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박사 최윤식, 한국 수학 교과괴정 토대 만들어
사진04 조선에 아인슈타인 쇼크 ∙∙∙최윤식은 전국 돌며 상대성이론 알렸다
일본 유학 때 아인슈타인 강연을 통헤 과학의 힘을 깨달은 최윤식은
국내 순회 상대성이론 강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끝까지 경청했고
왜 이렇게 상대성이론에 집착했는지 절박함이 느껴질 정도라고
당시 언론에서는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건국하기 전부터 팔레스타인에 히브리 대학을 세운 아인슈타인이
나라 잃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의미를 파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윤식은 한국 수학 교과과정 토대를 만들었으며
최신 과학을 알려주며 대중화에 앞장섰고 수학∙’물리 조선수물학회’도 창립했습니다
사진05 첫 물리학 박사,
최규남
야구 선수 출신인 최규남은 미국 유학을 가 물리학을 공부했고
1932년 한국인 최초로 물리학 박사 학위룰 받고는
조선의 과학 발전을 위해 귀국하던 무렵
현대 물리학은 상대성이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분야로 급속히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은 고전역학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양자역학이었습니다
.
그는 연희전문 교수를 하며 양자역학을 조선에 알렸으며
달 탐사, 드론, 로봇 알린 과학 에이스였습니다
사진06 첫 화학 박사, 이태규
사진07 조선인 최초의 일본 제국대학 교수 ∙∙∙1969년 한국인 첫 노벨상 후보
1924년 이태규는 교토제국대학 화학과에 진학했으며
1931년 조선인 최초로 화학 박사학위룰 받음으로서
우리도 과학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태규는 양자역학을 화학과 접목한 양자화학으로 발전시켰으며
KIST설립 자문을 받고
카이스트의 탄생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중략
함수를 지배하는 확률 해석으로 이어지는 긴 과정을 대중 잡지에 실었다고 한다. (지금도 어려운 이 이론을 대중 잡지에 실었다니!!)
과학자로는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태규'박사는 유타 대학에서 아이링 교수와 비뉴턴 유체의 점섬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를 '리-아이링 이론'이라 불렀다. 그 업적으로 노벨상 후보가 되었다. 1973년 귀국해 KIST의 산파 역할을 하고, KAIST에서 말년을 보냈다.
첫댓글 이상 오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