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한국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승 하
시의 장형화가 초래한 문제들
세계문학사에는 ‘난해함’으로 말미암아 화제가 된 작품들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로트레아몽의 시, 이오네스코의 희곡……. 마음먹고 찾아보면 당대 독자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 작품이 훗날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경우가 이외에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시단의 특이한 현상 중 하나는 문법을 무시하고서 자기 멋대로 쓴 시가 구세대와 신세대를 나누는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가 “김경주 시의 이해 여부는 시단의 세대 구분을 결정했다.”고 한 말이 기억나는데, 과연 그럴까? 국어학이나 국문학 전공자가 김경주의 기담과 조연호의 농경시를 읽고 연구를 해본다면 비문과 오문이 너무 많이 나와 기절초풍할 것이다. 명백히 잘못된 문장들의 창고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시집에 대한 문단 일각의 높은 평가에 대해 우리는 왜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것일까. 전위의 대열에 서 있는 시인들을 비판했다가는 보수주의자로 몰리기 때문에?
그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오늘날 몇몇 시인들이 행하고 있는 문법에 대한 무시 내지는 파괴, 조어와 외래어의 남용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소수의 문학평론가와 소수의 독자가 경이의 시선을 보내고는 있지만 도무지 소통이 안 되는 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독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오늘날 많은 시인이 혼잣말을 늘어놓고 있고, 독자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 소통이 도무지 안 되지만 시인들이 시집을 내고 있는 것도 기현상이라면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점에서도 시집이 코너로 몰리며 홀대받고 있지만 시인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는 것도 기현상 중의 하나이다.
올해도 새로운 시전문 계간지 시인수첩과 시와 표현, 시와 환상이 창간되었다. 작년에는 종합문예지 예술가, 동리 목월, 문학바다, 빛과 숲, 그리고 시전문 계간지 시와 지역이 창간되었다. 이렇듯 해마다 문예지가 서너 종씩 창간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를 문학의 천국이라고 해야 될까? 수많은 월간․계간 문예지에 발표되는 시의 수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정식으로 등단한 문인들이 한 해에 발표하는 시를 합하면 몇 만 편이 될 것이다. 문예지의 홍수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등단이 쉬워지면서 신인이 독자의 뇌리에 남는 것이 어려워졌다. 쉽게 등단한 시인들이 너나없이 시집을 내고 있기 때문에 시집의 질적 저하도 이 시대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쏟아져 나오는 시집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이 시대의 또 하나의 현상은 시의 산문화와 장형화이다. 조연호의 농경시는 시 1편이 시집 1권인 극단적인 예이지만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와 트랙과 들판의 별에는 2~3쪽에 달하는 시는 흔하고, 8~10쪽에 달하는 시도 여러 편 보인다. 김경주의 기담에는 15쪽에 달하는 시가, 장석원의 태양의 연대기에는 40쪽에 달하는 시가 나온다. 시가 긴 것이 문제가 아니고, 젊은 시인들이 시가 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긴 시는 대체로 난해하며, 긴 시 가운데 소통 불능의 시가 즐비하다. 안 그래도 시가 어렵다는 것이 보통의 독자들이 시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인데 길기도 길고 난해하다면 그런 시를 누가 읽고 싶어 할까. 그런 시집을 누가 사고 싶어 할까. 문학평론가들이 그런 시를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시인 자신이 설명하지도 못하는 난해함을 문학평론가라고 하여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런 시집의 해설은 또 왜 그렇게 어려운지, 해설이 친절한 안내의 글이 아니라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는 글인 경우도 종종 있다.
최근에 고려대 최동호 교수는 「극서정시의 기원과 소통」이라는 글에서 오늘날 이종문과 이송희에 의해 전개된 현대시조의 형식논쟁이 현대시의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시조가 조선조 말의 사설시조 비슷하게 확장되고 있기도 하고 “돌해태/ 콧등에 지는,// 산복사꽃/ 몇 잎”처럼 극단적으로 짧아지기도 하는데, 시조의 기본 율격을 지켜야 하는가 파격으로 가도 되는가 시조시단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모양이다. 최 교수는 특히 조연호의 시집 농경시에 대해서 “들끓는 감정의 산만한 전개는 있지만 그것이 시적 문맥에서 견고한 구조적 조직을 보여주지는 않”으며,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의 토사물들이 얼크러져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고 하였다. 여정의 벌레 11호에 대해서도 “괴이한 환상의 산물”이라고 지적하였다. 장형화와 난해성을 젊은 시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이때, 우리 시단의 ‘괴이한’ 현상에 대해서 일침을 놓고자 쓴 최 교수의 글에 동의를 표하며 최 교수가 명명한 극서정시(極抒情詩), 즉 극히 짧은 시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내놓고자 한다.
서구로부터 자유시가 도래한 이후, 특히 김기림과 이상 등이 서구 모더니즘을 열심히 학습하면서 우리 시에서 수천 년을 이어 온 음악성이 파괴되어 갔다. 시는 누가 뭐라 해도 언어 예술이다. 시적 언어는 사건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사물을 일목요연하게 묘사한다. 함축과 정제를 지향하고 은유와 상징을 구사하는 시는 예로부터 노래였는데 지금은 산문에 수렴되고 있다.
매력적인 짧은 시
서정시를 서양에서는 ‘Lyric poetry’라고 하는데 리라라는 악기에서 이 이름이 유래되었다. 동양에서는 시인의 주관적인 감정과 감성을 중시하여 ‘敍情詩’나 ‘抒情詩’라고 하였다. 이름 자체만 놓고 보면 서양에서는 음악성을, 동양에서는 정서적인 면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서정시가 장시가 되면 서사성을 갖추게 된다. 두보의 「北征」이 그렇고 백거이의 「長恨歌」가 그렇다. T. S. 엘리엇의 「황무지」가 그렇고, 에즈라 파운드의 「캔토스」가 그렇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서 씌어지는 장시들을 서사성을 지니지 않고 거의 다 독백조이다. 난해성은 차치하고라도 혼잣말이기에 소통이 되지 않는다. 20행 이상인 시를 연 구분을 하지 않고 쓰는 것도 유행인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문학사상 짧은 시를 썼던 시인을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문학사적으로 짧은 시는 곧 시조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지만 자유시를 쓴 시인 중에 시를 비교적 짧게 쓴 시인들이 있다. 1960년대의 대표 시인 박용래나 김종삼을 생각해볼 수 있고, 이 시대의 시인 중에는 나태주와 서정춘, 유안진 등을 꼽을 수 있다.
홀린 듯 홀린 듯 사람들은
산으로 물구경 가고
다리 밑은 지금 위험수위
탁류에 휘말려 뿌리 뽑힐라
교각의 풀꽃은 이제 필사적이다
사면에 물보라치는 아우성
사람들은 어슬렁어슬렁 물구경 가고
―「풀꽃」 전문
순수서정시를 평생 쓴 것으로 생각되는 박용래의 이 시에는 사실 시대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 담겨 있다. 장마가 져 동네가 물에 잠길 지경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산으로 ‘물구경’을 간다. 물난리가 났는데 어슬렁어슬렁 물구경을 가다니 이게 될 말인가. 자기 일 아니라고 물구경을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시대의 방관자들에 대한 비판의 뜻이 담겨 있는 시가 아닐까? 흔히 풀은 기층민중, 소외계층, 사회적 약자를 지칭해왔기 때문이고, 또 발표 시기가 1975년, 즉 유신시대여서 이런 해석을 해보았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掌篇 2」 전문
일제 강점기 하, 김종삼 시인의 목격담이다. 남루한 거지 소녀가 역시 거지인 장님 부모를 이끌고 식당에 들어오자 주인은 어서 나가라고 고함을 친다. 그런데 어린 딸은 오늘이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동전 두 개를 보여준다.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라 밥을 사 먹으러 왔던 것이다. 아니, 어린 거지 소녀가 눈먼 부모 두 분 중 어느 한 분의 생일이라고, 밥을 사 드리러 식당에 왔던 것이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전해주는 시이다. 이런 시야말로 촌철살인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언어의 경제적 운용을 등한시하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첫눈 오는 날
칼국수집
구석방
흐려진 안경.
―「밀회」 전문
나태주 시인의 이 작품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첫눈 오는 날, 칼국수집 구석방에서 몰래 만난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안경이 왜 흐려진 것일까? 칼국수에서 나는 김 때문에? 오랜만에 만나 감격을 해서 눈물을 글썽이는 것인가? 두 사람이 얼굴을 가까이 했던 것이 아닐까. 사람의 입김 때문에 안경이 흐려진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밀회’로 한 것이 아닐까. 밀회의 장소가 칼국수집 구석방이니 무척 가난한 연인이다. 서정춘도 짧은 시를 주로 쓰는 시인인데 과작의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나여
푸르러 맑은 날과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죽기에도 좋은 날
이런 날은 산불 같은
꽃상여 좀 타봤으면.
―「봄날」 전문
행과 행이 모두 연으로 처리되어 있다. 봄이면 만물이 소생하고 온 세상에 생명력이 넘쳐나지만 시인은 이 좋은 봄날에 오히려 죽음을 의식한다. 1941년생인 서정춘 시인이 천수를 누린다고 한들 남은 생이 얼마일까. 내가 만약 숨을 거두는 순간이 온다면 삼복더위나 엄동설한처럼 견디기 힘든 날씨보다는 봄날이면 좋겠다는 생각, 그럴듯하지 않은가. 게다가 산불 같은 꽃상여를 타보고 싶다고 하니, 시인의 열정은 젊은 날이나 다를 바 없다. 이왕 한 번 죽는 것, 죽기에도 좋은 날 죽고 싶다는 시구가 가슴을 때린다. 유안진의 시는 대단히 젊다.
그랬어?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그래서
그토록
그렇게도
그랬었구나.
―「오해, 풀리다」 전문
‘그’자로 시작되는 앞 연의 3행과 뒤 연의 5행을 읽고 무릎을 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제목과 본문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뒷말은 다 생략을 하고 앞말만을 갖고 한 편의 시를 이뤄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다고 할까, 바로 시인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땅의 시인들은 우리말을 지키는 일에 대해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투성이의 시를 쓰는 시인이 나는 나만의 사전을 갖고 있다고 외치는 괴이한 시대에 유안진은 시인 본연의 자세를 지키고 있는 귀한 시인이다. 유안진 시인이 최근에 낸 시집 둥근 세모꼴에는 짧은 시가 소복이 쌓여 있다.
봤을까?
날 알아봤을까?
―「옛날 애인」 전문
옛날 애인은 첫사랑일 확률이 높은데, 세월이 흘러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늙었다. 그런데 화자는 옛날 애인을 보고 바로 알아봤다. 문제는 옛날 애인이 많이 늙은 화자를 알아봤을까 못 알아봤을까 궁금하다는 것이다. 알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못 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는 더도 덜도 아닌 딱 두 행이다. 군더더기를 완전히 빼고 정수만 보여주면서도 할 말을 다 한다는 것, 그것이 시정신의 본질일 것이다.
어제는
나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
―「은발이 흑발에게」 전문
유안진의 이런 시는 순간과 영원, 삶과 죽음에 대해서 쓴 그 어떤 철학자의 저서보다도 더 큰 깨달음을 준다. 주제가 선명하면서도 우리를 일깨워주는 경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시야말로 시다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짧아서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짧게 말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해주기에 좋은 시라는 것이다.
시조시단의 변화
시가 비틀거리고 있는 이즈음, 시조시인들의 약진이 눈에 뜨인다. 지금까지 3권의 동인지를 낸 21세기시조동인은 모두 근년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분들이다. 2010년에 동인지 제1집을 낸 ‘영언’ 시조동인의 앞날도 기대가 된다. 2009년 11월, 시조문학사에서 전국 시조 동인을 조사했는데 모두 41개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지금은 족히 50개는 되지 않을까? 한편 짧은 시를 지향하는 시인들이 ‘작은詩앗․채송화’라는 동인을 2008년에 결성해 동인지를 벌써 일곱 권을 내고 있는데, 시의 산문화가 장형화가 독자의 외면을 사고 있는 이 시대에 이들의 활발한 활동은 주목을 요한다. 시조전문 잡지로 나래시조 시조세계 시조시학 시조예술 시조와 비평 시조 21 한국시조 등이 나오고 있는데, 근년에 들어 여러 문예지에서 시조를 실어주고 있어 시조 발표지면이 대폭 확충된 것도 약진의 한 요인이 되었다.
시조와 자주 비교가 되는 일본의 대표적인 시가 형식으로 하이쿠(俳句)가 있다. 5․7․5의 17음으로 이루어진 하이쿠는 “고요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첨벙”을 쓴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 같은 대가도 있지만 일반 동호인들이 하이쿠를 살찌우고 있다. 해마다 일본 내에서 800종에 이르는 하이쿠 동인지가 발간되고 있고 미국 내에도 4종의 하이쿠 잡지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문학사를 보면 그에 못지않은 시가가 있었다. 고대가요 「황조가」와 「공무도하가」, 「구지가」에서 시작되는 이 땅의 시정신은 기실 노래정신이었다. 고대가요, 향가, 고려가요, 가사, 경기체가, 악장, 시절가조(시조), 무가, 민요……. 우리 문학사를 수놓은 운문문학에는 반드시 歌, 謠, 曲, 樂 중 하나가 붙어 있었다. 판소리는 그야말로 ‘소리’였다. 고려조 후기부터 시작된 우리 시조의 기본 율격은 수백 년 동안 우리의 뇌리에 새겨지고 입에 밴 ‘가락’이라고 할 수 있다. 3/4/3/4, 3/5/4/3의 가락은 훈민정음처럼 누가 창안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조만 남아 있고, 시조는 아직 외국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하이쿠는 아주 짧지만, 시의 깊이는 헤아리기 어려워 프랑스의 구조주의 주창자 롤랑 바르트 같은 이는 하이쿠를 가리켜 “가까이 하기 쉬운 세계, 그러나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 이중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문학 양식”이라고 했던 것이다. 하이쿠 중에는 우리 정서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많다. 촌철살인을 지향하지만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하이쿠가 참 많다. 옥타비오 파스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같은 하이쿠 예찬자들이 있는 데 반해 우리 시조는 해외에서 크게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시조시인들의 변화에 주목하고 싶다.
허기 속을 휘달리는 증기 기관차처럼 열이 가해질수록 속을 끓이는 밥솥
그렇게 완강한 힘으로 덜컹거리는 추억
―「압력밥솥」 전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밥이 되는 압력밥솥에 대한 추억을 담아서 노래한 박기섭의 이런 작품은 시조집에 들어 있으니 시조라고 읽지, 얼핏 봐서는 시조가 아닌 것 같다. 2연으로 된 자유시 같은데, 자세히 보니 시조다. 아니, 시조 같기도 하고 자유시 같기도 하다. 초장과 중장에도 파격이 보이지만 종장도 3/6/5/2로 기본형에서 많이 벗어난 작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 형태가 아니라고 해서 ‘이건 시조가 아니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시조의 틀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해서 그 시를 구닥다리 시나 구태의연한 시로 간주할 수 없다. 시조시인들의 현대화 작업이 눈부시고, 눈물겹다.
기어코 세상으로 당신은 뛰어내렸지
화면은 만화경으로 출렁대기 시작했어
색깔을 뒤집어쓴 뒤 다시는 벗을 수 없었지
영혼 깊이 세상의 기쁜 문신을 뜨고
오래된 빛을 팔아 어둠의 피를 마시며
사랑의 뜨거운 생로병사 순간에다 바쳤지
흑백의 전설 되어 다시금 외로워지길
하늘의 고통으로 광대무변하게 살아남길
벼랑 끝 날개 잃은 시에게 빌 수밖에 없었지
―「베를린 천사의 시에 부쳐」 전문
박명숙의 시조집 은빛 소나기에서 읽은 시조이다. 형식은 ‘다소’ 파격이고, 내용은 ‘완전’ 일탈이다. 시조이기에 소재와 주제가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선입견인 것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고 쓴 일종의 영화감상문인 이 시는, 제2연 같은 눈부신 비유 앞에서 눈이 멀 지경이 된다. 이와 더불어 제3연에서도 영화의 몇몇 장면이 연상되면서 현대시의 특성인 애매성과 다의성, 은유와 상징, 감각과 이미지의 축제에 초대를 받게 된다. 형식은 구태의연하지만 내용이나 세부적인 표현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이런 시조는 또 어떤가.
한 마디 말의 향기로 성큼 다가온 당신
씹으면 씹을수록 울컥울컥 우러나오는 단내, 보석처럼 온기처럼 당신을 끌어안고 잃기를 또 몇 달,
분분히, 벚꽃 날리는 날 미련 없이 뽑힌,
―「사랑니」 전문
현대사설시조 포럼 앤솔로지 제3집에 실려 있는 문수영의 사설시조이다. 조선조 말의 사설시조와는 모양새가 많이 다르고 시편마다 변화가 무쌍하다. 시조와 자유시를 합성해놓은 것 같다. 이 포럼에 참가한 시조시인들은 시조의 현대화 작업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단에서, 또 평단에서 현대시조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조 중에도 읽을 만한 것이 많은데 우리는 시조라면 무조건 옛 형식이다, 고리타분하다, 음수와 음보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잘 짜여 있고 잘 응축되어 있어 견고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구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시인이 영국의 에즈라 파운드이며, 그의 대표작이 「지하철 정거장」에서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이 전문인 이 짧은 시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극서정시와 변화된 시조가 알아듣기 힘든 방언과 독백의 시대에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의 역사
우리 시는 남상(濫觴)인 「황조가」와 「공무도하가」와 「구지가」부터 노래였고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기 전까지 2000년 이상 시는 곧 노래였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최초의 시 「황조가」는 사랑의 노래, 이별의 노래였다. 골천골에 살다 왕비가 된 화희와 중국 한나라 왕실과 정략으로 결혼한 치희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유리왕이 사냥을 나간 사이 질투심 많은 화희가 치희에게 가서 신경질을 부리자 치희는 그 길로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사냥터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안 유리왕은 헐레벌떡 국경선 쪽으로 달려가서 만났지만 치희의 마음은 이미 얼음장 같았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으로 돌아오던 왕은 고달픈 몸으로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었다. 그때 나뭇가지에서 꾀꼬리들이 사이좋게 날고 있는 것을 보고는 유리왕은 시심이 솟아나 시를 썼으니 그것이 「황조가」, 바로 기원전 17년(유리왕 3년)에 태어난 이 땅 최초의 시다.
翩翩黃鳥 훨훨 나는 꾀꼬리는
雌雄相依 자웅이 서로 노니는네
念我之獨 외로운 이 내 몸은
誰歸與歸 뉘와 더불어 돌아갈까
「귀지가」는 가락국 때(A.D. 42년)의 작품으로, 임금을 맞으려고 부른 일종의 희망적인 노동요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는 내용으로, 현전하는 최초의 집단 무요(舞謠)다.
「공무도하가」는 고조선 때, 즉 A.D. 2세기경의 작품이다. 머리가 하얗게 센 미친 남편(白首狂夫)이 술에 취해 강을 건너다 죽는 광경을 보고 그의 아내가 부른 노래 “당신은 물을 건너지 마오. 당신이 물을 건너다가 빠져 죽으면 어쩌자는 말인가”가 뱃사공의 아내에 의해 채록되어 후세에 전해졌다는 유래를 가진 노래 「공무도하가」는 원시적인 서사문학에서 서정문학으로 옮아가는 시기의 작품이다.
이밖에 구전되어 오다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수록된 신화(건국 신화와 국왕 신화), 전설(지명 전설과 인명 전설), 동물․점복(占卜)․꿈․결혼․충효 등에 얽힌 민담을 통틀어 가리키는 설화문학도 우리 문학의 뿌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구려는 민족 대이동의 초기에 한반도를 개척한 씩씩한 기상을 물려받은 족속이었기에 서사문학인 설화가 발달했다. 남쪽의 백제와 신라는 온화한 기후에 풍부한 자원을 누리고 살았기에 서정문학인 시가가 발달했다. 백제 가요의 대표작은 「정읍사」다. 행상 나간 남편이 밤길에 무사하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은 한글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노래이면서 현재까지 전하는 백제 유일의 노래이기도 하다.
통일신라시대는 우리 문학사에 있어 향가문학이라는 꽃을 활짝 피운 시대이다. ‘鄕歌’라는 용어는 중국의 노래에 대항하여 우리는 시골의 노래를 부르겠다는 민족적 성향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고유문화와 불교문화를 한데 융합한 신라 고유의 노래이다. 「서동요」 「제망매가」 「처용가」 등의 향가 14수는 삼국유사에, 승려 균여의 향가 11수는 고려 문종 때에 혁련정이 지은 균여전에 전한다.
고려 역사 500년은 정치적으로는 줄곧 내우외환에 시달렸지만 문화면으로는 현란한 신라의 문화를 계승하였고, 중국의 발달된 문화와 제도를 들여와 융성한 고려 특유의 문화를 이룩하였다. 어지러운 사회 환경 때문에 현실 도피적인 성향이 강하였고 순간적인 향락을 추구한 문학도 있었지만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아주 많이 낳은 국문학의 절정기였다. 고려 가요는 「도이장가」 「정과정」 같은 향가계 가요, 「한림별곡」 「관동별곡」 「죽계별곡」 같은 경기체가, 「동동」 「사모곡」 「청산별곡」 「가시리」 「서경별곡」 「정석가」 「쌍화점」 「이상곡」 「만전춘」 등의 속요로 구별된다. 향가계 가요는 향찰로 표기되거나(「도이장가」), 10구체, 비련시(非聯詩)라는 점에서(「정과정」) 향가와 고려가요를 연결시킨 과도기적 작품이었다. 경기체가는 귀족의 문학인 반면 속요는 평민문학이라는 점이 달랐지만 중국의 가곡을 정곡(正曲)이라고 하는 데 대해 우리 시가는 다르다라는 뜻으로 붙인 별곡(別曲)이라고 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였다. 「가시리」 「서경별곡」 「쌍화점」 등의 속요는 특히 남녀의 애정을 읊은 것이 대부분으로, 표현이 소박하고 함축성이 풍부하여 국문학의 절창에 속한다. 고려시대에는 이밖에도 한문학과 시조가 성행했다. 한문학은 크게 설화문학과 장편서사시로 나눌 수 있는데, 설화문학은 다시 시화와 야담을 담은 패관문학과 가전체(의인체) 패관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수이전 백운소설 파한집 보한집 낙옹비설은 전자의 대표작이며 「국순전」 「공방전」 「국선생전」 「죽부인전」 「저생전」은 후자의 대표작이. 장편서사시로는 이규보의 동명왕편과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있었다.
조선조의 문학은 임진왜란 전까지와 이후의 문학이 확연히 구분된다. 조선은 고려말에 발흥한 성리학을 건국 초부터 적극 믿어 국민의 정신통일을 꾀했다. 문화적으로는 훈민정음 창제라는 획기적인 사업을 이룩하였고, 성균관과 집현전을 설립하여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에는 불교와 유교 경전 및 중국 문학서를 대거 번역하여 문학운동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문학은 악장․시조․가사․한문학, 그리고 고대소설이었다. 악장의 대표작으로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을, 시조의 대표작으로 「강호사시가」 「어부사」 「도산십이곡」 「고산구곡가」를, 가사의 대표작으로 「상춘곡」 「면앙정가」 「관동별곡」 「사미인곡」을, 한문학의 대표작으로 동인시화 동문선 용재총화를, 고대소설의 대표작으로 금오신화를 꼽을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 정치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졌고 국민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자연히 귀족계급의 무능은 폭로되었고 평민계급의 자의식이 싹텄다. 또한 훈민정음 반포 후 100년이 지나는 동안 평민과 부녀자들 사이에 한글이 널리 보급되어 우리말로 생활의 이모저모를 표현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귀족계급의 문학은 쇠퇴해졌고 평민계급의 문학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문학은 사설시조․평민가사․수필․소설․판소리 등이다.
시조는 윤선도의 등장과 사설시조의 성행으로 수많은 수작이 나왔다. 조선 후기의 시가문학은 박인로가 벽두를 장식한 이후 내방가사와 평민가사, 잡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설화를 창곡화(唱曲化)한 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신재효가 여섯 마당을 가려내 독특하게 개작하여 우리 서민문학의 대표 장르가 되었다. 조선조 후기에는 이밖에도 지방마다 들놀음․오광대놀이․산대놀이․탈춤 등 민속극이 행해져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다.
우리 문학사를 이렇게 훑어보면 서양에서 소설의 역사가 18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우습게 여겨진다. 정말 자랑스러운 문학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중국과 다른 지점에 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우리 조상의 숨결이 이토록 많은 명작을 낳을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 모든 문학 중 운문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것이 바로 음악성, 곧 ‘율격’이었다. ‘새로움’이라는 탈을 쓴 시인들이 수천 년 이어 내려온 율격을 마구 파괴하고 있는데, 그 파괴 행위에 상을 주고 찬사를 바치고 있다. 문법 파괴 행위에 대해 지적이 있자 김경주 시인은 “시인이란 누구보다 농밀하게 모국어의 속살을 사랑하고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적 질감이 존재하고 있고 거기에 작동하는 언어가 비(非)사회적이라고 해서, 통사적(統辭的)으로 낯설다고 해서 모국어를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논리는 ‘다르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여기는 폭력적인 태도다. 많은 시인들은 자신만의 사전(辭典)에 새로운 모국어의 틈을 보태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적을 한 사람을 폭력배로 몰고 있는 것은 또 무슨 폭력적인 행위인가.
한국 근대시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후렴구 등 음악성을 강조한 시였다. 소월의 시에서 처연한 가락을, 영랑의 시에서 우리말의 감칠맛을 빼면 죽은 시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대다수 시에서 음악성은 사라져버렸다. 우리 시에서 음악성이 살아나지 않으면 시는 더더욱 독자의 외면을 사게 될 것이다. 시정신은 곧 노래정신이었다. 한 번 들어도 우리의 뇌리에 길이 남고, 삼척동자도 암송할 수 있는 극서정시가 많이 나와 우리 시단의 막힌 물꼬가 틔어졌으면 좋겠다.
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공포와 전율의 나날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 등
시론집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등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