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은 밀물이 되고
12월31일(일)은 2017년 정유년(丁酉年) 닭띠 해인 365일 1년의 마지막 날이다. 08시 45분에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강릉행 KTX에 10명의 백년지기들이 몸을 싣는다.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제23회 평창 동계 올림픽이 개최된다. 여기에 발맞추어 2017년 12월 22일 개통한 KTX 경강선이다. KTX강릉행 열차에 오르는 지기들의 얼굴에는 설레임과 기대와 즐거움이 가득하다. 아침식사는 편의점에서 미리 주문한 따끈한 도시락을 대신한다. 고교동기들인 위짜추 치빠흐 조단서 또파파 패노우 서류바 태조하 까토나 여덟명과 위짜추 아내와 태조하의 영원한 배필인 아내가 함께 한 것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다녀온 열차 속에서의 모습이 흑백 필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삶은 계란 세 알과 기다란 김밥 두줄과 초록색병의 사이다 한 병 그리고 사과 한 알 이것이 어머니가 준비한 점심식사 메뉴이다. 삶은 계란, 사이다, 김밥, 사과등은 평상시에는 접할 수 없는 귀한 존재였다. 월사금을 제 때에 내지 못해서 교실에서 쫒겨나곤 하던 그 시절이다. 허기진 쓰린 가슴을 억누르며 애꿎은 돌뿌리를 걷어차며 장충단공원과 남산을 헤매이기를 몇번이더냐. 하루 세끼 굶지 않고 보리밥에 시래기국 김치가 전부이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지금 열차 안에서 벗들과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우며 먹는 아침도시락에 곁들이는 SOMETHING SPECIAL 양주의 짜릿한 목넘김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평생 기차여행 한번 못해 드리고 병원 문턱 한번 넘어보지 못한 내 어머니 아버지의 세월이 아닌가. 장남이 수학여행을 간다고 새벽부터 김밥을 싸고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시던 내 어머니 모습이 가슴을 메이게 하고 있다. 죽지 못해 살 수 밖에 없던 까마득한 추억이 바로 엊그제 같은 순간이다. 새롭게 단장한 강릉역을 배경으로 추억의 한 컷을 스마트폰에 담는다. 강릉경찰서 앞을 지나서 경포 앞 바다로 향한다. 해송(海松) 숲을 천천히 빠져 나오니 일렁이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가슴을 열어 제끼고 있다. 저 멀리 수평선 위에는 배 한척이 가물거리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파도에 파묻혀 보이다가 사라지다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파아란 물감을 쏟아 놓은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곤 하얀 물거품을 토해내고 쓸려 나가고 있다. 인간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발자국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있다. 깨끗한 모래 위를 조심스레 걸어본다. 못 다 한 첫 사랑의 애련(哀戀)을 꾹꾹 눌러 발자국에 담아본다. 50여년 전에 절절한 여인의 고백이 가슴을 저리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밀려왔다가 쓸려 사라져 버리는 물거품이었으면 좋으련마는 또 다시 밀려 들어오는 거센 물결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으리오. 그저 미안하다는 그 한 마디만이 대답의 전부가 아니었더냐. 기다리지 말라고, 인간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라며, 주위 환경에 휩쓸리기 쉬운 존재니까, 믿을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안타까움을 대신하고 세월은 바다 물결처럼 흐른 것이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연민의 감정을 저 파도에 파묻혀서 떠나보내야만 한 것이다. 서둘러 세대의 택시에 몸을 싣고 주문진 소돌항으로 향하고 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2층의 횟집으로 접어든다. 겨울철 별미인 복어회를 비롯한 모듬회가 식탁을 가득 채운다. 술잔 열 개에 쏘맥이 가득 넘치게 채워진다. 친구야 ! 우리 우정의 잔을 잔을 !잔을 ! 잔을 ! 높이 들어 건배를 하자 ! 건배 ! 건배 ! 건배 ! 건배 ! 완샷 ! . 지금껏 자식들을 위하여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온 노객들이 아닌가. 이제 삶의 무게와 모든 근심 걱정일랑 한잔 술에 담아 저 파도에 날려 보내리라. " 어디로 가야하나 구름 같은 내 인생 바람이 부는대로 흘러가네 산 위에 올라보면 하늘은 더 높듯이 갈수록 멀어지는 나의 꿈들 아 아 이것이 세상이란 말인가 어릴 때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야 가슴 적시던 저 노을빛이 오늘은 나를 울리네 어디로 가야하나 구름 같은 내 인생 ~~~~~" 가슴이 터지토록 목청껏 불러보는 노래가락이다. 한잔 술에 마음을 실어 날려 보지만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은 멈추지를 않는구나. 억지로 어거지로 눌러본들 막을 수 없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잠시 숙연해지는 백년지기들의 마음을 추스리고 소돌 아들바위가 있는 바다로 향한다. 파도에 휩쓸리며 수 천만년 깍이고 할퀴여 파여져 나간 바위들은 자연만이 주는 조각품이렸다. 인간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창조주 조물주만의 명작들이다. 소를 닮았다고 하여 우암(牛岩) 소돌바위라 이름으로 불렸다는 명품바위이다. 바위를 향하여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여인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워 진다 하여서 아들바위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북 장수산에서 100일 기도를 올리고 아들인 너를 낳았노라던 환한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을 울렁이고 있다. 아들이 무엇인지 그토록 절절하게 염원하던 내 어머니의 아들은 한잔 술에 넋을 놓은 초라한 모습의 노객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저녁 일곱시에 출발하는 서울행 KTX를 타려고 택시로 다시 강릉역으로 향한다. 한적하던 바닷가의 마을은 내일 해돋이를 보려고 몰려든 차량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겨우 출발시간에 맟추어 열차에 오른다. 몸은 서울로 향하는 열차 속이지만 노객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끝없이 밀려오는 동해바다의 파도는 언제까지 계속되려는가. 거세게 밀려왔다가 물거품만 쏟아놓고 다시 빠져 나가는 썰물은 계속될 것이다. 숱한 인간들의 애환의 발자취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것이다, 오늘 금년 마지막 날을 함께 한 열 명의 가슴 마다 마다에도 아련한 추억이 있을 터이다. 저만의 아프고 슬픈 첫 사랑의 비련(悲戀)이 지금은 아름다운 강물이 되어 가슴을 적시고 있을 것일까. 흔적은 사라져도 켜켜이 쌓여진 가슴의 응어리는 영원히 함께 할 뿐이 아닌가.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열차의 창 밖은 컴컴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한(恨)을 풀기에는 아직도 50년은 너무 짧은 시간으로 더 많은 세월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열시간 넘게 걸려서 완행열차로 서울에 달려온 50여년 전의 앳띤 처녀의 모습이 차창에 신기루가 되어 흐르고 있다. 언젠가는 말할 수 있으리라. 너를 잠시도 떠나보낸 적이 없었노라고 말이다. 청순(淸純)한 그녀의 아름다움은 썰물이 되어 흩어져 버린지도 까마득한 옛날이다. 오년 아닌 십년이라도 기다리겠다던 애절한 눈망울은 지금도 밀물이 되어 가슴을 적시고 있구나. 그 누가 말을 했던가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고 말이다.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기차를 바라보는 여인이 생각난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무사히 살아만 돌아오라던 그녀, 십년이 지나도 백년이 가도 기다리겠노라던 여인, 가슴을 울리던 부베의 연인(戀人)의 여인(女人)의 작별인사 한 마디이다. 50년이 흐른 지금도 그 여인의 대사 한 마디가 이토록 심금을 울릴 줄이야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썰물이 되어 사라졌지만 밀물처럼 밀려오는 기다림의 아픔은 막을 수가 없구나. 일렁이는 파도가 멈추는 그 날만을 기다려야 할 수 밖에 ---
2017년 마지막 날 12월 31일 무 무 최 정 남
가슴에 일렁이는 파도
잠은 아니 오고 창밖은 컴컴한 하늘 뿐으로 설치는 밤이면
하얀 눈을 맞으며 어디론가 가고 싶다.
가슴 속 깊이 켜켜이 쌓인 아득한 그날의 애련을 풀어야만 하겠다.
못 다 한 한마디가 가슴에 일렁이고 있으니.
끝없이 밀려오는 파아란 강릉 앞 바다의 파도 속으로 띄어 보내고 싶구나.
거센 바람에 다시 밀려오는 하얀 파도소리를
다시는 놓치지 아니 하겠노라고
이제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고 말이다.
빨라지는 심장박동 소리에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살아가야만 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
뜨거운 가슴을 두번 다시 잠재울 수는 없지 않은 노릇이 아닌가.
차마 부르지 못한 그 이름 바로 당신은 나의 첫 여인이었노라고
사랑 했었다고 하고 있노라고 할 것이라고
목이 터지도록 불러야만 하지않은가.
멍한 가슴으로 숱한 밤을 지새우며
가슴 저미던 그날이 몇몇이던가.
이 밤도 속절없이 지나고나면
가슴은 풍선이 되어 하늘 높이 솟아 오르리라.
당신의 뜨거운 심장을 가슴에 품고서.
20180109 무 무 최 정 남
![](https://t1.daumcdn.net/cfile/cafe/992005455A53E4F20E)
![](https://t1.daumcdn.net/cfile/cafe/99FB8C495A53E4F80C)
가슴에 일렁이는 파도
잠은 아니 오고 창밖은 컴컴한 하늘 뿐으로 설치는 밤이면
하얀 눈을 맞으며 어디론가 가고 싶다.
가슴 속 깊이 켜켜이 쌓인 아득한 그날의 애련을 풀어야만 하겠다.
못 다 한 한마디가 가슴에 일렁이고 있으니.
끝없이 밀려오는 파아란 강릉 앞 바다의 파도 속으로 띄어 보내고 싶구나.
거센 바람에 다시 밀려오는 하얀 파도소리를
다시는 놓치지 아니 하겠노라고
이제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고 말이다.
빨라지는 심장박동 소리에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살아가야만 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
뜨거운 가슴을 두번 다시 잠재울 수는 없지 않은 노릇이 아닌가.
차마 부르지 못한 그 이름 바로 당신은 나의 첫 여인이었노라고
사랑 했었다고 하고 있노라고 할 것이라고
목이 터지도록 불러야만 하지않은가.
멍한 가슴으로 숱한 밤을 지새우며
가슴 저미던 그날이 몇몇이던가.
이 밤도 속절없이 지나고나면
가슴은 풍선이 되어 하늘 높이 솟아 오르리라.
당신의 뜨거운 심장을 가슴에 품고서.
20180109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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