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의 일부가 평화신문 2005년 1월 30일자에 실렸습니다. 전문을 여기 옮겨봅니다.
‘하느님의 뜻’을 살기 위하여
영화 <마더 데레사>를 보고
최홍준/ 방송작가 ․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사무총장
20세기 중후반 한때 로마를 중심으로 운동단체를 창설해 활동하며 대 설교가로 명성을 떨친 한 사제가 말년에 한 평신도 단체의 젊은 여성이 조근 조근 자신이 복음을 살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뒤에 앉아서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사실을 나는 기억한다. 말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킨 대가(大家)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인 조그만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 사례인 것이다. 오늘의 시대는 대설교가의 사자후를 내뿜는 명강론보다는 실제 삶을 전해주는 증거의 행위가 더 설득력 있게 회중을 압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 <마더 데레사>를 감상한 분들 중에는 “감동이 덜하다”느니, “클라이맥스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다”느니, “소재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다”느니, 여러 가지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핵심을 파악하려 한다면 영화에 접근하는 자세부터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도입부는 종교 갈등과 내전으로 시끄럽던 1946년 인도의 캘커타를 보여주면서 기차역의 플랫폼을 걸어가던 데레사 수녀가 길바닥에 버려진 것처럼 누워있는 한 남자에게 다가간다.
“목이 말라요!”
간신히 입을 움직이는 그 남자는 십자가 위에 달려서 ‘가상칠언’을 말씀하신 예수님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몹신이 순식간에 수녀와 그 남자, 단 두 사람만의 화면으로 좁혀진다. 그는 누구였던가? 영화 맨 마지막에 나오는 성서 구절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그 남자였고, 그는 ‘예수’였다. 사랑의 선교회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로마에서 나온 한 사제에게 초자연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며 기차역에서 만난 그 ‘예수님’을 뵙는 순간 ‘하느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데레사 수녀는 말한다.
그렇다! 이 영화를 감상하는 관점은 바로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가 하는 데에 있다. 수녀가 하는 행위, 행위는 모두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자 한 것이었고, 자신은 그분께서 쓰시고자 한 도구, 즉 ‘몽당연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 명시적인 하느님의 뜻과 즉각적인 뜻이 있는데,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에 따르면 계명을 지키고 복음적 권고와 영감에 순응하는 것, 교회 장상들께 잘 순명하는 것이 명시적인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그때 그대 즉시 제시되는 하느님의 뜻을 하는 것은 예수께서 허락하시는 고통을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그 뜻이 어느 것이든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고, 즉 ‘성스러운 무관심’으로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절대적으로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이 무관심의 표현을 이렇게 시로 적었다. “제게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주님, 말씀하십시오.”
영화 <마더 데레사>는 30대 중반부터 80대 임종에 이르기까지 데레사 수녀의 한 생애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종교를 뛰어넘어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주는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관객들에게 선물로 준다. 그것도 잔잔한 감동을! 따라서 한꺼번에 큰 것을 얻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현 순간 나의 처지에서 나는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것인가를 궁리해본다면 영화가 주는 값진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평론가의 자세로 보기보다 내 삶과 연관시켜서 보는 것이 이 영화를 대하는 관점이 돼야 하리라고 본다.
첫댓글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한 묵상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우리는 흔히 말 따로 실천 따로일 때가 많습니다. 형님의 영화'마더 데레사'를 감상하는 자세에 관한 글은 그런 점에서 저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합니다. 오늘 아침 미사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독서를 통해 다시 묵상했습니다.
날마다 속세적 삶을 살아 가는 저에게 좋은 성찰 꺼리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형님의 깊은 신앙 생활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늘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언제인가는 교회에 심취하는 삶을 살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Peter, Stefano 아우의 독후감 올려준 겻에 감사 전하며, 교회생활과 일상생활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요원한 일도 아니라는 점을 일러주교 싶네. 올해는 특히 성체성사의 해니 만큼 미사 영성체 열심히 하고, 장례나 혼배인사 때 밥만 먹고 올 것이 아니라 미사에 참례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한 묵상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우리는 흔히 말 따로 실천 따로일 때가 많습니다. 형님의 영화'마더 데레사'를 감상하는 자세에 관한 글은 그런 점에서 저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합니다. 오늘 아침 미사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독서를 통해 다시 묵상했습니다.
날마다 속세적 삶을 살아 가는 저에게 좋은 성찰 꺼리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형님의 깊은 신앙 생활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늘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언제인가는 교회에 심취하는 삶을 살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Peter, Stefano 아우의 독후감 올려준 겻에 감사 전하며, 교회생활과 일상생활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요원한 일도 아니라는 점을 일러주교 싶네. 올해는 특히 성체성사의 해니 만큼 미사 영성체 열심히 하고, 장례나 혼배인사 때 밥만 먹고 올 것이 아니라 미사에 참례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