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의 역사를 확인하고 튼튼한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되새기는 뜻으로
진해 웅천동 남산에 남아 있는 웅천왜성을 답사하였다.
웅천 왜성 표지판의 영문 표기와 정상의 안내문의 영문 표기가 다르다.
오래 전에 그 표기에 대하여 건의를 했더니,( 웅천왜성 Uncheon waesung )
그게 맞다고 하더니,
최근에 새로 세운 안내문에는 내가 주장한 그대로 씌어 있다.
( 웅천왜성 (Uncheon Japaness Fortress)
조반석죽도 재대로 먹지 못했던 조선의 백성들이 어디에서 저 많은 돌을
지게로 운반하였을까.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도 없던 시절 저렇게 큰 돌을 어떻게 운반하였을까.
생각하면 죽지 못해 그 고생을 감내했던 우리 선조들이 불쌍하고,
그렇게 당하도록 나라를 다스리던 무능한
선조임금과 당시의 조정 대신들이 밉기만 하다.
세계 10위의 국력과 6위의 군사력을 가진 지금은 저렇게 당하지는 않겠지
하는 안도감과,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에 주력하는
윤대통령을 폄훼하기에 혈안이 된 야당 정치인들을 편드는
적지 않은 국민들의 행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왜성 맨 꼭대기 본성 자리
(왜성 돌쪽 끝에서서 바라본 매립지.)
그 아래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줄았으나 길이 없어 되돌아섰다.
여든 중반을 넘어선 상노인인 내가 새로운 길을 걸어보고자 했으나
길이 없어 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였다.
아래 마을로 내려가는 다른 길을 찾았으나 함구하고 왔던 길로 내려왔다.
왜성 앞 바디를 매립한 그 땅에 부산신항 배후 시설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