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향수와 자연 서정의 화해와 진실 -- 정홍도 시집 『가을이 오면 언제나』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계절과 자연의 융합 그 서정시학 우리 현대시의 소재는 대체로 만유(萬有)의 자연에서 취택(取擇)하는 특성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 주변에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풍광(風光)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시인이 착목(着目)하는 자리에는 반드시 시적 소재로 등장할만한 사물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 개념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전하는 현상을 목도(目睹)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시인들에게서는 더욱 깊은 사유(思惟)를 요구하게 되고 광범위의 사색(思索)을 접목시켜서 새로운 시법의 주제와 연결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 우리 시인들이 자연과 융합하면서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시인이 자연과 동화(同化-assimilation)해서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인 인격화하거나 반대로 시인이란 정체가 없기 때문에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투사(投射-project)의 원리가 적용되는 경우를 현대시론에서 많이 주장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감상적 오류(誤謬)라고 하는데 자연의 인격화라는 친자연의 상황을 시적으로 해석하고 시적으로 융합하는 시법(詩法)이 오래전부터 현대시에 적용되고 있어서 우리 시인들도 자주 응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 정홍도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가을이 오면 언제나』를 일별하면서 그의 자연관이나 친자연에의 시적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함으로써 아름다움이 성립되는 감정 이입(感情移入-fintuhlung)의 시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늦가을 달개비 꽃 하늘빛 따라 짙어지고 가로수 이파리 커피냄새 짙어지면 애틋한 귀뚜리 울음 하얀 달빛에 젖는다. 창문 덜걱이는 소슬바람 일라치면 주마등처럼 스치는 뒤안길 내 사연 무심히 뜯어낸 손거스러미처럼 아리다. 우선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가을이 오면 언제나」전문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는 것은 가을이라는 계절적인 시간성에서 창출하는 이미지들이 시각(視覺-‘늦가을 달개비 꽃 하늘빛 따라 짙어지고’)과 후각(嗅覺-‘커피냄새 짙어지면’), 청각(聽覺-‘애틋한 귀뚜리 울음’) 그리고 촉각(觸覺-‘손거스러미처럼 아리다.’) 등등의 모든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공감각(共感覺)의 형태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시법은 시조풍의 운율 중심으로 그 구도를 형성하지만, 가을이라는 시간성과 그 시간에 형성되는 다양한 자연의 조화(調和)가 잘 발현되고 있어서 정홍도 시인이 의도하는 서정시학의 근원을 설정하는 중요한 응시(凝視)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린 봄볕에 풀씨 깨어나 연초록 바람으로 일어나면 나른한 아지랑이 논둑 따라 하늘하늘 찰랑이는 논물에 소리도 없이 찾아온 물방개 하루 종일 동그라미만 그리고 긴 다리 소금쟁이는 물위에 떠가는 흰 구름만 쫓누나. -「봄날에는」전문 구절초 마지막 향기도 시들고 추적이는 가을비에 낙엽 젖는 소리 숲속 길은 커피냄새 가득하다 소슬바람에 내 가슴에 휑한 구멍 커질수록 나는 작아지고 내 영혼의 울음소리는 커져만 간다. -「늦가을 밤에」전문 이 두 작품에서는 봄과 늦가을에서 탐색하는 정홍도 시인의 서정적인 사유가 이 시간에 따라서 다변화(多變化)하는 의식의 흐름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취택하는 자연 상관물에서 생성하는 조화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봄에서는 ‘여린 봄볕’과 ‘연초록 바람’ 그리고 ‘나른한 아지랑이’ 등등의 현상이 시적인 상황 전개를 위해서 동원된 자연의 정취(情趣)인데 거기에는 ‘찰랑이는 논물에’서 관찰되는 ‘물방개’와 ‘소금쟁이’ 등이 ‘떠가는 흰 구름만 쫓’고 있는 정경이 그의 서정시학에 그 위의(威儀)와 본령(本領)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시 늦가을에서도 ‘구절초 마지막 향기’와 ‘가을비에 낙엽 젖는 소리’라는 후각과 청각의 이미지가 결합해서 ‘늦가을 밤’을 수놓고 있다. 이처럼 정홍도 시인은 계절과 자연의 융합으로 서정적인 시학을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은 「봄나들이」「봄이 오려나」「계절의 문턱」등에서 그가 구현하려는 시적 진실을 구도적으로 잘 현현하고 있어서 그의 시학은 우리들 공감 확대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2. ‘환한 영혼이고 싶’은 서정성 탐색 정홍도 시인의 시적 서정성을 계속된다. 자연 속에 공존하는 식물들을 찾아나서는 현장에서 자신의 잔잔한 미소로 음미(吟味)하는 시법을 즐겨 쓰고 있다. 이러한 현장은 산이나 바다 등 자연과 교감할 수 있으면 어디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향기 있는 꽃이고 싶다 누구에게나 주는 미소 그래서 꽃이고 싶다 깊은 산 숨어서 피면 어떻고 논밭 둑에 지천인 코딱지나물 꽃이면 어떠랴 이슬에 피었다가 바람에 웃다가 욕심 없이 스러지는 그래서 환한 영혼이고 싶다. --「꽃이고 싶다」전문 이 작품에서는 먼저 ‘향기 있는 꽃이고 싶다’는 여망(輿望)의 상황을 설정하고 결론으로 ‘환한 영혼이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현현하고 있다. 이것은 정홍도 시인의 간구(懇求)이며 기원이다. 또한 그는 ‘깊은 산 숨어서 피면 어’떠나고 묻고 있다. 그리고 ‘이슬에 피었다가 / 바람에 웃다가 / 욕심 없이 스러지는’ 무욕(無慾)의 영혼을 갈구(渴求)하고 있는 것이다. 수평선 자락에 떠있는 섬 하나 저 멀리 어슴푸레 섬 둘 찰싹찰싹 저미는 밀물은 먼 바다 소식으로 갯벌을 덮고 서녘 노을에 젖은 물살 동백꽃보다 짙누나. 바닷새 어디로 가고 홀로 걷는 장경리 해변 빈 발자국만 나를 따라오고 모래사장에 새겨놓은 그리움 하나 파도는 차마 지우지 못해 뒷걸음만 치누나. --「여기는 영흥도 해변」전문 이 작품은 실재(實在)하는 ‘’영흥도‘ 현장에서의 상황이 안온한 운율로 노래하듯이 전해지고 있어서 우리 서정시의 진면목(眞面目)을 일별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수펑선’과 ‘섬’과 ‘밀물’, ‘갯벌’, ‘저녁 노을’, ‘동백꽃’, ‘바닷새’, ‘모래사장’ 그리고 ‘파도’ 등이 시적인 정황으로 설정되어 이러한 시적 대상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시법은 그가 구가(謳歌)하는 꽃처럼 ‘환한 영혼’이고 싶은 서정적 시법이다. 정홍도 시인은 이렇게 시적 대상이나 상황을 어떤 공간에서 파생하는 자연 산물(産物)에서 소재를 취택하고 거기에 자신의 정서를 투영하는 작품들을 많이 엿볼 수 있는데 ‘냇둑 따라 무리지은 달맞이꽃 / 수줍은 꽃잎 위에 / 달빛이 노랗게 부서지고 / 냇물은 소곤소곤 / 조약돌 핥은 소리 / 별 하나 내려와 출렁인다.(「냇가」중에서)’거나 ‘절벽 난간 잡고 피워낸 / 보랏빛 한 송이 도라지꽃이 / 매미소리 마지막 기승에 온 몸을 떠는데 / 화양구곡(九曲) 반석위에 / 노을에 젖은 금 비늘 물살 / 여울목을 휘저어 어디로 가나(「화양계곡」중에서)’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거기에서 특이한 점은 ‘냇가’와 ‘화양계곡’이라는 공간에서도 어김없이 ‘달맞이꽃’과 ‘도라지꽃’ 이 등장하여 꽃과 사물의 접맥(接脈)을 통한 미학(美學)의 경지를 여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다시 ‘잊지 못해 찾아온 섬마을 / 동백꽃 잎에 소복이 눈 내리는 밤 / 파도와 나눈 긴긴 이야기 / 눈을 뜬 아침에야 꿈인 줄 알았네.(「섬마을에서」중에서)’와 같이 ‘섬마을’과 ‘동백꽃’의 조화를 이룬 풍광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파도와 나눈 긴긴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강물은 흐르고 산은 거기에 있다. 흰 구름 아래 멀리 회색빛 실루엣 모습 산은 언제나 나를 손짓 없이도 부른다. 내가 산을 찾는 이유 타오르는 철쭉의 장관을 탐해서도 아니요 산새소리 잠긴 여울에 탁족을 즐기려함도 아니요 산마루 넘어 소소한 바람이나 곱디고운 단풍에 취하려함도 아니요 억새꽃 흩날림이나 설원을 보려함이 아니요 강물은 흐르지만 산은 거기 있고 산은 언제나 나를 손짓 없이도 부르기 때문. 이 작품「산을 찾는 이유」전문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여기서도 ‘철쭉의 장관’과 ‘산새소리’와 ‘곱디고운 단풍’과 ‘억새꽃 흩날림’ 그리고 ‘설원’이라는 식물성 서정에 심취해 있다. 이것이 바로 ‘산은 언제나 나를 손짓 없이도 부르기 때문.’이라는 단정으로 그 이유를 대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작품「붓꽃」「오대산 진 고개」 「알밤 하나 줍다가」「해안 따라 걷는 길」등에서 서정의 멋을 탐색하고 있어서 그가 탐구하고 구현하려는 인간들의 평정심(平靜心)을 분사하고 있다. 3. 향수와 사친(思親), 그리움의 미학 정홍도 시인은 이러한 서정성을 심저(心底)에 기반을 닦아 놓고 이젠 그리움의 미학을 탐색하고 있다. 이 그리움의 진원지나 시적인 원류는 대체로 향수나 사친에서 재생된 상상력이 주종(主從)을 이루는 것이 통상적이며 보편적인 개념이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모두가 고향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속성이 있다. 이는 부모의 그리움이 곧 고향과 대칭적으로 융합하면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작품 「신작로」전문에서 ‘어머니 밭일 가시던 질경이만 밟힌 길 / 아버지 논일 가시던 띠 풀만 무성한 길 / 산딸기 덤불에 뱀이 나오던 내 유년의 길 // 그 농로農路는 / 풀 짐을 지고 나뭇짐을 지고 / 소를 앞세워 쟁기를 지고 / 오일 장날 한 잔 술에 석양을 지고 돌아오던 길이였지 // 이제와 / 아스팔트에 묻혀버린 그 옛길 / 가슴에 맴도는 것은 왜 일까.’라는 절규같은 어조는 더욱 그리움의 향수로 고조(高調)되고 있다. 생전에 손발 한번 씻어 드리지 못한 어머니 평생 살가운 정 하나 드리지 못한 아버지 떠나신 세월만큼 가신 길 하도 멀어 꿈속에도 뵐 수 없는 무정함이여 두견새 우는 고향 산마루 철쭉은 만발한데 부모님 삭은 뼈 두 손에 받쳐 들고 울어도 불러도 청솔가지에 이는 저 무심한 바람소리뿐 극락길 빌어보는 눈물 젖은 소지만 유마사 용마루를 훠이훠이 넘누나. --「후회」전문 여기에서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나신 세월만큼 가신 길 하도 멀어 / 꿈속에도 뵐 수 없는 무정함’이 그리움의 원천(源泉)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향 산마루 철쭉’과 ‘부모님 삭은 뼈’가 시적으로 대입하면서 우러나는 그리움은 그 만의 한(恨)으로 적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가 재생한 그 정경에는 ‘두견새 우는 고향 산마루 철쭉’과 ‘청솔가지에 이는 저 무심한 바람소리’라는 시각과 청각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상기(想起)함으로써 거기에 적시한 ‘극락길 빌어보는 눈물 젖은 소지만 / 유마사 용마루를 훠이훠이 넘’고 있어서 그의 향수에서 동반하는 부모님과의 그리움이 우리의 공감대를 더욱 흡인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의 그리움은 ‘수평선 자락에 먼동이 트기 전 / 정화수 사발에 출렁이는 어머니의 치성 / 그 정성이 / 고기잡이 나가 불귀가 된 아버지를 위한 / 청승인줄로만 알았고 // 수평선에 해떨어지고 달이 오르면 / 장독대 위에 촛불을 켜고 / 두 손을 모으시는 어머니의 치성 / 그것이 등대지기 아들을 위한 정성인줄을 몰랐습니다(「바다와 어머니」중에서)’는 어조로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을 애달프게 현현하고 있다. 누리에 고운 빛 쪽빛 나래 남쪽 바다 너 없이는 나도 없을 붉은 입술 동백꽃 언제나 따사로워 그리운 내 고향 진남관 용마루에 서린 충무에 넋 오늘도 망해루 넘어 바다 지키고 섬과 뭍이 손잡는 돌산 대교는 먼 바다 소식에 가슴 설렌다. 서녘에 해는 저물어 오동도 등대 이마에 불 밝히면 항구의 가로등 불빛 바다에 눕고 향일암 종소리에 꿈꾸는 내 고향. --「내 고향 연가」중에서 그렇다. 정홍도 시인의 뇌리(腦裏)에는 그의 고향의식이 남다르게 각인(刻印)되어 있는 듯하다. 이는 그가 적시하는 동백꽃과 진남관, 망해루, 돌산대교, 오동도, 향일암 등의 시적 대상물은 ‘먼 바다 소식에 가슴 설’레는 그의 그리움으로 간직되고 있다. 또한 ‘무심한 세월에 고향마을은 낯설고 / 굽이굽이 푸르던 앞 냇물 / 뛰놀던 은어 떼는 어디가고 / 무성한 수초만 바람에 흐르는데 / 물잠자리 한 마리 멤을 돈다.(「빈 산촌」중에서)’거나 ‘사라진 자운영이 다시 찾아와 / 진달래 꽃물로 일렁일 줄이야 / 꽃잎에 맺힌 선혈의 빛깔이 / 잔잔한 너울 되어 / 고향 나그네 그리 반길 줄 몰랐다.(「나그네 되어」중에서)’는 등의 어조는 ‘무심히 흘러버린 세월’과 더불어 향수의 정감을 발현하고 있다. 정홍도 시인의 향수는 이 밖에도 작품「산촌 들녘」「민속마을 앞에 서면」 「장독대」에서 부모의 정한(情恨)을, 작품「지금은 다 무얼 하는고」「고향친구」 「상수리 한 알」「허수아비」등에서 고향을 형상화하는 그리움으로 현현되어서 그의 시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4. 기행체험의 형상화와 새로운 시법 정홍도 시인은 보편성을 일탈(逸脫)한 지향적인 삶을 위한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여행이다. 해외여행을 통해서 우리의 풍습과 다른 제3의 세계를 체험하는가 하면 거기에서 파생하는 지구촌 인간들의 삶을 조명(照明)하는 현장 감응을 전해주고 있다. 우선 그는 기행체험을 통해서 직접적인 현장과의 동화로 그곳의 풍물들이 형상화하는 시적 진실을 이해하게 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서 느끼는 정감은 국내 여행과는 또 다른 풍미(風味)가 있다. 저리도 시린 달빛을 가슴에 심어본적이 없습니다. 바람이 저 달을 닦아서가 아니라 내가 구름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빛에도 풀잎이 눕는 줄은 몰랐습니다. 나뭇잎은 나뭇잎끼리 더 짙은 윤기를 발하고 꽃 들은 달빛에 젖어 요염한 밤을 수놓고 있습니다. --「히말라야를 넘는 달」중에서 발 한 짝 딛고 설 내 뭍이 없어 호수가 고향이요 무덤이 호수인 수상 마을 사람들 너울이 등을 밀어도 물위에 등을 눕히고 이 밤도 호수에 내려온 별을 줍는다. --「물위에 사는 사람들」중에서 플라멩코는 모퉁이 돌아가는 가눌 수 없는 바람꽃이다 샹그리아 와인에 피어나는 정열이다 갈색 젖가슴에 흐르는 땀줄기에 무희의 물방울 드레스가 함초롬 젖는 비바람 꽃이다 --「플라멩고」중에서 이 세 편의 작품에서 음미할 수 있는 것은 일반 기행시에서 시도하는 지리적인 안내와 설명을 완전히 배제하고 이국(異國)에서 직접 관념으로 체험한 정감을 통한 정서를 발현하는 독특한 시법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우선 ‘히말라야’라는 이국 정서에는 ‘달’이 동반하면서 바람과 구름 혹은 나뭇잎과의 교감은 히말라야의 시적인 풍광을 더욱 감미(甘美)롭게 장식하고 있어서 여행의 진미(珍味)를 느낄 수가 있다. 또한 캄보디아의 호수 톤례삽에서 ‘물위에 사는 사람들’은 ‘호수가 고향이요 / 무덤이 호수인 수상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정경에서도 그들은 ‘이 밤도 호수에 내려온 별을 줍는다.’는 서정적인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작품이다. 다음은 프랑스 파리에서 착목한 ‘플라멩고’에서는 무희들을 ‘바람꽃’이라는 비유로서 현장의 감응을 현현하고 있어서 그가 체험한 여정(旅情)에서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좋은 소재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작품 「피라미드 기행」중에서 ‘나일 강이 마른다 해도 불멸일 피라미드는 / 집 잃은 미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 이승에서 자승으로 노를 저어간다는 / 태양나룻배는 지금도 / 사공만 기다리는가.’라거나 작품 「앙코르 사원 가는 길」중에서 ‘붉은 크메르가 남겨놓은 킬링필드여 / 한 순간 붉은 깃발에 반세기도 넘게 / 뒷걸음쳐 버린 오늘의 너 / 지난 슬픔의 무게보다 / 남겨진 가난의 무게가 더 무겁구나.’라는 어조가 바로 여행의 묘미(妙味)를 확인시켜주면서 그가 평소에 간직한 순정적인 정서가 시적으로 용해(溶解)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나는 꽤 높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 히말라야 산들과 함께 / 에베레스트 산바람에 씻긴 /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는 골짜기에서 / 그래서 어둡지만 어둡지 않습니다.(「카트만두의 밤」중에서)’라거나 ‘가녀린 팔을 뻗어 난간에 핀 풀꽃 한 송이를 꺾어 / 내손에 꼭 쥐어준 아이 / 비탈 숲길 내려오다 우연히 만난 그 소녀 / 오목한 눈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 내 이름을 묻는다.(「첫사랑 네팔리」중에서)’는 여행의 현장감은 시적인 효과를 높이는 최상의 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홍도 시인은 지금까지 보아온 향수와 그 자연 서정의 화해를 통해서 계절과 웅합하는 서정시학의 탐색과 다수의 꽃을 감상하면서 창출한 서정성 그리고 진한 향수와 부모의 사친에서 포괄하는 그리움이 그의 시학을 형성하는 서정시인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서정성 외에도 그가 간절한 신앙심이 발흥(發興)하는 신앙 지향의 작품들도 다수 보이지만 이는 신앙에 관한 작품을 따로 모아서 신앙시집으로 엮으면 한결 그 시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작품에는 「간구」「새벽길」 「오직 당신 뿐」 「밉거나 괴로울 때」「용서의 기도」 「주님 성전 평안교회」등에서 시적으로 승화하면서 그가 지향하는 신심(信心)의 근원을 이루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나 같은 죄인 몹쓸 죄 / 피로 희게 대속해 주신 당신 // 당신의 사랑을 사랑합니다.’라는 기독교적인 시혼(詩魂)이 그의 내면에서 숙성되고 있어서 우리 시인들이 갈구하는 인본주의(humanism) 정신의 구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책머리에’에서 언급했듯이 ‘내가 시를 외면했는가! / 시가 나를 배신했는가! / 기울어져 가는 서녘의 노을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독백이 / 빈 나뭇가지에 걸린 달빛처럼 처연하다 / 세상과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말라버린 심상/心想 / 누가 알아줄까마는 오랜 절필의 시간이 흐르고 /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인가 / 그 바람이 시작 노트를 넘기고 나는 키질을 했다’라고 진솔한 심정으로 이 시집을 장식하고 있어서 그의 정서나 사유의 지향점은 인생과 자연의 융합에서 탐색하는 순수한 서정을 근간(根幹)으로 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인 조지훈이 말했듯이 시란 지(知)정(情)의(意)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의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작품 속에 명징하게 용해된 정감의 진실이 지적이면서도 그 의지의 함량이 얼마인가를 가늠하는 척도(尺度)에서 시를 해석하고 공감하는 지적 자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홍도 시인의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