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왕가의 시작 (삼상 9:1-2)
영적초점:은사론
설명
본문은 왕으로 선택받기 위해 사울이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울왕의 기
사를 통해서 육체와 육체에 부어주는 성령 은사의 원리가 나타난다.
1. 은사가 부어지는 곳
1절 "베냐민 지파에"
☞ 베냐민은 정욕적이요 세상적이요 마귀적인 성향을 지닌 육체의 상징이다.
그런데 육체에 은사를 부어 주시므로 실족치 않으며 유용하게 하신다.
2. 은사의 정의
1절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 여기 '기스'의 뜻은 '능력'으로 여러 가지의 기반이 잘 잡힌 유력한 자를 뜻
한다. 이처럼 은사란 다양성이 있는 여러 방향의 능력이다.
1) 은사는 능력이지 생명이 아니다.
그러나 유익하다(고전12:7)
2) 은사는 다양하다.
육신의 여러 속성들의 상징인 가나안의 31명의 왕들처럼 그 육신을 통제
하시기 위한 성령의 은사도 다양하게 30여 가지가 됨은 흥미롭다(고전
12:8-11).
3. 은사 받는 법
2절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 힘써 아버지께 구하라.
① 아비아(고조부) - '노력'
② 베고랏(증조부) - '초태생' 즉 하나님의 것
③ 기스(부친) - '능력'
④ 사울 - '구하여 얻은 자'
강해
오늘은 '사울왕가의 시작'이라는 제목입니다. 9장은 베냐민 지파에서 사울이 왕으
로 선택받기 시작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간의 왕을 구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왕을 구한 결말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시려고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을 골라서 주십니다. 즉 이렇게
함으로 가장 훌륭하다는 인간일지라도 인간의 왕이란 얼마나 악한 것임을 똑똑히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의 기사를 통해서 우리는 육체와 육체에 부어주는 성령의 은사에
관한 원리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사울을 통해서 성령의 은사론을 집중적
으로 살펴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은사가 부어지는 곳과 은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은사를 받는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은사가 부어지는 곳이 어디일까요?
1절에 "베냐민 지파에"라고 했습니다.
여기 '베냐민 지파'라는 문구 속에는 성령의 은사는 육체에 부어진다는 뜻이 담
겨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냐민은 육체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맨 막내 지파입니다. 영적인 원리적
으로 볼 때 장자는 영이지만 막내는 육입니다. 그래서 유다지파는 영적 장자입니
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을 판 자는 맨 뒤에 기록했습니다. 맨 마지막
은 그래서 문제의 육의 상징입니다.
또 베냐민은 야곱에 예언에 의해 물어 뜯는 이리라는 별명으로 불려진 지파입니
다. 이처럼 죄인의 육신은 영을 대적하여 싸우는 성향을 지녔습니다. 특히 사사기
19장을 보면 제사장의 아내를 윤간하고도 회개치 않고 단합하여 나머지 지파에
대항했던 것을 통하여 베냐민은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의 예표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전으로 말미암아 온 지파가 남녀노소 무론하고 전멸 당하고 재산은 모
두 불타고 겨우 림몬 바위로 피신했던 남자 600명 만이 살아 남게 됩니다. 여기
베냐민 자손은 바로 이 600명이 다른 지파의 여자를 갈취해 와서 이루어진 후손
들입니다. 그럼 600이 무엇입니까? 600은 6에 10을 제곱한 수인데 6은 사람과
짐승과 세상과 불완전의 수요, 10은 모두를 상징하는데 이를 제곱함은 모두에서
모두 즉 전 인격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영혼도 육체도 모두 육적으
로 타락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창6:2-3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
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
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
체가 됨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냐민은 바로 육신의 상징입니다.
또 이 600명이 림몬 바위에 피신해 있었는데 림몬 바위는 이스라엘 가장 남쪽
애굽과의 경계선에 위치한 곳으로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것
이 바로 육신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숨었던 림몬은 '우뢰'라는 뜻으로 죄인이 세상
을 살아가는 동안에 언제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감을 암시해 줍니다. 이 역시 베
냐민이 육신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또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에서 위치한 지역이 아주 특수합니다. 유다 지파와도
연접해 있었고, 단 지파와도 연접해 있었고, 에브라임 지파와 갓 지파와도 연접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므낫세 지파와도 연접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육신은 이
렇게 다양한 것들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유다 지파는 영혼입니다. 즉 육신
은 영혼과 함께 있습니다. 또 단 지파는 사단의 상징입니다. 즉 육신은 사단의 영
향 아래 속해 있습니다. 또 에브라임 지파는 자아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는 얼마나 콧대 높고 교만한 지파입니까? 이것 때문에 많은 내전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또 갓 지파와도 연접해 있습니다. 갓 지파는 요단강 동편 땅입니다.
이 곳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몸은 세상과도 연접해 있습니다. 또 베냐민은
므낫세 지파와도 연접되어 있습니다.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로서 야곱의 양자가 된
사람이요, 요단강 동서편에 큰 땅을 기업으로 받은 축복 받은 지파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인이지만 양자 삼으시려고 요단
강 이 편에서도 역사하시고 저 편까지 교회를 통하여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렇
게 다양하게 여러 부분과 연접성을 가지면서 작용하는 것이 육신입니다. 그래서
육신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육신이 모든 것을 다 지배하여 육에 속한 사
람이 되고 다 망치게 됩니다. 이렇듯 베냐민 지파는 여러모로 육신을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초대 왕이 베냐민 지파에서 나왔다는데 그리 달갑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게다가 불과 얼마 전에 베냐민과 내전까지 치루지 않았습
니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라면 최소한 유다 지파 같은 곳에서 나와야 하지 않
겠습니까? 우리는 이상의 말씀 속에서 육신의 타락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발견합
니다. 그런데 성경이 왜 이토록 육신의 타락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먼저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정욕적이요 세상적이요 마귀적인 성향을 지닌 고쳐질래야
고쳐질 수가 없는 타락하고 절망적인 악한 육체를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아니하시
고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셔서 지도와 인도와 도우심을 통하여 성화의 길로 인도
하시고자 하심을 보여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육
체에 부어진다는 사실이 바로 은사론의 기초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영혼에 부어지
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은사 자체가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은 하여도
영생 자체는 아닙니다. 이 은사의 지점이 육신이라는 이 개념을 잘 정리하시기 바
랍니다.
2. 성령의 은사를 무엇일까요?
다시 1절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했습니다.
이 문구는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가 바로 능력으로 주어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 '기스'라는 이름의 뜻은 바로 '능력'입니다. 그러면서 기스가 유력한 사람이라
고 소개합니다. 여기 유력하다는 것은 정치 경제 명예 인격 신앙 가족 힘 등 여러
방향에서의 유력임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즉 은사란 여러 방향의 능력입니다. 그
러므로 은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먼저, 성령의 은사는 능력이지 생명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성령은 능력의 성령과 생명의 성령으로 나누어집니다. 능력의
성령은 우리의 육체에 부어지는 성령의 은사를 뜻하고, 생명의 성령은 우리의 영
혼에 부어져 중생과 성화를 이루는 그 생명 자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능력은
우리를 만들어 가시고 도우시고 뜻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과정상 필요한 것이지
그 능력 자체가 생명은 아니기 때문에 능력을 받았다고 모두 중생한 것은 아닙니
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완악하여 이런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내 고정관념을 내려 놓고 날마다 변
화를 받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은 완악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
은 인간이 완악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더욱 풍성하게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많은 이적을 경험했던 사람 중에 완전히 변화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종말이 불신자보다 더 못한 경우를 간혹 보는데 그것은 은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우시려고 큰 역사를 베풀어 주셨는
데도 끝까지 완악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은사를 사모하
되 많이 부어주셨다고 자랑하지 말고 혹은 적게 받았다고 실망하지 말 것이며 혹
은 나는 완악하지 않으니까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기만해서는 안됩니다. 이 지상
에서 성령의 은사가 필요 없을 만큼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제자들이 말씀을 통해서 충분히 예수 그리스도를 들었지만 여러 가지 표적 앞에
비로소 주 앞에 신앙고백을 하며 꺼꾸러졌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육체에
임하셔서 몸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의 그 사역을 대신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란 성령께서 완악하고 우둔한 우리 육신을 가진 인간들을 도우시는
선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는 나타나면 대단히 유익합니
다. 고전12:7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
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잘못된 은사운동 때문에 성령의 은사의 이미지가 흐려 있
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성령운동을 보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귀신운동을 보았기 때
문입니다. 우리는 결론에서 강조하겠지만 은사는 마땅히 구해야 하지만 그러나 회
개를 통한 성화를 추구함이 없는 지나친 은사일변도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구하는 것 같지만 결과는 대부분 귀신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혼이 나고
그 때부터 은사반대운동을 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러나 진정한 성령의 은사라면 신앙생활에 대단히 유익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좋으
신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허락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다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성화를 위한 회개의 생활과 아울러 기도의 댐이 다 차도록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터져 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다음에, 은사는 한 가지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기스가 여러 방향에서 유력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성령의 은사는 다양합
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한 가지 능력이 아닙니다. 고전12:8-11을 보면 "어
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
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 나타나는 은사 목록을 보면 30가지가 넘습니다. 육신의 여러 속
성들의 상징인 가나안의 31명의 왕들처럼 그 육신을 통제하시기 위한 성령의 은
사도 다양하게 31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이 은사의 목록은 달란트와 은사라는 약 두 가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달란트란 이 여러 가지 은사 중에서 특별히 어떤 한 두 가지에 사명
적으로 쓰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달란트는 아무리 능력을 받아도 변동되지 않
습니다. 그래서 손이 발이 될 수 없고, 눈이 입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달
란트에 관한한 일반 사람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사는 꼭 한 가지
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달란트로는 분명히 말씀의 달란트인데 받은 은사를 체크해 보면 다른
은사들까지 많이 받았습니다. 성숙한 신자들의 경우 9가지를 모두 받는 것을 봅니
다. 그래서 신앙을 체크해 보면 자가 달란트는 한 두 가지인데 은사는 신앙의 성
장에 따라 계속하여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은사 체크를 해 본다면 구하기
전에 벌써 여러 가지 은사들이 많이 임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타났느냐 나
타나지 않았느냐 나타났다면 얼마나 나타났느냐 그 차이일 뿐입니다. 그럼 9가지
를 다 받은 것은 잘못된 것인가? 그러나 사명의 달란트와 도우시는 다양한 은사
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러한 오해는 다 풀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달란
트 외에도 9가지 은사를 모두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기스의 여러 측면
에서의 유력의 의미입니다.
3. 그럼, 성령의 은사는 어떻게 받는가?
다시 1절에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
의 현손 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2절에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
이요" 했습니다.
우리는 이 문구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 사울
은 '구하여 얻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사는 구해야 합니다. 또 그의
아버지인 기스는 '능력'이란 뜻입니다. 이 능력을 누구에게 구합니까? 바로 그 윗
대를 보십시오. 기스의 아버지가 아비엘입니다. 아비엘은 '아버지는 나의 하나님이
시다'는 뜻입니다. 스롤은 잘 모르겠고, 증조는 베고랏은 '초태생' 즉 하나님의 것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곧 내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버지께 구해
야 합니다. 고조는 아비아인데 '노력'이라는 뜻입니다.
종합해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 힘써 구하여야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7:6 이하에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개와 돼지의 비유를 통하여
거룩한 것을 아는 자에게 줄것이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즐 것인데, 가
장 좋은 것으로 줄 것이고 그 좋은 것이란 바로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은사는 구하여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강력한 영적부흥이 나타나면 구하지 않
아도 강력한 은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해야 합니다. 속히
안 주시는 것은 귀한 줄 알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상의 말씀에 덧붙여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성령은사론의 한 문맥입니다. 그런데
이 황금율을 단지 인간윤리로만 해석한다면 주어서 받아내는 비교적 하급윤리밖
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육적으로 풀어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은
내 육체에 은사를 받기를 원한다면 내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사의 열매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뜨겁게 기도할 때 풍성
합니다. 그래서 수십 년을 묵상만 하는 성도들은 대부분 은사를 경험치 못하거나
은사가 나타나도 미약하여 소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영성의 기초
는 내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은사란 육체의 영성의 그 열매일 뿐 내 몸을 드리는
것 그 자체가 육체의 영성입니다. 그래서 몸을 너무 아끼거나 안일하게 빈둥거리
지 말고 내 몸을 바르게 드리는 훈련을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온갖 은사로
충만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목회적인 차원에서 권면하고 싶은 것은 우선 방언 정도에의 수
준으로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주신 것에 일단 충실하십시오. 성도들이 지나친 욕
심으로 주신 것은 충실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은사들만 경험하려고 하는데 많이 구
한다고 신령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주신 것에 충성해야 다른 것
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법칙입니다. 지나친 욕심은 큰 시험을 불러 옵니
다. 그래서 은사중심의 기도회를 계속하여 진행하다가 처음에는 신령한 역사가 나
타나는 것 같더니 점차 한 사람씩 귀신 들리는 증세가 나타나면서 나중에는 교회
가 혼란해지고 심하면 교회마저 문을 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구했는
데 왜 이런 결과가 난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신령함을 가
장한 탐욕적인 집회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은사부정주의자들을 보
면 대개가 전에 이런 잘못된 은사운동의 폐해를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신 것에 충실해야 합니다. 방언이 안되는 사람은 현재 할 수 있는 우리말 기도
에 충실하십시오. 그러면 방언을 할 날이 오게 됩니다. 방언을 하는 분들 역시 마
찬가지입니다. 현재 주신 것에 감사하여 충실할 때 심령에 신령한 성전도 지어질
뿐 아니라 나머지의 은사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예
비하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은사를 부어
주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성령과 은사로 충만하셨습니다. 연약하고 우둔하고 완악
하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구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약속에 의하여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