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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추수와 감사 (요 4:35-38)
2.첫 추수의 감사 (여호수아 5:1-12)
3.추수를 감사하자 (출애굽기 23:14-17)
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18:1,26-29)
5.선민이 지킨 추수감사절 (신16:12-17)
6.하나님을 인한 감사 (합3:16-19)
7.너희는 감사하라 (시136:1-9,25-26)
8.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103:1-5)
9.하박국의 감사, 우리의 감사(하박국3:16-19)
10.확실한 하나님의 뜻은 감사입니다(살전 5:18)
1.추수와 감사 (요 4:35-38)
성경에는 신앙생활을 농부의 삶으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뿐 아니라 인생의 삶은 그 자체가 농사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삶을 농사로 비유하여 사용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을 자식 농사로 표현하는가 하면 기업하는 사람들이 한 해를 결산할 때에도 금년 농사는 별로 재미가 없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땀 흘려서 얻은 결과를 열매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나의 농사로 비유한다면 오늘 말씀은 추수 때에 관한 말씀입니다. 농사에는 모든 부분에 시기가 있습니다. 씨를 뿌릴 때도 있고 곡식을 가꿀 때도 있는가 하면 열매를 거두는 추수의 때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열매를 거두는 시기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감사절입니다. 추수의 때는 바로 감사의 때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추수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감사를 가르친 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에 모든 때가 다 감사의 때이지만 특별히 추수 때를 감사절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추수는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수는 그 동안에 수고한 결실을 거두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감사입니다. 즉 영적으로 보면 열매가 바로 감사임을 보여 주는 것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 열매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추수를 통해서 감사를 가르치시는 교훈을 받고저 합니다. 추수 속에 감추어져 있는 감사의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1.추수에는 시기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가게 되었도다 고 했습니다. 여기에 추수할 때라고 말씀했습니다. 추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기입니다. 다른 것도 시간이 중요하지만 추수는 시간을 놓치면 모든 수고를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거두는 시기를 감사의 절기로 주신 것은 열매와 감사는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열매와 같은 것입니다. 때문에 감사가 없는 삶은 열매가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감사할 일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에는 여러 가지 때가 있습니다. 씨앗을 뿌리는 때가 있고 곡식이 성장하는 때가 있고 마지막에는 열매를 거두는 때가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일은 모든 일이 다 때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추수의 때는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추수의 때를 놓치면 지금까지 한 모든 수고를 다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추수의 때를 놓치지 않고 추수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사에도 때가 있습니다. 감사의 기회를 놓치면 그의 삶은 열매 없는 가을 나무처럼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도는 어떤 일을 할 때마다 항상 감사를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라고 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마다 감사를 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항상 가져야 할 것입니다. 감사는 기회를 놓치고 나면 감사 자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람에게 감사는 감사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에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은 열 사람의 나병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사회에서 완전하게 격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격리된 사람들이었고 사회적으로도 격리되어진 사람들이었고 가족에서도 격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이들을 묶어 두었던 천형과 같은 사슬이 벗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열 사람 가운데 감사의 시기를 놓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감사를 보면 열매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감사가 바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로 감사하면 그 자녀가 열매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가정으로 감사하게 되면 그 가정이 바로 열매가 되게 하십니다. 고난까지도 감사하면 그 고난이 열매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열매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열 사람의 나병 환자에게 열매는 병 나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구원이 바로 열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한 사람에게 주님은 구원의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2.추수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추수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시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했습니다.
추수에 기쁨이 있다는 말씀은 감사에도 기쁨이 있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것은 동일한 일이라도 불평하면 그 일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하면 그 일에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감사할 일이 있으면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그 일이 감사할 일이 되고 우리가 불평하면 그 일이 불평할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서 원망하다가 죽었습니다. 이들이 광야를 원망할 때는 광야가 원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원망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원망하면 그 일이 원망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할 일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감사하면 그 일은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남들이 원망이라고 생각하는 일도 감사하므로 자신에게는 감사가 되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감사를 하고 나면 불평이 사라지게 됩니다. 감사하고 나면 불평하는 일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절을 지킬 때에 감사하는 사람은 삶에서 오는 여러 가지 원망과 불평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면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답이 아닙니다. 감사하고 나면 그 속에 답이 있는 것입니다.
3.추수에는 함께라는 협력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열매는 한 해의 모든 수고를 다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매는 심는 사람의 수고도 담고 있고 가꾸는 사람의 수고도 담고 있고 열매를 거두는 사람의 수고까지 함께 담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도 동일한 원리가 있습니다. 감사는 모두의 수고와 은혜를 함께 생각하는 마음에 담는 삶의 열매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열매를 거두면서도 자신의 수고만 보지 않고 모두의 수고를 함께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원리입니다. 자녀를 낳으면서 감사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는 해산하는 수고 가운데도 남편이 있으므로 자녀를 얻는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됩니다. 의사가 있으니 해산하는 일에 도움을 받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자기 혼자만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 생활에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함께라는 삶의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감사절은 추수를 하면서도 자기 혼자 수고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셨다고 생각하고 이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누겠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의 정신인 것입니다. 감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부자 농부와 같은 사람입니다. 농사를 잘 짓고 자기를 위해서 창고를 만들고 자신만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목자인 나발이 나옵니다. 그는 양털을 깍는 날 다윗이 보낸 소년들을 만납니다. 추수의 날입니다. 그런데 그는 함께라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것이 죽음의 날이 된 것입니다.
출처/조병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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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첫 추수의 감사 (여호수아 5:1-12)
오늘 이 말씀은 간단한 내용이지만 상당한 배경을 뒤에 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입성을 했지만 여리고 평지에서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아직 여리고를 정복하지는 못한 상태에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러면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를 정복할 때까지의 그 기간이 상당한 기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이 얼마냐 하는 것입니다.
그 땅의 소산
요단강을 건너서 곧 바로 여리고를 침공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선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그 땅에서 곡식을 먹었다고 했는데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열매를 먹었더라 하고 그 이튿날에 만나가 그쳤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침에 만나를 내려주심으로 살았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에 나는 곡식을 먹게 된 그때부터 만나가 그쳤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의 곡식을 먹고 가나안의 열매로 살았다는 것인데 얼마나 많은 양식이 필요했겠습니까?
우리는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다고 하니까 예사로 먹었는가 보다 라고 하지만 추정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일년 농사를 지어서 열매를 거두었다고 보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 땅의 소산을 먹는 생활을 실제로 시작했는데 만나를 먹으면서 여리고를 정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 땅의 소산을 먹고 살면서 여리고를 정복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추수의 감격을 누렸던 곳이 바로 여리고 평지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를 살펴보면 "그 땅의 소산"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땅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라는 평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신 하나님은 그 땅에서 나는 소산으로 먹고 살게 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이라는 개념이 히브리 사람에게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땅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땅이 있을 때에는 만나가 주어지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땅의 열매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수고의 양식
여러분, 만나 먹고 사는 게 편합니까? 농사 지어서 거두면서 사는 게 편합니까? 만나 먹고 사는 게 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땅을 주마. 이제는 너희들이 이 땅에서 농사지어 거두어 먹으라 하고는 만나를 그쳤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에게는 수고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결코 먹고 살 수 없는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 가나안 땅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광야에서는 어떤 면에서는 만나를 통해서 편하게 살아 왔지만 이제 약속의 땅은 더 편할 줄 알았지만 더 수고로운 것입니다. 땅을 일구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 그 속담의 의미를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이해를 하십니까? 이 말의 해석을 잘못하면 큰일납니다. 개처럼 번다는 말을 좋은 뜻으로 해석하면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말고 그렇게 하라는 뜻으로는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뜻으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만 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개처럼 벌어선 안됩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교육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당히 뜻이 있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의식적인 위기가 하나 있는데 먹을 것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이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른답니다. 먹기 싫으면 예사로 버리고 우리가 먹고 사는 식물, 밥 한톨, 우리가 먹는 간식 하나의 귀중함을 알고 먹어야 되는데 요즘 아이들의 의식은 당연히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이 있는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지나친 소유가 우리를 더 가난하게 만든다, 먹을 게 항상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더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의 귀중성을 모르는 그 가난이 악성 가난이다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세대들이 먹을 게 많다는 것입니다. 입고 다니는 옷을 보세요. 그러나 그 좋은 옷을 입고 맛난 것을 풍족하게 먹과 입는 것의 귀중함을 모르는 정신적인 빈곤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난의 의미
가난은 남에게 줄게 없는 게 가난입니다. 내 먹을 것도 궁핍하고 남에게 줄게 없는 게 가난입니다. 줄 게 없어서 안주는 사람보다 줄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 넘쳐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에게는 줄 게 없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줄 것은 없습니다. 남에게는 못 준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난한 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교훈의 말이 있습니다. '가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도 말아라. 그러나 가난의 의미는 알고는 살아야 된다.' 우리는 가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가난하더라도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해지더라도 그 가난의 의미를 알고 살자는 것입니다. 가난의 의미를 알아야 가난한 자를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가난의 생활은 하나님이 땅을 주시고 이제는 농사를 지어서 먹으라고 하는 수고를 요구합니다. 여러분, 이 물질 한 푼의 귀중함을 하나님으로부터 감사하면서 먹고 마시고 쓰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추수감사절은 약속의 땅에서 실행되는 개념입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때는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농사한 게 없기 때문에 만나를 거두어 먹는 시절에 무슨 감사절을 지킵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 광야에서 받았던 율법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 그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이제 유월절을 지키고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지키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
약속의 땅이 어디일까요? 우리는 약속의 땅이 없는데 추수감사절을 지킬 의무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문자적으로 보면 우리는 약속의 땅이 없습니다. 공간적으로 보면 약속의 땅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약속의 땅을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직업이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영적으로는 약속의 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예수 안에 사는 것이 약속의 땅에 사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직업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그 일터가 약속의 땅임을 믿으십시오. 그러나 영적으로는 예수 안에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이 말씀 안에 사는 게 약속의 땅에 사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은 추수절을 지켜야 됩니다.
그리고 이 가나안 땅의 추수는 영구한 감사의 추수입니다. 한번만 지키라는 게 아니라 이제 첫 추수를 감사하는 이것이 땅위에 사는 동안에 끊임없이 계속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추수절을 맞아서 사는 자세를 바로 갖추고 살기 바랍니다.
한일 노동자의 의식을 비교한 자료가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사장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 발로 땅을 한번 차면서 욕을 한답니다. 그런데 일본 노동자들은 내가 몇 년 후에 저런 차를 타겠는가 라고 계산을 한답니다. 그런데 우리 노동자들은 아예 내 팔자는 저런 차는 못 탄다, 무슨 도둑질을 하든지 엉뚱한 짓을 해야 저런 차를 탄다, 사장들은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저런 차를 타느냐 하고 욕만 하지 내가 앞으로 저런 차를 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예 한국의 사장과 노동자는 건너가지 못하는 관계인줄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노동자들은 안그렇다는 것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저 성공의 자리에 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절대로 원망하고 악심을 품고 욕하는 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현실은 슬픈 현실입니다. 사장과 노동자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아예 체념하고 보는 것입니다. 나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저 자리, 큰 도둑질이나 해야 성공하는 자리 라는 식으로 체념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는 자세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런 자세로 살면 안됩니다. 우리는 남의 성공을 격려해주고 박수 쳐주고 나도 따라갈지언정 시기할 필요도 없고 체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땅에서 주신 하나님의 추수의 계명은 참 엄격한 논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만 주신 하나님은 이제는 네가 수고해서 네가 농사하여 여호와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위에 사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일수록 더 열심히 살아야 되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하나님이 꿈을 보여주셨는데 칠년은 풍년이 들고 칠년은 흉년이 든다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요셉이 칠년 풍년 동안에 앞으로 다가올 칠년 흉년을 대비했습니다. 곡식을 저장하여 애굽의 칠년 흉년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창세기에 나옵니다. 제가 이것을 보면서 아하 이게 바로 인생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살이는 칠년 풍년도 있고 칠년 흉년도 옵니다. 계속 풍년만 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또 계속 흉년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요셉의 칠년 풍년 그리고 칠년 흉년은 우리 인생에게 반드시 다가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풍년도 적응해야 되고 흉년도 적응해야 합니다. 풍년 때도 하나님을 경외해야 되고 흉년 때도 하나님을 경외해야 됩니다. 이것을 청년기와 노년기로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로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집안의 이야기입니다. 사십대 중반의 아들이 팔순이 다 된 아버지 앞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지금 마흔 여섯입니다. 그런데 오십이 되면 이제 저는 퇴직을 해야 됩니다." "뭐, 오십에 퇴직을 한다고? 그렇게 일찍 퇴직하느냐" "아버지, 요즘 세상이 변해서 오십이 되면 우리 직장에는 다 퇴직을 합니다. 그래서 나도 퇴직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네가 퇴직을 하면 내 나이 될 때까지가 사십년인데?" 그러니까 이 아들 대답이 "아버지, 제가 살 세상은 좀 더 오래 살 것이기 때문에 오십년은 거뜬히 더 살아야 됩니다. 이제 오십년은 전반부고 앞으로 오십년 더 살 대비를 해야 됩니다." 그런 부자간의 대화가 있습니다.
존재냐 소유냐
여러분, 우리 인생살이가 칠년 풍년기가 있고 칠년 흉년기가 있지만 이 풍년기의 대비가 없으면 칠년 흉년은 대단히 힘이 듭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오늘 우리는 범사를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산다고 하는데 두 가지 자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이 이 둘 중의 하나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에릭 프롬이라는 사람이 소유가치와 존채가치를 말했습니다. 소유냐 존재냐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 둘로 나누어집니다.
욥은 존재형의 인간입니다. 욥은 가진 것을 다 잃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욥의 아내는 소유형의 인간입니다. 재물 없어지니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는 저주가 나오는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가진 것을 다 잃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자세로 우리가 살지 않는 한 인생살이는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칠년 흉년을 너무 앞당겨서 겁을 집어먹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신앙인으로 살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보장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금 놓치는 것은 자꾸 인간적인 수단을 부리려 하고 인간적인 방법이 지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해야 되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할 때는 믿음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인생살이에 가난이 오는 것입니다. 의미상의 가난입니다. 밥은 먹으면서도 영적인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의 첫 추수를 감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광야생활보다 더 여호와를 가까이 모시고 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되고 더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야 됩니다. 광야에 살 때는 여리고라는 적이 없었습니다. 광야에는 가나안 칠족이 없었습니다. 그저 내려주는 만나를 주워먹고 내려주는 메추라기를 잡아먹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면 되었지만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이제 그런 자세로는 못삽니다.
예수 믿고 사는 우리는 광야에 살 때처럼 그런 자세로는 안됩니다. 하나님 모르고 불신자처럼 사는 방식으로는 안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살아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존재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보실 때 내가 너를 필요로 한다, 너는 내 것이라고 하는 존재 의미가 있는 인생으로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맺는 말
어떤 이는 설교하고 간 사람을 잘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사람보다는 그 분이 전해주고 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증거해주고 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효과가 나타나야 됩니다. 사람을 자꾸 붙잡으면 안됩니다. 세례 요한을 붙잡으면 안됩니다. 세례 요한이 전해주고 간 그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광야의 소리다 라고 했습니다. 설교자를 의식하지 마십시오. 설교자가 전해주는 그 말씀을 여러분들이 붙잡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사셔야 됩니다.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사시면 그것이 약속의 땅입니다. 말씀 안에 사는 것이 약속의 땅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금년 추수감사절에 충만히 누리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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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추수를 감사하자 (출애굽기 23:14-17)
빈부의 바른 개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란 책이 오랫동안 베스트 셀러입니다. 제가 책방에 수차례 가 보아도 이 책이 눈에 잘 띄는 곳에서 계속 팔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부자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부자가 되는 여러 가지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동의할 수 없는 사상은 부자가 되는 것이 곧 인생의 성공이다 라는 전제입니다. 부자가 되어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그 사상을 전제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대목은 저의 마음속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부자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부가 성공의 기준이라는 철학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부자 아빠는 좋은 아빠, 가난한 아빠는 나쁜 아빠라고 하는 논리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뿐만 아니라 부에 대한 시각을 바로 가지지 못하는 것도 아주 위험한 사상이라는 것을 이 책은 암시합니다. 다시 말하면 큰 차를 타고 큰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 부정하게 돈을 번 사람들이고 작은 집에서 살고 작은 차를 타는 사람들은 청빈한 사람들이다 라는 논리도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싸울 때 어느 편을 들어야 되겠느냐 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가난한 자를 도와주어야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옳은 자의 편을 들어주라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로운 부자, 의로운 가난한 자를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부자 아빠는 성공한 아빠요 가난한 아빠는 실패한 아빠로 규정하는 철학이 깔린 사회의 풍조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추수절
성경에서 추수절은 맥추절과 수장절로 명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성탄절과 부활절과 더불어 개신교가 받아들이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성경에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지키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교회가 이 절기를 제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은 성경에서 맥추절과 수장절로 지키라고 엄격히 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지키는 이 절기의 일자는 교회가 정한 것이지만 감사절은 성경이 명하고 있는 역사깊은 아름다운 절기이며 기독교의 자랑입니다. 이슬람은 라마단 기도기간이라 하여 200만명이 모여서 라마단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절기를 명하셨는데 이것은 구원의 축제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는 것은 추수를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수장절을 지키라는 것은 추수한 것을 저장하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추수감사절을 주셨고 우리가 그 은혜 안에서 추수감사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이 절기는 율법의 중요한 핵심적인 교훈입니다. 출애굽기에서부터 신명기까지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섯 가지 제사와 여덟 가지 절기를 주셨습니다. 이 다섯 제사와 여덟 절기는 따로 되어 있는 교훈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부 의미가 묶어져 있고 전체 율법 안에 절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도 "…수고하여 얻은 열매로 지키라. 밭에서 거두어 들이라…" 이렇게 명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6장 17절에는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물건은 곡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처음 명하실 때의 추수절은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곡식으로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추수절을 지키는 환경은 아주 다릅니다. 그런데 추수절에 어떻게 드리라는 기준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회적으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절기에 관해서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말씀을 이어 가시는데 맥추절과 수장절만이 아니라 이 절기와 연관하여 계속 그 이야기들을 율법에서 이어갑니다. 레위기에도 십일조에 관한 언급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
율법에 왜 절기와 함께 십일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민수기 18장 21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십일조"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절기에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를 말합니다. 그들이 바친 이스라엘의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이 십일조 가운데 또 십일조를 떼어서 기업이 없는 레위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을 돌렸습니다. 레위인들은 자기들이 받은 것 가운데 또 십일조를 떼어서 여호와께 감사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절기에 십일조 하는 형식으로 예물을 명하고 있는 대목을 보면 이스라엘의 십일조라는 공동의 십일조가 바로 추수감사절에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얼마든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감사절과는 환경이 너무 다릅니다. 매월 십일조를 드리고 매주마다 이미 십일조를 여호와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추수감사절에 일년 소득의 십일조를 감사헌금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십일조를 드렸기 때문에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의 규례를 가지고 절기헌금을 명하고 있으며 그것 가운데서 또 십의 일을 구분하여 레위인에게 돌리고 또 십의 일을 구분하여 제물로 드리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소득에 대해서든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십일조 논쟁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십일조는 하지 않아도 된다, 십일조는 폐하여진 법이고 예수님이 십일조를 가르친 바가 없다, 사도 바울도 십일조를 가르친 바가 없다, 교회가 십일조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말씀에 맞지 않다, 십일조헌금은 이미 없어진 제도이다 라는 십일조 무용론을 펼쳤습니다. 학술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가 구원문제는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인식을 해야 됩니다. 최소한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 앞에 바로 산다는 삶의 신앙고백이 바로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내가 적어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산다는 그 고백이 십일조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우리의 삶 속에서 늘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가 온전한 십일조만 한다면 다른 헌금은 드리지 않아도 교회재정은 배가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교회재정의 90%가 십일조 헌금입니다. 모든 교회가 대부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작년 결산을 보니까 89.2%가 십일조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 외의 헌금은 교회 재정상 1할밖에 안됩니다. 십일조가 9할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헌금입니다.
온전한 십일조
성경에 온전한 십일조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십일조를 온전하게 잘 드리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리지 못하는 성도들도 많이 계십니다. 만약 십일조 헌금을 온전하게만 드린다면 우리 교회는 재정이 배로 되고도 남을 여지가 있습니다. 그만큼 십일조는 온전하게 드려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어떤 이는 십일조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물론 십일조 한다고 다 훌륭한 교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 나올 수는 없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믿음으로 드리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꾼을 부르신다'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이런 기도를 했답니다. '주여, 우리 교회에 백만원 십일조를 하는 교인 백명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저는 목회자로서 그 분의 기도를 따라하지 못하겠습니다. 꼭 한다면 이렇게 수정하고 싶습니다. '주여, 과부의 두 렙돈이라도 좋으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교인 백명을 주시옵소서.' 온전한 십일조가 중요하지 결코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백만원 짜리 십일조가 힘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단 돈 만원을 십일조 해도 믿음으로 해야 힘이 있습니다. 절대로 돈이 힘있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 힘이 있습니다. 믿음의 힘은 물질을 능가하지만 물질의 힘은 절대로 믿음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액수가 힘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온전한 헌금인가 라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을 때 힘있는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율법에 보면 세 가지 몫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몫
첫번째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것이 십일조입니다. 여러분 무슨 소득이든지 하나님의 몫을 돌려드리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손대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추수했느냐, 내게 가져오라는 하나님의 몫으로서 이스라엘의 십일조는 하나님께만 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십일조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것을 구분해야 됩니다. 설교자가 물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삼가해야 됩니다. 그러나 들으실 때 물질이야기인지 헌금이야기인지 구분하셔야 됩니다. 헌금은 물질이야기와 다릅니다. 또 헌금 중에도 다른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건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몫으로 십일조를 요구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추수한 것은 하나님이 몫을 요구합니다.
이웃의 몫
두번째는 이웃의 몫이 있습니다. 그 우선되는 몫이 구제입니다.
레위기 23장 22절에 "너희 땅에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고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절기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너희들이 추수를 할 때에 밭 모퉁이의 십 분 일을 남겨두되 삼 년마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매년 절기를 지키되 삼 년마다 너희 추수의 십분의 일을 밭에 남겨두어서 가난한 자와 나그네들이 추수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삼 년마다 십일조를 하라는 것이 구제 십일조입니다.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서 삼십 분의 일을 구제하라는 암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제를 많이 하라고 명하지는 않습니다. 굳이 계산해보니까 삼십 분의 일입니다. 삼 년마다 십 분의 일을 가난한 자를 위해서 돌려주라는 것은 이웃을 위한 몫입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하고 장학하고 전도하는 것은 본 예산 속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또 경조하는 것도 이웃을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계산해보면 우리 교회가 많이 하는 교회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정선에서는 하고 있습니다. 한 일억오천여만원은 이웃을 위해서 쓰는 예산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웃을 향하여 돌려주라는 명령이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 안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추수할 때부터 삼 년마다 이웃에게 돌려줄 몫을 남겨두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또한 품삯도 이웃의 몫입니다.
레위기 19장 13절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내게 두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아래 고용인들을 부릴 때 품삯을 정당하게 주라는 것입니다. 품삯은 내 몫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되 빨리 주라는 것입니다. 내일 아침까지 두지 말고 그날에 주라는 것이 율법의 명령입니다. 품삯을 가로챈다는 것은 크리스천의 인격과 삶이 아닙니다. 율법이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장사가 안되어 남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 이야기가 자꾸 교회 안에 알려지니까 목사님이 위로한다고 "집사님, 그렇게 힘들게 사업을 하십니까? 그만하시지요. 내가보니 집사님은 사업을 안하셔도 얼마든지 여유있게 살 만하고 매주마다 골프치러 가셔도 괜찮겠는데 왜 그렇게 고민하고 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그 집사님이 좋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사업을 꼭 해야 될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과 함께 먹고 살아야 됩니다. 내가 그 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됩니다. 둘째는 국가에 세금을 내야 됩니다. 내가 사업이 안되어도 직원들 임금 주고 세금 내는 그 재미가 있으므로 사업을 해야 됩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웃에게 돌릴 것을 가지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바로 빚입니다. 빚은 내 몫이 아닙니다. 이것은 갚아야 될 몫입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토론하면서 빚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두 가지 빚 말고 다른 빚은 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갚아도 안 갚아지는 만성 빚이고 또 하나는 처음부터 떼먹을 작정으로 남의 돈을 빌리는 악성 빚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외에는 다 빚을 지라는 것입니다. 갚을 수 있는 빚은 얼마든지 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빚을 안지고는 사업이 안된답니다. 그리고 그 분 이야기는 빚지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빚 갚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사업에 성공한다, 그러나 만성 빚과 악성 빚은 지지말라는 것입니다. 빚은 왜 갚아야 됩니까? 내게 돈을 준 그 사람이 나를 볼 때마다 마음에 상처를 받기 때문에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잊어버리고 있는데 돈을 준 사람은 절대로 상대방을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수넴의 한 가난한 여인 집에 갔습니다. 하나님이 그 여인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기름을 붓는데 이 기름이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그때에 엘리사가 이런 말씀을 합니다.
열왕기하 4장 7절에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게 하라"고 합니다. 빚은 내 몫이 아니라 갚아야 할 이웃의 몫입니다.
또한 세금은 네 몫이 아닙니다. 세금을 내야 될 우리는 절세는 가하지만 탈세는 안됩니다.
이랜드 박성수 사장이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두 가지 서원을 하나님께 했는데 뇌물과 탈세없는 사업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보니까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원을 했기 때문에 서원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해보니까 얼마나 어려운지 그분이 이렇게 비유를 하였습니다. 뇌물과 탈세없이 사업을 하려니까 뇌물과 탈세를 일삼는 사람과 내가 손발을 묶고 경기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로 못하는 고충을 겪고 오해도 받았지만 십 년을 뛰어보니까 자기가 앞에 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은 17장 24절 이하에 바리새인들이 베드로에게 와서는 우리는 성전세를 냈는데 당신하고 당신 주인은 성전세를 안낸다, 우리는 성전세를 내는데 왜 당신들은 안내느냐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0장에 성소에 들어가는 남정네들과 전쟁에 나갈 남정네들은 반 세겔을 성전세로 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베드로는 성전에 출입하면서 성전세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책잡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때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너와 나를 위하여 주라"고 하셨습니다.
세금을 안내는 것은 오해를 받을 만하다. 그래서 물고기 입에 돈을 낚도록 하는 기적을 베풀어서라도 주님이 성전세를 물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내 몫
세번째는 내 몫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몫을 나중에 주시더라도 제일 많이 주십니다. 하나님의 몫을 드리라, 그리고 이웃을 위해 십 분의 일을 삼 년마다 밭에서 추수하지 말고 남겨 두라, 그리고 품삯을 갚아주라는 것이 율법에 그대로 나오는 교훈입니다. 이웃에게 추수해서 돌릴 것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몫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추수절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교훈입니다.
맺는 말
우리는 추수감사절기를 통해서 또 한번 율법의 정신을 우리 삶 속에 배워야 됩니다. 내가 혹시라도 하나님께 돌릴 몫과 이웃에게 돌릴 몫과 내게 돌아올 몫을 섞어 놓고 살지 않았는지 하나님은 그 몫을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그 몫을 인식하라는 것이 감사절기를 주신 정신입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가져오라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삼 년마다 이웃을 위해 밭에 추수할 것을 남겨두라고 하나님이 명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몫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돈이 있는지 모릅니다. 몫을 구분하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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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18:1,26∼29 )
장애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은혜의 집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집을 방문한 어느 장로님이 장애자들의 식사를 도우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손으로 내 입에 밥을 떠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일을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와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가 크고 지대합니다. 하나님은 풍수해에도 불구하고 평년작을 넘는 풍년을 주셨습니다. IMF를 지나 고유가 시대를 맞이했는데도 도로에는 자동차가 다닐 틈이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관계의 긴장이 완화되고 50년만의 상봉이라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우리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까지, 5천년 역사 속에서 우리 나라가 이토록 세계적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새 천년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의 추수감사주일은 1623년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첫 번째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그 시초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감사의 노래"입니다. 첫 절부터 끝 절까지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납니다. 이 시편은 아마도 이스라엘이 큰 명절 때 불렀던 감사의 노래일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시편 주석을 모두 끝낸 후 본 시편을 가장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는 사람들이 본 시편을 루터의 시편이라고 합니다.
I. 감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의 얼굴입니다
이스라엘이 지키던 제사 제도에는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제사 제도란 하나님을 만나는 의식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양상과 동기는 달라도 모두가 감사의 제사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세 절기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유월절, 즉 무교절입니다. 둘째는 칠칠절, 즉 오순절 혹은 맥추절입니다. 셋째는 초막절이라고도 하는 장막절, 혹은 수장절입니다. 모두 그 시기가 다르고 지키는 제도도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신만은 같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첫째 절기는 구원에 대한 감사요, 둘째 절기는 추수 혹은 생활에 필요한 것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요, 셋째는 광야 인생 길을 인도하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감사의 동기 혹은 가장 기본적인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통한 구원에 대한 감사, 구속에 대한 감사입니다. 프린스턴의 교장을 지낸 분
이 말하기를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자선과 도덕적 권위의 동기는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이것이 동기가 아니라면 어떤 자선이나 도덕적 헌신도 상업주의에 치우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감사는 인간 됨의 특징입니다. 철학의 조상인 탈레스도 세 가지 때문에 감사한다고 말하면서 그 중 첫째가 자신이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얼굴입니다.
II.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감사의 제사인 번제를 1천 번이나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고 말씀하시자,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고 하나님은 지혜와 더불어 부귀와 영화와 장수와 건강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물론 좋은 조건에서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 시편의 경우를 보더라도 때로는 고통 중에 미움을 받으면서, 원수의 공격을 받으면서, 억울해도, 죽을 지경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즉시 해야 합니다. 희랍 사화에 "감사는 즉시하라. 지체하면 감사도 없어지고, 감사의 명목도 없어지느니라."고 했습니다. 형식만 남은 감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그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III. 감사는 인생을 건강하게 하는 묘약입니다
97세의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 분의 별명은 "감사 할머니"입니다. 어찌 인생 길에 좋은 일만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그 분은 어떤 경우에도 "주여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그 분은 건강하고 장수하여 자녀와 집안이 모두 하나님의 큰복을 누리며 신앙 좋은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미국의 데롤 파커 목사님은 "인생은 감사할 때 예쁘고 아름답다. 감사는 마치 좋은 물건의 끝손질과도 같고 아름다운 여인의 끝 화장 솜씨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현대인은 유독 미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50세나 60세가 넘어가면 모두 비슷합니다. 하지만 감사의 얼굴은 천사같이 아름답고 어머니같이 다정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자신의 미모를 자랑해도 화를 내거나 불만이 가득하거나, 한이나 독을 품으면 그 얼굴마저 이지러져서 마귀 같은 얼굴로 변해 무섭기 짝이 없습니다. 감사는 예쁘고 건강하게 하는 묘약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작은 일일수록 소중할 수 있습니다. 큰 일만 감사하지 말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웃 어른에게, 선생님에게, 심지어 어린아이에게까지 감사하며 더 나아가 이 모든 감사가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강동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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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민이 지킨 추수감사절 (신16:12-17)
먼저 금년도 추수감사절을 거룩한 교회에서 보낼 수 있도록 은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추수감사절은 1620년 4월 5일 102명의 청교도(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자들)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나는데서부터 그 기원을 찾게 됩니다. 그들은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망망한 대해를 항해하다가 도중에 51명이 죽었고 장장 3,400마일(5440Km)을 항해하여 뉴잉글랜드 "프리마우스"라는 곳에 정박하게 되었습니다. 1년을 지내는 동안 맹수의 위협과 원주민들의 살상공격, 그리고 질병과 싸우고 굶주림과 싸우다가 남은 사람의 반수가 죽고 49명이 생존한 가운데 땅을 개간하여 옥수수를 심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울창한 숲속에 들어가 짐승들을 사냥하여 일용할 양식을 삼으며 보내었습니다. 그러다 1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그들은 처음으로 거둬들인 얼마 안되는 곡식을 모아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이 때가 늦은 가을이었습니다. 이 예배가 바로 첫번째 추수감사절예배였습니다. 그들의 추수감사절예배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가운데서 지극히 원시적인 여건과 가난한 사람들의 손길에 의하여 드려진 예배였습니다.
그들은 때로 인디언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고 질병으로 쓰러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드린 추수감사절의 예배는 동료를 절반이나 잃어버린 예배로서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동료들의 묘지 곁에서 드린 예배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함께 쓰던 공동변소도 불이 나서 타 버린 상태에서 얼어붙은 땅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예배였던 것입니다.
그렇치만 추수감사절예배는 미국 대륙을 발견한 1623년경 청교도인들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지만 1789년 11월 26일 워싱턴대통령에 의하여 미국 국경일로 채택되면서 추수감사절은 더욱 아름다운 믿음의 본이 되는 축제의 날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더 오랜 기원은 성경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기원이 바로 본문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이미 3대 절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23:14에 보면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첫째는 유월절(무교절)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신16:1-18) 이 절기는 출애굽하게 될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고 쓴 나물과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먹으며 출애굽을 준비하는 절기였습니다.
둘째는 오순절(맥추절)로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과 첫번째 수확하는 곡식인 보리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셋째는 초막절(수장절,칠칠절)로서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들과 포도와 무화과 추수를 감사하며 또 출애굽하여 가나안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지내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킬 때에는 광야로 나아가 초막을 짓거나 탠트를 치고 한 주 동안 그 안에서 조상들이 겪은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서 보내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세 절기의 특징과 공통점은 모두 감사하는 절기라는 사실입니다축복을 받았다는 생각이전에 우리는 나그네 인생들로 초막집에
거하며 사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같은 인생들을 하나님께서는 1년 동안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는 지금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내려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감사는 지나간 1년을 뒤돌아 보면서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을 깊게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년을 살아오는 동안 너무 바빠서 지난날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얻은 구원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생각해 보실 여유가 없었습니까? 지금 생각하면서 감사해 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삶의 고비를 넘겨왔는지 어떻게 오늘에까지 이르렀눗이 한 자리에 모여서 잔치로 연락하며 지냈습니다.(14)
①자신과 자녀와 함께 초막절을 지키며 함께 떡을 나누며 감사하라고 합니다. ②노비는 자기 재산이나 재물이 없는 불쌍한 자이니 함께 나누라.
③레위인은 자기기업이 없이 성전에서 봉사하니 함께 나누라.
④객은 자기집을 나와 여행하는 중에 있는 자이므로 함께 나누며 먹으라.
⑤과부는 남편이 없이 가정을 책임진 가장이요,소외된 자이므로 함께 돌보라.
⑥고아는 부모가 없이 자력으로 살아가는 자로서 위로와 소망을 주라.
⑦위와같은 사람들은 자기를 인정해 주고 대접받는데서 사랑을 느끼는 자이다.
추수 때에 고아나 과부를 위하여 곡식을 남겨 두었는데 룻기에 나오는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룻이라는 여인이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는 생활의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때 그는 보아스의 밭에 나가 보리이1년 동안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는 절
기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길에 있어서 하나님이 과거에 베푸신 축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즐거워하는 날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15上) 우리를 택하신 곳은 하나님의 성전 이 성산순복음교회입니다. 이 곳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②추수감사절을 반드시 여호와 앞에서 지켜야 했습니다.(15中) 추수감사절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추수감사절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하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명령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잘하고 있는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면서 성도들에게는 술 담배를 끊으라고 설교한다면 권위없는 말이 될 뿐아니라 그래서도 안될 것입니다. ③추수감사절은 우리 자신의 모든 소산물에 복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 해야 합니다.(15中) 지나간 일년 동안 소산물에 복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또 복을 주실 것을 믿으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하는 가운 손을 보이지 말되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리라고 했습니다.(17) 하나
님이 복을 얼마나 주셨는가는 자신이 압니다. 자신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인정하고 느끼는만큼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회자가 물질드리는 설교를 제일로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물론 헌금설교는 하기 어려운 설교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헌금설교가 하기 어려운 설교라고 하여 목회자가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일 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없는 목자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고후9:6,10-11)
다시 말하면 축복받는 비결을 성도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목회자로서 성도들의 축복을 가로막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축복받은대로 힘껏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힘껏 드린다는 말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범위 안에서 드린다는 뜻입니다. 더 쉬운 표현을 한다면 고구마를 수확한 농부 성도가 하나님의 교회에 고구마를 드리기를 원하여 지게에 짊어지고 교회에 나온다면 자기가 짊어지고 나올 수 있는 정도 가지고 나와야지 짊어질 교인들이 다 밖으로 나오자 예배당이 무너졌습니다. 이 때 많
은 사람들이 목사님과 악수를 하면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지만 예배당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도 은혜를 받았습니다."고 했습니다. "아니 예배당이 무너졌는데도 은혜를 받았단 말이오"라고 어느 누군가 퉁명 스럽게 말하였습니다. "그래요,마치 예배당이 눈이 있는 것처럼 사람이 다 나온 것을 알고 무너져 사람이 한 명도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눈이 달려 있어서 사람이 다 나온 거둠을 축하하는 것은 더욱 무의미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뿐만 아니라 평상생활 속에서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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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하나님을 인한 감사 (합3:16-19)
여러분과 저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하는 말을 들을 적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됩니까? 소금은 변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는 데, 그와 같이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를 주로 믿고 있기에 변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중에 하나가 '감사하는 믿음이고 삶'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부르게 되고,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된다(잠18:20)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우리 입으로 나오는 말은 우리 중심에 있는 나의 마음이며, 나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이 원망이나 하고 짜증이나 내고,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조소하듯 세상을 산다면 어찌 우리가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힘든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분이 있다면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감사가 행동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머리로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힘써 성경이 가르치는 바 감사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맛을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이라는 특별절기를 맞이하여 이제 여러분과 제가 지녀야 할 신앙은 다른 것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을 뵈올 적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라(시100:4)"는 말씀에 부합하는 인생으로 바뀌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1. 항상 감사하는 말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그 사람의 말하는 특색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아쉬운 소리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남을 헐뜯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불평하고 모든 사람을 나쁘게 보고 비평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말속에 진실함이 배어 있어서 대화할수록 푸근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합니까?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말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함부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말을 하지 말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언어 생활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성경에 이르시길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 했고, "무엇을 하던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하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고마운 마음, 부모에게 형제에게 이웃에게 감사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으로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감사함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감사하므로 찬양을 드리십시오. 감사하다고 예물을 드리십시오. 부모와 아내에게 형제와 자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십시오. 그를 선전하십시오. 선물을 주십시오.
계속해서 하는 감사하다는 말과 실천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정말 축복된 인생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2. 감사하는 생활이 없는 것은 버림받은 마음의 상태로 넘어가는 영적 위기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감사치 않는 일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 중에 하나가 되고 있음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10명의 문둥이를 치료하여 주셨을 때에도 단 1명만이 돌아와 사례를 하였었고, 이 일에 대하여 주님은 매우 섭섭한 마음을 보이셨습니다.
<로마서 1:18-21>에는 하나님을 떠나있는 심판 받을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 하였고, 그들의 특징을 열거하는 중에 21절 말씀에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다"고 증거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하여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은 도적이나 살인자와 매 한가지의 마음이라고 옛날부터 신앙인들은 말해왔던 것입니다.
어떤 신앙이 깊은 왕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신하들을 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하루는 아주 버릇없는 거지를 하나 신하들과 함께 왕의 식탁에 초대하였습니다. 거지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고, 허겁지겁 배를 채운 후에는 그냥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신하들은 거지의 뒤에 다 대고 천하에 버릇없는 인간이라며 욕을 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왕은 신하들에게 말했답니다. "당신들도 같은 사람이요. 당신들도 모든 것을 거져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있지 않소" 하였답니다.
감사 없는 삶은 하나님 앞에 버릇없는 자와 같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삶이란 사실을 깨달아 열심히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3.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십시오(엡5:20. 골3:17).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문 삼아 감사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분의 교훈에 비추어, 그 분의 사역을 통하여 이루신 업적을 인하여 얻은 축복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그 분같이 아무 것도 없어 달랑 몸을 감싸고 있는 옷 한가지를 인하여도, 그래서 머리 둘 곳이 없어도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성도는 그에게 이루어진 구원의 은총을 인하여 무엇보다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가장 가치 있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감사와 영광은 맨 정신이나 이치보다도 성령의 감화와 역사로 말미암아 더욱 넘치게 됩니다. 성령으로 할 때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가닥을 잡게 되고 마음과 영이 합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엡5:18-21).
감사는 계산하는 일이 아니기에 넘치게 하되(골2:6-7), 쉬지 않고 감사하도록 해야 합니다(살전2:13). '넘치게 한다'는 말을 좀 잘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감사헌금을 비유하여 말한다면 부담되게 하는 것입니다. 가볍게 손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조금은 염려가 될 만큼 힘써 하는 것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참으로 딱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두고 있는 딱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제 경우는 딱한 사람을 많이 만났지만 그 중에서도 몸통만 남은 사람, 팔다리 모두 없는 그 사람들이 가장 딱하고 안됐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웃고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웃는 모습이나 기뻐하는 모습이 더 안스러워 보이지만, 어떻게 웃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없는 것을 생각지 않으니까, 잃어버린 것에 메이지 않으니까 웃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만을 생각하기에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아무쪼록 있는 것 남은 것을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십시오. 없는 것, 잃은 것을 생각하다 보면 이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불행한 인생이 됩니다.
잃은 것이 있습니까? 건강, 재물, 명예 등 잃은 것이 있어도 남은 것 인해 감사하시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는 성도이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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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너희는 감사하라 (시136:1-9,25-26)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감사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에게 감사해야 하고, 우리의 자녀에게 감사하여야 하며, 우리의 형제들에게 감사할 것이 많다. 교회 안에서 성도는 교회에 감사하여야 하고, 교회는 성도에게 감사하여야 하며, 목회자는 양떼에게 감사하여야 하고, 양떼는 목회자에게 감사하여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시간 “너희는 감사하라”고 외치는 것은, 물질의 욕심으로 인하여 자신을 잃어버리고, 탐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심령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기의 잘못으로 인하여, 실수로 인하여, 죄로 인하여 오는 고통을 인정하거나, 회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얼굴에 웃음을 잃어버리고 가슴에 뜨거움을 잃어버리며, 마음에 성령을 소멸하며, 감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 자기의 삶의 목적을 상실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미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의 주위에 너무나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러므로 이 시간 죄로 인하여 고통받던 우리의 심령들이 감사 절기를 맞이하여 생명이 되시며, 교훈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우리의 심령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 특히 감사하지 못했던 우리가 오늘 추수 감사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1년의 삶을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세상 일에 모든 염려와 근심 걱정을 내어 놓고 주님께 맡기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간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구할 것을아뢰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응답받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해답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너희는 감사하라”, “너희는 감사하라”
1. 누구에게 감사하여야 하는가?- 감사의 대상
1) 주께 감사하여야 한다
오늘 말씀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본문 시136:1, “주께 감사하라”고 강도 높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바로 내 자신이, 아니 여러분 자신이, 오늘 이 음성을 받아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대상 16:8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삼하 22: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2) 모든 신들 중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시 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3)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분에게 감사하여야 한다- 본문은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다윗 자신이 주위 이적과 기사를 전하겠다고 결심하며,
시 9: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더구나 아삽은 고백하기를
시 75: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
4) 창조주에게 감사하여야 한다.
하늘을 창조하신 분, 물을 물러가게 하시며 땅을 들어내신 분, 빛을 창조하신 분,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분으로 6일 동안 모든 만물을 완벽하게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시 145:10 여호와여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리이다
5) 먹을 것을 주신 분에게 감사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있는 음식으로 식물들과 과일들과 채소를 주셔서 먹게 하셨다.
창 1:29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온 지면 위에 있는 씨맺는 모든 식물들과 씨맺는 모든 나무의 과실들을 주노니 그것들은 너희에게 음식이 되리라 하셨으며,
그뿐만이 아니다.
창 3:19 너의 얼굴에 땀을 흘려야 고기를 먹으리니
식물을 땅에 있는 것을 먹으나, 고기를 먹으려면 짐승은 신속히 움직이며, 다니기에 잡기가 힘들어 상징적인 의미는 땀을 흘려야 잡는다는 것이다.
창 9:3 움직이며 사는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음식이 되리니 내가 녹색 식물과 같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었노라
이렇듯이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롬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6) 하늘에 계신 분께 감사하여야 한다.- 우리를 형통케 하신다.
느 2:20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러면 이 모든 감사는 누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인가?
1)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2)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 무엇에 감사하여야 하는가?- 감사의 목적
1) 주에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여야 한다.
대상 16:35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할지어다
시 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2) 주에 의에 감사하여야 한다.
시 7: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3) 우리의 구원이 되시기에 감사하여야 한다
시 118: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4) 나를 도와 주심에 감사하여야 한다.
시 142: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5)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여야 한다.
고전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3. 왜 감사하여야 하는가?- 감사의 이유
오늘 본문은 이 이유에 대해서 간단 명료하게 선포하고 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대상16:34;시107:1;118: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주님의 행하심을 선포하기 위해서 감사하여야 한다.
사 12: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3)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알리기 위해서다.
시 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4) 주님을 의지하기 위해서이다.
시 52: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5) 자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다.
시 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6)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위해서
롬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7)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에 대하여
고후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4. 어느 때에 감사하여야 하는가?- 감사의 시기
1) 주 앞에 나아갈 때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시 95: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2) 주의 전에 들어올 때에 감사하여야 한다.
시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 118:19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3) 주의 거룩한 날을 기념할 때에 감사하여야 한다.
시 97:12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지어다
4) 집회 중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시 35:18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5) 서원할 때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시 56: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5. 무엇으로 감사하여야 하는가?- 감사의 방법
1) 악기를 써서 감사하여야 한다.
시 33: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시 147:7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시 92:1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2) 감사 제물을 드리므로 감사하여야 한다.
시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시 116: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3) 자원하여 드리는 헌물로 감사하여야 한다.
시 54: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6. 언제까지 감사하여야 되는가?- 감사의 기간
1) 영원히 감사하여야 한다
시 30:12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시 79:13 그러하면 주의 백성 곧 주의 기르시는 양 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로 전하리이다
2) 자녀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대대로 감사하여야 한다.
사 38: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7. 어떻게 감사 제물을 드려야 하는가?- 감사 제물의 의미
1) 받아들여지도록 하여야 한다.
레 22 : 29 너희는 주님께 감사의 희생제물을 바칠 때에 너희의 것이 받아들여지도록 바칠지니라
카인과 아벨의 경우:
4 : 3 카인[가인]은 토지의 산물 중에서 주님{아도나이, 야붸}께 제물을 바쳤고
4 : 4 헤벨[아벨] 또한 그의 양떼의 첫 새끼들 중에 가장 기름진 것으로 바쳤으므로 주님{아도나이, 야붸}께서 헤벨[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으나
4 : 5 카인[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더라 카인[가인]이 매우 화가나서 자기의 안색이 변했더니
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는가?
카인: 토지의 산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을 바치지 않음- 하나님께 받으시지 않았다.
아벨: 양떼의 첫 새끼들 중에 가장 기름진 것-최상의 질을 바침-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도록 바쳤다
2) 정직한 마음으로 즐겁게 드려야 한다.
대상 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3) 너그럽게 바쳐야 한다.- 바치는 것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고후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8. 왜 추수감사절을 지키는가?- 추수 감사절이 있는 이유
1) 주님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시 118: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3)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시 119: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4) 이 감사절의 행사를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시 107: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
5) 무리 중에서 찬송하기 위해서이다.
시 109:30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무리 중에서 찬송하리니
6) 모임 중에서 감사하기 위해서다
시 111:1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7)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이다.
시 138:4 여호와여 땅의 열왕이 주께 감사할 것은 저희가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8) 봉사의 직무를 행하기 위해서이다.
고후 9: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9. 감사하므로 오는 결과는 무엇인가?- 감사의 결과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고후 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2) 감사한 자에게 감사가 되돌아 온다.
고후 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3)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에 마음에 있게 된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4) 믿음에 굳게 선다
골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5) 이기게 하신다
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6) 구한바를 응답해 주신다.
단 2:23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7) 번성케 된다.
렘 30:19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8) 성도의 기업을 얻는다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9) 구원을 이룬다.
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오늘 추수 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주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그 분은 모든 신들 중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시며,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분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먹을 것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며, 우리를 형통케 하시는 하늘에 계신 분이며,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주 앞에 나아갈 때에, 주의 전에 들어올 때에, 주의 거룩한 날로 추수감사절을 기념할 때에, 집회 중에, 서원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감사 제물을 드리되, 정직한 마음으로 감사하여,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도록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추수 감사 주일이 형식적인 주일이 아니고, 주의 말씀에 따라 감사하는 주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로인하여, 다른 사람들도 감사하게 하며, 구한바를 응답해 주시며, 번성케 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되자. 주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 다시한번 더 간절히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는 감사하라” “너희는 감사하라”
출처/생명수교회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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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103:1-5)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심을 감사하면서 모든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은택이란 은혜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이 지켜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신 8:2-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틀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무작정 애굽에서 끌어내시기만 한 것이 아니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다 준비하시고 인도하여 내셨기 때문에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가면서 이런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감사주일을 지키는 믿음의 성도들 그리고 가정들은 그 동안 한 해 동안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있을 때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온 인격을 통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메마른 사막이나 불모지 가운데서 무작정 찬양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며 먼저 풍성한 은총을 베푸신 후에야 찬양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는 찬양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찬양이 끊어졌다면 이것은 여호와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과 직결됩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감사보다 불평하지 말아야합니다. 감사는 물질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온 인격을 통한 감사 그리고 그 감사에 합당한 마음가짐과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 가운데 '감사'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구절이 약 178개가됩니다.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강조점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에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28세에 스승의 죽음을 목격한 후 절망과 실의에 빠져 12년 동안 이집트, 시실리, 이탈리아를 돌며 방황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40이 되어서야 아테네로 돌아와 철학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입버릇처럼 네 가지를 감사했습니다.
첫째는 헬라인으로 태어난 것, 둘째는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 셋째는 남자로 태어난 것, 넷째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감사와 불평이 똑같이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감사를 캐내고, 어떤 사람들은 불평을 캐냅니다. 그것은 마치 금광에서 하루 종일 금을 잘 캐는 사람이 있고, 금을 잘 못케고 돌멩이를 캐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기왕이면 성도는 감사라는 보화를 캐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 헬렌켈러는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을 잘 못하는 3중고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앞을 못 보는 사람으로서 눈이 멀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고픈 말이 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당신의 눈을 사랑하라. 귀가 먹고 벙어리가 된다고 생각하고 듣고 보고 접촉할 수 있음을 감사하라"고하였습니다.
1. 내 영혼아 하나님을 송축하라.
시편 103편은 다윗의 作詩로서 그의 시는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 은혜를 잊지 말라"로 시작됩니다. 頌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며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말은 시편 전편에 걸쳐서 무수히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송축은 사랑과 감사를 동반한 찬양으로 이는 피조물인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의무임과 동시에 인생의 행복과 축복의 문을 여는 가장 위대한 열쇠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모든 자들에게 일깨워주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왜 영혼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는가 볼 때 오래도록 감사할 수 있는 구조는 영혼이며, 진정한 감사는 영혼이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찬양하는 것도 입술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찬양해야 진정한 찬양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다윗에게 배우면서 내 영혼이 찬양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2. 사하시며 고치신 은혜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은혜는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고 했기 때문에 죄를 사함 받지 못하면 멸망하게 됩니다. '사한다'는 말을 '사라흐'라고 합니다. 그 뜻은 능동분사형으로 끊임없이 계속하여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86:5을 보면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후하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죄가 있고 잘못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잘못을 쉽게 용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하시고 용서하시기를 즐기십니다.
예) 워털루 전쟁에서 전투가 치열해지자 겁을 먹은 한 병사가 탈영하려다가 붙잡혔습니다. 전쟁 중 탈영병은 사형에 처했습니다. 당시 사령관이었던 웰링턴 장군이 사형을 선고하려고 하자 부관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각하, 마지막으로 이 병사를 용서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용서는 사형보다 위대한 힘을 발휘하리라 믿습니다." 이 말에 감동한 웰링턴 장군이 그 병사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병사는 변했습니다. 그는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한 평생 장군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속죄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그뿐입니까? 네 모든 병을 고치신 은혜를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병은 육체의 질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포함합니다. 육체의 질병, 상한 마음, 실패, 절망, 포기, 고독 등을 통틀어 모든 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친다는 말은 `라파`라는 단어인데 그 뜻 역시 단순한 육체의 병만을 고치는 의료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완전한 상태로 고쳐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5:26을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즉 `야웨 라파`라는 것입니다. 싸매시고 꿰매어 완치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누가 사함 받고 누가 고침 받습니까? 하나님이 사하시고 고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사함 받고 고침 받습니다.
1998년 한해동안 미국 듀크 대학 병원의 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 두 의사가 실험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매 주일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 할 확률이 적고 입원하더라도 빨리 치료되어 입원기간이 짧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1999년 듀크 대학에서 약 4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바 의하면 예배에 참석하여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이 우울증을 줄이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경우 고혈압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밝혀 냈습니다.
암과 싸워 이긴 미국 하워드대학의 존스교수는 사람에겐 네 단계의 계층구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단계, 정신적인 단계, 지적인 단계, 그리고 영적인 단계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네 단계를 다 치유하는 것이 전인치료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고 계십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체질을 아시는 것입니다. 흙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진토임을 아시는 것입니다. 나가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전인치료사가 되십니다.
원인을 몰라서 고치지 못하는 병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체질,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내일 일을 아시기 때문에 고치시고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면서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3. 소원을 만족케 하시는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5절을 보면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욕구불만을 표출하는 태도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손가락을 빨거나 깨무는 것, 손톱을 물어뜯어 망가지게 하는 것, 나이가 들면서 다방이나 음식점에 앉으면 죄도 없는 성냥개비를 다 부러뜨리는 것, 종이만 보면 찢고 또 찢어 꽃가루처럼 만드는 것, 강아지만 보면 발길로 걷어차는 것 등 다양합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원하는 사람에게 만족한 대답이나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 다른 욕구 불만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소원을 만족케 해주실 뿐만 아리나 청춘이 되어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고 비상하는 힘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감사하면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찬양이나 기도가 같고 내용이 단조롭고 반복하여 기도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거룩하다. 거룩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이 말을 계속하는 것이 기도요 찬송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서 한번 믿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으면 응답 될 때까지 계속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소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편지를 써 보세요,
전라남도 해남에서 한 소년이 태어나 자라면서 집이 가난해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며 가난한 살림을 도와야 했습니다. 동네에 교회가 있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의 꿈은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집은 가난해 갈 수는 없고 꿈은 차 오르고, 견디다 못해 고민하던 소년은 어느날방바닥에 엎드려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전상서 하나님, 저는 중학교에 가고 싶습니다. 저는 집이 가난해 갈 수가 없습니다. 저를 중학교에 보내주십시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고 흰 봉투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봉투 위에 `하나님 전상서`라고 쓰고, 뒷면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배달부가 편지를 꺼내다가 주소도 없는 편지를 발견하고, 난감해 하다가 하나님하고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배달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그 당시 해남읍 교회 이준묵 목사님 집에 갖다 드렸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난 이 목사님은 무한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음주일 그 소년을 불러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먹고 자게 하고, 중학교를 보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한신 대학에 진학하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와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현재 한신 대학교 총장이신 오명석 박사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해주십니다. 여러분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편지를 써서 계속 읽어드리시기 바랍니다.
예) 기독신자로서 불임증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아이도 없고 할 일도 없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케이블 다채널 시대는 24시간방송이 계속되기 때문에 24시간 TV앞에 앉아 있어도 볼거리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 부인이 기도생활을 많이 하는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권사님이 그 부인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3개월만 텔레비전이 없는 나라에 갔다고 생각하고 TV를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변화와 은혜가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권사님의 말대로 TV를 커버로 덮었습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참고 견뎠습니다. 시간이 남아돕니다. 그 시간에 성경 읽고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영성이 되살아나고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7개월만에 임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볼 때 그녀가 임신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로 보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텔레비전에서 발사되는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결론적으로 감사하는 태도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일상생활 속에서 감사합시다. 큰일 큰 은혜 큰 축복만을 감사의 조건으로 삼지 말고 지극히 작고 평범한 사건들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읍시다. 듣고 보고 말하고 먹고 마시고 걷고 앉고 일어서는 것, 눈감고 잠드는 것 깨어나는 것을 다 감사합시다.
둘째, 감사하다는 말을 합시다. 하나님께 이웃에게 가족에게 서로에게 감사하다고 말합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은 의미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말을 많이 합시다.
셋째, 감사를 키웁시다. 감사하다보면 감사도 커집니다. 소리도 커지고 분량도 커집니다. (감사헌금은 축의금 이상으로 합시다.)
넷째, 넉넉하게 감사합시다. 마음도, 말도, 물질도 넉넉하게 감사합시다. 그릇이 커야 물이 많이 고이듯이 감사가 넉넉해야 축복도 넉넉해집니다.
다섯째, 쉬지 말고 감사합시다. 하다말다 하면 맥이 끊어집니다. 운동도 계속하면 운동이 되고 안 하다 하면 중노동이 되는 것처럼 감사도 계속해야 합니다.
여섯째, 하나님께 감사 드립시다. 하나님은 영원히 감사와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분입니다. 모든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의 은택(은혜)을 잊지 말고 감사하면서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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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하박국의 감사, 우리의 감사(하박국3:16-19)
오늘 아침 봉독한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앗수르라고 하 는 강대국이 멸망하고 애굽이라는 나라 역시 기울어 가면서 새롭게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강한 세력을 가지고 국제 무대에 등장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는 바로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유대 나라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머지 않아서 바벨론이 창검을 번뜩이면서 유대 나라를 침략하리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 져 있었습니다. 더욱이 유대 나라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감히 바벨론과 싸워서 이 길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벨론의 침공 소식을 전하여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16절에서 고백한 것 처럼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며 뼈가 썩는 것 같고 온 몸이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곧 유대 나라에 전쟁이 닥치고 온 나라가 망할 지경에서도 하박국 선지자는 감 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합 3:17,18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유다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엄청난 두려움에 떨 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징계가 결국은 자기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여 주 실 은총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환난과 고통이 온다하더라도 참고 기다리어서 믿음의 승리 를 거두겠다는 확고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성경적인 근거요, 다른 하나 는 청교도들에 의하여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근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를 보면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이 있 는데 가을 추수 후 수확을 수장한 후 지키는 절기인 수장절이 오늘의 추수감사절에 해당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애굽기 23:16)
그리고 1620년 9월에 영국의 청교도들 102명이 국왕 제임스 1세의 종교적인 박해를 피 하여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65일간의 항해 끝에 플리머스라는 항구에 상륙을 하기는 하였 지만 그 해 첫 겨울에 굶주림과 추위, 인디언의 습격에 시달려서 겨울을 지나는 동안 무려 건강한 남자들이 괴혈병, 폐염 등 질병에 걸려서 44명이 죽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청교도들은 다음 해 가을에 처음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를 잡아놓고 하나 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후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26일을 감사절로 정하였고 1941년이 되어서는 국회에서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국경일 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1921년부터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아니더라도 금년 한해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 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귀하고 복된 날에 본문에 나타난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감사 신앙을 점검하여 보고자 합니다.
I.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환난 중에도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생활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보면 "그러므로" 의 감사와 "그러나"의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의 감사는 일상 생활 가운데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 니다. 사실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요.(시편 40:5절에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奇蹟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數를 셀 수도 없나이다" )
금년 한 해도 살아오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 이 한가지만이라도 우리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육신적인 병마로 말미암아 나오지 못한 분들도 많이 있습 니다. 지금 병원의 중환자실을 한번 가보십시오, 감사가 나오나 안나오나.....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고(살전 5:18) 감사의 조건이 너무도 많지만 우리는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하였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면서도 마치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살고 있으니 배은망덕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하지 말고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발전하면 '그러나'의 감사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가 바로 '그러나'의 감사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감사입니다. 이것이 진짜 감사라고 볼 수 있고요, 복음의 원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자기의 조국 유대 나라가 바벨론에 의하여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라는 폐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러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으니 이 얼마나 귀하고 순수한 감사입니까? I.M.F의 여파로 금년도 어렵게 살았고 내년에도 더 어렵게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참된 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조건부 감사"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조건부 감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서 어떻게 '그러나'의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의 감사나 욥의 감사는 바로 무조건적인 감사요 환난이 불어닥쳤는 데도 그것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환난이 엄습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감사의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통쾌한 승리와 축복을 맛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 아닌가? 금년에도 아무리 어렵게 살았다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 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II.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무에서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본문 17절에서 여섯 가지가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다고 하 였는데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세 종류의 나무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쓸모있고 가치있 는 과실수로 간주되고 있습니다.(신6:11;호2:12;학2:19)
따라서 이러한 것에 소출이 없다는 것은 그 땅이 황폐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즉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폐허로 변하게 될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먹을 양식마저도 없고 이제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하여 가축들을 잡아 먹지 않으면 안될 상황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식들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무 것도 바라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이 모든 것들이 없다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 계시 면 두렵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믿음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서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십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언젠가는 채워주실 줄 믿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리들의 감사는 어떻습니까?
금년에는 유독 I.M.F의 영향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겪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어떤 성도들은 하박국 선지자의 표현대로 '빈털털이 신세'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 겠습니다. 그래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위를 (하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들은 일시적인 것들과 영원한 것들을 구별할 줄 아는 믿음과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신앙은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적고 하나도 없다하더라도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이 정말 성숙한 믿음인 것 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병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회복될 수 있 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천하를 잃었다하더라도 하나님을 잃지 않고 이만큼이라도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주 예수 없이 살 수 없음을 인하여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환경을 초월하여 드리는 감사요, 전천후적인 감사입니다.
III.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드리는 감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환난과 아무 것도 없는 절망의 상태에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을 향한 구원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구원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나라가 처한 현실을 보면 너무도 어둡고 답답했지만 그에게는 자기 백성 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떠나간다 해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하박국의 신앙은 정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 어떠한 환난과 핍박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신 다는 사실을 믿고 평안함을 소유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서 우리가 처한 환경까 지도 변화시키는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유다의 7대 왕인 여호사밧 왕에 대한 사적이 나옵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을 향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암몬, 모압, 세일 사람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유다의 군대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안되었습니다. 유다가 극도의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큰 일이 났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불안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과거에 도와주신 것을 감사하고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 나이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 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고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역대하 20:6,12)
그때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십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너희는 줄을 맞추어 질서 있게 선 뒤에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께서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찬양대를 조직하고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 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그 결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적군들이 자기들끼리 살육하고 싸 모두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감사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대성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I.M.F가 언제 끝날 것이냐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마냥 우리의 삶이 위축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슴처럼 힘있게 할 것입니다. 결국에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벨론의 압제에서 벗어나 승리자의 영광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오늘날도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자는 마침내 승리의 면류관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감사를 생활화합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우리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겠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 하는도다"(이사야 1:3)고 이사야 선지자는 탄식을 하였습니다.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동물보다 못한 사람이 되 고 맙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은 더 많은 감사의 내용들을 허락하십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감사충만한 삶을 살므로 날마다 승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김홍근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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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확실한 하나님의 뜻은 감사입니다(살전 5:18)
(셜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오늘 저희 교회는 추수감사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추수감사절은 구약의 절기에서 유래하였고,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복음을 받아드렸기 때문에 미국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가을 추수 후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일반적으로 11월 3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데 시기상으로 너무 늦기 때문에 저희교회에서는 11월 첫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독일 본회퍼 목사님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사람은 비기독교인이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기독교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감사는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라는 말입니다.
감사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로 ‘만일(If)의 감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조건적인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대학에 붙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업을 번창케 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통계적으로 약 70%정도의 교인들이 이러한 감사를 한다고 합니다.
둘째로 ’때문에(Because of)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대학에 합격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업이 잘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가족들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통계적으로 약 20%정도의 교인들이 ’때문에 감사‘를 한다고 합니다.
셋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의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대학에 떨어졌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업이 힘들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될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통계적으로 약 10%정도의 교인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만약의 감사도 해야 하고, 때문에 감사도 해야 하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참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이 시대에 다니엘과 같은 지도자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다니엘의 정적들은 다니엘을 죽이려고 악한 법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의 정적들은 다니엘이 성실하고 지혜롭고 정직하기 때문에 국사로는 문제를 삼을 수 없으니 다니엘의 신앙을 이용해서 덫을 만들었습니다. 30일간 어느 신에게라도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 이상한 법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 6:10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3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셔서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은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고, 다니엘의 정적들을 사자굴에 던져 죽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 문제가 발생하고 어두운 먹구름이 낀다 할지라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나도 다니엘처럼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설교는 감사를 주제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
1) 자유로 인한 감사
북한 동포들은 자유을 제한 받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동포들에에게는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에 대해서 막말을 해도 처벌을 받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김정은 옆에서 짝다리만 짚어도 총살이고 김정은이 말하는데 졸아도 총살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2) 건강으로 인한 감사
우리 중에는 몸이 아픈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데 대부분의 지체가 건강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 이곳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은 식물인간이 되어서 누워있는 분이 없고, 반신불수가 되어서 거동을 못하는 분들도 없습니다.
인간의 심장은 하루에 103,689번을 뛰고, 몸속의 혈액은 하루에 1억6,800만 마일을 돌며, 인간은 보통 하루에 숨을 23,040번을 쉬고, 두뇌 세포를 하루에 700만개를 사용하며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심장은 뛰고, 혈액은 돌고, 호흡이 되어집니다.
저는 병원에 심방을 가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난 참 건강하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중환자실에 들어가 봤습니까? 저는 의식 없이 누워있는 사람들, 의식은 있으나 송장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건강한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가장 긴 밤]을 집필한 코넬리어스 라이언은 5년간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암의 고통 중에도 죽는 날까지 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내가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여보! 그렇게 죽어가는 고통 중에서도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여 매일 감사하다면서 기도를 드리나요?”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늘 이렇게 감사드리지요. 나는 늘 하루하루를 맞을 때마다 5가지 기쁨이 솟아나곤 하기에 감사하지요. 첫째로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있는 것을 감사하지요. 둘째로 가족의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지요. 셋째로 병들어 눕기 전에 원고를 탈고한 것이 그렇게 감사해요. 넷째로 병마와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다섯째로 주님이 늘 나의 곁에 계시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하지요” 그가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그렇게 감사했다면 건강한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 것이 많겠습니까? 건강을 인하여 감사하고 또 약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3) 부유함으로 인한 감사
따라합시다. “만사는 해석이 중요하다” 우리는 부유함으로 인하여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남보다 많이 가지지 못해서 불만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해석을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어느 날 공주병에 걸린 할머니가 길을 가는데, 웬 청년이 생선 트럭을 타고 따라오며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할머니는 ‘설마 내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고 계속 걸어가는데, 잘 생긴 청년이 계속 “같이 가 처녀!”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를 처녀라고 부르다니,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청년이네. 더 자세히 들어봐야지’라고 생각한 할머니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보청기를 꺼내 귀에 꽂자 매우 뚜렷하게 들렸습니다. “갈치가 천원! 갈치가 천원!” 이 유머가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듣든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보다 가난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를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난 번 선교를 갔던 캄보디아 끄로째 사람들 중 절반 정도가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엄청난 부자들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지난 1990년대에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약 300만 명이 굶어죽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가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롬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솔제니친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의 삶을 보면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울 이루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의 육군 장교였습니다. 그런데 소련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문서 날조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시베리아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로 후송되어 그곳에서 11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죄수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으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는 수용소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며 그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라는 책을 써서 1970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감옥이여 고맙다” 그가 수용소에 있었기에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감사의 눈으로 보면 수용소도 고마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부유함도 감사하고 가난함도 감사합니다.
4) 복음으로 인한 감사
우리에게는 많은 감사거리가 있지만 진짜 감사한 것은 복음으로 인한 감사입니다. 롬 1:16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야 할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복음이 믿어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고전 1:18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들어도 믿어지지 않아서 십자가를 미련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서 십자가의 도가 믿어지고 십자가의 도로 구원을 얻었으니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2. 왜 감사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 살던 부부가 의견 충돌로 사사건건 다투다가 급기야는 이혼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반씩 나누어 갖기로 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반씩 나누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땅도 반씩 나누었고, 집도 팔아서 반씩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녀가 11명이었습니다. 서로 많은 자녀를 맡겠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마을에서 존경받는 랍비를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 더 낳을 때까지 살아라!” 두 사람은 랍비의 말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빨리, 아이를 만들어 이혼을 하자.”라고 말한 후, 침대에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 아이를 낳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부부는 즉시 ‘이혼하지 말고 함께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하나님의 뜻이 선명하게 알아지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몰라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라 답답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기도도 해보고 상담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정 기도하지 않아도, 믿음의 선배들에게 상담을 받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살전 5:18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에 확실하게 기록해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2) 은혜 받은 사람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으니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마땅한 도리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주님이 10명의 나병환자를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에게로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땅한 도리를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받은바 은혜가 많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에
시 50:23을 보겠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 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 중에 아주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광야에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것은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마 14:19-21입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여기 축사라는 말이 ‘감사 기도’입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이나 공동번역 새번역에서는 ‘축사’를 ‘감사 기도’로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고 기적을 일으켜주시는 분입니다.
흑인으로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첫 번째 대통령에 오른 사람은 넬슨 만델라입니다. 그는 백인 정부에 의해 26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그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가 7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 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6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 그렇게 건강한 상태로 출옥을 할 수 있었냐고 사람들이 질문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대통령에도 당선되었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하나님께 감사는 감옥살이를 통해서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이랜드 박성수회장의 간증입니다. 자신은 지난 20년 동안 엄청 화를 내며 살았다고 합니다. 직원은 물론이고, 특별히 아내에게 화를 많이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QT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치유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에 미국에 가서 생활하면서 3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노동도 해보고,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종업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그 수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다음부터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에게도 감사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 ‘여보, 감사해요’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더랍니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감사하다고 하니까 아주 이상하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1년을 계속해서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하니까 그제 서야 상처로 말미암아 꽁꽁 얼어붙었던 아내의 마음이 녹더랍니다. 박성수회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분노는 감사하지 않을 때 생긴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감사의 말을 하기 시작하자, 그 다음부터 화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말을 하기 시작하자 행복해지고, 감사의 말을 하기 시작하자 가정이 천국이 되고 가정이 행복해졌다는 것입니다. 감사로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일본 에모토 마라수 박사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 책에는 감사하면 물의 입자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물을 컵에 담고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현미경으로 살펴보니 물이 6각수로 변하고 아주 부드러운 물이 되더랍니다. 또 물을 보고 “너를 죽일 거야.”라고 말하하고 현미경으로 보니 6각수가 깨지고 보기도 흉한 형상으로 변하더랍니다. 사람의 몸은 70-75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의 말을 하면 온몸에 흐르는 물과 피가 6각수로 변하여 건강하여 집니다. 그러나 불평, 불만을 하면 온 몸에 흐르는 피와 담겨있는 물들이 깨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병들고 약하여 집니다.
항상 입에서 감사의 언어가 끊어지지 않게 하십시오. 감사하면 건강해지고 감사하면 장수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를 믿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보다 9년 길다고 합니다. 감사가 기적을 만듭니다.
3. 감사를 훈련하라
감사는 절대로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감사는 훈련으로 됩니다, 감사도 습관이고 원망도 습관입니다. 습관은 훈련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든지 부정적으로 봅니다. 장점보다 단점을 보고, 되는 쪽보다는 안 되는 쪽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우리는 감사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미국 켄사스시티의 자그마한 교회를 섬기시던 윌 보웬 목사님에 의해서 개발된 ‘불평 제로 프로젝트’는 2009년 12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6,128,777명이 동참했습니다. 방법은 불평할 때마다 밴드를 다른 편 손목으로 옮겨 가면서 21일 간을 불평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4~8개월 정도를 지나면 의식하지 않아도 생활에서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의 영성이 회복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불평의 말을 하는 것이 습관인 것처럼, 감사의 말을 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사람에게 습관이 생기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로서 표현이 됩니다. 늘 감사를 훈련하십시오. 늘 감사의 눈으로 범사를 보시고, 입을 열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추수감사주일 설교 모음|작성자 행복 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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