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산문시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탄 뒤 잡지들 속에는 잡다한 시들이 부쩍 늘어났다 산문인지 산문시인지 모를 산만한 시들 뜬구름 입은 문장들이 흘러내린다 손으로 씨를 부리고 눈으로 거두는 것이 글쓰기와 읽기라는데 길어도 너무 길고 난해해도 너무 난해하다 서늘한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시인이 또 몸詩, 알詩로 산문시의 일가를 이룬 뒤 시집들 속에는 잡다한 시들이 부쩍 늘어났다 산문시인지 산문인지 모를 산만한 시들 바람 입은 문장들이 쓸려 다닌다 뻔함을 깨뜨리는 것이 시라는데 산만해도 너무 산만하고 느슨해도 너무 느슨하다 영감의 수신탑이 보이지 않는다
양철 지붕에 빗방울 떨어지듯 문장의 한 문단에 리듬 주는 호흡 빠른 시가 직성 같은 시가 밀물처럼 밀려온다면 나 같은 시인도 직성이 풀릴 텐데
문단이 아무리 문인상경(文人相輕)이라 해도
(문인상경(文人相輕): 문인들은 서로 경멸한다는 말로, 문필가는 자기 문장을 과신하여 동료들의 글솜씨를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