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14)] 순대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2012.01.05
북방 유목민족의 휴대용 식량서 유래
원래 양고기 부산물 사용, 6세기 무렵이 기원
동해안 북부엔 생선 넣어 오징어순대·명태순대도
국밥은 일제 이후 퍼진듯
북방 유목민족의 '휴대용 식량'에서 출발한 순대
순대는 동물과 생선의 내장에 선지, 부속고기, 곡물, 채소 등을 넣어서 쪄낸 음식이다.
순대는 북방기마민족으로부터 유래한 음식이다. 6세기 경, 중국의 농업 관련 백과사전인 <제민요술>에 양고기를 이용한 순대가 기술되어 있지만, 순대가 6세기 무렵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순대는 양고기 부산물을 이용한 북방유목민족의 음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다수설이다. 시기도 6세기 훨씬 이전일 것이다.
순대의 재료에는 여러 가지가 사용된다. 양, 돼지, 소 등의 내장을 주로 이용하지만 우리나라의 '어교순대'는 민어의 부레를 사용했고(시의전서), 함경도 지방이나 속초 일대 등 동해안 중북부에서는 명태와 오징어도 사용했다. 생선의 몸체를 순대껍질로 사용하는 경우는 지금도 다른 나라에서는 드물다.
한반도의 순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함경도 '아바이순대'고 하나는 피순대다. 함경도순대는 여러 종류의 곡물, 채소와 피를 뒤섞어 돼지창자에 채운 것이다. 피순대는 돼지 창자 속에 피를 넣은 순대다. 두 순대는 이름이 같지만 내용물이나 절단면을 보면 전혀 다르다.
피순대는 고려시대 몽골의 원나라 군사들이 제주도에 주둔하면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순대는 유목민족의 휴대용 식량이었고, 몽골 원나라의 침략과 더불어 다른 지역으로 전달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몽골의 기마부대는 순대를 제주도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전파했다. 독일의 각종 소시지와 이탈리아의 살라미 소시지 등이 몽골 침입 후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소시지는 '유럽판 순대'다.
제주도의 경우 기온이 비교적 따뜻하기 때문에 곡물이나 채소를 순대에 넣을 필요는 없었다. 사시사철 채소, 곡물이 비교적 흔하니 피만 넣은 순대가 정착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피순대는 '한반도 남방형 순대'라고 볼 수 있다.
함경도 아바이순대는 '북방형 순대'다. 한국전쟁 무렵 실향민들이 강원도 속초 등에서 만들었고 서울과 전국으로 번졌다.
조선초기까지도 함경도 지역은 여진족 등 이민족의 땅이었다. 세종대왕 시절 상왕이었던 태종이 4군6진을 개척하며 '조선의 땅'으로 편입했다. 이 과정에서 영토와 더불어 현지 이민족들, 이민족 음식인 순대가 한반도로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름은 같지만 피순대와 함경도 순대는 그 뿌리가 다르다.
순대에 관한 기록은 조선후기의 <규합총서> <증보산림경제> 등에 나타난다. 소 혹은 돼지의 창자에 곡물 등을 채운 것이다.
생선 순대와 순대국은 한반도 고유의 음식
순대국밥, 생선을 이용한 각종 순대 등은 한반도 고유의 것이다. 북방유목민족의 '양고기 부산물로 만든 순대'는 한반도의 탕반湯飯문화와 만나면서 순댓국, 순대국밥이 된다. 국물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우리는 순대도 순대국으로 만든 것이다.
동해안 북부에서는 동물의 내장 대신 구하기 쉬운 생선들을 이용한 순대가 나왔다. 명태의 내장을 비운 후 순대 소를 채운 명태순대, 오징어로 만든 오징어순대가 나온 것이다.
아범순대 명태순대
오징어순대는 횟집으로 유명한 서울 영등포 '막내회센터'와 속초 '진양횟집'에서 만날 수 있고 명태순대는 지금 휴업 중인 서울 역삼동 '아범순대'에서 인기를 끌었던 품목이다.
진양횟집 오징어순대
아범순대 '함경도 순대'
오징어순대는 싱싱한 오징어 먹물을 넣으면 더 맛있다. 조선시대에는 내륙에서 싱싱한 오징어를 구하는 일이 불가능했으니 '마른 오징어순대'를 만들었다.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린 후, 넓게 펴고 곡물 가루를 묻혀서 돌돌 만 다음 쪄낸 음식이다. 기록만 있고 지금은 만나기 힘든 음식이다.
기록에는 '어교순대'도 있다. 민어부레에 소를 넣은 다음 양쪽 끝을 실로 묶고 쪄낸 음식이다. 어만두魚饅頭와는 다른 음식이고 역시 문헌에는 있으나 거의 사라진 음식이다.
순대국밥과 순댓국의 정확한 유래를 찾기는 힘들다. 조선후기까지도 순대에 관한 기록은 있으나 순대국밥에 관한 기록은 없다. 아마 일제강점기 이후 유행한 음식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순대국, 순대국밥은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순대 관련 음식이다.
서울 테헤란로 상록회관 뒤편 좁은 골목길에 '선릉순대국'이 있다. 정갈한 돼지부속고기가 아주 좋고 강남 일대 순대국밥집의 모델이 되었던 집이다. 조미료 사용도 절제하고 음식 맛도 수준급이다.
서울 신대방동 '서일순대국'은 어머니와 딸이 본점과 분점을 각각 운영하고 있는 집이다. 순대국밥에 머리고기, 순대, 오소리감투 등이 들어 있다. 양도 푸짐하고 맛도 수준급이다.
제주도의 '감초식당'이나 경기도 양평의 '개군할머니토종순대국'도 순대 마니아들은 빼놓지 않는다. '개군할머니토종순대국'은 우거지, 시래기 등의 야채와 선지로 속을 채운 순대를 사용하고 국물은 된장이 기본이다.
삼청동 헌법재판소 건너편의 '호반'은 50년 역사의 함경도식 순대국이다. 기름기가 많고 순대 특유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속초 '단천식당'도 북한식 순대로 유명하다.
호반순대
전북 익산의 '정순순대'는 전형적인 피순대다. 이집에는 가격이 아주 착한 '순대국수'가 있는데 제주도 '돗고기국수(고기국수)와 흡사하다.
정순순대
서울에서는 약수동 '호남순대국' 도곡동 '남순남순대' 여의도 '화목순대' 등이 유명하고 지방에서는 피순대 계열로 전주 풍남시장의 '풍남피순대'와 병천의 '충남집'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