의 일원이라고 답했다. 갈리아(Gaul)지방의 켈트족과 바이킹과 앵글로 색슨 족의 침입……. 1/10,000 확률로 피는 네잎클로버는 십자가를 닮은 모양 때문인지, 처음에는 종교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세잎클로버가 일반적인 들판에서, 예외는 곧 상징이 되었다. 다른 것이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조금은 교과서적인 이야기였다. 통화 소리가 조금씩 끊겼다. 방에 있는 것 같았지만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저 쪽의 어둠은 사방을 가늠할 수 없게 했다. 그는 이제 잠자리에 들시간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안녕, 정도의 일상적인 인사였을까.
나는 그와의 전화를 끊고 출근 준비를 했다.
평범한 하루였다. 전날과 다를 바 없는. 아침부터 몰려드는 고객들의 우편을 접수하고, 내용증명과 같은 민원을 처리하고, 6개월이 지난 우편물을 폐기하는, 그런 사소한 일들. 두 번 이상 반송된 서신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처분하게 되어 있었다. 분쇄기 앞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물품들이 무질서하게 쌓인 채였다. 곧 쓰레기가 되어 없어질 더미에는 백화점 소식지, 재구독을 권유하는 잡지의 홍보 엽서, 빨간 경고 딱지를 붙인 독촉장 같은 것들이 굴러다녔다. 나는 그것들을 차례차례 분쇄기에 넣었다. 한데 섞인 글자들이 비명 같은 소음과 함께 갈렸다. 그 중에는 아주 드물게, 편지봉투에 담긴 일반 서신도 있었다. 보내는 사람이 적혀 있지 않은, 수신 주소가 잘못 적힌 편지. 흰 봉투에 담긴 그것은 손때를 탔는지 너덜너덜했다. 나는 망설이다 그것을 내 유니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오래된 불안의 습관 같은 것, 이라고 할까.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적었을 편지는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못한 채 한 조각 재가 되어 사라진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는 나라도 그 편지를 읽어 줘야지, 막연히 생각했던 게 그만 습관으로 굳어져 버렸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언제인가, 중요한 편지가 전달되지 않았다며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서신은 조각 나 버린 종이들 사이에서 찾을 수 없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 하지만 언젠가 찾을지도 모르는 편지를 조금씩 모으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오후의 근무 시간은 오전보다 바쁘게 지나갔다. 6시 마감 이전에 서류를 접수하려는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안녕하세요, 우편물 올려 주세요, 카드를 이쪽에 꽂아 주세요. 같은 말을 하고 또 하느라 목이 쉴 지경이었다. 덕분에 그날도 초과 근무를 해야 했다. 마지막 업무까지 끝내고 시계를 올려다봤을 땐, 저녁 8시.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지하철 3호선에 몸을 내맡겼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했을 때 집 안엔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옷가지가 침대 위에 떨어져 있었고, 베란다에는 제때 버리지 못한 재활용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다.
며칠 청소를 하지 않은 집은 지저분했다. 거주자가 소유권을 포기하고 떠난 빈 집처럼.
금요일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었으므로 나는 종이며 빈 캔 같은 것들을 상자에 한가득 담아 밖으로 나왔다. 4월 막바지에서 5월로 넘어가는 날씨는 따스했다. 뒤늦게 핀 벚꽃이 이마 위로 흩날렸고, 아파트 단지 화단에 서 있는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쓰레기장 근처에는 집게를 든 경비가 서 있었다. 175 정도의 키에 60대 중반인 경비는 늘 세상을 꿰뚫어볼 듯이 불만스런 눈빛으로 아파트를 서성였다. 재빨리 재활용품들을 분류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그가 말을 걸어 왔다. 이봐요 아가씨, 라고 했던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지만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못 들은 척 하며 아파트 현관을 향해 종종거렸다. 괜히 대꾸해서 귀찮아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주민에게 말을 걸었을 수도 있었고, 잘못 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또, 무슨 일들을 했더라. 뒤늦게 청소를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TV를 봤던가.
밤 11시, 습관대로 그에게 스카이프로 전화를 했다. 아침과 밤, 매일 두 번의 통화는 정기적인 스케줄이었다. 해가 이미 진 여기와 달리, 저곳은 낮 2시일 터였다. 통화하는 남편의 얼굴 뒤로 스며드는 오후의 볕이 적응이 되지 않곤 했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창 일하느라 바쁜 것일까. 그래도 짬을 내서 전화를 받아 주곤 했는데. 몇 번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신호만 갈 뿐, 수신은 되지 않았다. 나는 텔레그램으로 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일하는 거야? 많이 바쁘지…….’
‘나는 이제 잘 시간이야.’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는 답이 없었다. 눈을 감고 내일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혼자서 이불을 덮고 불을 끄려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일은 오지 않을지도 몰라.
*
문제가 생긴 것은 입국 심사대에서였다. 여권을 살펴보던 직원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아이리쉬 사투리가 섞인 영어는 잘 이해하기 힘들었다. 입국신고서 카드에 기재를 잘못한 것 같은데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등에서부터 식은땀이 배어났다. 나는 어찌 할바를 모르고 계속 틀린 답을 쏟아냈다. 노노, 직원의 대답이 단호했다. 내 뒤의 줄은 길게 늘어만 갔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안색이 불만스럽게 변해 갔다. 가면을 쓴 표정들이 나를 옥죄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옆에서 입국 심사를 받던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170 정도로 키가 껑충한 마른 여자였다. 20대 후반이나 되었을까. 스프링처럼 곱슬곱슬한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지만, 두피에서부터 올라오는 뿌리 색깔은 검었다. 작은 눈에 생글생글 웃음기가 어렸다. 눈 밑에 가득한 엷은 주근깨가 소녀처럼 보이게 했다. 한국사람, 아니 적어도 아시아인인 것 같았다.
검은 눈에 살구색 피부, 그리 높지 않은 콧대. 나를 닮았다.
“What’s the problem? She’s my friend(무슨 문제야? 그녀는 내 친구야).”
낮은 음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녀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몇 가지 질문들에도 당황하지 않고 유창하게 대답했다. 직원은 탐탁지 않은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짓을 했다. 뒤의 긴 줄이 직원에게도 압박감을 준 듯 했다. 땡큐, 나는 또 한번 감사 인사를 하며 입국 심사대를 지나쳤다. 이 나라에선 감사할 일이 자꾸 늘어난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졌던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짐을 찾는 컨베이어 벨트에서였다. 그녀는 반바지에 손을 찔러 넣고 회전 방향을 따라 서성이고 있었다. 앞으로 한 발, 뒤로 두 발.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때묻은 아이보리색 운동화가 불규칙적으로 원을 그렸다. 나는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익숙한 한국말에 그녀가 내 쪽으로 돌아섰다.
“고마워요.”
내 인사에, 그녀가 곱슬곱슬한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그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으로 한 발, 뒤로 세 발. 중력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직도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했다. 신기한 사람이다, 나는 생각하며 그녀로부터 몇 발자국 멀어졌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가 놀이동산의 회전그네처럼 어지러웠다.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의례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아일랜드에 자주 오셨나 봐요.”
“아니요, 여긴 처음인데…….”
“그래요? 여러 번 오신 줄 알았어요. 그렇게 갑작스런 경우에 대처도 잘하시고.”
아까의 아찔했던 상황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연이은 칭찬에 부끄러운지 그녀가 두 다리를 꼬았다. 가늘고 긴 다리가 타원형으로 휘어졌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이 출렁였다.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소중한 비밀이라도 담은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건 제가 지금…….”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바닐라향 샴푸 내음이 났다.
“세계를 유랑하는 중이라서요.”
생각보다 많은 일을 겪었거든요, 한 걸음 뒤로 멀어지며 그녀가 웃었다. 주근깨가 천장의 조명을 반사해 보석처럼 빛났다. 키다리 아가씨 같다, 나는 생각했다. 그런 비슷한 스토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위기의 순간에 내게 도움을 준 사람. 책에서 튀어나온 동화 속 인물처럼.
컨베이어 벨트가 마지막 화물들을 토해내고 운행을 멈췄다. 키다리 아가씨가 자신의 짐을 챙겼다. 25인치 캐리어 1개와, 나머지 1개는 기타 케이스였다. 나도 내 몫의 캐리어를 챙겨들었다. 공항 밖까지 그녀와 보조를 맞춰 걸었다. 6월이지만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었다. 아일랜드의 전설 속 전사라는 쿠훌린이 하늘을 흔들어대는 것처럼. 보헤미안 스타일의 원피스가 바람에 위태롭게 흩날렸다. 질끈 묶은 고무줄 밖으로 머리카락이 삐져나왔다. 나는 허리까지 내려온 카디건을 여몄다. 여행 책을 읽고 그나마 옷차림에 대비를 한 것이 다행이었다. 그녀는 대책 없이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찬바람에 그녀가 몸을 웅크렸다. 하얀 면 티셔츠에 그려진 일러스트 캐릭터가 얼굴을 구겼다.
“브라질에서 왔거든요. 거긴 따뜻했는데.”
그녀가 발을 동동거렸다. 버스를 잡아타고 더블린 시내까지 간다고 했다. 이번엔 내가 도움을 줄 차례였다. 나는 백팩을 열어 여분의 외투를 하나 꺼냈다.
“괜찮아요.” “나중에 만나면 줘요.”
나는 그녀의 어깨에 갈색 점퍼를 둘러 주었다. 결국 안 되겠는지 그녀가 점퍼를 받아 걸쳤다. 고맙습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가지런히 드러난 하얀 이가 햇빛을 받은 소금 알갱이처럼 빛났다. 작별 인사를 건넨 키다리 아가씨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잠깐 만났다 헤어지는데도 문득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비슷한 얼굴이 여기엔 없어서일까. 실은 한국에서라면 그다지 닮은 얼굴도 아닐텐데.
이메일로 전달 받았던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항까지 차가 픽업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비행 동안 꺼 놨던 핸드폰을 켜고 유심칩을 갈아 끼웠다. 익숙했던 번호가 지워지고 새로운 번호가 나타났다. 통화와 문자 데이터들이 초기화되었다. 번호를 확인하고 여러가지 설정을 세팅하는 도중에 벨이 울렸다.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 나는 조금 당황하며 전화를 받았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통화선을 타고 전달되었다. 목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하얀 미니버스가 차도에 정차되어 있었다. 캠핑 버스를 축소해
놓은 듯한 사이즈에 대시보드 중앙에는 폭스바겐 앰블럼이 붙어 있었고, 창문에는 하얀 바탕에 꽃무늬 커튼이 달려 있었다. 한국에서는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마이크로버스였다. 더듬이처럼 비어져 나온 사이드 미러가 귀여웠다.
여기예요, 내가 손짓했다. 차 문이 열리고,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내렸다. 180 정도의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자연스러운 갈색 곱슬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검은색 뿔테 안경이 숲처럼 푸른 눈을 감싸고 있었다. 오뚝한 콧날에 양 옆으로 길게 핀 입술이 신뢰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이름은 마이크라고 했다. 홈스테이 주인인 오브라이언의 조카라고. 나도 그의 손을 잡았다.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공항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떠나 온 곳으로부터 조금 더 멀리, 차는 달려가고 있었다. 주춤했던 빗방울이 다시 창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도착했다는 마이크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미니버스에서 내리자 디타치드 하우스(Detached house) 형태의 빨간 벽돌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층 높이에 굴뚝이 있는 삼각형의 지붕, 차 한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조그마한 앞마당, 이름 모를 나무와 무성한 잔디, 파란색 대문. 전형적인 아일랜드 건축 양식의 집이었다. 문 앞에는 집주인인 오브라이언 여사가 나와 있었다. 틀어 올린 긴 머리가 가는 비를 맞아 은빛으로 빛났다. 이메일로 받은 인적사항에는 그녀가 이제 60세가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푸근한 몸매와 동글동글한 인상에 긴장이 풀어졌다. 오브라이언 여사가 마이크와 비쥬를 나눈 뒤 나와 인사했다. 어릴 적 떠났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하게 반겨주는 모습이었다. 인사를 마친 마이크가 미니버스를 타고 떠났다. 나는 오브라이언 여사를 따라 집으로 들어섰다.
토탄으로 불을 피운 벽난로에서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다. 카디건을 벗어 팔에 걸치고 내부를 둘러보았다. 현관 바로 옆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한가운데에 커다란 거실, 그 옆으로 주방과 3개의 방, 욕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브라이언 여사는 친절하게 방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었다. 걸음을 옮기는 공간마다 유독 가족사진이 많았다. 거실의 벽난로 위에도, 주방의 식탁 위에도.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오브라이언 여사가 소개를 해 주었다.
세 명의 자녀와 여러 명의 조카들, 미국과 영국으로, 더 여러 곳에 떨어져 살고 있는 친척들. 자신의 삶을 찾아 흩어졌지만 아직도 명절 때면 함께 모여 기념일을 즐긴다고 했다. 사진 속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잠시 말이 없던 오브라이언 여사가 대답했다.
“남편은 죽었어요, 오래 전에.”
그가 젊을 때 일이라고 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갑작스런 교통 사고였다. 골웨이로 가는 길에 남편의 미니버스는 중앙선을 넘어오는 관광객의 차와 충돌했다. 지금의 버스는 마이크가 개조해서 쓰기까지 차고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그래서 남편의 모습은 젊은 시절 사진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벽난로 위 한구석에 자리한 작은 액자를 들여다보았다. 갈색머리를 히피처럼 늘어뜨린 젊은 남자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오브라이언 여사의 남편.
지금은 사라져 버린 사람. 괜히 물어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오브라이언 여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이층 방으로 안내했다.
편히 쉬라는 오브라이언 여사의 말에 감사 인사를 했다. 방 안에 들어서서 캐리어를 풀었다. 방은 간소하고 깨끗했다. 원목으로 된 싱글 침대에 협탁이 하나 있고, 방의 한쪽 면에는 시원스레 창이 나 있었다. 나는 이층 방에서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았다. 멀리 리피(Liffey) 강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오브라이언 여사의 집은 더블린 시내에서 루아스(Luas)1)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까운 도심의 호텔을 놔두고 굳이 이곳으로 숙소를 정한 것은, 여기가 남편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오브라이언 여사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고 했다. 바로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층 방에서. 그렇다, 나는 사라진 남편의 흔적을 찾아 여기에 왔다.
6월의 더블린 저녁은 비가 그치지 않았다. 쉽게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빗소리를 들으려고 창문을 열었다.
*
며칠째 잠이 오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장도,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도 없었다. 시차도 계산하지 않고 나는 전화를 걸어댔다. 신호음은 가지만 그뿐,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용한 방에 내 심장 소리만 급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습관적으로 켜 놓은 TV에서 코미디 프로가 재방영되고 있었다. 뜻 모를 대화들과 의미를 잃은 웃음소리가 적막한 방안에 퍼졌다. 나는 불면으로 충혈된 눈을 비볐다. 낮에 들었던 우체국 동료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러지 말고 실종신고를 내 봐.’
동료의 입에서 실종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순간, 나는 왠지 모를 전율에 몸을 떨었다. 누군가가 망치로 머리를 세게 내리친 것 같았다. 나와는 무관할 거라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내 삶에 끼어들려 하고 있었다. 새벽 세 시. 나는 집을 나섰다. 핸드폰 하나를 손에 쥐고. 확실한 건 없었다. 심지어 그가 진짜 사라졌는지조차도.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택시를 타고 무작정 경찰서로 내달았다. 외투를 걸치지 않았는데도 바깥은 따뜻했다. 완연한 봄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나무들에서 초록 잎사귀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노래라도 부르는 것처럼, 따뜻하고 찬란하게.
늦은 시간인데도 경찰서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경찰서는 크고 넓었다. 남편의 연락없음에 대해 하소연하기에는, 너무 시시한 거 아니냐고 느껴질 정도로. 나는 섣불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보초를 서고 있던 의경이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오랜 근무에 지쳐 피곤한 얼굴, 하지만 뭐라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의무적인 눈빛. 실종.
내 남편. 네덜란드. 그 앞에서 나는 차마 그 단어들을 발음하지 못했다. 입 밖에 내뱉는 순간 현실이 되어버릴 것 같은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머뭇거리다 돌아섰다. 의경이 재차 불렀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여기는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었다. 나는 새벽의 거리를 천천히 걸어서 아파트로 돌아왔다.
시계 바늘이 멈춘 것처럼 아침은 올 기미가 없었다. 베란다에는 버리지 못한 쓰레기들이 늘어갔다. 쌓이고 쌓여서 거대한 벽이라도 만들 기세로. 끝내 나를 덮쳐서 질식시킬 것만 같은 환영.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건 집 앞 재활용품 쓰레기장 앞에서였다. 나는 충동적으로 쓰레기 더미를 한꺼번에 들고 밖으로 다시 나온 참이었다.
“이봐요, 아가씨.”
집게를 든 경비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이번에는 어디로도 돌아설 수 없었다. 고요한 공간에 그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쪽으로 걸어온 경비는 랜턴을 비추며, 내가 손에 쥔 것들을 살펴보았다. 불빛에 눈이 부셨다. 그는 재활용으로 분리해도 될 것과 안 될 것들을 손으로 짚어 가며 설명했다.
“저번에는 왜 그냥 갔어요, 불렀더니.”
경비의 낮은 어조에는 약간의 질책이 묻어 있었다. 자신은 할 일을 다 할 뿐이고, 규칙을 지키지 않은 주민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처럼. 마치 회초리로 따끔하게 매질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쉽게 살아서는 안 되는 거였어, 라고. 해는 아직 뜨지 않았고, 거리는 어둠속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상실감이 랜턴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큼이나 크게 느껴졌다. 별 일도 아닌데. 경비의 당황하는 모습이 감지되었다. 개인적인 문제로 괜히 상관없는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았다. 이러려던 것은 아니었다.
“미안해요.”
말을 뱉고 보자 이번엔 울음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쏟아지는 것은 울음만이 아니었다. 입에서는 해선 안 될 말들과 할 필요 없는 말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조차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언어들이었다. 마치 방언처럼, 성대를 뚫고 올라와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오는 낱말들, 어휘들, 소리들.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못했던 걱정과 번민. 결국 나는 경찰서에 찾아갔던 일까지 털어놓고 말았다. 경비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집게를 든 손으로 서있었다. 무언가 위로의 표현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챌 수 없는 것
처럼.
“남편이 사라졌어요.”
나는 끝내 그 말을 입 밖에 내뱉고야 말았다.
*
날이 밝자마자 나는 오브라이언 여사가 준비한 아침을 먹고, 남편이 다녔다는 어학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아침은 간단하게 감자 한 쪽과 토스트, 홍차 한 잔이었다. 평범한 아침 식사인데도 맛이 있었다. 구운 감자에서 향긋한 버터향이 났고, 직접 만들었다는 사과잼이 토스트에 배어들어 입맛을 돋웠다. 나의 칭찬에 오브라이언 여사가 웃음 지었다. 나는 홍차에 우유 한 방울을 타 넣었다. 남편도 동일한 메뉴를 먹었을 것이다. 우유를 섞은 홍차는 달고 부드러웠다. 오브라이언 여사가 차를 더 따라 주었다. 나는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괜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토탄으로 불을 피운 벽난로 위에 오브라이언 여사의 가족사진만이 놓여 있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의 남편까지도. 나는 잡념을 떨치려고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식사가 끝난 후, 집 앞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에서 리손 스트리트(Leeson Street)행 루아스를 탔다. 어제와는 또 다른 풍경이 천천히 드러났다. 더블린은 수채화 같았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회색 도로와 좌우로 펼쳐진 벽돌 건물들. 햇빛이 없어도 괜찮은 아침이었다. 정류장마다 위치한 신호등에서 자명종 같은 소리가 났고, 옆으로 늘어선 카페에선 고소한 커피 향기가 났다. 나는 한 손을 턱에 괴고 투명한 창으로 바깥을 응시했다.
흐린 도로를 20분쯤 달린 후, 루아스에서 하차했다. 리피 강을 가로지르는 하페니 브릿지(Half-penny Bridge)를 건넜다. 다리 아래로 맑은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5분 정도 더 걷자 ‘링구아비바 센터(The Linguaviva Centre)’라는 간판이 달린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우체통처럼 빨간 대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 센터 문을 열었다. 1층 리셉션에 들어서자 직원이 인사를 하고 상담실로 안내했다. 남편이 다녔다던 어학원이었다.
직원이 문을 노크하더니 들어왔다. 직원의 손에는 복사된 서류들이 들려 있었다. 이것들이 내 남편, 이준호에 대한 정보들이라고 했다. 나는 서류를 받아 들고 천천히 장을 넘겼다.
영어 이름은 주노(Juno). 중급 클래스. 연령은 만 나이인 37로 기록되어 있었다. 직업은 학생. 체류 목적은 영어실력 향상, 이라고. 웃음이 나려고 했다. 터무니없는 서술이었다. 남편은 무엇을 하려고, 무엇이 되려고 이곳에 왔던 걸까. 늦은 나이에 영어실력 향상이라니. 어학연수를 갈 거라면 가까운 필리핀도 있는데.
“친하게 지낸 한국 학생들은 없나요?”
내 질문에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원은 남편이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곳은 소규모 어학원이라 각 클래스의 인원수가 10명 미만으로 적은 편이었다. 특히 한국인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위계질서가 있는 한국 문화의 특성상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과는 친하게 지내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이나 교직원들과는 어땠을까.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주노는 여기서 말이 없는 편이었어요.”
나는 서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종이 몇 장에 적힌 영어 문장들이 남편의 신상명세를 대신하고 있었다. 남편의 자기소개서에는 자신이 요리를 공부하는 학생이며, 가족관계는 부모와 형 한 명뿐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법에 비해 부족한 영어회화 실력을 향상하는 것이 어학원에서의 계획이라고. 직원의 눈에 떠오른 의아한 빛을 나는 외면했다. 서류들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나는 물었다.
“다음 계획은 뭐라고 했나요?”
“글쎄요.” 직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단지 그는 이것이 자신에게 큰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곳에서의 큰 기회, 라고. 서류를 든 손가락이 떨려 왔다. 제약회사 인사팀에 근무하던, 차장 진급 심사를 앞두고 있던, 결혼한 지 5년 된, 우리를 닮은 2세를 만들려고 노력하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던, 한지음의 남편 이준호는 어디로 가 버렸을까. 나는 어떤 남자를 알아왔던 걸까. 복합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기회라고, 남편은 쉽게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없는 이곳에서. 나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직원에게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래서요? 다음 계획은 뭐라고 했나요.
“그는 떠난다고 했습니다.”
서른 살의 끝자락에 결혼을 했다. 인생은 마치 이어달리기 같았다. 하나의 고비를 넘으면 또 하나의 장애물이 나타났다. 대학이 그러했고 공무원 시험이 그러했고, 또 결혼이 그러했다. 어른들의 소개를 가장한 선이었다. 나는 시험 예상 문제를 푸는 것처럼 만남을 준비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백화점에 가서 원피스를 샀다. A라인의 검정 원피스가 단정하게 무릎까지 떨어졌다. 회사에 오후 연차를 내고 피부관리실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만나기로 한 커피숍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매주 발행되는 영화잡지를 읽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자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옆으로 길게 늘어진 작은 눈이 선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 넓지 않은 이마가 반듯했다. 첫눈에 반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어쩌면 나는 이 남자와 결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르겠다. 그저 그 때쯤에는 결혼이란 걸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평생의 친구가 되어 줄래, 그가 청혼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러포즈 문구가 영화 대사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남편은 영화를 좋아했다. 퇴근하고 남편과 침대에 같이 누워 신작 영화를 보는 것이 결혼 후 새로 생긴 취미였다. 드라마틱한 삶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다. 다음 이어달리기에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 전까지.
결혼하고 삼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숙제를 끝내지 않았는데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기분이었다. 어른들은 대놓고 재촉하진 않았다. 그 배려가 더 나를 압박했다. 총 6번의 시험관 시술을 했다. 임신이 되진 않았지만 냉동 배아 하나를 건질 수 있었다. 다음 시험관 시술에 이식할 수 있는 세포였다. 다음이라는 말. 다음을 위해, 나는 그 후로 시술을 미뤄 두었다. 그 말이 가진 불완전한 희망을 계속 붙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의 마지막 통화가 떠올랐다. 몸살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임신이 아닐까, 헛된 꿈을 꾸기도 했었던 그날. 네잎클로버와 행운에 관해 얘기를 나눴던 아침. 감기약을 먹지 않고 버텼지만 생리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다음 날 병원에선 냉동 배아 연장에 관한 문의 전화가 왔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다음에, 라고 대답했다. 다음에. 그렇게 남편과의 관계도 미뤄 둔 숙제처럼 묻어 뒀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편은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고요함이 한없이 듬직할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깊은 속을 알 수 없게도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이렇게, 남편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았을 텐데.
작별 인사를 하고 어학원 문을 나섰다. 나는 홈스테이까지 도보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긴 거리라는 오코넬 스트리트를 거쳐 뜨개질바늘 모양을 한 스파이어 첨탑을 지났다. 길을 좀 더 걷자 전면에 중앙우체국이 나타났다. 1916년 부활절 봉기 시 사령부 역할을 했던 우체국은,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피의 역사를 나타내듯 건물의 기둥과 벽에 총탄 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 벽면에는 독립 선언문이 걸려 있었고, 관련된 판화와 그림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00년 전에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곳곳에 고전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안에는 우편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 묘한 모습이었다.
우편 취급 창구는 3개 있었다. 나는 데스크에서 우표와 편지봉투를 구매했다. 어딘가에 보낼 곳도, 누군가에게 쓸 곳도 없었다. 하지만 직업 정신이 불러온 호기심이 나를 부추겼다.
2유로를 내밀자 직원이 잔돈을 거슬러 주었다. 탁자에 서서 부칠 곳 없는 편지봉투와 우표를 만지작거렸다. 어디로 가야 할까. 찍히지 않은 스탬프처럼, 나의 다음 발길도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었다.
창구 안에서 직원이 카트를 끌고 나왔다. 직원의 동선에 따라 사람들이 양 옆으로 물러났다. 카트 안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우편물들이 놓여 있었다. 버려지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카트에 실려 어딘가로 떠나는 우편물들을 그저 바라보았다. 안녕, 인사할 새도없이 그것들은 눈앞에서 사라져 갔다. 사라진 남편의 마지막 인사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더블린 중앙우체국의 대기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내 남편, 이준호에 대해서.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고 나는 그 자리에 머무른다고. 가만히. 홀로 앉아서.
*
- 사건 접수번호 514-64-99040. 이름: 이준호. 주민번호: 800528-1******. 나이: 39세. 성
별: 남. 관계: 배우자. - 실종 장소:
“……그러니까 그게 어딘지를 모르시겠단 말씀이시죠?”
한숨을 쉬듯 나지막한 목소리. 조사실에 앉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전형적인 형사나 경찰의 모습은 아니었다. 야근을 했는지 얼굴은 피로해 보였지만 턱밑은 깔끔하게 면도되어 있었고, 기동성을 중시하듯 운동화를 신었지만 옷차림은 캐주얼 정장이었다. 남자는 조사실 책상에 자리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워드프로세서의 커서가 깜박거렸다. 경찰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거대한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현실은 실종인지 가출인지 모를 사건을 접수하는 데에 이골이 난 듯했다.
“연락이 안 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일주일째입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남자가 볼펜으로 책상 끝을 두드렸다. 경찰서 안은 뭔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데가 있었다. 철제 책상은 좁고 조명은 지나치게 밝았다. 나는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입술 끝을 물어뜯었다.
“단순히 전화가 안 된다고 수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남자는 귀 밑까지 내려온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올렸다. 알고 있었다. 아니 몰랐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나는 견딜 수 없어 무작정 찾아온 참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홀로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절차 같은 건 몰랐다. 단지 무언가가 없어지면 찾아주는 게 경찰이 하는 일 아니었던가. 그게 누구이든, 뭐가 됐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단순 가출인에 대한 추적 수사로 방향을 잡겠습니다. 일반적으로 18세 미만이거나 여성 혹은 아동인 경우,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납치 등으로 판단될 때는 실종 수사로 전환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경우는…….”
이 대목에서 남자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끊었다. 나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남자의 형식적인 말이 철 지난 녹음기처럼 흘러나왔다. 낮은 목소리로 정확하게, 새로 산 냉장고의 사용 매뉴얼을 읊는 것처럼. 남편 이준호 씨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고 사리분별이 정확하며,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지금은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다.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남자는 말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남편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니다. 내 남편은 내가 안다. 아니, 이런 단정적인 믿음이 지금 같은 상황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걸까.
“국내도 아닌 해외라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남자가 숨을 골랐다. 나는 화가 났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가. 내 남편은 사라졌고 나는 행방을 찾아야 했다. 그곳이 지금처럼 밤이 아니라, 여덟 시간이나 느린 한낮의 어딘가라고 해도. 이번엔 남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케이스는 남자에게 아주 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 직장에 연락은 해 보셨나요?”
연락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전날 밤 네덜란드 현지 법인으로 국제 전화를 했을 때, 직원은 의아한 목소리로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남편은 분명 암스테르담에 있어야 했다. 한국과 8시간 시차가 나는, 여기가 아닌 그곳에.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아침에 서울 본사 인사팀으로 전화했다. 데스크에서는 직원 명단에 이준호 라는 이름은 없다고 했다. 이미 퇴사한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다. 5년 동안 알아왔던 남편이 아무런 징후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마음속의 무언가가 조금씩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던 세계가, 먹다 남은 쿠키처럼 바스락거리는 것 같았다.
“엄밀히 말해서,”그가 책상을 두드렸다.
“남편이 자발적으로 사라졌을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남자의 왼쪽 손목에 채워진 시계가 조명을 받아 유독 빛났다. 남자가 머리를 쓸어올렸다.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나는 일어섰다. 참을성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남자는 정중했지만 무례했다. 나는 정식으로 윗선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지만 어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남자가 책상을 두드리던 손길을 멈췄다. 그것조차 의외의 반응은 아닌 듯 했다. 그런 식으로 컴플레인을 거는 여자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으니까. 마치 쇼핑센터의 진상 고객처럼.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조사실의 문손잡이를 돌리며 남자가 대답 대신 명함을 내밀었다.
“단서가 나오면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더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천천히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고객님. 쇼핑센터의 안내 직원처럼, 일정하고 규칙적인 톤이었다. 조사실의 문이 뒤에서 닫혔다.
어둠은 여전히 눈에 익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온 집안의 불을 환하게 켰다. 모든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한바탕 나쁜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남편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나는 컴퓨터를 켰다. 영사관 홈페이지와 한인회 커뮤니티에 접속해 글을 남겼다. 남편을 찾습니다. 마치 갑작스레 헤어진 이산가족처럼. 어쩌면 그것은 매우 이상한 글이었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자음과 모음이 섞인 부호들이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밤이 늦었지만 잠들 수가 없었다. 나는 리모컨을 들고 멍하니 TV 채널을 돌려댔다. 케이블 채널에서 영화를 방영하고 있었다. 남편과 극장에서 봤던 영화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줄리에타’라는 2016년 작품이었다. 12년 전 가출한 딸의 소식을 듣게 된 줄리에타의 여정을 다룬 이야기였다. 영화 속 줄리에타는 편지에서 딸에게 이렇게 쓰고 있었다.
내겐 남은 게 없어. 너만 존재할 뿐
네가 없다는 공허함이 내 삶을 파괴하고 있어
나는 그날 불을 끄지 않고 잠들었다.
*
발길은 시티센터 중앙에 위치한 세인트 스티븐스 그린 공원까지 이르렀다.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좇아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석조로 지어진 고딕 양식의 정문이 개선문처럼 웅장했다. 넓은 공원에 키가 낮은 잔디들이 심어져 있었다. 호수를 끼고 도는 한쪽 면엔 아트마켓이 열리는 중이었다. 여러 명의 화가와 사진사들이 자신의 그림과 사진들을 전시했다. 부활절 봉기를 기린 기념사진과 동상 사이에서, 그것들은 저마다 개성을 뽐내면서도 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호수를 끼고 좀 더 걸어가기로 했다. 음악 소리는 끊어질듯하면서 계속됐다. 호수 끝 잔디밭에서 누군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마른 몸에 껑충한 키, 스프링처럼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나와 닮은 얼굴. 키다리 아가씨다.
허스키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잔잔한 호수에 파장을 일으켰다. 백조와 청둥오리들이 한가롭게 물 위를 떠다녔다. 버스킹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사람들이 모르는 생소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내게도 낯선 것으로 보아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인 듯했다. 공원에는 산책 나온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관심을 가지는 구경꾼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키다리 아가씨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온몸으로 퍼포먼스를 펼치며 노래를 불렀다. 제 키만큼 큰 기타를 들고, 호수의 청둥오리들을 관객 삼아서. 벤치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가 기타 선율과 만나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 냈다. 삐삐처럼 양 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키다리 아가씨는 내가 준 갈색 점퍼를 망토처럼 걸치고 있었다. 잘 어울렸다.
3분 정도의 짧은 노래가 끝나자 키다리 아가씨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나는 박수를 쳤다. 키다리 아가씨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웃으며 다가왔다. 키다리 아가씨가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손을 잡자 그녀가 반갑게 손을 흔들어 댔다. 낯선 곳에서 두 번이나 만난 우연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긴, 더블린에 온 관광객이 갈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노래 제목이 뭐예요?”
키다리 아가씨가 코끝을 가볍게 찡그렸다. 주근깨가 선처럼 가로로 접혔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음……, 삐삐롱스타킹의 밑창 터진 운동화는 어디로 달려가나?”
내가 언뜻 알아듣지 못하자 그녀가 다시 제목을 말해 주었다. 즉흥적으로 지은 거예요, 하고 키다리 아가씨가 웃었다. 생의 미스터리를 담은 노래라고 했다. 삐삐롱스타킹의 밑창터진 운동화처럼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재미있는 제목이었다. 버스킹은 오늘이 첫 날이라고 했다. 키다리 아가씨의 이름은 노엘. 본명이냐고 물으니 그녀가 비밀스럽게 웃었다. 그것조차 미스터리예요, 라고 하면서.
야심차게 시작한 버스킹은 싱겁게 끝이 났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후드득 떨어졌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말썽이었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누웠던 연인들이 재빠르게 자리를 걷었다. 호수에서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던 학생들이 후드티로 머리를 가리고 뛰어갔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산책하던 사람들도 걸음을 바삐 했다. 우리도 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노엘이 기타를 챙겼다. 나는 흩어진 악보와 자잘한 장비들을 거둬서 건네줬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엘이 아무렇지 않게 내 팔짱을 꼈다. 이것도 인연인데 술이나 한 잔 하자면서 이끌었다. 그러기엔 너무나 이른 시각인데도.
“뭐 어때요. 여긴 아일랜드잖아요.”
옆으로 다가온 노엘에게서 젖은 잔디 냄새가 났다. 우리는 공원 근처에 위치한 펍으로 들어갔다. 1800년대에 만들어진 교회를 개조해 술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큰 창문이 웅장한 느낌을 주었고, 은은한 조명이 분위기를 돋우었다. 고전적인 파이프 오르간이 2층 벽에 장식처럼 붙어 있었는데, 바다처럼 깊은 소리가 금방이라도 울려 퍼질 것 같았다. 기네스 한 잔씩을 시키고 축축한 옷과 머리를 털었다. 펍에서는 아이리쉬 전통 음악이 라이브로 연주되고 있었다. 타악기에 화음이 들어간 특유의 가락이 사이렌의 노래를 연상시켰다. 바다에 홀린 뱃사공들처럼 사람들의 옷자락에 비가 배어 있었다.
주문한 기네스 맥주가 나왔다. 내가 한 모금을 채 입에 대기도 전에, 노엘은 자신의 몫으
로 할당된 잔을 급하게 넘겼다. 포세이돈이 바닷물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거침없는 속도였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처럼. 그리 크지 않은 노엘의 눈이 점차 풀어졌다. 빈 술잔이 늘어날수록 노엘은 말이 많아졌다. 혼자서 여행한 지는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다음 행선지로 훌쩍 떠나왔다. 쿠바,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거쳐서 아일랜드까지. 북아일랜드까지 다 돌면 아프리카를 가 볼까 한다고 했다. 세계를 떠도는 유랑음악가가 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한국을 떠나게 된 계기는 충격적이었지만 노엘은 천진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웃었다. 잠시 사귀었던 인디밴드 보컬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공연을 앞두고 자신의 옥탑방에서 쓰러진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 다짐했다. 인생을 오늘처럼, 반짝반짝 살아야겠다고2). 그 후로 무작정 한국을 떠나왔다고 했다.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나름의 애도였을까.
“애도라기보다는, 두려움이죠.”
노엘이 기네스 한 잔을 더 비웠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목소리가 왠지 떨리는 것 같았다. 긴 머리카락을 어지럽히는 바람만큼이나 노엘의 표정은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 주근깨로 덮인 눈 밑의 그늘이 깊어 보였다. 그것은 설명하지 못할 슬픔과, 어찌할 수 없는 공포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 같았다. 벼랑 끝에 발을 딛고 선 사람처럼 위태로운 모습. 이제 곧 바다로 떨어질 일만 남은, 귀를 틀어막지 않은 뱃사공처럼.
“그런데 지음 씨는 어떻게 아일랜드까지 오게 됐어요?”
화제를 전환시키려는 듯 노엘이 내게 물었다. 나는 머뭇거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내 사정을 말한다는 게 어색했다. 동시에 무거운 짐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실종된 남편의 흔적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노엘은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충분히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정말 노엘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겪었던 건지도 모른다.
“남편이 보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노엘의 질문에 나는 기네스 한 잔을 비우고 또 술을 주문했다. 직접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정도로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신혼의 달콤함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래도 남편이 해외로 떠난 후, 가끔씩 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병원에서 냉동배아 연장 관련 전화가 왔을 때, 혼자서 영화를 볼 때, 불을 끄지 않고 잠들었을 때, 그리고 그런 비슷한 여러 날들에. 남편은 언제나 바빴고, 그의 24시간은 빈틈없이 짜여 있었다. 하루 두 번의 전화도 그 시간표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본인이 없으면 돌아
가지 않는다고 믿는 회사 업무처럼. 그러니 남편은 실종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현지에서 직원 채용 업무를 하며, 서울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모든 정보가 거짓으로 밝혀진 지금도 나는 여전히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지도 몰랐다.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노엘은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셨다. 그 흔한 동정이나 위로의 표현도 없이. 나는 그녀의 그런 무심한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술이 달았다. 나도 어느새 취해 있었다. 바닥 무늬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헬륨가스라도 마신 듯 자꾸 웃음이 났다. 내 몸이 풍선처럼 떠오르는 것 같았다. 노엘은 탁자 위에 쓰러져 있었다. 삐삐 머리카락이 탁자 위에 바게뜨처럼 얹혀 있었다. 노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끝이 정해져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거, 그거 진짜 어려운 거예요.”
탁자 위에 엎드려 있던 노엘이 뜻 모를 말을 던졌다. 뭐라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남편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남들 다 하는 연애와 결혼. 하지만 남들 다 하는 임신에는 실패했고, 이제 남편은 실종되었다. 처음 남편을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영화 잡지를 읽고 있던 그가 나를 향해 웃으며 일어섰을 때, 내가 그의 가늘고 부드러운 손을 잡았을 때, 그때 이미 정해진 끝이 있었던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오늘을 살아야죠.”
나조차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노엘을 움직이게 했다. 노엘이 탁자에서 고개를 들었다. 풀어져 있던 그녀의 눈이 한순간 반짝거렸다.
“같이 다닐래요? 전 꿈대로 음악 여행을 하고, 당신은 남편을 찾는 거죠.”
생각지 못한 제의였다. 술을 많이 마셨지만 노엘은 진심 같았다. 가난한 유랑음악가에겐 스폰서가 필요하고, 외국에서 남편을 찾는 여자에겐 통역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아닌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피어올랐다. 적어도 영어가 능숙한 노엘과 다니면 많은 불편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음악이 바뀌었다.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빠른 리듬에 맞춰 사람들이 아이리쉬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화려한 탭 댄스와 경쾌한 율동으로 무대가 떠들썩해졌다. 노엘이 내 팔짱을 꼈다.
“같이 나가요.”
내가 부끄러워하며 거절하자 노엘이 혼자 무대로 나가 무리에 끼었다.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옆 사람의 손을 잡은 노엘의 형체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음악은 점점 빨라졌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노엘은 위험하지만 자유로워 보였다.
계획된 내일이 없이도, 오늘을 사는. 문득 나도 저렇게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행동에서 왠지 모를 후련함이 느껴지기도했다. 우리는 같으면서도 다른 처지에 놓여 있었다.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세계를 떠도는 노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유로 떠난 남편을 찾아, 여기까지 온 나. 아일랜드. 누구나 춤출 수 있고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나는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술을 마시는 노엘의 모습을, 점점 더 빨라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큰소리로 웃는 노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
우편취급국의 낮은 길었다. 남편이 실종되었어도 일은 해야 했다. 늘 그랬지만 그날은 특히 종일 정신이 없었다. 마지막 업무를 끝냈을 때는 저녁 8시 반이었다. 문을 닫고 우편취
급국 밖으로 나섰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서였다.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밝혀진 것은 없
었다. 네덜란드 유학생 커뮤니티와 이민자 네트워크를 수소문했지만, 남편을 보았다는 사람
은 없었다.
“더 새로운 소식이 있나요?”
나는 물었다. 새로운 소식이 있었다면 진작 연락이 왔을 것이다. 설사 그런 정보가 있다
고 해도 더 이상은 기대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매우 지쳐 있었다. 전화
기 저편의 남자는 무슨 말인가 할 듯 말 듯 머뭇거렸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남편이 간 곳은 네덜란드가 아닙니다.”
뜻밖의 말에 놀라,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전화통화 너머 남편의
시계는 여덟 시간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내일이 와도 그의 오늘은 끝나지 않았었다. 지금
남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종착지로 가기 위한 경유지였습니다.” 이쯤에서 남자는 깊은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럼 남편은 대체 어디로 갔다는 거죠?”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질문했다.
“지음 씨의 남편은, 아일랜드로 떠났습니다.”
아일랜드. 영국 옆에 붙어 있는, 지도상의 조그마한 섬나라. 문득 켈트족과 드루이드교 사
제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지막 남편과 전화 통화에서, 남편은 네잎클로버와 행운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게 단서였을까. 엉망진창인 퀴즈 쇼에서 누구도 알아맞히지 못한 문제
에 주는 마지막 힌트처럼.
“이준호 씨는 4월 1일 KLM항공 KL828편으로 출국했습니다. 서울 주재 아일랜드 연계
유학원들을 탐문한 결과, 같은 이름과 연령대의 고객이 상담한 기록을 찾을 수 있었습니
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지도 못한 채로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4월 1일에 출국이라니, 만
우절의 거짓말 같았다. 떠나기 전 남편에게선 어떤 징조도, 특이하게 기억될 만한 어떤 암
시도 없었다. 그저 기념우표와 행운에 관한 얘기를 했을 뿐이었다.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표현 없이도 5년을 살을 맞대고 살아온 부부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단지 나는 남편의 소식을
알고 싶었을 뿐이다. 어떻게 지내는지, 왜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지, 오해가 있다면 나타
나서 풀어 주기를 원했을 뿐이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다.
“수사를 통해 남편 이준호 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남편과 연락이 닿았는데 왜 전화를 건 곳은 경찰서일까. 남편은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일
까. 지금쯤이면 업무도 거의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해야 될 시점인데.
“그는 경찰 연락을 스스로, 거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실종된 것이지요.”
스스로, 혹은 자발적, 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듯이 남자는 그 부분을 강조해 말했다. 내
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퀴즈 쇼인 줄 알았던 프로그램
이 실은 몰래카메라로 밝혀진 것 같았다.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남자의 모든 말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남편 이준호 씨는 누구도 만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아일랜드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을 쥔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죄송합니다, 전화 속 남자가 사과
의 말을 덧붙였다. 왜 사과를 하는 걸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닌
데. 나는 남편을 생각했다. 창문에 비친 실루엣처럼 남편의 윤곽은 흐릿했다. 그는 어떤 사
람이었던가. 조용하고 차분한, 속을 알 수 없는, 영화를 좋아하는, 대기업 인사팀에 근무하
던, 아이를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던, 차장 진급 심사를 앞두고 있던, 곧게 뻗
은 직선처럼 앞으로만 거침없이 나아가던 그 사람, 내 남편 이준호는.
집으로 돌아와서 한 것은 대청소였다. 남편이 남기고 간 모든 흔적을 없애고 싶었다. 그
의 책장을 들추고 컴퓨터를 뒤지고 서랍장을 헤쳤다. 어디에나 남편의 채취가 남아 있었다.
없애버리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치우고 또 치워도 사라지지 않는 잔해들이 나를 괴롭혔다.
책들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컴퓨터를 치우고 서랍장을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울었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다만 나 혼자서.
경비는 쓰레기장 앞에 집게를 들고 서 있었다. 나를 발견한 경비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회초리처럼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얼굴에 드리운 채로. 나는 재활용품을
분리하고 쓰레기봉투를 지정된 장소에 내놓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다른 곳으로 이사라
도 가는 것처럼 쓰레기는 양이 많았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장미가 아름답게 피
어 있었고, 바람에 잔가지를 흔드는 나무들은 푸르렀다. 말없이 뒤돌아 집으로 들어가려는
데, 경비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이봐요, 아가씨.”
내게 다가온 경비가 머뭇거리며 말문을 떼었다.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람처럼, 서툴고 불필요한 동작이었다. 밤은 아직도 많이 남
아 있었다. 나는 내 몫의 쓰레기를 다 버리고 집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경비가 집게를
들었다. 위노나 라이더와 조니 뎁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가위손’처럼. 그가 한 걸음
더 내게 다가왔다.
“행운을 빌어요.”
그의 마지막 말에 나는 목이 메었다.
*
드물게 해가 났다. 하늘은 맑았고, 햇빛은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들처럼 대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거리는 오랜만에 따스한 볕을 쬐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테이크아웃 커피 잔
을 손에 쥐고 산책하는 직장인들, 간편한 운동복을 입고 공원 한 바퀴를 도는 이웃들, 거울
처럼 투명한 리피 강에 맨발을 담근 학생들, 아무 데서나 웃통을 벗고 드러누운 젊은이들도
있었다.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과 포근한 기온. 활기 찬 거리와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 떠나
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별다른 소득 없이 날짜가 지났다. 남편의 흔적은 물러간 먹구름처럼 잡히지 않았고, 낯설
었던 거리만이 조금 친근해졌을 뿐이었다. 이유도 없이 사라진 남편을 찾아 기약도 없이 낸
휴직계,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여행 경비……. 도시는 그 모든 문제
를 떠나 아름다웠다. 풋사과처럼 진한 녹색 우체통이 있는 중앙우체국, 이름 모를 독립운동
가들의 동상이 위치한 오코넬 거리, 제임스 조이스와 오스카 와일드의 추억을 간직한 작가
박물관, 예이츠 일가의 작품을 모아 둔 국립미술관, 호쓰의 신비로운 마을과 호수들……. 나
는 남편을 찾는 데에 약간 지쳤고, 이 모든 짓이 부질없다는 생각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한국에서 온 경찰의 연락은 단순했다. 마지막 신용카드 내역과 이동 방향을 고려해 봤을
때(마지막 내역은 R477 국도에 위치한 무인 주유소였다.), 남편의 목적지는 골웨이 같다고
했다. 골웨이. 발음도 어려운 그 지역은 더블린에서도 가로로 3시간을 더 달려야 하는 서쪽
도시였다. 그곳에서 남편 명의로 새 휴대폰을 개통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한인 네트워크와
지역 커뮤니티를 수소문한 결과, 펍에서 그를 보았다는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해산물과
굴을 주요리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관광지인 모허 절벽과는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평상시에는 한가로운 곳이라고 했다.
뚜껑이 열리는 주황색 포드 머스탱 스포츠카는, 순전히 노엘의 선택이었다. 이유는 단순
했다. 예쁘잖아요, 헤헤. 노엘이 뒷머리를 긁으며 천진하게 웃었다. 렌터카 직원이 권한 흰
색 중소형 SUV는 2차선 국도를 달리기에 무난해 보였지만, 노엘의 취향을 충족시키지는 못
했다. 오브라이언 여사가 마이크의 미니버스를 빌려 주겠다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행운을 빌어요.”
짧은 작별인사였다. 오브라이언 여사가 내 눈을 바라봤다. 담담하고 따뜻한 눈빛이었다.
나는 오브라이언 여사의 손을 잡았다. 주름진 손에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걸었다. 스포츠카가 달리는 길 양 옆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들이 늘어섰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상큼한 박하향이 바람에 실려 공기 중에 떠 다녔다. 라디
오를 켰다. 크랜베리스의 ‘Just my imagination’이 흘러나왔다. 노엘이 노래를 따라 부르
기 시작했다. 차가 시내를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었다. 높고 낮은 건물들로 가득했던 회색
빛 풍경이 사라지고 푸른 벌판이 펼쳐졌다. 노엘의 노래는 라디오 음악이 끊어지고도 계속
이어졌다. 여행을 떠나요. 이번에는 노엘이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
요, 음음. 시냇물을 따라, 산과 들을 지나서. 즉흥적으로 지었는지 노래는 드문드문 빈 듯하
면서 계속되었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높였다.
나는 남편을 상상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났다 현실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훌쩍, 가벼운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별다른 조짐은 없었다. 퇴
근 시간은 일정했다. 특별히 늦거나 일찍 오는 법도 없었다. 밤 11시면 어김없이 현관에 불
이 켜졌고, 남편은 하루 종일 자신을 옥죄던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발을 들여놓았다. 저녁은
밖에서 먹었다고 했다. 규칙적이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내 안으로 들어오던 날도 있었다. 나
는 TV를 보고 있었고, 남편은 간단히 샤워를 한 뒤 침대로 바로 올라왔다. 첫키스를 시도하
는 소년처럼, 남편은 서투르면서도 다정했다. 서로의 타액이 섞이고 부드러운 손길로 몸이
적당히 달아오르면, 나는 남편을 받아들였다. 때로 성급할 때도 있었지만 크게 불만은 없었
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면. 가능성 있는 추론이었다. 다른 여자를 만나 그녀의 손을
잡고, 혹은 그녀가 남편의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한다. 어쩌면 그녀의 집으로 갈지도 모른
다. 도심에 위치한 오피스텔이나 중소형의 아파트였을까. 번화가의 무인 모텔이나 한적한
곳에 위치한 러브호텔일지도. 둘은 키스를 하고 몸을 섞는다.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나는 고
개를 흔들고 운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비합리적인 공상이었다. 머릿속에서 솟아난 의심
을 그대로 믿어 버리기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남편에게서 낯선 채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바람이라면, 그렇게 몇 년 동안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을까.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그렇다면 왜 거짓말을 했을까. 나에게는 말하지 못할, 중요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
까. 생각할수록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는 왜 떠난 것일까.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곳까지
와서. 나는 한 손을 이마 위에 올렸다. 머리가 아파 왔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울퉁불퉁해졌
다. 도시의 느낌이 옅어지고 사방이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초원에는 말과 양을 비롯
한 가축들이 방목되고 있었다. 길이 미끄러웠다. 자칫 잘못하면 진창으로 빠질 수 있었다.
나는 운전대를 꽉 쥐었다.
기어이 비가 쏟아졌다. 서쪽으로 한 시간 반쯤 갔을 때였다.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
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차 뚜껑을 올렸지만 시트며 옷이 금세 젖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차를 갓길에 댔다. 양옆으로 늘어선 초원이 잉크라도 푼 것처럼 짙어졌다. 비를 만난 말들
과 양떼들이 큰 소리로 울어댔다. 뭐가 그리 웃긴지, 노엘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노엘의 긴
머리카락이 비 맞은 양털처럼 부스스해졌다. 나도 실없이 웃음이 났다. 우리는 한동안 차를
세운 채로 원 없이 웃어댔다.
어느 정도 비가 잠잠해지자 나는 차를 출발시키려 했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난감했다.
그제야 노엘도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예쁜 모양새가 무색하게 비 맞은 스
포츠카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역시 직원이 권해 준 SUV를 골랐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지나가는 차의 도움을 기다리기로 했다. 도로는 한적했다. 우리는 꼼짝없이 갇혀 언제 올지
모를 차를 기다렸다. 라디오에서는 처음 듣는 음악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빗소리가 창틀을
똑똑 두드렸다.
“심심해요.”
노엘이 이야기를 종용했다. 지나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차 시트를 뒤로 젖혔다. 우
리는 누운 채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에서의 일상들이 주된 이야깃거리였다.
우체국에서 진상 민원인들을 상대하던 일이며 5년간의 심심한 결혼 생활, 출퇴근의 어려움
같은 시시한 소재들. 노엘도 간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홍대 입구 놀이터에서 혼자 공
연을 하던 이야기, 큰돈을 주고 산 기타가 한 번의 퍼포먼스로 부서져버린 에피소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밴드를 만들려다 결국 무산된 이야기까지. 썬루프를 단 차 천장이 투명했
다. 가는 비가 그 위로 떨어졌다. 조난당한 조각배처럼, 스포츠카는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망망대해에 외따로 떨어진 것 같았다.
경적 소리에 눈을 떴다. 깜박 잠이 들었던가 보았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나는 차
밖으로 나왔다. 마이크의 미니버스였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숲을 닮은 녹색 눈동
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유채꽃을 닮은 노란색 반팔 셔츠에 물이 적당히 빠진 청바지가 잘
어울렸다. 결국 오브라이언 여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마이크도 마침 골웨이 방면으
로 아란 스웨터 배달을 가는 길이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렌터카 처리는 오브라이언 여사에
게 맡기고, 일단 마이크의 버스를 빌려 타기로 했다. 노엘은 뒷좌석에, 나와 마이크는 앞좌
석에 앉았다. 하이, 마이크가 고개를 돌려 초면인 노엘에게 인사했다. 하얀 두 볼에 보조개
가 깊게 패었다. 하이, 노엘이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이슬 맞은 안개꽃처럼 송골송골한 땀
방울이 콧잔등에 맺혀 있었다. 마이크의 눈길이 기타로 향했다.
“The greatest guitar.”
최고의 기타래요, 노엘이 말을 전했다. 1883년 설립된 그레치 사의 화이트 팔콘이라고 했
다. 하얀색 바디에 매의 날개를 닮은 헤드, 금색 브릿지에 높은음자리표를 닮은 무늬가 화
려하고 아름다웠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기타였다. 마이크도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때 밴드를 꿈꾸었던 적도 있다고. 정착해 살라는 가족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아일
랜드에 머물러 있지만, 기회가 있었다면 떠났을 거라고 했다. 나는 기회라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남편 이준호도 그렇게 얘기했다고 했다. 이것이 자신에게 큰 기회라고.
“내 기타를 알아봐 줘서 기뻐요.”
땡큐, 마이크. 노엘이 마이크의 볼에 입을 맞췄다. 마이크의 하얗던 뺨이 햇사과처럼 확
붉어졌다. 노엘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마이크가 아무렇지 않은 척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나
는 보았다. 마이크의 붉어진 뺨이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 것을.
고속도로를 타면서부터 길이 부드러워졌다. 오가는 차량도 많아졌다. 뒷좌석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있던 노엘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요, 음음. 시냇물을 따라, 산과
들을 지나서.
*
R478 국도를 돌아가자 클래어 카운티 해안도로가 펼쳐졌다. 230미터 높이의 거대한 절벽
이 바다와 만나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여행책에서나 보았던 모허 절벽이었다. 마이크가
잠깐 들렀다 가는 것을 제안했다. 아이리쉬에겐 일상이지만 관광객에게는 대단한 광경이 될
것이라며. 주차장 입구에서 입장권을 끊었다. 노엘이 언덕을 향해 내달렸다. 마이크와 나는
노엘이 간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여기예요!”
노엘이 우리를 불렀다. 절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관광객이 걸
어갈 수 있도록 조성된 8km의 산책로는 그 흔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마이크의 설명에 따르
면 최대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잘못 발을 디디면 깊이를 모르
는 바다로 추락할 수 있었다. 거대한 절벽이 아찔했다. 서늘한 바람이 이마에 닿았다. 절로
두 팔에 소름이 돋았다.
마이크가 예이츠의 시를 읊었다. 너 파도여, 뛰노는 아이들처럼 내 발 옆에 춤추고 있지
만, 이보다 더 따뜻했던 옛 6월의 파도는 더욱 즐거웠지. 내 가슴에 금가지 않은 어린 시절
에…….3) 가만히 서 있던 노엘이 안전선을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걸음을 빨리 했다.
노엘이 바람을 맞으며 섰다. 짙은 안개 때문에 절벽 밑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노엘이
두 팔을 벌렸다. 마이크가 뛰어갔다. 비행하는 새처럼 까치발을 한 순간, 마이크가 노엘의
팔을 낚아챘다. 팔의 힘이 얼마나 셌는지 노엘이 비명을 질렀다. 무슨 짓이냐며 마이크가
화를 냈다.
“그냥 장난이었어요.”
노엘이 겸연쩍은 듯 말했다. 나는 큰일 날 뻔했다며 소리치는 마이크를 말렸다. 괜찮다,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괜찮다, 괜찮다고 진정시키며. 하지만 내 심장 박동
은 긴장 때문인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대서양의 거센 파도소리만이
안개로 뒤덮인 절벽의 고요를 깨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우리는 절벽에서 뒤
로 물러나 근처의 록 숍(Rock Shop)으로 향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
지만 노엘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조금 추워서요, 노엘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마이크가
자신의 점퍼를 벗어 둘러 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핫초코를 시켜 먹었다. 달콤한 초콜릿 향
이 그나마 긴장을 풀어 주었다.
우리는 록 숍의 투명한 유리창으로 한동안 경치를 구경했다. 거친 파도가 절벽을 만나 부
서졌다. 문득, 오브라이언 여사의 집 거실에 있던 사진이 떠올랐다. 모허 절벽을 배경으로,
오브라이언 여사의 남편은 활짝 웃고 있었다. 그에게도 이 절벽에서 노엘처럼 뛰어들고 싶었던 한 순간이 있었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가 새삼 궁금해졌다. 나는 조심스레 마이
크에게 그에 대해 물었다. 사진을 봤다고, 오브라이언 여사에게 들었다고, 불행스런 교통사
고는 유감이라고. 그리고 또……. 노노, 마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의아해 마이크를 바
라봤다. 흥분한 마이크가 빠르게 말했다. 노엘이 옆에서 통역을 해 주었다.
“토니는 살아 있대요. 아일랜드 남쪽 코크라는 도시에서요. 그건 그러니까, 오브라이언
여사의 말은 단지 해프닝이라고.”
나는 찻잔을 두 손으로 잡았다. 예상 밖이었다. 오브라이언 여사는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
던 것이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아주 오래 전에, 죽었다고. 마이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더니 계속 말을 이어갔다. 흔한 외도였다고 했다. 토니는 한 곳에 매여 있는 성격이
아니었고, 그의 가정도 그러했다. 둘은 오래 전에 별거했고, 이혼이 합법화된 1995년에 공식
적으로 헤어졌다.
“미니버스는, 그래요. 토니의 것이었죠. 그가 떠날 때 남겨 주고 간. 단지 그뿐이래요.”
노엘이 옆에서 토니의 말을 전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핫초코를 마셨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그것은 금세 식어 있었다. 나는 오브라이언 여사를 생각했다. 그녀는 왜 그
런 거짓말을 했던 걸까. 알 수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의 사연이 있는 법이니까. 우체통에 아직 넣지 않은 편지처럼,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으로
그녀는 살아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남편이 자신을 떠나는 것보다는 죽었다고 하는 편
이 낫다고 위안해 가며.
마이크가 3억 년 전에 만들어진 모허 절벽과 그에 얽힌 요정의 전설을 얘기하기 시작했
다. 절벽의 남쪽 끝에는 돌로 변한 늙은 마녀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고, 북쪽에는 요정의
말들이 하늘로 날아오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얘기는 계속되었지만 누구도 제대로 듣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까의 일이 잔상에 남았다. 노엘은 정말 뛰어내리려고 했던 걸까.
궁금했지만 섣불리 묻지 않기로 했다. 다만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정말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단 한 발자국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었다. 나는 남편을 생각했다. 그
흔한 편지 한 장 없이, 에일나세라흐의 말들처럼 스스로 단절을 택한 남편을.
“잘못하면, 끝이었겠죠?”
노엘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노엘을 바라봤다. 펍에서 봤던 술에 취한 모습처럼,
노엘은 어느새 눈 밑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노엘의 눈을 응시했다. 주근깨를 머
금은 작은 눈이 순식간에 젖어들었다. 비에 맞아 눅눅해진 편지 봉투처럼. 모두의 선택에서
그냥, 이란 것은 없는 법이다. 나는 노엘의 가녀린 손을 잡으려다 말았다. 누군가를 위로하
기엔 아직 내가 너무 작았다. 위로도 응원도, 또 다른 누군가의 여유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것 같았다. 다시 비가 내리려 하고 있었다.
*
골웨이는 작은 항구도시였다. 중세시대 14개의 부족들이 지배했다는 도시는 전통과 현재
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1700년대부터 조성된 에어광장(Eyre Square)을 중심으로
각종 펍들과 레스토랑, 상점들이 반원형으로 들어섰다. 광장 안쪽엔 시민들이 쉴 수 있는
아담한 공원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곳곳에 설치된 철제 조형물들이 폭풍우 속을 항해하는
배처럼 역동성을 드러냈다. 마이크가 윌리엄 스트리트(William street)에 차를 주차시켰다. 노
엘과 내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고, 마이크는 배달 일 때문에 먼저
떠났다. 숙소는 B&B를 이용했다. 빨간색 대문을 가진 1층 벽돌집이었다. 현관 앞에 검은색 개가 우리를 반겼다. 노엘이 내민 손바닥을 개가 핥았다. 40대로 보이는 집주인이 악수를
청했다.
숙소를 나와 애비게이트 가에서 택시로 펍까지 이동했다. 자체 레드에일 생맥주를 생산하
는, 근방에서는 제법 이름난 펍이라고 했다. 골웨이에서 남편이 일했다는 곳이었다. 외관을
노랗게 페인트칠한 2층 건물로, 창문에는 손질된 장미꽃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왕관
쓴 하트를 두 손으로 든 클라다 반지 형태의 로고가 간판을 대신했다. 문은 나뭇결을 따라
파랗게 색칠이 되어 있었다. 오후 5시경의 펍은 아직 한산했다. 천장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램프들이 개성을 드러낸 채 매달려 있었고, 벽에는 박제된 사슴뿔이 달려 있었다. 정기적인
공연이 있는지, 안쪽 구석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접시를 닦던 바 스태프가 다가왔다. 노
엘은 블러드 레드 에일을 주문하고, 나는 아이리쉬 핫위스키를 시켰다. 노엘이 스태프에게
말을 걸었다. 남편의 사진을 꺼내 보여 주었다. 검은색 정장에 넥타이를 한 반명함판 사진
이었다.
그는 남편을 기억하고 있었다. 떠나기 전까지 같이 일을 했다고 했다. 스태프가 우리에게
주노와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온 와이프라고 하자 스태프가 고개를 갸웃거
렸다. 노엘이 이유를 물었다. 스태프가 대답했다. 노엘이 머뭇거리다 내게 말을 전했다.
“그는 가족이 없다고 했대요.”
그 자신이 from이자 to 라고 했다고. 수수께끼 같은 대답이었다. 나는 위스키를 들이켰다.
속에서 불이라도 붙은 듯 했다. 한 잔을 더 시켰다. 걱정스런 눈으로 노엘이 나를 지켜보았
다. 취하고 싶었지만 술을 마실수록 정신이 더 말짱해지는 것 같았다. 스태프가 다시 접시
를 닦기 시작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왜 남편은 떠났는지, 어쩌다 골웨이까지 오
게 됐는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생활은 어떻게 영위했는지 등등. 물음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나는 하릴없이 위스키 잔만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보니……. 뭔가 생각이
난 듯, 스태프가 접시를 닦던 손길을 멈췄다.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가득했다. 노엘이 대
답을 종용했다.
“주노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인 말입니다, 노엘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전달했다. 나는 남은 위스키를 단
숨에 들이켰다. 같이 일하던 스태프였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들이 사귀게 되었는지는 확실
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이 싹텄을 수도, 상대방의 적극적인 대쉬로 만남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었다. 계기가 어떻든 한 쌍이 된 그들은 제법 잘 어울렸다고 했다. 마치
진짜 부부처럼.
결국은 그런 시시한 이유 때문에.
나는 위스키를 더 시킬 생각도 못하고 바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스태프가 접시를 닦는
뒤쪽으로, 선반에 액자가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이 다 같이 찍은 사진인 것
같았다. 노엘이 그것에 대해 질문하자, 스태프가 액자에서 사진을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오
이스터 요리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을 때 사진이라고 했다.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현수막을
배경으로 총 여섯 명이 트로피를 들고 있었다. 한가운데에 남편 이준호의 얼굴이 보였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고, 펌을 했는지 전체적으로 머리카락이 곱슬
곱슬했다. 목 부위가 라운드로 된 반팔 티셔츠에 검정색 앞치마 차림이었다. 남편은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환하게. 한국에서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2대 8로
단정히 넘긴 가르마에 하얀색 와이셔츠, 검은색 타이. 전형적인 인사 담당자의 모습이던, 남
편의 얼굴을.
스태프가 한 사람의 얼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남편의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
람이었다. 조금 마른 편에 키가 크고 금발머리를 자연스럽게 뒤로 넘기고 있었다. 그도 역
시 웃고 있었다. 스태프가 말했다. “He is his lover.”
나는 잠시 정지한 듯 움직임 없이 앉아 있었다. He라고? Her가 아니라 He? 노엘의 얼굴
표정도 굳어졌다. 나는 다시 한 번 사진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푸른 눈동자를 지닌 하
얀 피부의 남자가 남편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남편은 안겨 있었다. 트로피를 든 채로, 말
랐지만 근육이 탄탄한 그 남자의 품에. 스태프는 남편이 그와 떠났다고 했다. 내 손에 들려
있던 사진이 떨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테이블을 세팅하고 주문을 받느라 스태
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천장에 매달린 램프에서 불이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
달린 조명처럼, 식료품 가게에 전시된 아기자기한 캔디처럼, 하늘로 떠오르는 가지각색의
열기구처럼 그것들은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배달을 마친 마이크가 펍에 도착했다. 우리는 스모크 피쉬앤칩스와 양고기를 넣은 스튜,
맥주와 아이리쉬 커피를 시켰다. 펍 안 분위기가 떠들썩했다. 백발이 성성한 피아니스트가
자리에 앉아 음악을 연주했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Piano man)’이었다. 펍 안의 사람
들이 큰 소리로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마이크가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 들었다. 하모니카였다. 간주 부분에서 화음
을 넣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흥에 취한 노엘이 기타를 들고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
즉석에서 콜라보레이션이 이루어졌다. 즉흥적으로 몇 곡의 노래가 더 연주되었다. 나는 자
리에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선명한 피아노와 섬세한 기타 선율, 맑은 하모니카 소리가 가
슴 속으로 파고들며 공명을 일으켰다. 나는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쳤다.
그때, 가슴 속을 무언가가 꿰뚫고 지나갔다. 예고도 없이, 풍선을 바늘로 쿡 찌르듯이. 색
색으로 불을 밝히던 램프가 하나씩 꺼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환호성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이 공간에서 관객은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방이 어두워졌다. 피아노
소리만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나는 하릴없이 눈을 감았다.
그는 충실한 남편이었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회사가 많이 바쁘
긴 했지만, 기분이 좋은 날은 일찍 퇴근해 내게 꽃을 안긴 적도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안
개꽃 한가득을 무심한 듯 내밀면, 나는 컵에 물을 받아 꽃을 진열했다. 별 장식 없던 거실
이 화사해지고, 집 안은 금세 은은한 꽃향기로 가득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그는 커피숍에서 영화 잡지를 읽고 있었
고, 조금 늦게 도착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와 결혼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고. 첫눈에 반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데
가 있었다. 그는 반듯하고 단정해 보였다. 잘 차려 입은 수트가 맞춤옷처럼 어울렸다. 옆으
로 길게 늘어진 작은 눈이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날? 이벤트 카페를 통째로 빌린 남편은 내게 프러포즈하며 말했다.
내 평생의 친구가 되어 줄래, 라고. 그게 영화 대사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아다 성배의
테두리 문양으로 만든 결혼반지가 독특한 빛을 자랑했다. 반지는 내 왼쪽 넷째 손가락에 잘
맞았다. 결혼식은 지루했지만 신혼여행은 좋았다. 그의 팔짱을 끼고 매일 아침 바다를 산책
하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그렸다. 함께 할 앞으로의 생활이 격정적인 파도보다는 잔잔한
물결이 되기를 소망하며. 그렇게 두 손을 꼭 잡고 더 큰 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그 소망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 해 볼 수 없는 거대한 폭풍우로 바뀌었다.
언젠가 남편이 꼭 한 번,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온 날이 있었다. 결혼식 직전 미리 혼인
신고를 하고 살고 있을 때였다. 동거는 하고 있었지만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그때까지 섹스
는 하지 않고 있었다. 술에 많이 취한 남편은 거침없이 내 속옷을 끌어내렸다. 그의 입술에
서 독한 위스키 냄새가 났다. 남편은 허둥댔다. 마치 숫총각처럼. 그저 남자로서의 본능이
이성을 이겼던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일은 조용히 묻어뒀다. 부부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
술에서 깬 남편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미안하다고 했을 뿐. 그때,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던 걸까. 평생 같이 살기로 맹세한 남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이었던 걸
까.
내 평생의 친구가 되어 줄래. 어둠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나를 비추는 것 같았다. 나는 눈
이 부셔 두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심장이, 구석에 박힌 바늘
끝에 걸려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것이 영화 대사가 아니라 그의 진심이었다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관객들이 앙코르를 연발했다.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노엘과 마이크가 두 손을 높이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박수와 함성 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백발의 피아니스트가 마지막 앵콜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
골웨이의 여름밤은 해가 길었다. 시계가 11시를 가리키는데도 주위가 환했다. 낮처럼 밝
은 빛이 블라인드 틈새로 파고들었다. 졸려서 참을 수가 없는데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침
대 밑에는 검은 개가 엎드려 있었다. B&B 주인이 키우는 그레이하운드 종이었는데, 윤기 나
는 짧은 털이 가늘고 긴 몸뚱이를 감쌌다.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지 손님방을 제 방처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개의 등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웠다.
뒤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항구 쪽에서 불꽃놀이가 한창이었
다. 바야흐로 골웨이 여름 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요란한 소음과 함께 형형색색의 불꽃이
꽃송이처럼 피어올랐다. 엎드려 있던 검은 개가 일어나 컹컹, 짖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오로라처럼 화려한 빛이 해가 지지 않는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노엘이 나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얇은 카디건을 챙겼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좁은 골목을 직선으로
빠르게 지났다. 원색으로 화려한 건물 곳곳에 만국기가 걸렸고, 온갖 메타포를 담은 벽화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모퉁이를 지나자 큰 길이 나오며 바람이 거세졌다. 요새처럼 크고
단단한 스페인 아치(Spnish Arch)를 지나 골웨이 항구에 도착했다. 팝콘처럼 잔뜩 쏟아져 나
온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우리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바다
와 만나는 코리브 강 앞 잔디밭에 자리를 폈다. 노엘이 팔베개를 하며 누웠다. 나도 옆 자
리에 앉았다. 우리를 따라 온 검은 개가 잔디밭에 엎드렸다.
밤이 깊을수록 바다 냄새가 짙어졌다. 폭죽이 유성처럼 터졌다. 그림처럼 환한 하늘을 올
려다보며, 노엘은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털어놓았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아쉬
운 듯이. 갑작스런 남자친구의 사고가 노엘에겐 깊은 상처를 남겼던 걸까. 달리던 차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생기는 스키드 마크처럼. 우리는 밤이 깊어도 숙소로 돌아가지 않
고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별이 반짝였다. 찡그린 노엘의
주근깨처럼.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하늘까지 어떻게 갔을까요?”
노엘의 목소리가 물처럼 축축했다. 나는 말없이 노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별을 담은 노엘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가만히 노엘의 손을 잡았다. 검은 개가 우리 옆으로 와서 꼬리
를 흔들었다. 달그림자 같은 개의 등을 쓸었다. 따뜻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
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천천히 흘러갈 뿐. 코리브 강이 골웨이의 넓은 바다를 만나듯
이.
핸드백에 잡힌 수취인불명의 편지들을 꺼냈다. 서울에서부터 하나 둘씩 모아왔던 것들이
다. 언젠가는 읽어 줘야지, 하며 갖고 있던 것들. 비슷비슷한 문구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사연들. 나는 그것들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편지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차마 버리지 못했던, 언젠가는 전송될 것 같던 추억들이 심연 속으로
사라져 갔다. 더 이상 사라져버린 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노엘이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냈다. 펍에서 마이크가 불던 악기였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환하게 빛났다. 바다의 숨 같은 하모니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은 미련을 떠나보내
는 마지막 애도의 노래 같았다. 어디인지 모를 곳을 쳐다보며 개가 컹컹, 짖었다. 타닥타닥,
종이 타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 왔다.
마지막 동행지인 북아일랜드 데리로 떠나기 전, 노엘은 유랑음악가의 본분을 잊지 않겠다
며 버스킹을 하겠다고 했다. 골웨이에서 가장 번화가인 시티센터에 자리를 잡고, 에버그린
(Evergreen) 스토어 앞에서 기타를 들었다. 외벽이 온통 짙은 노랑으로 칠해진 이층 건물은
여러 군데에 시원스레 창이 나 있었다. 아일랜드의 집요정 레프리콘이라도 기다리는 듯, 뾰
족한 지붕에 비죽 솟아난 굴뚝이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해가 났다. 작은 거리가 모처럼
활기를 찾았다.
노엘은 지금껏 부르지 않았던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의 유일한
히트곡이었다고. 화이트 팔콘의 힘 있는 기타 반주가 허스키한 음색과 잘 어우러졌다. 나는
턱에 손을 괴고 바닥에 앉아 노래를 감상했다. 환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
직인 걸까.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이 음악 소리에 발길을 멈추었다. 노래는 계속되었다. 관
객들은 호의적이었다.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기꺼이 귀를 기울여 주었다.
노래하는 노엘은 매력적이었다.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배달을 마치고 온
마이크도 마찬가지였나 보았다. 소년처럼 붉어진 두 뺨이 한여름의 햇살을 머금었다. 노래
를 마친 노엘이 기타를 내려놓았다. 몇몇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쳤다. 마이크를 발견한 노엘
이 도움을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무대 중앙으로 뛰어나간 마이크가 하모니카를 꺼냈다. 아
일랜드 민속 음악을 배경으로 한 반주에 맞춰, 노엘이 노래를 불렀다. 앞으로 한 발짝, 뒤로
두 발짝, 어디라도 좋다는 듯, 발걸음을 옮겨가며 춤을 추면서. 공항에서 봤던 재미있는 키
다리 아가씨, 노엘의 몸은 공중으로 떠오를 듯 했지만 발끝만은 바닥에 단단히 닿아 있었
다. 마지막 앙코르곡까지 소화해 내자, 사람들이 드디어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마이크
가 노엘에게 다가가 브라보를 외쳤다. 노엘이 웃었다. 그 모습이 참, 환했다. 티 없는 어린
아이처럼.
마이크가 오슬로 바(Oslo bar)에서 스카치에그와 맥주를 사겠다고 했다. 브루어리의 수제
맥주와 요리로 유명한 곳이었다. 마침 출출하던 터였다. 우리는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옮겼
다. 길을 아는 마이크가 앞서 걸어갔다. 뒤따르던 내게 노엘이 자연스레 팔짱을 꼈다. 초록
색의 돔 지붕이 색다른 골웨이 대성당을 지났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기도하듯 두 손
을 모았다. 바다 건너편, 배양실에 미라처럼 버려진 나의 배아를 떠올렸다. 그리고 남편을
생각했다. 내 남편 이준호에게는 어땠을까. 1센티도 안 되는 조a그마한 것. 먼지처럼 너무 가벼워서 그는 그것마저 툭툭 털고 떠날 수 있었던 걸까. 앞서 가던 마이크가 멈춰 서서 손
짓했다. 노엘이 웃으며 마이크에게로 건너갔다. 뒤편으로 멀어진 대성당에서 은은한 종소리
가 들려 왔다.
K에게- 노엘이
콜럼버스가 미사를 봤다던 세인트 니콜라스 교회(St. Nicholas Church) 예배당에 앉아서,
당신 생각을 했어요. 버건디 색상의 코치 선글라스를 끼고, 비에 젖은 운동화를 바닥에 문
지르면서. 연보라색 바탕에 해골 모양이 그려진 기타 피크로, 100년도 더 된 나무 의자에
우주선 같은 그림을 그려가면서. 자고 일어나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발견한 아이처럼, 티 없
이 웃으며 내게로 다가오던 당신을.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당신의 잔영을, 찬란하게
빛나던 내 스물여섯 살을.
기억나요, 당신을 처음 만난 날. 아직은 쌀쌀하던 3월의 봄이었죠. 때늦은 눈이 캠퍼스를
가득 덮었고, 사람들은 아이처럼 너도나도 밖으로 몰려나왔어요. 당신은 베이지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있었고, 초록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을 길고 가는 손으로 헝클었죠. 공연이 끝
난 당신은 조금 지쳐 있었는데, 땀 때문에 눈 밑에 번진 검은색 마스카라가 눈처럼 하얀 피
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어요. 당신은 눈밭에 처음 뒹구는 강아지처럼 웃으며 내가 내민 싸
구려 기타에 사인을 해 주었죠. 그때였을까요, 세상이 조금은 아름다워 보였던 때가.
당신을 마지막 본 날도 기억나요. 어느 병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파란색 체크 무늬의
환자복을 입은 채로, 당신은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었죠. 5평 남짓한 1인실은 비보를
듣고 몰려온 사람들 때문인지 비좁게 느껴졌어요. 나는 스탠딩 콘서트에 온 팬처럼 맨 뒷자
리에 서서 고개를 기웃거렸죠. 그리고 당신은 마지막 숨을 힘겹게 내쉰 뒤 영원의 잠 속으
로 빠져들었어요.
대낮부터 문을 연 킹스 헤드 펍에 앉아, 사과맛 사이더에 레몬이 뿌려진 굴을 먹으며 당
신 생각을 했어요. 3분 50초짜리 자작곡에 마음을 고백했던 당신의 순수함에 대해서, 늦은
밤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골목길에서 기습적으로 했던 첫 키스에 대해서, 서툴게 한 요리로
맛있게 차려먹었던 저녁 식사에 대해서, 파도처럼 발끝만 적시고 가는 ‘성공’이란 글자
때문에 속상해하던 우리에 대해서, 언젠가는 커다란 무대에 서자고 했던 꿈에 대해서. 그래
요, 내일에 대한 것들이요.
누군가가 조금만 더 빨리 당신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살 수 있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이
죠. 인생에 만약이란 없으니까.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오지
않는 내일을, 당신도 나도 다시 기다릴 수 있게. 그곳은 어때요? 내가 없어도 살 만한가요?
한 번만 더 나를 불러 준다면, 삐삐롱스타킹의 밑창 터진 운동화를 신고 세상 끝까지 당신
을 보러 달려갈 텐데. 잘 자요, 내 사랑. 나는 진짜 오늘을 살아갈래요. 당신이 없는 이곳에
서 말이에요. 그곳에서 편히 쉬어요. 안녕.
*
드문드문 비치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나는 운전석 위쪽 수납장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골웨이에서 슬라이고를 경유해 데리까지 가는 길이었다. 지도상으로는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에 진입한 것이었지만, 국경을 넘었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흔한 검문소나 철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으레 하기 마련인 여권 검사도 없었다. 그저 도로의 표지판이 게일어와 영문 공동 표기에서 영문으로만, 갓길을 표시하는 노란색 선이 흰색으로 바뀐 것 등이, 여기가 엄연히 다른 나라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노엘은 말이 없었다. 계속되는 침묵이 어색해 라디오를 켰다. 음악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뉴스만 흘러나왔다. 동행에 마이크는 빠졌다. 길을 아는 마이크가 안내하겠다고 했지만 노엘은 거절했다. 떠나기 전날 둘은 심하게 다퉜다. 영문을 모르는 마이크에겐 갑작스런 이별이 이해가 되지 않을 터였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잊어버리기엔, 그동안의 여정이 너무 달콤했으니까. 노엘은 아일랜드를 떠날 계획이었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가 볼 생각이라고 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노엘이 청색 멜빵바지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물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노엘도 나를 보며 웃었다. 햇빛에 붉게 물든 주근깨가 광대뼈를 따라 반원을 그렸다.
“마이크가 같이 떠나자고 했어요.” 사탕을 문 노엘이 우물거리며 말을 꺼냈다.
“자기도 세상을 유랑하고 싶다고요.”
나는 차의 속도를 높였다. 아일랜드의 국기색을 닮은 녹색 미니쿠페가 도로 위를 매끈하게 굴러갔다. 나는 무언의 눈빛으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런데요, 왜 같이 떠나지 않았나요.
“죽은 내 남자친구도 그렇게 말했어요.”
나는 잠시 노엘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작은 눈이 촉촉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공연도 하고 싶었고, 앨범도 내고 싶었죠.”
그때는 삶이 지속될 것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노엘이 덧붙였다. 나는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모든 게 갑자기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달았을 때 노엘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도망치는 것이었다. 현실로부터, 한국으로부터,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지금도 도망치고 있는 걸까요?”
노엘이 쓸쓸하게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망친 것은 오히려 나였는지도 몰랐으니까. 남편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이 끝내는 내 눈을 흐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나는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남편을 만나기 위해, 가려졌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하지만 남편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남편, 이준호는 도대체 누구였던가. 나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끝난 후 음악이 흘러나왔다.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데리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공식 명칭 런던데리. 하지만 표지판에는 군데군데 런던이라는 글자에 칠이 벗겨져 있거나 X자가 표시되어 있다. 1972년 1월, 평화적인 시위에 영국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14명의 사망자를 냈던, 영화 ‘블러디 선데이’의 배경이 되었던 곳. 분단된 아일랜드의 상징처럼 영국기와 아일랜드기가 동시에 휘날리는,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기도 한 공간. 평화의 다리를 두고 구교도와 신교도가 나뉘어 살고 있는 마을. 하루면 둘러볼 수 있는 작고 조용한 도시.
이 작은 도시 한구석에 내 남편, 이준호가 있다.
노엘이 멜빵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앞장서서 걸었다. 중심가인 비숍 스트리트(Bishop Street)의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자, 하늘색 고깔모자를 얹은 듯한 길드홀(Guildhall) 뒤편으로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진 낮은 건물 곳곳에서 토탄 연기가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비 그친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 있었고, 저 멀리 포일(Foyle) 강이 잔잔하게 흘러갔다. 강을 따라 이어진 선로 위로 기차가 지나갔다.
여정은 급했지만 누구도 선뜻 목적지로 갈 결심은 하지 못했다. 온종일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다 애써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나는 발효되지 않은 빵처럼 창백한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응시했다. 골웨이의 펍에서, 스태프는 남편의 최종 정착지가 이곳 데리일지 모른다고 했다. 스태프는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꼭 한 번 주노가 편지를 보내 온 적이 있다고. 첨부된 이미지에는 보그사이드의 프리 데리(Free Derry)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미지는 흐릿했다.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카락이 어깨 밑으로 내려와 있었고, 검게 그을린 듯한 얼굴이 햇빛을 받아 부신 듯 웃고 있었다. 내 남편의 얼굴인 것 같았지만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이제 그 얼굴은 낯설었다.
스트리트에는 네잎클로버 문양을 한 녹색 우체통이 조형물처럼 세워져 있었다. 노엘이 걸음을 멈추더니 가까이 다가갔다. 주머니에서 몇 개의 편지를 꺼내는가 싶더니 우체통 안에 집어넣고 돌아왔다.
“뭐예요?” “그냥 팬레터요, 하늘로 보내는.”
노엘이 쑥스러운 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골웨이 항구에서 내가 태운 편지처럼, 세상에는 부치지 못한 사연들이 많을지 모른다. 닿을 수 없다 해서 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비록 주소도 없는 어딘가를 떠돈다 해도. 얼마쯤 더 걷자 이름 모를 공원이 나타났다. 한산한 공원의 잔디밭이 이슬 맞은 풀빛으로 가득했다. 하얗게 페인트칠된 나무 벤치에 앉아 무지개가 뜬 하늘을 바라봤다. 낮은 산자락에 걸린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무지개 끝을 따라가면 금시계를 얻을 수 있다는 아일랜드의 전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지나버린 우리의 시간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하고. 노엘이 나직한 목소리로 허밍을 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렀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이젠 알 수 없었다. 내 남편은 번듯한 직장을 가진 회사원이었고, 5년을 같이 살아 온 반려자였고, 가정의 행복을 지키려던 가장이었고, 영화를 좋아하던, 지극히 평범한 서른아홉 살의 남자였다. 굴곡 없는 안정적인 삶, 그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였다. 아니다. 내 남편은 게이였고, 부랑자였고, 누군가의 정부였고,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 자신을 가둬 버린, 미몽의 이방인이었다. 아니, 어쩌면 경계에 서 있는 건 나 자신일지도 몰랐다. 참혹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현실로 돌아오는 회중시계를 구름 너머로 던져버린. 잃어버린, 그리고 이렇게 잃어버린 채로 홀로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무슨 생각해요?”
노엘이 물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나는 대답하며 노엘을 쳐다봤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이슬 맺힌 눈이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투명한 눈동자 속에 오롯이 무지개가 담겨 있었다.
비숍 스트리트에서 방향을 꺾어 길 아래쪽으로 향했다. 도시 곳곳에 그려진 벽화를 이정표 삼아 내려가자, 지붕 없이 평평한 일층짜리 건물이 먼저 눈앞에 나타났다. 프리데리 박물관(The Museum of Free Derry)이었다. 입구에 앉아 있던 직원이 우리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온 김에 둘러보고 가요.”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잖아요, 노엘이 작게 덧붙였다. 우리는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박물관 안에는 블러디 선데이에 대한 영상과 사진, 당시의 옷가지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방문객이 없어 무료했는지, 직원은 우리를 따라다니며 열심히 안내를 해 주었다. 영어를 잘하는 노엘은 설명을 이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날의 상흔이 어렴풋하게나마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 자료들을 살폈다.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수많은 인파, 무표정한 눈빛으로 총을 들고 어딘가를 보고 있는
공수부대, 돌을 던지는 몇몇 시위대, 총에 맞은 시민과, 백기를 흔들며 부상자를 옮기는 구급대원들. 우리는 천천히 전시관을 돌며 사라져 간 사람들을 기렸다.
짧은 관람을 끝내고 박물관 밖으로 나오자,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추모비가 커다란 관처럼 세워져 있었다. 뒤뜰을 건너 돌계단을 올랐다. 추모비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 서서 잠시 침묵했다. 주변에는 누가 놓고 갔는지 모를 꽃들이 놓여 있었고, 1972년의 비극을 그린 벽화가 도시 곳곳에 그림자처럼 배어 있었다.
데리에 대해 아는 정보는 책에서 봤던 게 전부였고, 그랬기에 애도의 표상도 얕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코끝이 잠시 시려왔다. 노엘이 추모비에 손바닥을 대었다. 나도 노엘을 따라 했다. 싸늘했다. 손바닥 안쪽 끝까지 냉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손을 떼지 않은 채로 노엘이 내게 물었다.
“여기에 새겨진 이름들도, 언젠가는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이었겠죠?”
나는 대답 대신, 펼쳐진 노엘의 손 위에 내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차가워진 노엘의 손잔등에 조금의 온기라도 전해지기를 기대하며. 나를 보는 노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등 뒤로 석양이 차츰 지고 있었다.
“저, 돌아갈래요.”
추모비에서 손을 떼며 노엘이 말했다. 코끝이 빨개진 채로, 노엘이 멜빵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었다. 마이크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골웨이의 낡은 펍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말하고 웃고 만지고 안을 수 있는 존재에게로. 새롭게 시작된 관계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방황하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숨을 내쉬며. 추모비에 손을 댄 순간, 그 차가운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이전의 추억 대신, 이후의 진짜 삶에 베팅하기로. 언젠가는 우
리 모두 사라질지라도.
“행운을 빌어요.”
내가 악수를 청했다. 거기에 더 이상의 통속적인 질문은 필요치 않았다. 노엘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가늘고 긴 손가락 마디마디엔 기타를 치느라 생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오늘의 이면에 숨겨진, 만만치 않은 생을 살아내기 위해 애쓴 흔적 같았다. 노엘이 손을 흔들었다. 작별은 순간이었지만 아쉬움은 길었다. 나는 악수했던 손에 다른 손을 겹친 채로 멀어져 가는 노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잡은 손의 온기를 기억 하고 싶었다. 뒷걸음질로 걸어가던 노엘이 어느 순간, 몸을 돌려 앞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붉어져 가는 하늘이 카펫처럼 거리 위로 깔렸다. 마치 응원이라도 해 주는 것처럼.
**
해질녘의 어딘가, 나는 서 있다. 낯선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손에 들고. 어둠 섞인 하늘이 차츰 보랏빛으로 물들어 갔다. 나는 도시를 덮고 있는 캐슬 벽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서두를 것은 없었다. 노엘의 말대로,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연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아치형 게이트를 빠져나와 좀 더 걸었다. 바람이 조금씩 거세졌다.
나는 카디건을 단단히 여몄다.
보그사이드 지구에 이르자 프리 데리 지역에 들어왔다는 표지판과 함께, 벽의 한쪽 면을
가득 채운 벽화가 반기듯 그려져 있었다. 폐허로 변해버린 흑백의 시가지 배경 왼쪽에 부서진 기관총이 새겨졌고, 위쪽에는 두 가지 상반된 색을 가진 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 중앙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초록색 넥타이와 치마를 걸친 여학생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처음 마주하는 그림이지만 어딘지 익숙했다. 남편이 사진을 찍었던 장소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한참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뜯어서는 안 될 상자를 열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내 남편 이준호는 여기, 있다.
먹구름이 짙어졌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어디라도 움직여야 했지만,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키를 훌쩍 넘는 벽에 등을 대고 숨을 골랐다.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가빴다. 카디건으로 바람을 막았는데도 온몸이 떨려 왔다. 나는 떨림을 멈추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꽉 깨물었는지, 입술 안쪽의 연한 살에 살짝 피가 비쳤다.
곧 폭풍이 몰려올 것 같은 거리는 고요했다.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환상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와서.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도. 클로버 잎 한쪽이 뜯어진 것처럼 심장이 아파 와, 나는 명치 부근을 하릴없이 문질렀다. 그래도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었다. 남편을 만나야 했다. 이유를 들어야 했다. 나는 힘겹게 발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몇 블록 너머, 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커다란 비를 들고 거리를 쓸고 있었다. 낡았지만 깨끗한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희끗한 머리와 굽은 등을 한채로. 그는 쉼이 없었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 곧 비가 떨어질 것 같은데도 묵묵히 자기의 일을 다 해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마치, 서울에 있던 아파트의 경비가 그랬듯이.
“Are you okay(괜찮나요)?”
나를 발견한 노인이 물었다. 빛을 잃은 형광등처럼 창백해진 내 얼굴이 남들의 눈에 띄나 보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낯선 거리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질문을 던졌다.
“주노란 사람을 아시나요?”
나는 스태프에게서 받은 편지의 이미지를 노인에게 내밀었다. 이미지는 빛바랜 유물처럼 흐릿했고, 육안으로 식별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노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사진을 카디건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Wait. 뒤에서 노인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노인이 운을 뗐다. 그는 이 근방에 살고 있는 동양인 남자라면 한 명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음속에서 거센 파도가 쳤다. 풍랑에 휩쓸린 배가 바다를 표류하는 것처럼 나는 잠시 비틀거렸다. 카디건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꿋꿋이 섰다. 비 맞은 토탄처럼 흐린 노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가 내가 찾는 사람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동양인 남자는 다 비슷해 보이는 법이니까. 나는 노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키는 175 정도에 조금 마른 듯한 체격. 말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우연히 마주칠 때면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 이상의 정보는 자기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가 여기에 살고 있나요?”
내가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가톨릭계가 주로 사는 마을이고, 그 남자는
경계 너머 신교도 마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자기 또래로 보이는 동성의 아이리쉬 애인과
함께. 급기야 가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나는 팔짱을 꼈다. 노인
이 입을 열어 남자에 대한 정보를 얘기했다. 애인인지 남편인지와는 사이가 좋은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장을 보러 나온다. 애인의 팔짱을 끼고,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가 있다고요, 나는 다시 한 번 노인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노인이 대답했다. 서너 살
정도의 귀여운 남자 아이였다고. 양털처럼 곱슬곱슬한 금발머리에, 얼굴에 박힌 주근깨가
무척 귀여웠다고 했다. 아마 입양을 했거나 아이리쉬 남자가 데려온 아이인 것 같다고. 나
는 팔짱을 꼈던 양손을 내렸다. 얇은 흰색 카디건이 바람을 맞아 펄럭였다. 바람을 맞은 머
리카락이 아일랜드의 녹색 기처럼 하늘을 향해 휘날렸다. 나는 휘청휘청 목적지를 향해 걷
기 시작했다.
- 무심코 지나치다 발에 밟힌 네잎클로버처럼 초록색으로 칠한 대문. 똑똑, 하고 주인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문이 열릴 것만 같다. 거실에는 색색의 조명이 불을 밝히고, 4인용의 원
목 식탁에는 갖은 양념으로 재운 칠면조 요리가 차려져 있다. 여름이 다 지나기도 전에 크
리스마스가 온 것처럼. 아이보리색의 벽지가 그리 넓지 않은 실내를 뒤덮고, 바닥에는 어지
러운 꽃무늬 모양의 양탄자가 깔려 있다. 바깥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하지만 실내는
따뜻해 보인다. 토탄으로 불을 피운 벽난로 위에 액자가 놓여 있다. 가족사진인 것 같지만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과 연동된 갈색 스피커에서 크랜베리스의 음악이 흐른
다. 파바로치와 듀엣으로 호흡을 맞춘 아베 마리아(Ave Maria)이다.
부엌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고불고불한 갈색 머리카락을 하고, 검게 그을린 듯한 피부
를 가진 남자가 웃고 있다. 오랜만에 시도해 본 크림 파스타가 생각대로 나오지 않은 듯하
다. 그 앞에는 푸른 눈동자를 한 남자.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남자는 치
즈 케이크처럼 부드러운 크림 파스타를 식탁에 놓고, 파란 눈의 남자는 뜨거운 홍차에 우유
한 방울을 따른다.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식탁보까지 깔자, 식탁이 한층 풍성해진다.
그리고 기차 모양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어린 아이.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무엇
이 그리 즐거운지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사탕을 잔뜩 머금은 듯 통통한 볼에, 커다랗게 쌍
꺼풀 진 반원형 눈이 귀엽게 접힌다. 꽈배기 모양으로 짠 아란 스웨터처럼, 곱슬곱슬한 금
발머리가 천장의 조명을 받아 빛난다. 콧잔등에 나비처럼 내려앉은 주근깨가 움직임에 따라
음영을 드리운다. 순하게 귀가 접힌 달마시안 강아지가 그 주위를 맴돈다. 아이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요리 준비를 마친 남자와, 또 한 남자가 아이에게 다가온다. 완벽한 가족의 한때이다.
유리창 틈으로 바라본 바깥은 춥고 어둡다. 성냥이 다 떨어져 버린 성냥팔이 소녀의 눈동자처럼. 한바탕 나쁜 꿈을 꾼 것처럼, 나는 창문에서 얼굴을 뗀다. -
왜 몰랐을까. 그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종점을 향해 가던 기차는 어느 순간 레일의 방향을 틀었고, 그와 내 삶의 궤적은 이미 멀어져 버렸다는 것을. 나는 그에게서, 잊혀졌다. 그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었을까? 미안하다는 말?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 용서해달라는 말? 나를 잊고 살아달라는 말? Nothing. 아무 것도. 호기심으로 열어버린 상자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에게 남겨진 선물 같은 건 없다.
나는 뒤돌아 걸었다. 프리 데리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그 남자가 남편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브라이언 여사는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노엘은 죽은 남자친구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영원히 전송되지 못할, 수취인불명.
배 안쪽이 콕콕 찌르듯이 아파 왔다. 비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나는 온기가 남아 있는 손으로 배를 가만히 누르며, 한국에 남겨두고 온 나의 배아를 떠올렸다. 얼음보다 차가운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름 없는 존재. 따뜻한 자궁에 이식되기를 바라며, 10개월을 온전히 내게 의지해 꽃을 피워 낼. 내게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오브라이언 여사가 홈맘이되고 노엘이 마이크에게 돌아가 행복한 삶을 꿈꾸듯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4) 비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내 뺨을 때렸다. 곧 폭풍이 몰려올 것 같다. 여정의 내내 비가 오면 비를 맞던 나는, 이제 비를 피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우산 대신 양손을 받치고, 걷는 대신 온힘을 다해 뛰면서.
떨어진 편지와 사진이 바람결에 나부꼈다.
1) 더블린을 연결하는 교통수단. 전동철. 트램
2) 요조, ‘오늘의 빛나는 나’ 인용
3) 예이츠, ‘늙은 어부의 명상’(THE MEDITATION OF THE OLD FISHERMAN) 中 /윤삼하 역
4)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박혜영_1980년생. 부산 출생.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소설 ‘텅 빈 두 눈’으로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당선.
제10회 천강문학상 소설부문 심사평 ‘나’를 찾아가는 소설 여행
2019년도 제10회 천강문학상 소설부문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중·단편을 합하여 모두 12편이었다. 치열한 예심을 통과한 경과 과정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응모자들의 소설적 성취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그로 말미암은 글쓰기의 원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천강문학상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위해 헌신했으며 많은 한시를 남겨 문학적 업적이 돋보이는 홍의장군 천강 곽재우 선생을 기리는 목표를 가진 까닭으로, 응모작을 대하는 느낌이 한결 유달랐다. 또한 이 상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분들이 그 절차와 진행의 방식을 매우 철저하게 하고 있어서, 참으로 문학 본연의 가치를 도출하여 시상하는 뜻 깊은 문학상이라는 후감이었다.
12편의 소설 가운데 마지막까지 경합에 남은 작품은 권상혁의 「길 위에서」, 황인규의「인류 비행 보고서」, 김민주의 「아주 가는 실 한 가닥」, 박혜영의 「수취인 불명-아일랜드에서 온 편지」 등 4편이었다. 심사자는 먼저 이 작품들이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에 어떻게 충실한가를 주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이야기의 구성, 읽는 이에게 공여하는 재미와 소설적 설득력 또는 교훈 등 고색창연한 소설의 이야기 문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주제와 인물과 구조가 이루는 조화와 완결성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가치 있고 안정적인 소설세계의 축조가 어렵다. 전반적으로 대상 소설들은 현대적 삶의 갈등을 중심 주제로 하고 있었고, 때로는 시·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는 이야기의 전화(轉化)를 보여주기도 했다.
「길 위에서」는 일상의 삶 속에서 미처 다 드러내지 못한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면서, 치밀한 소설의 행보를 운용하는 장점이 있었다. 한 발화자의 심정적 풍경을 이만한 수준으로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인류 비행 보고서」는 보기 드물게 철저한 고증과 서술방식으로, 인류가 하늘을 날기까지의 단계별 상황을 소설을 통해 구현했다. 일견 하나의 소논문으로 작성해도 좋을 만한 자료의 준비와 탐색이 병행된 것으로 보였다. 다만 이 작품들이 끝내 수상작의 범주에 들지 못한 것은, 심사의 주된 기준으로 설정한 바 ‘보다 소설다운 소설’에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서술의 치밀성이나 지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조직적인 서사는 모두 소설의 소설다움에 기여해야 제 값을 얻는 까닭에서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아주 가는 실 한 가닥」은 이 대목에서 후한 평점을 얻었다. 이 소설의 작업실인 유리공방은 물리적인 실험을 수행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작중인물의 생애에 각인된 과거의 상흔들을 다시 되돌려 보게 하는 반사경으로 기능한다. ‘미성년 출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비롯한 여러 삶의 굴곡들이, 표면적인 실험실의 일상과 더불어 중층적인 인생사의 형용을 드러낸다. 기실 이러한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빛나는 재료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의 수미상관한 짜임새와 소설적 긴장, 유장(悠長)한 문장 등이 ‘좋은 소설’이라는 인식을 추동하는 힘이었다.
대상으로 선정된 「수취인 불명」은 어느 모로 보나 대상감인 작품이었다. 중편으로 씌어진 이 소설은 일견 최인호를 연상하게 하는 여행 감성, 윤후명을 상기하게 하는 미지 탐험 등 여러 요소들을 작품 내부에 끌어안고 있지만 이들이 모두 순방향 순기능으로 그 역할을 보여주었다. 우체국 직원인 ‘나’ 한지음은 외국에서 실종된 남편 이준호를 찾기 위하여 그 행적을 추적한다. 네덜란드에서 실종된 남편은 실상은 아일랜드로 갔고, 그것도 자의에 의해 ‘게이’의 길을 선택한 기막힌 상황이다. ‘나’는 이 황당하고 고통스러운 여행길의 결미에서 남편을 찾는 것보다 더 소중한 무엇을 찾았다. 그것은 ‘나’ 자신이었다. 이 다기한 과정이 소설의 여러 절목에 조화롭게 부합하면서, 한 편의 빛나는 소설을 만난 기쁨을 누리게 했다.
입상자 두 분에게 마음으로부터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아쉽게 입상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는 다음 기회의 분발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심사위원: 김종회(문학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