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
거룩하신 이가 주님밖에 뉘뇨 ~
성 삼위일체 오직 주로다.
오늘도 그들은 매일 죽는다. 새끼 잃은 부모맘을 그 누가 헤아리겠나. 하루 하루가 삶의 기쁨이 없고 슬픔이 가득하니, 눈이 떠지기에 하루를 살고 눈을 감으면서 슬픔을 잊는다. 어찌하여 공감을 못하는가? 자기 부모만 자기 새끼만 그런 슬픔을 당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그런 슬픔을 겪을때 같이 아파하지 않을 수 가 있는 건가?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나? "누가 내부모요? 누가 내형제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부모요 내 형제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이가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말씀은 자식잃은 부모의 심정을 공감하라는 애기는 아니던가?
다른 이를 해치고 손해를 준, 자신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이들에게 마저 관대하며, 자신들과 관련없는 이들의 슬픔과 피해에 분노하여 정의를 외치고 자신들과 관련 없는 가해자들에게 용서가 없는 이들이 피해를 받고 손해를 입은 자들에겐 냉정하니, 정말 자신들과 관련이 있어서 인가?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떠나, 길을 가다 목이 말라 이스마엘이 울부짓으니,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뜨게하여 물가로 인도하셨다. 이스마엘이 울부짓을 때에는 창조주를 향한 영적 본능이 깨어남이 아니었나? 자식잃은 부모의 슬픔마음이 하루 하루 쌓여, 그 영적 본능이 매일 매일 하나님께 그 심정을 알리지 아니하겠나?
물적증거가 없음을 안도하지 말라! 하루하루 자식잃은 부모의 슬픔이 하늘에 닿기 때문이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의 죄를 지적하고 정죄하니, 그가 땅에 엎드리어 죄를 인정하고 그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는 심정으로 나아오니, 하나님이 그를 합당하게 여김은, 그가 아무죄도 안짓는 의로운 이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며, 돌이키어 성숙해 지는 변화가 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었겠나?
거룩하신 이가 뉘뇨? 성삼위일체 오직 우리 주로다.
점치는 이들의 점을 치는 이가 자신의 점은 못치고 다른 이들의 머리를 깍는 스님이 자신의 머리를 못깍듯이, 목숨으로 죄값을 치를 각오를 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한 다윗도 의롭지 못하다.
목숨으로 죄값을 치를 각오를 하는 이도 의롭지가 않은데, 자식잃은 부모의 맘을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은 대한민국의 통일을 이룰 만큼 거룩하다 착각하니, 다른 이들위에 군림하고 섬김을 받고 싶은 마음이 허언증으로 표현되고, 욕심을 채울 만한 능력이 없어, 불법과 속임과 위선을 행하며, 뉘우침이 없이 돈으로 굿만 하면 자신을 받아주는 귀신에게 의존하니, 귀신을 자기편에 서게 함을 자신의 능력이라 생각하고, 자신들은 걸리지 않고 남의 죄는 잘 드러내는 악한 꾀를 자신의 능력이라 생각하며, 자신들도 귀신처럼 능력자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다 하셨는데, 도데체 왜 그들은 섬김을 받으려 욕심만을 채우고, 위선으로 필요할 때에만 섬기는 척을 하면서 자신들은 악한 꾀를 내는 귀신들처럼 더럽다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은 고귀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에도 태생이 자신들은 특별하다 생각하니, 마치 하나님과 비기리라 자만하여, 하나님처럼 자신이 거룩하다 생각하는 옛뱀, 마귀처럼, 짐승보다 못한 마음을 가질때에도 자신들은 다른 이들 보다 뛰어난 거룩한 태생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자들이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다"라는 구절의 의미를 알겠는가?
왜 정치를 하면, 보통 사람들이 그리들 변하시는지, 자신들의 영혼과 육체의 편안함을 정말 추구하고 싶다면, 내려놓고 지신들의 죄값을 달게 받을 수 있는 마음자세만이 가능한 죄를 인정함이 후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고 말씀하셨듯이, 그 정치인이 내게 합당하다 하지 아니하겠나.
스스로 지혜가 없다고 생각되고, 정치판에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만 가득해서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가 두렵다면, 귀신한테 묻지 말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하나님이 지혜를 줄 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감옥에 가더라도 자신에게 모든 일을 맡긴 이를 배신하지 아니한 요셉을 붙여줄지 어찌 알겠는가?
내려놓으면 없을 질것 같아 두렵지만, 그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이 후에 자격을 주지 않겠는가?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