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년 전 60년대초 초등학교시절 학교가는 길 보자기에 싼 책보따리
어께에 매기도 하고 어리춤에 매기도 하여 학교 갈 때는 마을 어귀에 모여서
앞에는 남학생 뒤에는 여학생 두줄로 줄지어 서서
건전가요 동요 부르며 신장로 따라 가다가 버스가 오면
길옆 논.밭둑으로 올라서서 재건하며 손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버스 안에서도 같이 손 흔들어 주었습니다.
봄이면 지름길로 학교다닌다고 산길따라 오가다가
진달래꽃잎 따먹고
찔레꺽어 먹다가 가시에 찔리고 물오른 송구(소나무껍질)벗겨 먹고
칡뿌리 케 먹었는데
지금도 그맛은 살아 있건만
찾는이 없습니다
여름날 소낙비라도 한줄기 시원하게내리고 나면
산골짜기(계곡)마다
솜털같은 운무(더위식히고난 수증기)는
산허리 휘감아 피어오르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눈이 시릴듯한 파란 하늘에는 찬란한 쌍무지게 뻗쳤습니다
삼복더위 시퍼런 쇼(냇가 웅덩이)에서
윗쪽에는 남학생이 아랫쪽은 여학생이
넙다란 바위 위에
옷 홀라당 벗어 놓고 알몸으로 철퍼덩거리며 멱 감았지요
그때 불어온 잔잔한 바람은
시퍼른 물결을 흔들고 시원하다 못해
차가므레한 감촉은 오싹해 집니다
멱감고 따끈따끈한 넙다란 바위에 업드려
물기 대충 말리고 나면 물에 젖은 새앙지같은 머리에
파란 입술은 덜덜 떨렸습니다
멱감고 허기진배 채우려고
설익은 까칠복상(복숭아사투리) 따먹고서
배앓이 하였지만
할매손이 약손이였습니다
저녁은 열무김치 된장 고추장 꽁보리밥 비벼서
배가 빵그랗토록 실컷 먹고나서
공부한다고 엎드려서
책펴 놓으면 피곤하여 눈이 저절로 감기고
방귀만 뿡뿡 나오는데
그러니
공부는 늘 (꼴찌)를 맡아 놓고 하였지요
가을아침 논둑길 따라가다 보면
아침 이슬 흡뻑내린 논바닥에
햇살이 비취어
기다랗게 널어선 그림자 그림자 머리 끝 부분은
유난히도 반짝였습니다.
겨울이면 동네 골목대장 상급생 집
할배가 있는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아랫목에서 발 녹이고
쇠죽끓이는 가마솥위에 책보자기 올려 놓았다가
뜻뜻해진 책보자기 어께에 매고
검정고무신 아궁이
불에 씌고 나서서
칼바람 막아 주고
햇살 따뜻하게 비취 주는 산밑 오솔길 따라 다녔지요
그렇게 1년보내고 2년 보내고 3학년이 되었는데
책보따리만 매고
덜렁 덜렁 다녔지 공부는 순 맥이였습니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은
학교에 남아서 별도로 공부를 하여야 했는데 나도 항시 여기에 포함되여
나머지 공부를 하였지요.
다른 친구들 모두 오전 수업하고 집에 가는데
점심도 먹지 못하고 남아서 청소하고
공부하려면 스트레스 엄청 받지요.
오후3-4시 되어 혼자 투들 투들 걸어 오다보면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길옆 옹달샘 물 넙죽 엎드려
한 모금 들이켜면 꿀맛 이였습니다.
공부 잘해서 먼저 집에 간 친구
들판에서 일하다가 나를 보고서 평상시에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몇시간전에 헤어졌는데 무엇이 그리 반가운지
무척 반가운 척 큰소리로 내 이름 부르며 건네는 말 “야 여태까지 나머지 공부했냐”며
위로인지 약 올리는 것인지 알송 달송한 말 하면
얄믿기도 하였는데
옆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 형이
“야이놈아 니나 잘해라” 하며 친구 꾸짖고 나보고는 “배고프겠다
빨리 가서 밥 먹어라” 하는데 고마운 마음들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던 초등학교시절
지금 아이들은
이런 감흥을 알는지 모를는지??
가을운동회 연습을 하면서
서산의 길다란 그림자 늘어지고 애절한 아리랑의 선율이
운동장에 울려 퍼지면 그 운율에 맞추어
무용하던 여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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