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묘표에 나타나는 일월문 문양
수도권 지역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경기도 고양시에는 정말 많은 宗室 및 사대부 묘역이 있다. 세밀하게 검토하면 할수록 몰랐던 묘소들을 더 알게 된다. 이날 신원동, 대자동, 관산동의 묘역을 돌아보았는데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이미 다녀온 바 있는 최영장군묘, 월산대군묘 및 신도비, 성녕대군묘 등을 제외했음에도 목록에 있던 묘의 반의반도 들르지 못했다. 그런 중에도 몇몇 묘비에서 望外의 만남이 있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묘비 중에는 특이하게 이수에 태양과 달, 혹은 태양이나 달이 새겨져 있는 것들이 있다. 이를 흔히 日月文[紋]이라고 하는데,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불과 3~4년 전이다. 이후 일월문이 있는 묘비는-거의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http://blog.daum.net/hl2aci/17435252)’라는 한 블로그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되도록 열심히 찾아보았다. 일월문의 범위에는 삼족오와 옥토끼도 포함되며, 일반적인 일월문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간다. 이날 답사 초반부터 일월문을 만났는데 바로 덕풍군 이이李恞묘에서였다. 덕풍군은 월산대군의 아들로 고양시 신원동에 묘소가 있다.
종실 및 사대부 묘소를 찾아본다는 차원에서 찾은 덕풍군 묘의 묘비로 다가서는데 묘비 뒷면의 달이 먼저 반긴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전면을 권운문卷雲紋을 빽빽하게 채우고 중앙 약간 위쪽에 조금은 살이 찐 초승달을 새겼다.
묘비의 앞면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묘비뿐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봉분 향 좌측에 모로 서 있는 신도비에게 다가선다. 이수 앞면에는 꿈틀대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흑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 안타까웠다.
뒷면으로 돌아가 보니 기대에 걸맞게 정중앙에 달이 새겨져 있다. 아래쪽이 운문에 가려져 있지만 보름달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이어서 찾아간 전성부정 이리李璃의 묘에서는 더 귀한 문양을 볼 수 있었다. 이분은 앞서 만난 덕풍군 이이의 아들, 즉 월산대군의 손자이다. 덕풍군, 전성부정의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종실들은 대개 흔히 쓰지 않는 글자, 즉 벽자僻字를 이름에 사용한다. 이는 혹여 이들이 왕위에 올랐을 때 기휘忌諱로 인한 불편을 줄이기 위함이다.
아무튼, 이 묘를 찾은 것은 종실묘이기도 하지만 문인석의 지물이 사람 모양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디서 보고 한 메모인지 모르겠지만 지물은 평범한 홀笏이었으며, 단지 수염에 바짝 붙어 있는 정도가 특이할 뿐이었다. 가벼운 실망감을 안고서 묘표를 바라보는데 뜻밖에 앞면 중앙에 반달이 새겨져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묘표를 자세히 바라보니 반달 문양 안에 삼족오가 들어있다. 연성군 이곤, 대은 변안렬, 박운의 묘비에서와 달리 무척 작은 크기여서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다리 셋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다.
뿐인가? 뒷면에는 역시 정중앙에 초승달-아래쪽이 반쯤 잘린-이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삼족오까지 포함된 일월문 묘표였던 것이다.
이어진 답사 중 미리 알지 못했던 일월문 묘표를 또다시 우연히 만났다. 관산동에 있는 고양시향토문화재 제21호 한계미선생묘 및 신도비 영역 내에 있는 한형원묘韓亨元墓의 묘비가 그것이었다. 한형원은 서원부원군 한계미韓繼美의 손자이며 한의韓㠖의 아들이다. 묘비는 1544년(중종 39)에 건립되었고 높이 190cm, 폭 76cm이다.
이 묘비는 앞면 이수 중앙 상단에 둥근 태양을 새기고 있다. 뒷면에는 운문만 가득 새겨져 있다.
위 세 곳은 그야말로 뜻하지 않게 받은 선물 같은 것이었다면 이후 두 묘역에서는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성군묘를 다시 찾았는데 지난 답사 때 역광 때문에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 날씨는 잔뜩 찌푸려 있기는 하지만 대신 역광은 없을 것이기에 다시 시간을 냈다. 막상 묘비 앞에 다시 서니 역광도 문제지만 이끼 등을 제거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 같지만 도구도 없거니와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 감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은 성종의 아들로 어머니는 숙용 청송심씨이다. 묘는 덕양구 대자동에 있는데 이 묘역에는 여러 묘표에 일월문이 있다.
최상단에는 3기의 봉분이 있는데 중앙에 자리한 이성군묘 묘표에는 앞면에 용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 태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끼가 심하게 끼어 있어 아름다움이 퇴색된 감이 있다. 1556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성군묘의 좌측에는 풍양군부인 안동권씨묘표가 있는데 앞면은 용이 장식되어 있고, 뒷면 중앙 상단에는 태양이 새겨져 있지만 다소 흐릿한 편이다.
우측에 있는 이성군의 부인 곤산군부인 남평문씨묘표에는 더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전면에는 용이 새겨져 있는데, 뒷면에 주작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혹 삼족오로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다리도 둘이고 날갯짓 하는 모습도 전형적인 삼족오 문양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성군묘 바로 아래에는 2기의 봉분이 있고 각각 묘표가 있는데 그 가운데 좌측은 경양군묘이다. 앞면 가득 꿈틀거리는 용을 투각에 가깝게 새겼다. 뒷면 중앙 상단에는 달을 새긴 것 같기도 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그 옆에는 명원현부인김씨지묘라 새겨진 묘표가 있는데 앞면에는 용을 새겼는데 중앙을 둥글게 파내고 용두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만 양각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하여 다른 용 문양 이수와는 색다르다.
뒷면에는 구름에 살짝 가린 달을 중앙 상단에 표현하였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역시 대자동에 김양언의 묘였다. 이 묘소는 근녕군묘 들어가는 길 왼쪽 가파른 비탈에 자리한 묘역 최하단에 자리한다. 경주김씨 묘역인데 위에서부터 김영원, 김희 등 세 분의 묘소가 자리한다. 그런데 올라가면서 일월문이 새겨져 있다는 묘표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잘못 알고 왔나?’하는 의구심 속에 위의 묘소부터 촬영을 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최하단 묘소 앞 제일 좌측 구석에 키 작은 묘표가 보인다.
묘표에는 앞면 중앙에 둥근 태양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다. 김양언은 경주김씨로 청송도호부사를 역임했으며, 머잖은 곳에 같은 집안의 대단위 묘역이 더 있다.
이번에는 다시 찾지 못했지만 고양시에는 일월문이 새겨진 묘표와 선정비가 더 있다. 이곳들은 모두 이전에 찾아본 곳들이다.
대자동의 한 산록에는 옥산군묘가 있는데 옥산군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과 신빈신씨의 아들인 근령군의 아들이다. 대략보아 옥산군 묘를 중심으로 좌측에 있는 2남 영인군묘 묘표와 우측에 있는 장남 시안군묘 묘표에도 일월문이 있다. 영인군묘 묘표의 모습이다.
영인군 이순(1448-1505) 묘표 앞면에는 바로 앞에서 보았던 이성군의 부인인 곤산군부인 남평문씨 묘표에서와 비슷한 봉황이 면 전체에 걸쳐 새겨져 있다. 역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뒷면 중앙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다.
옥산군의 장남 시안군 이탁(1446-1509)의 묘는 옥산군묘 앞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만날 수 있다. 묘표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앞면 중앙에는 아래 부분이 약간 가린 태양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초승달을 뉘어서 표현하였는데, 이처럼 옆으로 뉘어져 있는 첫 사례라고 한다.
덕양구 오금동에 있는 함양박씨 묘역에도 일월문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이곳은 묘표는 아니고, 입구에 있는 세장지비와 박세영신도비에 새겨져 있으며, 앞면에 삼족오 혹은 주작이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세장지비는 묘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좌측에 세워져 있다.
함양박씨세장지비 앞면에는 삼족오, 혹은 주작 2마리가 서로 교차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박세영신도비는 재실을 앞에 두고 우측으로 가면 박대립신도비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앞면에는 구름 속에 앉아있는 주작(삼족오, 혹은 학) 2마리가 조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새겨지는 쌍룡을 주작이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뒷면에는 구름이 가득한 가운데 중앙 상단에 달이 새겨져 있다.
일월문이 선정비에 나타나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게 보이는데 덕양구 동산동 대로변에 있는 구사 오정일선정비에서 그 예를 발견한다. 앞면에 쌍룡이, 뒷면에는 구름 속에 보름달이 있다. 특히 이 보름달은 무척 둥글고 주변으로 햇살이 뻗어나가는 듯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묘표를 비롯한 석비 이수의 문양에 대해서는 아직 학문적으로 정립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나마 열심히 찾아보지도 못해 해석과 용어, 그리고 표현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적어둔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중요한 곳은 이미 다 보셨네요. 저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ㅎㅎ
덕명교비는 찾아본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요. 저도 이날 처음 찾아보았습니다. 맨 아래 오정일선정비가 밥할머니상 바로 옆에 있는 비석입니다.
대단한 시나브로님
수도권 불교문화재는 이미 대개 두번이상 보았고...
100km 이상 가기는 부담스러운 그런 날은 묘역을 찾습니다.
음
새도 가끔 묘비를 장식하는구나....고마워요
여기 말고도 제법 있습니다. 남양주 안동김씨 묘역 등...
잘 봤습니다.이참에 비두의 문양 전문가로 올라서면 좋겠습니다~^^
웬걸요? 가장 많은 용 문양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데요...
일월문이 고양의 지역적 특색인지, 어느 시대의 특징인지 톺아보시고 가르쳐 주세요~~
저한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ㅋㅋㅋ
그저 있다기에 찾아다니고 이렇게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일단 수도권지역에는 양주 남양주 성남 화성 등 여러 지역에서 보이고 전북 전남 지역에서도 옥토끼가 새겨진 묘비가 더러 있습니다. 시대적으로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조선전기가 압도적이고요.
@시니브로 준비돼 있으시면서 삼가시긴요 ㅎㅎ 감사합니다~~
@또르 역시 전문가이십니다. 삼가다를 삼가하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열에 여덟 아홉은 되는데요^^
@시니브로 부끄럽습니다. 5월에 휴일이 이어지니 한번 데리고 가 주세요^^
묘지 전문 답사객으로 인정합니다^^
이쪽 강호에도 고수들이 엄청 많아서 저는 겨우 초출을 면할까 말까 하는 수준입니다^^
우와.....대단합니다...해와 달....삼족오까지....헐~~~~~~~~~~!!
난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네요...그런데 일탈까지하고 있으니...음음..
반성을 해야하는데 반성이 안되고 아직도 돌아오려면 ~ㅎㅎㅎ
잘 보았습니다.
마음이 가시는대로 몸은 따라가겠지요. 지금은 지금 좋으신 것 즐기다보면 다시 돌아오시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