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산은 광주 서쪽을 흐르는 황룡강 건너 장성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봉우리는 암반으로 뾰족하게 생겼으며 2개의 쌍봉이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남쪽 봉우리를 석봉(石峰), 북쪽 봉우리를 토봉(土峰)이라 부르는데, 두 봉우리 사이의 고개를 배가 넘어간다고 ‘배넘어재’라 부른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용진산의 경치에 탐복 머물렀다고 하며, 봉우리는 성리학자 기대승에 비유하여 문필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 한말 용진산과 어등산을 중심으로 나주·광산 의병들의 활동무대였다.
용진정사(湧珍精舍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는 한말의 도학자 오준선(1851∼1931)이 강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
원래 용진사라는 절이 있던 곳인데 절이 허물어 진 뒤 정안 이씨가 그 터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 오준선의 뜻을 전해 듣고 절터의 일부를 내주어 건물을 짓게 되었다.
우제봉(雨祭峰338.3m 石峰)은 비가 오지 않을 때 제(祭)를 지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최고봉인 용진산(聳珍山351m 土峰)은 솟은 모양 ‘솟돌뫼’를 한자로 표기해 용진산(聳珍山)이 되었다.
봉우리 뾰족한 산을 풍수에서 화산(火山)이라 하고, 문(文)으로 풀면 붓 모양 필봉(筆峰)이다.
또 무(武)로 보면 창이나 칼이 된다.
북구 복룡마을에서는 용진의 화기가 보이면 해롭다고 '불막이 숲'을 조성하여 가리기도 했다.
‘까작골산(173.8)’ 이름의 유래는 알 수가 없다.
본량에 작림(鵲林)마을이 있으나 산과는 거리가 있고, 성(城)을 의미하는 ‘잣’이 작으로 발음되고 작(鵲)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어 유래를 추측하기 어렵다.
마을 뒷산에 깐치형태의 숲이 울창해 작림(鵲林)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까치와 관련있는 이름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용진산에서 본량으로 뻗어 내려가는 줄기에 수더분하게 솟았다가 ‘간나봉(189.3m)’으로 이어진다.
‘내왕산(內旺山170.5m)’은 왕동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쓰래산(195.9)’을 마주보고 있다.
이름은 ‘내동(內洞)’과 ‘왕산곡(旺山谷)’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한자씩 취했다.
그 밖에 “산보래이”하는 ‘산보래산176.3)’과 “이 간나~”하며 ‘간나봉(189.3)’이 손짓한다.
스토리텔링을 엮으며 그 시절 동학혁명 의병들을 떠올린다.
산행코스: A)용진정사 주차장-순천박씨 세장산-내왕산-우제봉(석봉)-배넘어재-용진산(토봉, U턴)-까작골산-간나봉-지산저수지 밑-산보래산-묘(대밭)-용진정사 주차장 (4시간), * B팀은 용진정사에서 석봉과 토봉을 다녀올 것.
궤적.
궤적.
6.43km,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고도표.
미리 준비한 표지기. 용진산 6봉이다.
네비에 '용진정사'를 입력하여 제법 널따란 주차장에 닿았다. 이는 다양한 산길을 열기 위한 것.
내왕산에서 시계 방향으로 차례대로 6봉을 오르내릴 것.
주차장에서 200여m 내려오면 우측으로 잘 관리되는 가족묘지가 있다.
순천박씨 세장산을 들머리로 삼아...
수렛길 처럼 닦여 있는 산길을 오른다.
7부 능선쯤에서 묘지는 끝이나...
비석을 확인해보니 '진사박충정지묘/유인고령신씨'. 부좌(祔左)는 남편의 왼편에 묻다라는 뜻.
10여분 치고 오르니 내왕산 고스락. 겉보다 속(內)이 왕성(旺)한 산.
아무런 표식이 없으니 모두들 나를 기다린다. 이 표지기가 있어야 인증이 되는 것.
깔끔하진 않으나 뚜렷한 능선 길.
서서히 바위가 나타나면서...
조망도 트인다.
불끈 솟은 바위는 직등은 불가하여...
왕동저수지를 내려다보며...
조심조심 바위 옆뽈떼기 틈새를 돌아...
암릉에 올라섰다.
우제봉 석봉은 오를 수 없어...
작은 석봉에서 머뭇거리는데, 석봉 바위 꼭대기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줌인하였더니 '같은날' 님이다.
'미세먼지 심함' 일기예보에 바람까지 불어, 이런 날씨엔 도드라진 바위가 위험.
되내려가 '토끼비리' 잔도를 조심조심 비켜돌아...
석봉 정수리에 다가갔더니 머리 위로 계단이 놓여져 있다.
氣가 팡팡 도는 암봉.
계단으로 올라...
아까 내가 섰던 암봉을 내려다 본다.
'박시' 님이다.
우제봉 정수리엔 대숲.
표지기를 건 뒤...
이정표를 확인하고...
700m거리의 토봉(용진산)도 건너본다. 용진산 산길은 모두 용진정사를 기점으로 등로가 개설되어 있다.
금정산엔 금정이 있고, 용진산 우제봉엔 용정(龍井)·용담(龍潭)이 있어 이제 곧 용이 승천할 일만 남았다.
여기선 석봉으로 불리는 듯.
용진산 탐방 누리길.
쓰래봉까지 다녀오는 별동대 팀이 속속 도착한다. 여기서(석봉) 옹기종기 점심식사.
중앙 지산저수지 좌측으로 까작골산과 간나봉 능선이 뻗어나가고, 저수지 우측으로 "나도 좀 보래이" 손짓한다. '산보래산이다.
봄바람이 세게 불면 연한 나뭇잎이 뒤집어진다.
배넘어재(쇠우개재, 265m)다.
배넘어재에선 용진정사가 0.9km, 사오동 쉼터가 1.1km, 토봉이 500m, 석봉이 200m.
이어지는 암릉엔 안전 데크가 완벽하다.
바위 틈새로 올라...
뒤돌아보니 한국의 '마테호른'이다.
용진산(토봉)에 올라...
표지기를 건 뒤...
안내판을 들여다 본다.
까작골산과 간나봉 능선은 용진산에서 30여m U턴을 한 뒤 남동쪽 능선으로 가파르게 내려서야 한다.
처음엔 능선이 뚜렷하지 않아 선명한 등로가 보이지 않지만 산길이 완만해지면서...
별 어려움 없이 올곧은 능선을 이어간다.
까작골산과...
간나봉에 표지기를 건 뒤...
시누대숲을 빠져나오면...
평택 임씨묘.
또 평택 임씨묘.
농로 사거리에 내려서면...
직진 방향에 "날 보래이"하는 '산보래산'이 있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지산저수지' 제방.
지산제 위로 석봉과 토봉이 키재기하고 있다.
당겨 보았다.
농로를 따르다 우측으로 꺾어...
우측 나즈막한 능선으로 향한다.
야트막한 능선 아래에서...
반기는 복사꽃.
청안 이씨 무덤위로 오르다...
다시 내려와 지형도를 보며 농막 뒷편으로 묵은 옛길을 더듬어 보았더니 도저히 불가하다. 옛길은 오히려 잡초 덩쿨 우거져 있는 법.
마지막 무덤에서...
산으로 들어섰더니 나즈막한 철망을 건너게 되고, '출입금지' 푯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사유지인 듯.
산길을 이리저리 더듬어 "니 보러 왔다". '산보래산'이다.
표지기를 건 뒤...
석봉을 보며 반듯한 등로를 이어간다. 산보래산 능선은 뚜렷한 산길이 나있어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등로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우제봉으로 향하는 능선길.
산보래산에서 딱 10분 만에 좌측으로 묘1기와 시누대 숲이 용진정사로 내려가는 갈림길.
시누대숲이 등로로 갈라져 있어...
금방 농로로 내려가는 묘지와 밭으로 내려선다.
150m 농로 끝엔 용진정사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도로.
짓지 않고 이쁜 짓하는 멍멍이 들. 한덤 님이 예쁘다며 상투과자를 집어 주었다.
아스팔트에 내려서서 올려다 보는 내려온 길(안부).
대기하고 있는 우리 버스.
주차장엔 동상이 서 있다.
금석 오선생 동상 이설준공. 금북학원(금북중학교) 설립자이자 제 8대 국회의원.
한말의 도학자 오준선(1851∼1931)이 강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18세부터 노사 기정진에게 학문의 폭을 넓혔으며, 일제의 회유정책에도 굽히지 않고 1917년 용진산에 들어가 후학을 가르쳤다.
용진사라는 절이 허물어 진 뒤 정안 이씨가 그 터를 가지고 있다가 오준선의 뜻을 전해 듣고 절터의 일부를 내주어 건물을 짓게 되었다.
오준선이 죽은 뒤 강당 동쪽에 3칸의 용진영당을 세우고 1924년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를 모셨다.
영당의 좌우벽에는 큰아들 오헌수와 둘째 아들 오동수의 영정이 함께 걸려 있다.
용진정사는 주차장에서 150m의 거리 4칸 팔작지붕의 기와집으로 있다.
용진정사 편액은 석촌 윤용구(石邨 尹用求·, 1853∼1937)의 글씨.
벽면에 걸린 기문.
용진정사기.
우측 잠긴 문 안은 용진영당.
1931년 후석 선생이 세상을 뜨자 지역 유림들은 정사 동쪽에 3칸의 용진영당을 세우고 1924년 석지 채용신이 그린 우석 선생의 초상화를 모셨다. 영당의 좌우벽에는 큰아들 북파 오헌수와 둘째 아들 도호 오동수의 영정을 함께 걸었다.
부도인가? 안이 텅 비었다.
또다른 기문.
주차장에는 화장실과 약수터가 있다.
소천 님한테 얻은 헛개나무 열매와 고사리, 두릅.
- 용 진 산 -
바위가 겹겹이 뾰족하게/ 서 있는 형상 석봉(石峰)//
수수만년(數數萬年)/ 흙의 산고로 산 살 붙여
계류(溪流)를 만들고/ 무너지지 않으려
봉제선 그어 놓고/ 나무들 어깨 나란히
병풍을 두른 토봉(土峰)//
대자연의 생태계는/ 우리가 교감하는 삶
아름다운 강산 내 고장이어라//
강 밑이 보이도록/ 겸손이 흐르는
황룡강의 물줄기/ 성스런 생명의 강//
용진산은 하루에 두 번씩 내려와
몸을 씻고 배를 띄워/ 열애를 하는가//
오! 용진산이여//
저 붉은 태양의 빛을/ 저 떠도는 구름을
저 갈 곳 없는 바람을 붙잡아//
석봉(石峰)의 가슴에 메어/
토봉(土峰)의 허리에 메어서라도//
용진산의 정기를 모아/ 임곡동 본량동에
고향의 찬란한 봄소식으로/ 되돌려다오//
임곡 오일장에/ 쌀 채소 땔감 머리에 이고 지고
부모님 따라/ 팥죽 한 그릇에 배 채우던//
일만 이천 명의 소식은/ 지금은 어디메뇨//
용진산 마루에 구름 꽃이/ 임곡동에 피는 그날//
황룡강 물줄기가/ 본량동에 꽃 강으로 피는 그날//
용진산은/ 하늘에 닿으네
<시향 박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