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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학당] 몽산법어를 통해 보는 성철스님, 무엇이 문제인가?-1부-(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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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제 몽산법어(蒙山法語)을 볼 때는요 포인트가 화두선은 어떻게 견성하는가 예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몽산법어 안에서 성철 스님(性徹, 1912-1993-)의 최대 주장이 있죠. 반드시 화두에 동정일여(動靜一如)·몽중일여(夢中一如)·숙면일여(熟眠一如)를 이뤄야만 견성에 이를 수 있고, 그 견성은 12지 견성이다. 라는 근본 주장이 있죠. 이게 성철 스님 근본 주장이죠. 성철 스님은요 화두를 동정일여 이게 이것만 좀 놓으셨어도 제가 어떻게 실드를 쳐 드리겠어요. 저도 최대한 살리자는 주의거든요. 제 강의를 들으시면 알지만, 제가 이렇게 막 무조건 비판만 하는 경우는 되게 드문 경우예요. 어떻게든 제가 살려 써드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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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화두로만 지금 일관되니까 그리고 이 단계를 엄청 중시하시니까 제가 실드가 좀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숙면일여 여기서 이제 확철대오. 화두를 잡아요. 화두를 잡아서 화두일념을 먼저 화두일념을 노력하는데, 동정일여 동정 간에 항상 화두가 흐르고, 몽중 꿈속에서도 화두가 잡히고, 깊은 잠 속에서도 화두가 잡히면 확철대오 한다. 동정일여하면 6식이 정화되고 몽중일여은요 이제 7식인데 성철 스님은 여기가 사실 7식의 영역인데 말하자면 근데 이제 어차피 이것도 6식으로 봐요. 보통 이제 성철 스님 설명을 가지고 말하면 이게 정화되면 7지다 이런 주장할 때는 이제 7지는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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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에서 7식이 정화된 거거든요. 그런데 7식을 인정할 거냐? 말 거냐? 또 설이 있어요. 그 중에 성철 스님은 7식 인정 안 하자은 쪽이에요. 7식을 인정 안 해요, 성철 스님은. 근데 이제 경전적 근거로 보면 7식에 해당하는 영역입니다. 그다음에 숙면일여은 8식이 정화된다. 이러면 8식 정화되면요 8지부터 11지거든요. 7식이 정화되면요 7지고요. 6식이 정화되면 1지에서 6지 단계가 6식 정화 단계거든요. 이게 성철 스님 이론의 핵심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까 여러분 화두일념만 이루면 확철대오 순간 12지가 되는 겁니다. 그럼 더 닦을 게 없죠. 그러니까 돈오돈수죠. 돈오 막 견성해 봤더니 닦을 게 없어졌어요. 왜냐하면 딱 견성했더니 12지거든요. 죽이죠. 요 전(前)은 견성이라는 단계가 없습니다, 아예. 화두일념만 있지. 아시겠죠. 이게 성철 스님 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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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이론을 가지고 경전을 다 재단해 버리니까 경전들이 다 이상해지는 거예요. 왜 그러냐면 확철대오 견성은요 화엄 교학에서.. 교학의 검증을 받으셔야 된다니까요 선학도. 우리는 아무리 교외별전이다 해도요 교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교학에서 진짜로 벗어난다고 하면요 부처님도 몰랐던 얘기라는 거예요, 선학(禪學)이. 말이 안 되는 소리죠. 자기들이 부처보다 낫다고 진짜 자신하지 않는 한, 교외별전이라는 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말이지. 교학에서 말하는 단계를 거쳐 부처가 된다기보다 견성할 때 바로 부처 아니냐 참나자리는 원래 12지잖아 이런 식의, 교학의 독특한 해석으로서 교외별전이 의미가 있지 진짜로 교학과 따로 놀겠다 그러면요 이건 불교도 아닌 거죠, 사실은. 이해되시죠. 그래서 교학의 검증을 받아보면요, 확철대오은 1주 보살입니다. 1주 경지가 참나 안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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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숙면일여·몽중일여·동정일여 다 해봤자 화두 안주입니다. 화두에 안주해 가지고 참나의 안주를 목표로 하는 겁니다. 이 가르침은 1주 전의 가르침밖에 안 돼요. 여기서 견성이 안 일어났거든요. 그리고 지금 이 8식·6식·7식, 6식 이게 정화된다는 게 결국 화두만 잡고 있는데 여러분 8식이 정화된다고요? 화두만 잡고 있는데 6식이 다 정화된다고요? 이건 성철 스님의 파격적인 주장입니다. 어디에도 근거가 없어요. 여러분 이거 정화하려고요 3아승기겁을 닦습니다. 아시겠어요? 대승 교학이 저기 어디 바보 집단인가요? 한 생에 되는 거를, 화두만 잡으면 쉽게 될 거를 6바라밀을 총동원해서 닦으면서 3아승기겁을 닦아서, 겨우 6식의 때가 조금 벗겨지면요 인격이 변해서 1지가 되고 인격이 조금 나아지면 2지·3지 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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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또 뭐의, 법신 안주의 경지예요. 1지 보살부터 법신에 안주해요, 1지부터. 법신에 안주하면요 참나 안에서 6바라밀이 총출동합니다. 이게 법신이거든요. 진리를 갖춘 몸. 6바라밀을 갖춘 참나, 여기는 그냥 참나. 여기는요? 그냥 화두. 화두를 염불로 대체해도 똑같아요. 염불도요 여러분 평소에 만트라 하든 염불이든 똑같습니다. 움직일 때 계속 외워야 되고요 그러다 보면 꿈결에도 잠결에도 욉니다. 그래도 견성은 아니죠. 그러다가 탁 염불 삼매가 제대로 걸려서 터지면 견성이 돼요. 이때 정토 간다는 이론입니다. 확철대오 이 자리에서요 염불선에서는 이때 여기서 정토 간다는 이론. 여기서는 견성(見性), 견성성불(見性成佛). 여기는요 정토 이론은요? 견불(見佛) 부처를 봐야 돼요. 아미타불을 봐 가지고 견불왕생(見佛往生)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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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성철 스님 이론이 상식적으로 교학적으로 간단히 잣대를 대본 거예요. 여기서 사실 나올 얘기는 다 나왔습니다만. 어때요? 법신 안주해가지고요 정화시키는 1지·7지·8지의 이야기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6바라밀을 가로막는, 뭐가 지워져야 하는지 아세요, 6바라밀을 막는 업장이 뭐게요? 법신 안주, 법신 안주를 막는 업장이 무지와 아집,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입니다. 이 두 업장이 지워져야 하는데 화두를 잡았을 때 그러면 번뇌장과 소지장이 지워진다는 뭔 경전적 근거가 있어야죠. 화두는 화두일념은요? 화두일념은 선정 체험일 뿐입니다. 화두일념은 선정 체험이에요. 여러분 선정 체험만으로 지워진다고요? 아직 견성도 안 됐는데. 견성도 안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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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 체험만으로 무지와 아집이 다 지워지면 저도 할래요 이거. 그렇게 쉬우면 이걸 하죠. 화두만 잡고 있으면 그럼 염불 삼매 드신 분들은 다 부처 돼가지고 정토를 가시겠네. 12지 돼가지고. 말이 안 되는 소리죠?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이 정도는 알고 들어가자고요. 여기까지만 보셔도 사실 다 할 얘기는 다 나왔어요, 성철 스님 이론이 왜 말이 안 되는지. 화두일념이 자나 깨나 흐르느냐의 문제랑 무지와 업장이 지워지는 문제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아주 안 지워진다고는 안 하겠지만 극히 미미하다. 왜? 그래서 견성을 하는 거예요. 참나를 깨달아야만 본격적으로 이제 업장이 털리기 시작해요. 그래서 어느 경지를.. 이러고도 이러고도 안 돼가지고요 참나 안주하고도 1주 보살부터 안 돼서 털다 털다가 1지가 됐을 때 드디어 법신 안주 이제야 업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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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아집을 꽤 털어서 이제 6바라밀이 자동으로 발동하는 거를 가능하게 했다 하는 게 이제 1지예요. 전혀 성철 스님 이론하고 여기 동정일여이 1지에서 6지 이런 거랑은 상관이 없는 얘기다. 그냥 화두가 평소에 흐른다. 화두가 잘 때도 흐른다, 다~. 그냥 선정 체험이다. 선정 체험만으로 업장이 지워진다는 건 부처님 가르침에 위배되는 말이다. 부처님은 항상 선정으로는 업장이 안 지워진다. 번뇌는 지혜로 지워진다. 지금 화두일념이지 지혜가 등장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지혜는 확철대오 가서 얻어지는 거라 말이에요. 아직 업장을 지울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화두로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밤낮으로 화두가 흘러보세요. 그게 견성인가? 깨어있는 마음이 흐르는 거니까요 알고 보면 그것도 사실 견성일 수 있습니다. 이해되세요? 저는 정신만 차리라고 하잖아요. 화두에 정신 차리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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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견성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뭐예요? 본인은 모릅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화두에 몰입한 것뿐이거든요. 그 의미를 알려면 확철대오을 해야 자기가 이제 알아요, 이 의미가 뭔지. 그렇죠? 그런데 대충 이렇게 보고요. 제 이 주장이 맞는 얘기인지 한번 보자고요. 옛날 오매일여, 화두를 오매일여·숙면일여 하라라는 그 경전적 근거가 지금 몽산법어입니다.
[* 몽산법어夢山法語는 몽산화상 덕이德異(원나라 말 스님)의 법어로, 본래 이름이 “몽산화상법어약록”이며 1350년 고려말 보제존자 潽濟尊者 나옹이 몽산화상의 법어 6편과 자신의 글 1편을 묶어 편찬한 것이다. 1457년(세조 3년)에 혜각존자 신미대사가 이를 국역하여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를 간행하였다. 간화선의 교과서로서 경허선사가 “선문촬요”에도 수록하였다.]
몽산법어을 근거로 해서 나옹 화상(懶翁和尙, 1320-1376)이 주장하시고 우리나라에서도 강조된 거예요. 화두를 자나 깨나 하라라는. 요 주장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시면 아시겠죠. 몽산법어 몽산 스님은 원나라 말 스님인데요, 나옹 화상이 직접 뵙고 배우신 분이에요. 이분 법어가 너무 좋아서 나옹 화상이 우리나라 고려 말 스님이잖아요. 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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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분입니다. 저기 원불교 쪽에서는요 석가모니 후신으로 봐요. 그래서 이분이 몽산화상법어양록이라는 걸 이렇게 만들었는데요 재밌는 거는 한글로, 훈민정음으로 말 많은 신미대사가 이걸 국역해서 몽산화상법어양록언해본이 간행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영향이 있었는지 아시겠죠. 한글 만들어서 이거 풀었다니까요. 언해본 나오고, 간화선의 교과서로 인정받으면서 경허 선사가 선문촬요에도 수록했습니다. 저는 선문촬요본으로 봤어요. 그래서 선문촬요과 오늘 선문정로 어떻게 보면 두 책을 (강의)한다 이런 기분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문의 한번 뿌리를 뽑아보자고요.
[1. 마땅히 ‘본참공안本參公案’ 위에서 ‘의정疑情’(의심)을 일으켜야 하니, 크게 의심해야만 ‘큰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을 합하여 ‘한 가지 의심’을 지어서 본참공안 위에서 판정해야 한다. ‘언구言句’(화두)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큰 병이다. 마땅히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행주좌와行住坐臥의 4위의威儀 동안, 24시간 중에,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자나 깨나) 오직 ‘화두’를 들고 ‘의식의 빛’을 돌이켜 ‘자신’(참나)을 봐야 한다.
當於本參公案上 有疑 大疑之下 必有大悟 千疑萬疑 倂作一疑 於本參上 取辦 若不疑言句 是爲大病 仍要盡捨諸緣 於四威儀內 二六時中 單單提箇話頭 (廻光自看 몽산화상蒙山和尙 시총상인示聰上人)]
마땅히 본참공안 위에서. 본참공안은 내가 근본적으로 참구하고 있는 공안이에요. 요즘 어떤 화두 잡고 있으세요? 이거예요. 그럼, 보통 이제 여기서 거론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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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조주종심趙州從諶, 778∼897) 무(無)자입니다. 그걸 많이 했어요. 이뭐꼬도 좋은데요 조주 스님이요 개한테 불성이 있냐?라는 제자의 답변에 없어 그랬어요. 없어 근데 모든 만물이 불성이 있을 텐데, 왜 개는 없노? 하고 이렇게 의심하라는 겁니다. 의심을 하라는 거예요, 계속. 의심을 시키는 게 이제 화두선이잖아요. 본참공안 위에서 의심을 일으켜라. 크게 의심해야만 큰 깨달음이 있을 거다. 이게 이제 선불교의 아주 강령이죠. 큰 의심이 큰 깨달음을 낳는다. 제일 문제가 의심 안 하는 병이다. 이런 게 이제 선사들이 주로 하는 말입니다. 천만 가지 의심을 싹 합쳐서 한 가지 의심으로 모아라. 네가 사실 천지 만물 하나도 모르겠지. 그런데 그 의심을 화두 의심으로 모아라. 조주는 왜 없다고 했는고? 근데요 실제로는 없다고만 한 게 아니에요. 어떤 제자가 물어요. 개는 불성 있나요? 있어 그랬어요. 또 어떤 제자가 물어요. 개는 불성이 있나요? 없어 그랬어요. 두 개 다 대답했어요. 근데 왜 없어만 붙잡고 이러고 있는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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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이 주는 효과가 몰라 효과가 있어서 그래요. “왜 없다고 했는고?” “무(無)라.” 스님들이 어떻게 잡냐면? 이 본 스토리는 의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알아두는 거예요. 전제라고 그래요, 그냥. 풀 스토리. 이래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래야 이제 상황을 알아야 의심이 나잖아요. 근데 이제 실제 수행할 때는요 “왜 그랬는고?” 하면 계속 생각이 돌아가니까 안 돼요. 그래서 딱 단절하고 이제 뭐만 딱 이놈만 잡아라 이거죠. 참선할 때는 “무(無)라” 이럽니다. “왜 없는 고? 왜 없는고?” 하니까 이 무(無) 자가 주는 효과가 생각·감정을 뚝뚝 끊어요. “무(無)라. 무(無)라.” 옛날 고승들이 이럽니다. 무(無)하면 뚝뚝 끊어지는 거예요. 몰라효과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유(有)는 안 하고 무(無)를 갖고 해요, 두 대답을 다 하셨는데 두 대답 다 한 줄도 모릅니다, 사실은. 조주는 없다고만 한 줄 알아요. 그러니까 제자 따라서 한 거예요. 제자 따라서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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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애한테는 없다고 해주고 없다고 믿는 애한테 “있어” 그래가지고 생각을 깨주신 건데 “무(無)라” 이렇게 의심을 일으켜야 돼요. 언구(言句), 말씀이니까 화두죠. 화두라는 게 그냥 말이에요, 말. 이야기.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큰 병이다. 마땅히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행주좌와의 4위의. 이게요 행주좌와(行住坐臥)의 네 몸동작. 우리가 하는 몸을 보면, 몸의 움직임을 보면 걷거나 멈췄거나 행주(行住), 좌와(坐臥)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자 행주좌와에는 이미 잠잔다도 들어있어요. 행주좌와의 24시간 동안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원문에서는 12시인데요 12시는 자축인묘(子丑寅卯)로 하니까 그래요. 그럼 12시면요 지금 우리가 말한 24시간입니다. 그럼 24시간 화두 잡아라라는 건 이미 언제부터 있어요? 그냥 그냥 하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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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좌와 24시간, 행주좌와 12시 중에 항상 뭘 하라고 그래요? 오직 화두만 들고. 여기서 이제 예술입니다. 한문 원문을 보면요 여기서 화두를 들고서 재개화두(提箇話頭) 오직 화두만 들고 회광자간(廻光自看) 의식의 빛을 돌이켜서 참나를 봐라. 화두 잡는 법부터 지금 잘못돼 있어요. 무(無)라 이뭐꼬 할 때 보세요. 이뭐꼬는요 “내 몸뚱이 마음을 끌고 다니는 이놈은 누구냐?” 하는 그게 이제 풀 스토리고. 딱 화두 할 때는 생각을 일으키면 안 되니까 이뭐꼬만 하라는 겁니다. “이거 뭐지?” 지금 여러분 이거 뭐지 할 때 참나를 바라봐야 돼요. 이거 뭐지에 생각이 모였을 때, 자 보세요. 지금 학당에서 쓰는 법이요 “몰라”할 때 참나를 보죠. “지금 여기” 할 때 참나를 보죠. 똑같은 효과여야 돼요, 화두가. 이뭐꼬할 때 참나가 보여야 돼요. 이뭐꼬에 몰입한 그놈을 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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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잡되 화두를 알아차리는 그놈도 같이 봐야 돼요. 이게 아예 교과서, 이 화두선의 교과서에 쓰여 있는 겁니다. 이 방법이 아닌데 화두를 잡고 있다. 지금 잘못 잡고 계신 거예요. 화두에 빠져버린 거예요. 그러면 화두에 매몰되신 거예요. 몰입에도 제가 두 가지 있다고 그러죠. 대상에 대한 몰입도 두 가지가 있는데, 대상에 빠져버리는 몰입이 있고요, 대상을 붙잡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몰입이 있어요. 화두는요 화두로 생각을, 천만 가지 의심을요 한 가지 의심으로 모아줘요. 일념을 만들어줘요. 의심 일념. 지금 고민도 많은데 솔직히 지금 막 “저녁에 돈 받으러 가야 되고, 뭐 해야 되고, 돈을 안 주면 어떡하지?” 하는데 화두를 들면 좋은 이유가요 그 의심에서 빠져나와서 “왜 조주는 무(無)라고 했지?” 생뚱맞지 않아요? 여러분 일상에 아무 관계가 없죠. 이건 순전히 공적인 퀴즈입니다. 공안(公案)은 공적인 퀴즈라는 거예요. 그냥 사적인 퀴즈가 아니에요. 내 개인사가 아니라 공적인 의문입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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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좋은 게 천만 가지 개인적 수많은 의심 번뇌를요 날려버려요. “조주는 왜 무(無)라고 했지?” “내 몸뚱이를 끌고 다닌 이놈은 누구지? 이뭐꼬?” 그럼 이게 화두를 들 때마다 번뇌가 날아가겠죠. 근데 이때는요 근본적으로 정화한다는 건 아니에요. 6식·7식·8식을 다 정화했다는 게 아니라 잠깐 뭘 이루어준다는 거예요? 잡념을 날리고 일념을 만들어줘요. 딱 여기까지입니다, 화두는. 그런데 화두를 잘 쓰면 어떻게 돼요? 일념을 만들 때 참나까지 봐요 화두 잡을 때 참나 보라는 말을 하면요. 이걸 성철 스님은 이런 얘기 안 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이걸 또 견성이라고 할까 봐. “견성은 안 돼. 숙면일여까지 견성은 안 돼.” 근데 사실은 화두일념 잡을 때 원래 뭐여야 돼요? 화두일념 잡을 때 자간(自看). 이미요 이미 견성해야 돼요 사실. 견성 체험을 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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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견성이라고는 못해도요 몰라할 때.. 제가 똑같아요. 홍익학당에서 몰라 하실 때마다 참나 봐야 돼요. 딱 “이게 참나군요” 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거지 몰라할 때마다 참나 봐야 돼요 몰라할 때마다 나라는 존재감을 느껴야 돼요. 화두 잡을 때마다 느껴야 돼요. 느끼다 느끼다가 이제 화두를 떠나서 “아! 이 자리” 하면 이게 견성입니다. 이해되시죠. 그래서 왜 이 과정이 또 어렵게 느껴지냐? 보세요. 겨우 화두일념을 잡았을 뿐이에요. 아니 밤새 화두를 잡아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거는. “선정 잘 드네” 예요. “화두 잘 잡네.” 견성하고 상관없어요. 근데 거기서 바로 12지로 가버리죠. 위험한 얘기인데 이 중간에 뭐가 끼어야 하냐면요 해오(解悟)이 끼워줘야 돼요. 해오 견성을 성철 스님이 인정 안 하니까 이야기가 되게 어려워지는 겁니다. 해오(解悟)이 있고 그 뒤에 보임(保任) 공부를 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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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참나를 체험은 해야 돼요. 참나 체험과 참나를 이해한 체험. “아 이 자리는 확실히 참나 자리”인 줄 알아야 돼요. 자기가 알아야 돼요. 해오에서는요 자기가 알아요, 참나를 체험했다는 걸. 시공 초월하여 심신 끌고 다니는 이놈을 찾아야 돼요. 그다음에 보임. 그럼 보임하는 중에 견해, 견해가 높아지고요. 안주, 안주 유지하는 힘이 점점 커져요. 그러다가 확철대오, 증오(證悟)로 가는 겁니다. 그러다 참나 안주로 들어가요. 참나 안주가 확철대오예요. 해오 견성은 참나 각성만 해요. 자 됐죠. 안 어려우시죠. 지금 이걸 이해 안 하시면 이거 이해 안 됩니다. 화두 잡을 때부터 이미 참나 느껴야 돼요. 그러니까 화두 잡을 때마다 참나를 만나다 보니까 어느 날 어떻겠어요? 그걸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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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 깨나 하다 보면 화두 자체의 숙면일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나 깨나 하다 보면. 그래서 제가 일종의 선잠이라고 하는 거예요. 숙면일여 몽중일여는요 사실 구분할 필요도 없어요. 화두 차원에서는. 화두 차원에서 이 두 단계가 의미가 있을 것 같으세요? 구분이? 꿈결에 잡나 꿈 없는 잠에도 잡나 이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왜 그러냐면요 이 화두는 참나가 아니거든요. 이 화두를 잡는 이 화두일념은요 이거 몇 식(識)일 것 같으세요? 화두일념이? 여러분 딱 참나 몰입한 그 의식이 몇 식일 것 같으세요, 원래? 그 의식 자체는? 6식이에요. 자 6식은요, 꿈결에도 몽중에 작동해요, 6식. 꿈속에서도 내가 있죠. 그런데 꿈 없는 잠에서는 6식이 사라져요, 원래. 8식으로 돌아간다고요. 그러니까 그때는 7식도 작동 안 돼요. 나도 없어요, 그때는. 깊은 잠에서는 무의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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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식의 화두일념이 몽중일여 꿈속에서도요 그러니까 꿈결에서도 6식이, 화두 잡고 있는 그 깨어있는.. 제가 말하는 이 화두일념의 6식은요 깨어있는 의식입니다. 그러니까 나쁜 게 아니에요. 좋은 건데 좋은 건데 제가 깨어있는 에고라고 하죠. 이건 여전히 에고 작용이에요. 그래서 깨어있는 6식은요 이 자체가 지금 제가 얘기하는 거미줄이에요. 참나는 아니죠. 거미가 거미줄을 쳤을 때 이게 6식이에요. 그래서 화두에 대해서 거미줄을 쳐놓은 거예요, 단단히. 그 단단히 쳐놓으니까 깊은 잠을 자도 붙잡고 있는 거예요, 화두를. 그래서 깊은 잠까지도 이 6식이 흐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선잠 자게 되는 거예요. 원래 깊은 잠자면 6식이 사라져야 되는데 여러분이 큰 고민거리 갖고 주무시면 밤새 그 고민이 나를 안 떠난 것처럼 느껴지죠. 선잠 주무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얕은 잠을 자면서 6식의 화두일념을 유지하면서 잠든 거예요. 이게 염불삼매에서 더 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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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을 하는 분들이 더 잘 알아요. 이러다 보면 이게 뭐예요? 이게 이걸로 업장이 막 지워지고 이러는 거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아주 안 지워지는 건 아니겠지만 이걸 털어가지고 7지가 되고 이 정도로 업장 터는 건 아니라고요. 7지는요 아집이 다 날아가야 돼요. 꿈속에서 화두 잡았으면 7지라는 주장이 성철 스님의 최고 주장입니다. 그래서 “아주 쉽다, 7지 되는 거” 그럴 리가요? 전혀 지금 분석이 안 돼 있어요. 화두일념은요 6식에.. 이건 명칭이 아예 있습니다. 6식 중에 이 깨어있는 의식을요 선정 속에 있는 의식이라 정중(定中)의식이라 그래요 6식 중에. 선정 중의 의식. 요게 그렇게 광명하고 좋습니다. 여러분 깨어계시면 신나잖아요. 6남매 출동한 상태예요 사실은. 6남매 출동해서 되게 좋아요. 그런데 본격적인 업장 정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아요, 딱 깨어있기만 하기 때문에. 대상에 대해 깨어있을 정도로 쓴다고요. 이게 밤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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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른다고 해서 꿈 상태에서도 느껴지고 잠 상태에서 느껴진다고 해도 어차피 이 두 개가 다 선잠 상태라고요. 그래서 자 오늘 이 경전적 근거로 드러납니다만 화두 가지고 몽중·숙면을 나누는 양반은 성철 스님밖에 없습니다. 왜? 이분들은 관심이 없어요. 자나 깨나 예요 그냥. 그러니까 꿈하고 그 꿈 없는 잠, 그게 구분이 없다고요. 왜냐하면 “잠잘 때 화두 흐르더냐?” 예요, 관심사가. “너, 잠잘 때도 화두 있더냐?” 그냥 이 정도입니다. 이해되시죠. 지금 이분들도 이미 24시간 중에 안에 다 들어 있는 거예요. “너 24시간 중에 잠잘 때도 화두 흐르지? 혹시 화두가 꿈에는 있는데 깊은 잠에는 없는 거 아니야?” 이런 고민 자체를 안 해요 아무도. 성철 스님이 잘못 나누신 거예요, 이거는. 왜 잘못 나눴는지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왜 그러냐면 이 나누는 건요 참나 차원에선 의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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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가 꿈속에 있더냐? 참나가 깊은 잠에도 있더냐?” 즉 “무의식도 초월해서 참나가 있더냐? 꿈속에 의식에서 참나 있더냐?” 이건 되게 다른 얘기거든요. 화두는요 다른 얘기가 아니라고요. “화두에 대한 그 일념 집중이 잘 때도 있더냐?” 어차피 선잠 자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냥 꿈이 있건 없건 선잠 자다가 화두가 흐르는 현상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구분하지 않는다l 참나로 구분하지. 그러니까 참나가.. 이제부터 구분할게요. 참나의 숙면일여·몽중일여는 관심사지만 화두의 숙면일여·몽중일여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 뭐라고 하냐? 화두의 오매일여라고 해요, 그냥. 그러니까 “꿈까지 포함해서 자거나 깨거나 화두가 흐르더냐?” 이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왜? 이거 화두일념을 여러분 죽을 때까지 이거 유지하시게요? 간단하게 참나의 숙면일여·몽중일여·동정일여는요 죽을 때까지 하셔야 합니다. 화두는요?
24:00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어요. 필요에 따라 쓰면 돼요. 여러분 죽을 때까지 제가 몰라 상태여야 된다고 주장한 적 있나요? “지금 몰라 안 하고 계시죠?” 이렇게 안 해요. “참나가 있냐?”고 하지. 깨어있으시라는 건 참나가 있느냐를 물어보는 거지 “지금 몰라 안 하고 계신 거 아니에요? 죽을 때까지 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요? 몰라몰라몰라몰라. 이뭐꼬이뭐꼬이뭐꼬이뭐꼬. “밥 먹었냐?” “아니요.” “이뭐꼬. 에이 이뭐꼬 끊겼네. 망했네 이거.” 뭐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화두는 6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잠잘 때까지 원래 이어질 필요도 없다. 근데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끝. 됐죠. 논란 종결됐을지 모르겠지만. 이걸 이해하셨다면 “의미 없는 데다가 목숨을 걸고 있었구나.” 댓글 다는 분 있어요. “화두 안 잡아보셨네. 잠결에 화두가 막 흐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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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안 된다는 거야. 견성을 해야지.” 그래서 “그 화두가 잠깐 왔다 갔지만 그 화두 아직도 그리워요.” 뭐 이거 어쩌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잘못 배우니까 이래요. 견성은 왔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화두는 왔다 사라지죠. 안 잡으면 사라진 거니까. 참나는 안 잡았다고 없나요? 여러분 존재감이 지금 내가 참나를 안 봤다고 해서 없어지고, 잔다고 해서 없어지고 그런 존재인가요?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참나의 숙면일여·몽중일여·동정일여와 화두의 숙면일여·동정일여·몽중일여는 차원이 다르다. 나아가서 법신에 안주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6바라밀을 갖춘 참나를 법신이라 그래요. 6바라밀이라는 만법을 갖춘 참나인 법신 안주는요 1주도 인정 안 해줘요. 대승기신론에서 “1주는 법신을 조금만 봤다.” 6바라밀 중에 선정·반야만 잘하잖아 이 소리입니다. “정혜쌍수만 잘하잖아. 6바라밀 다 못 하잖아. 그럼 너 제대로 법신 본 거 아니야.” 이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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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보시고. 지금 이 구절 하나만 보셔도 이해되시죠. 별 의미가 없는 얘기다. 그러니까 화두에서 몽중·숙면은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잘 때 있느냐 화두? 이렇게 물어보면 족하다. 그거를 단계로 나눈 거는 무리하게 7지, 8지 이론을 갖다 붙이려다가 나온, 성철 스님이 무리하신 거다.
[* 몽산화상 시고원상인(蒙山和尙 示古原上人)
대저 참선은 신묘함이 또랑또랑 깨어있음(惺惺)에 있으니 영리한 자가 먼저 공안을 점검하여 올바른 의문을 품고서,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화두’를 들고서 치밀하게 ‘의식의 빛’을 돌이켜 ‘자신’(참나)을 돌이켜 보면(廻光自看), 쉽게 대오大悟하여 몸과 마음이 안락해질 것이다.
夫參禪 妙在惺惺 靈利者 先於公案 檢點 有正疑 不急不緩 提話頭 密密廻光自看 則易得大悟 身心安樂]
몽산화상이요 또 다른 고원상인한테. 상인(上人)이라 그러면요 그냥 되게 훌륭한 불제자를 말합니다. 위 상(上)자, 윗사람 이런 건요 훌륭한 제자, 불제자한테 고원이라는 훌륭한 불제자한테 이제 가르쳐 주는 게 대저 참선은 신묘함이 또랑또랑 깨어있음에 있으니 참선은요 포인트가 뭐라고요? 이게 일념, “화두는 잡았을 때 깨어있어야지 맛이야” 이겁니다. 화두 잡았는데 눈이 흐려져 있다. 잘못 잡으신 거예요. 화두를 잡으면요. 이거 진짜 별 얘기 아닌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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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에 몰입 책에 뭐라고 돼 있죠? 몰입 4단계에 들어가면 의식이 깨어나죠. 그때 결국 슈퍼의식이 각성하죠. 즉, 참나가 드러나요. 그러니까 원래 화두를 잘 잡으면 참나가 느껴져야 돼요. 그래서 화두 잡으면 참나가 보인다는 거예요. 화두 잡고 참나 보라는 게 몰라 잘하면 참나 보여야 돼요. 왜? 깨어나면 그 참나의 햇빛이 느껴졌다는 건 태양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참선은, 참선의 신묘함은 깨어있음에 있다. 영리한 자가 먼저. 여기서 영리한 자라는 건 나쁜 말이 아닙니다. 요즘 영리한 놈 하면 좀 꾀를 많이 쓰는 사람인데 여기서 영리하다는 건요 참선에 되게 재능 있는 사람이에요. 상근기는 먼저 공안을 점검하여 올바른 의문을 품고서. 딱 이제 공안을 먼저 체크해요. 뭘 궁금해야 되는지. “좋아. 조주는 왜 무(無)라고 했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즉 이거 은·꾸·몰 아닙니까. 은근히 꾸준히 화두를 들고서 치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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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빛을 돌이켜 참나를 돌이켜보면 쉽게 대오하여 몸과 마음이 안락해질 것이다. 이렇게 쉬워요. 바로 견성한다. 왜 이분들이 이렇게 쉽게 얘기하는지 아세요? 이분들은 지금 해오 견성을 목표로 하거든요. 설명이 다. 이분들은요 견성 후에 보임은 당연한 거예요, 보임 공부는. 지금 성철 스님만 보임 공부를 공격해요. 그래서 보임 공부하라는.. 이게(선문정로) 왜 엉터리냐면 보임 공부하라는 수많은 글을 인용해 놓고 이게 보임 아니라는 풀이를 계속 달아놨습니다. 제가 다 해석해 드릴 거예요. 여기 다 있어요, 증거가. 다 해오 견성 얘기하고 그다음 보림 공부하라는데.. 보임을 보림(保任)이라고도 하죠. 보림 공부하라는데 다 보림 아니라고. 돈오돈수인데 뭐 보림 할 게 있냐고. 12지가 뭘 닦냐고. 계속 그런 풀이를 다 달아놨어요, 이 책 전체에 걸쳐서. 이게 공부가 안 되는 이유죠. 아니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요 저는 절에서 흥분할 줄 알았어요. 저를 지지할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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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공부가 안되시니까. 공부 안 된 사람들한테 왜 당신이 안 됐냐면 이래서 안 됐다 그러면 좋아해야 되거든요. 화를 내요.
“왜 우리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하신데 욕하느냐?”
“그럼 너희가 합격을 했느냐?”
“우린 합격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학원은 명문학원이다.”
“근데 왜 너희는 고시생이 안 나오느냐? 합격생이 안 나오느냐?”
“지금 합격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래서 너희가 합격을 못 한 거다.”
그러면 흥분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좋잖아요. “아! 이래서 안 됐구나. 내 문제가 아니었구나.” 이래야 되는데 에고가 잘못 삐뚤어진 방향으로 지금 신념을 세우니까 도움을 드려도 지금 핑곗거리 드려도 지금 활용을 못 하세요. “아! 내가 이래서 안 됐구나” 이러시라는 건데. 회광자간(廻光自看) 이 말을 못 알아들으시면 화두선은 하나 마나다. 화두 잡을 때마다 참나 각성, 슈퍼의식 각성이 안 되면 몰입이 안 된 거죠. 화두 몰입이 더럽게 안 된 거죠. 그럼 반면에요 자 충격적인 사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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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수많은 절에 많은 스님과 신자들이 그렇게 참선을 하고 화두를 잡았는데 견성을 못 했을까요?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제 얘기 듣고 좀 도움 받으셔야 될 분들은 그분들이에요. 제일 도움 받으실 분. 이미 아시는 분은 됐고, 학당에 오셔서. 절에서 지금 도움 받으셔야 될 분은요 화두 잡을 때마다 화두를 알아차리는 슈퍼의식, 참나자리가 느껴지는데 전혀 견성인지 모르고 동정일여 안 돼서 한탄하고 있는 분. 몽중일여. “하씨 몽중일여는 또 언제 하지?” 이러고 있는 분. 최근에 지금 저한테 들려온 소식이요 절에서 지금 들려온 소식입니다. 제 강의 듣고 실제 자기가 겪었다고 해서 들려온 사례가 절에서 화두를 잡다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 거예요. 화두 잡았더니 참나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우리 말처럼 참나가 느껴진 거예요. 그래서 스님한테 얘기했더니 “그러지 말고 화두 잡으라고. 그거 잡지 말고 화두 잡으라고.” 자 안 맞죠.
31:00
화두 잡았으면 회광(回光)해서 자신을 봐야 하는데 회광자간(回光自看)은 빼고 화두만 잡으라는 거잖아요. 그렇게 화두만 잡고. “참나 보지 말고 화두만 막 잡아. 그러다 보면 우리 12지 돼.” 이 이론이에요. 얼마나 황당한 이론인지 아시겠어요. 화두의 기본도 안 된 이론이라고요, 그런 이론들은. 왜 이런 이론이.. 성철 스님이 그렇게 주장했던 건 아닙니다. 성철 스님은 회광자간을 아셨겠죠. 문제는 화두에만 설명을 몰아놓으니까 몰빵해 놓으니까 화두 잡을 때부터 참나를 알아차린다는 말이 없잖아요, 성철 스님한테. 본인은 하셨더라도. 저는 본인은 하셨을 거라고 봅니다만. 제대로 화두를 잡으면 참나를 못 느낄 수가 없으니까. 화두 좀 잡아본 분은요 화두 알아차리는 자리가 같이 나타나요. 화두를 잡으면 아는 놈도 나와요. 그래서 화두 놓으면 견성인 거예요, 이 자리만 있으면. 화두는요 참나 불러내려고 잡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여러분 참나 아는 분도요 참나를 더 강하게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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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셔야 해요? 몰라 한 번 해주셔야 돼요. 염불 옴 해주시면 강하게 드러나요. 그때 이거 내려놓으면 강하게 깨어있습니다. 이게 보림 공부예요. 참나 아는 분이 화두 잡는 건 보림 공부입니다. 참나 모르는 분이 화두 잡는 건 그냥 점수(漸修)예요. 심지어 이게 이게 다 뭔지 아세요? 결국은 이 모든 게 해오가 이때 일어나니까 이 모든 것들은요 해오 전(前)의 점수(漸修)예요, 수심결에서 말하는. 점수만 하고 있지. 화두만.. 뭔 점수? 선정 쪽으로 점수하고 있는 거예요. 6바라밀 중에서 선정 쪽으로. 해오 전 점수. 아직 견성도 못한 거예요. 죽어라 화두만 잡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견성은 모르겠고 화두 한 놈, “난 한 놈만 잡는다. 화두만 잡겠다.” 6바라밀 중에 보시·지계·인욕 이런 거는 대충 하고, 화두만 잡겠다. 염불하는 분들은요 6바라밀 다른 거 안 돼요. 뭐만 해요? 염불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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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놈만 잡는다, 나는.” 근데 결국은 둘 다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선정만 닦고 있는 거예요. 6바라밀 중에서 선정 위주로, 지혜 살짝.
[* 화두를 제대로 들면 즉시 에고의 노력을 초월하고 이원성을 초월한 회광반조가 일어나, 자신의 텅빈 각성인 공적영지가 훤히 드러나게 된다!]
화두를 제대로 들면, 제 설명입니다 즉시 에고의 노력을 초월하고 이원성을 초월한 회광반조가 일어나서 자신의 텅 빈 각성인 공적영지가 훤하게 드러나게 돼 있다. 이건 자동입니다. 근데 자꾸 화두만 강조하니까 못 알아채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첫째 문제다. 화두만 강조하는 거.
[2. 앉아있는 중에 힘을 얻는 것이 가장 많다. 앉아서 마땅히 법을 얻되 눈썹을 치켜 올리거나 눈을 부릅뜨고, 몸과 마음을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 만약 기력을 쓰면 병고를 부르게 될 것이다. 다만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아서 평상시대로 눈을 뜨고, 몸과 마음과 경계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오직 화두를 들고 참나를 돌아볼 뿐!)
若於坐中 得力最多 坐宜得法 不要瞠眉努目 捺身心 若用氣力 則招病苦 但端身正坐 平常開眼 身心境界 不必顧着]
두 번째, 앉아 있는 중에 힘을 얻는 것이 가장 많다. 앉아서 수련 많이 해라. 앉아서 마땅히 법을 얻되, 눈썹을 치켜 올리거나 눈 부릅뜨고 몸과 마음을 억누르지 말아라. 그때도 좀 무리해서 하신 분도 있었나 봐요. 그렇죠. 눈에 너무 힘주시면 안 돼요. 살짝. 저는 포커스만 맞추는 정도, 눈 또렷이 뜨는 정도. 만약 기력을 쓰면, 너무 힘이 들어가면요 반드시 병이 생깁니다. 그래서 병이 병을 부른다. 상기(上氣)돼요. 막 머리로 열이 올라오고. 다만 몸을 단정히 하고
34:00
바르게 앉아서 평상시대로 눈을 뜨고 몸과 마음의 경계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몸과 마음을 몰라 해버려라 이겁니다 그냥 몰라 하고 화두만 잡아라. 딴 데 신경 쓰지 마라. 다른 데 힘이 들어가게 하지 마라. 우리가 호흡 지도할 때도 이러죠. “호흡만 알아차리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말게 하세요.” 하듯이 화두만 알아차리지 심신에 힘이 들어가게 하지 마세요. 너무 의욕을 불태우는 것도 힘이 들어간 겁니다. 은근히 꾸준히,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잡으라고 했죠.
[3. 만약 ‘혼침’과 ‘산란’이 있거든 정신을 조금 일깨우고 한두 번 소리 내 ‘화두’를 들면 자연히 온갖 마魔가 소멸할 것이다. 눈이 안정되면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몸도 안정될 것이다. 만약 ‘선정’(定)을 얻더라도 이를 능사로 삼아서는 안 된다. 혹시 ‘화두’를 잊어버리면 ‘공空’(무기공無記空)에 빠지고 고요함에 정체되어,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큰 병이될 것이다.
或有昏沈掉擧 着些精彩 提擧一二聲話頭 自然諸魔 消滅 眼定而心定 心定而身定 若得定時 不可以爲能事 或忘話頭 沈空滯寂 不得大悟 反爲大病]
만약 혼침과 산란이 있거든, 만약에 혼침. 무기공(無記空)에 빠지는 거예요. 무의식이 강해지면요 화두 잡다가 사르르 이렇게 의식을 잃어요. 산란은요? 온갖 망상이 몰려와요. 이때 어떻게 해요? 혼침과 산란할 때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화두 하는 분이니까. 우리 같으면 몰라 하라고 하겠죠. 화두 하는 분은요? 강하게 화두 한두 번 말까지 소리까지 내서 “무(無)라. 무(無)라.” 하고 딱 하면서 몰입 들어가면 자연히 마(魔)가 소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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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요 마를 근본적으로 정화한 건 아닙니다, 올라오는 놈을 쳐내는 거지. 선정은요 올라오는 번뇌는 누를 수 있어요. 근데 왜 부처님이 선정만으로는 업장을 못 턴다고 했냐면, 번뇌를 못 끊는다고 했냐면 지혜가 요격해 주지 않으면 선정은요 때를 불린 거, 거울의 때를 불린 거지 때를 벗겨내는 건 지혜다 그랬어요. 결국 확철대오나. 확철대오까지는 아니죠. 해오 견성이라도 해야지 벗겨져요. 해오 견성을 해야지 본격적으로 이제 업장이 털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혜가 생겼으니까. 법공을 깨닫겠죠, 일체유심. 상락아정한 참나자리, 일체 만법의 근원인 참나자리를 깨달아야 본격적인 업장 정화가 시작됩니다. 화두만 잡고 있어가지고는 평생 화두 잡아서 닦을 수 있는 업장은 얼마 안 된다고요, 안타깝게도. 눈이 안정되면 마음이 안정되고. 그러니까 눈을 정확히 뜨는 게 중요하죠. 힘을 주지 마시고요. 마음이 안정되면 몸도 안정된다.
36:00
그래서 눈을 정확하게 안정되게 떠라. 만약 선정을 얻더라도 이를 능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선정에 너무 빠지지 말라는 거예요. 자꾸 1선정·2선정 들어가려고 하지 마라. 우리가 필요한 선정은요 딱 찰나삼매면 족합니다. 그리고, 그 뭐죠, 근본적으로 우리가 들어야 할 선정은 무분별정(無分別定)이에요. 그러니까 찰나라도 결국 어디에 들어가라는 거예요? 딱 시공이 초월한 참나랑 접속만 하시면 되지 1선정·2선정 이런 거는 에고 놀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선정을 능사로 삼지 마라. 혹시 화두를 잊어버리면 무기공(無記空)에 빠진다. 화두를 잊어버린다는 건 뭘 의미하냐면요 의식이 약해져서 혼침에 빠진 상태예요.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큰 병이 될 것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지금 저주를 박아놓으셨어요. 공부 잘못할까 봐. 이렇게까지 노심초사해서는 여기서 여기서 이래라. 여기서 또 망할 수 있다. 여기서 이래라.
[4. 우리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다만 ‘곧장 가리킴’(直指직지인심直指人心)을 제시하여 ‘큰 깨달음’(大悟)을 관문으로 삼으시고, ‘선정’(4선정)이나 ‘신통’(5신통)을 논하지 않았으니, 이는 말단의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선정 가운데 ‘깨달음’을 얻어 광명해지면 ‘지혜’가 광대해져서 물과 육지에 자유로이 나아갈 것이다.
吾祖西來 單提直指 以大悟 爲入門 不論禪定神通 此是末邊事 若於定中 得悟明者 智慧能廣大 水陸並進也]
우리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달마 스님이 서쪽에서 오셔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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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준 게 곧장 가리켜라. 곧장 참나 바라봐라 이겁니다. 직지인심. 곧장 네 마음 봐라. 딴 데서 찾지 마라. 부처는 알아차리는 너다 이겁니다. 곧장 너의 알아차리는 마음을 봐라. 이걸 제시하고 큰 깨달음을 관문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확철대오를 목표로 세워주신 거죠. 이걸 통과해야 한다. 관문이라는 건요 통과하라는 겁니다. “너희 확철대오 꼭 해야 돼” 이겁니다. 그리고 “너가 부처인 줄 알아야 돼.” 선정, 4선정 체계나 신통은 여기서 이제 5신통만 얘기한 거고. 6신통 중에 누진통은요 결국 번뇌 없애자는 건 당연히 선불교에서도 추구하거든요. 그런데 5신통 나머지, 천안통, 천이통, 안 보이는 거 보고, 안 들리는 거 듣고, 하늘 날아다니고 이런 건 추구하지 않습니다. 4선정, 1선정·2선정·3선정 안 추구해요. 선불교는요 최상승선을 추구하거든요. 바로 참나 접속하기를 원해요. 선정의 단계도 따지지 말라고
38:00
권합니다. 이것도 에고 놀음이라는 거예요. 1이면 2가 있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1지·2지·3지·4지를 원래 선불교는 우습게봅니다. 왜 그러냐면 아직도 1지·2지면 분별성 속에 있다는 거예요. 선불교는, 선불교의 확철대오가 왜 1주 자리지만 왜 성불했다고 주장하냐면요 참나자리에서는 1주니 2주니, 1지니 2지니 분별이 없거든요. 바로 분별없는 자리 바로 들어가라는 가르침을 강조하다 보니까 바로 부처 되는 법 그래가지고 교외별전이라고 하는 겁니다. 교학 체계에서는요 근데 교학 체계에서 보면 단계가 있죠. 교학의 입장에서는 단계를 말할 수 있다니까요. “너네 1주야”라고 말할 수 있어요. 선학(禪學) 체계에서는 그 말을 안 받아들일 거예요. “무슨 소리야, 우리는 이원성을 떠났어. 우리를 재단하려 하지 마. 너의 안목으로 나를 재단하려 하지 마.” 이게 양 문파의 입장인 거예요. 근데 우린 중립기어 박아야죠. “그거는, 얘는 12지 같은 1주구만” 이러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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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분 같은 1인분 주세요 이러고. 그럼 그냥 그럼 된 거예요. 여기는 막 여기, 여기는 막 12지 같은 1주고, 여기는 막 여기, 여기는 막 12지 같은 1주고. 저쪽은 막 1주 같은 1지... 뭐라고 해야 되나? 1주. 똑같네요. “12지 같은 1주네.” 둘 다 똑같네요. 아무튼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지금 이해 안 되는 글 있으세요? 이렇게 잘해놓으셨어요. 제가 이런 경전 보면 놀라는 게 뭔지 아세요? 천년 2천 년씩 격해도요 몇 백 년 씩 격해도 자세히 써놔요. 한 사람들은요 자세히 써놓습니다. 풀이를 못 해줘서 그렇지. 우리 달마 조사께서 이렇게 가르쳐주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선정이나 신통은 논하지 마라. 그냥 참나 접속해서 바로 깨달아버려라. 바로 부처돼라. 만약 선정 가운데 깨달음을 얻어서 광명해지면 지혜가 광대해져서 물과 육지에 자유로이 나아갈 것이다. 이게 수륙 양용으로 막 이렇게 간다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는 거칠 게 없어진다, 이런 거예요.
40:00
다 시인들이세요. 약간 래퍼라고 아셔야 해요, 선사들은. 말이 좀 셉니다. 과장돼 있고. 그래서 지금 오도송 이런 게 랩이에요, 랩. 그러니까 말이 과장돼 있고, 풀어주면 별말 아니에요. 오도송이 그래요. 그냥 참나 만났다는 얘기를, 나무 두꺼비가 하늘을 날고 막 이렇게 얘기를 해줘야 됩니다. 뿌리 없는 나무와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줘야, “아~ 좀, 좀 하는데.”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좀 맛을 아는 애들은 뭐라고 그래요? “오, 쩌는데.” 이래요. 그럼 “어디서? 뭐가 쩐거야?” 이런 거랑 똑같아요, 오도송도. 그런 데 속지 마세요. 그래서 저는 오도송 하지 말라는 거예요. 차라리 설명해라. 부처님 오도송은요 친절하게 설명하는 말이었어요. 방언에 심취하듯이 설명 안 되는 말에 심취하는 문화가 어디에나 있어요. 그럴싸해 보여요. 풀면 별말 아니거든요. 막 방언 막 해서. “뭐래?”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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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의미가 없어요. 들어보면 별 내용 아니에요. 오도송도 똑같아요. 아무 내용 아닌데 그럴싸하게 얘기하는 게 그 맛이에요. 그러니까 그건 존중해 주세요. 그들만의 맛이고. 자기들끼리는 막 쓰러집니다. 자기들끼리 쓰러져요. “어떻게 저런 랩을 막” 이러면서. 우리가 볼 때는 소음이죠. 모르면 소음이죠. 오도송도 똑같다. 쫄지 마시라. 선정 신통보다는 선정 신통을 알아차리는 자리를 돌아보라. 이게 포인트다.
41:34
[출처] (녹취) [홍익학당] 몽산법어를 통해 보는 성철스님, 무엇이 문제인가?-1부-(41:34)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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