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당하동과 다율동 일대에 걸쳐 있는 파평윤씨 정정공파 묘역은 파평부원군 정정공 윤번과 그의 후손들의 묘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단일 가문의 묘역으로는 가장 넓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묘역이 몹시 넓어서 모두 돌아보는데 5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몇 곳은 위치를 알 수 없어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아래 위성사진에 대략적인 위치를 표시했으니 방문하실 분들은 미리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정정공파 계보를 간략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와동교차로 정류장에서 내려 먼저 윤지임 묘역을 향합니다.
사당 앞쪽 비석 쪽으로 꺾어 들어갑니다.
맨 앞의 봉분 셋은 배천군수(白川郡守) 윤광(尹侊)의 묘라고 합니다.
윤광의 묘 좌측에는 윤지임(尹之任)의 신도비가 서 있습니다. 이 묘역 내의 대부분 비석이 그러한데, 다들 마모가 심해 글씨를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수에는 두 마리 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윤광 묘 위에는 윤지임의 삼남 윤원필(尹元弼)과 정부인 경주 정씨의 묘가 있습니다.
향로석만 독특하게도 흰 돌을 깎아 만들었습니다. 정면에는 귀면문?도 보입니다.
윤지임 신도비와 윤원필 묘.
이 묘역의 가장 윗쪽에는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 정평공(靖平公) 윤지임과 전성부대부인(全城府大夫人) 전의이씨 묘가 있습니다.
망주석에 독특한 무늬가 있습니다.
이제 묘역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가다 우측 산길로 꺾어 들어가면 명종조 외척으로 영의정에 오른 윤지임의 오남 윤원형(尹元衡)과 그 첩 정난정(鄭蘭貞)의 묘가 나옵니다.
영의정을 지냈지만 당대의 평판이 워낙에 안좋아서인지 비석도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비석이 새롭게 만들어진 듯합니다.
정실이 아니어서인지 두 무덤이 나란히 있지 않고 정난정의 무덤이 약간 뒤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옛 석물은 문인석과 망주석뿐입니다.
윤원형, 정난정 묘에서 차도로 내려와서 약간 걸어 내려가면 우측으로 묘 하나가 보입니다.
윤지임의 부친이자 윤계겸의 아들인 영돈녕부사 윤욱(尹頊)의 묘입니다.
다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우측에 신도비가 보입니다.
윤번의 삼남이자 윤욱의 조부, 윤계겸의 부친인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양평공(襄平公) 윤사흔(尹士昕)의 신도비입니다.
이 비석은 여타 신도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화려한 조각으로 유명합니다. 지광국사탑비나 현화사비와 같이 측면에 조각이 가득합니다.
머리는 연잎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뒷쪽으로는 윤지임의 사남 돈녕부도정 윤원로(尹元老)와 숙부인 평창이씨의 묘가 있습니다. 윤원로는 동생 윤원형과의 권력다툼으로 사사된 인물입니다.
윤원로의 묘에는 다리가 있는 혼유석이 있습니다.
장명등에는 특이하게도 十자형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윤원로의 묘 뒤로는 신도비의 주인인 윤사흔의 묘가 있습니다.
장명등은 조선 초기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시 가던 방향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윤보 등의 묘역이 나옵니다. 들어가는 길이 따로 없는데, 윤여해 신도비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나마 나아 보입니다.
가장 남쪽에는 윤사윤의 아들이자 윤여필, 윤여해의 아버지인 피릉군(坡陵君) 윤보(尹甫)와 정경부인 전주이씨의 묘가 있습니다. 위아래로 배치되어 있으며, 위가 윤보의 묘입니다.
2기의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아마도 사후 추증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윤보의 묘 뒤로는 윤여해의 차남 회양도호부사(淮陽都護府使) 윤건(尹健)과 청송심씨의 묘가 있습니다. 단분으로 합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윤건의 묘 뒤에는 그의 아버지이자 윤보의 차남 충청도병마절도사 윤여해(尹汝諧)의 묘가 있습니다.
윤여해의 신도비는 묘소가 있는 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시 올라와, 윤여해의 묘 뒤로는 별좌를 지낸 그의 장남 윤정(尹侹)의 묘가 있습니다.
유독 비석의 마모가 심합니다.
윤정의 묘 옆으로 난 산길로 걸어내려가면 참호 사이로 내려가는 길이 나옵니다. 계속 가다 보면 장경왕후와 윤임의 아버지인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정헌공(靖憲公) 윤여필(尹汝弼)의 묘가 나옵니다.
특이하게도 묘가 한쪽으로 쏠려 있는데, 아마 모종의 이유로 쌍분으로 조성하려다가 별도로 조성한 듯합니다. 묘비 뒷면에는 순천부부인(順天府夫人) 박씨의 묘는 고양 향동에 있다고 쓰여 있는데, 현재 향동 239-4번지에 있습니다.
묘비 전면은 예서로 쓰여 있습니다.
묘비 뒷면입니다. 마지막 줄에 아들 윤임(尹任)은 을사사화(乙巳禍)의 간흉(奸兇)으로 사림(士林)을 속였(誣)다고 적혀 있는데, 저의 짧은 한문 수준으로는 전체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묘비에 이렇게 아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일 듯한데 당대의 윤임에 대한 평판을 알 만 합니다. 윤임의 묘는 현재 순천부부인 묘 바로 옆에 있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2부에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어마어마하네요. 대윤 소윤이 일가인줄은 알고 있었는데, 묘마저 같이 쓸 정도로 가까운 줄은 몰랐습니다. 윤임의 후손이 어떻게 저런 비문을 참고 그대로 남겨 두었는지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답사는 물론,
치밀한 사전 조사부터 여사롭지 않군요.
한 가문의 묘소가 엄청나군요.
대단한 권세를 누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