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검은 토끼해라고 토끼가 꺼멓게 나오는군요.
토끼와 인연이 있는 몇가지 일화를 소개할 까 합니다.
소시적 부산 동래 명륜동 살 적에 집에서 토기를 몇 마리 키운 적이 있습니다.
이 토끼라는 것이 습한 것을 싫어해,
항상 토끼장 밑을 깨끗하게 갈아주어야 해 좀 성가시기도 하였습니다.
몇 마리 키우지 않기에 토끼풀은 큰 걱정이 없는데,
어릴 적 기억으로는 콩잎이나 칡 넝쿨 꼬뜰배기(신냉이) 등을 잘 먹어 하는 수 없이 움직이어야 했습니다.
한 몇 년 키우다가 집에서 토끼를 잡지는 않는 관계로 토끼 고기는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상경하여 한양에서 학교를 나와 청파동에 있는 모 여고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 때가 아마 칠십 년도 말인가 봅니다.
좁은 운동장에 주야간 초 중 고 이 다 있어 그야말로 학생들이 버글버글 하였습니다.
운동장도 좁고 학교가 너무 삭막하여 옥상 물탱크 있는 곳에 공간이 좀 있어,
여기에 용원에게 부탁하여 토끼장을 만들고 토끼를 키우기 시작하였습니다.
토끼는 다산성에 한 해에 서너 번은 출산을 하고,
그야말로 어떤 해는 한 서른 마리가 되는 엄청난 식구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책상 위를 뛰어 올라 야단을 치는데
나가 보니 복도 쪽에 토끼 한마리가 어슬렁거리다가
나를 보고 급히 옥상 계단으로 올라가는 촌극도 있어 한바탕 웃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이 토끼는 누나들이 공부를 잘하고 있는가 보러 온 것 같았습니다.
도저히 혼자 힘으론 키우기가 힘들어 용원에게 몇 마리씩 보시를 하며 개체수를 조정하는데
문제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어떻게 먹이를 감당할 수 있는데
겨울에는 할 수 없어 사료를 사다 먹이며 그렇게 키웠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나를 토기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흔히 토끼 교미할 적에 어떻게 붙는가 싶으면 이내 떨어져
남정네 중에 조루증이 있는 이들은 '토끼 무엇한다'는 우시개 소리를 농담 삼아 하곤 합니다.
그때는 용산 청과물 시장이 있어 학교 구루마를 끌고 가,
그곳에서 배추 씨레기 등을 얻어 한 며칠 주기도 하고
과천에서 칡 넝쿨을 마대 자루 한 포대씩 담아 버스를 타면,
기사 양반이 아주 얹잖아 하는 그런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만 두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내 생각에는 도대체 학교에서 가르키는 것은,
산 지식이 아닌 상급학교에 가는 도제기관이라,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너무 삭막할 것 같아 옥상에서 토끼나 보면서 재미있어 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내심 그만 두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나는 키울 수 있는데까지 가보자 하면서 혼자서 끙끙거리며 키웠습니다.
어느 해 가을 날 하교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이층 교무실에서 있을려니 밑에서 둔탁하게 퉁퉁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직감적으로 옥상에 토끼를 누가 던지나 싶어서 내다보니 땅에 몇 마리가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옥상에는 아무도 없기에 누가 던졌나 하면서 내려오니,
초등학교 학생들이 올라가 놀다가 재미삼아 던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초등학교 교무실에 가 이야기라고 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세상에 토끼를 육층 옥상에서 던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 것이고,
같이 있는 초등학교는 사립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아이들도 좀 여유있는 가정이다 보니 아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아찔 합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또 이렇게 시작합니다.
팔십년도 초반에 학교에서 수련회를 마석에 가게 되었습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수련회에서 교육을 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끼리끼리
잠깐 근처 산을 타기로 하고, 나와 한 사람이 동행하여 마석의 철마산을 타는 가운데
산에서 부시럭거리면서 무엇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달려가니,
토끼 새끼 한 마리가 그만 군에서 만든 교통호 벽에 부딪쳐 꼼지락 거리기에,
잡아서 숙소로 가지고 와 박스에 담아 하루 재우고,
그 다음 날 평촌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베란다에 놓아두고 물을 좀 뜨다 주고 과일 껍질 등을 주니 조금씩 나와 먹기도 하더군요.
거실에 사람이 없으면 거실까지 나왔다가 우리가 나서면 부리나케 베란다 안쪽으로 숨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장인 장모가 올라와 우리 집에 며칠 있는데
장인되시는 양반이 베란다에 나가 문을 열고 향 공양을 하고 들어왔는데,
바깥 베란다는 그냥 열어 둔 상태이기 때문에 그만 발을 헛 디뎌 덜어졌는가 봅니다.
우리는 항상 바깥 베란다는 닫아 두는데 이 날은 그냥 열어 둔 상태가 된 것인가 봅니다.
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이 토끼는 땅에 묻어 주었습니다.
오행 십지 십이간에,
임, 계는 오행에서는 물 수이고, 계절은 겨울, 색깔은 흑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별주부전, 토끼화상, 용궁부연록 토별산수록 등 각색을 하여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토끼는 자신의 지혜로 슬기롭게 살아가는 영물로 보면 좋을 듯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재미있게 엮을까 했는데 그만 용두사미가 되었군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토끼 해에 내가 가진 생각의 편린을 드러내 보이면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첫댓글 토끼에관한 일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구루마"
오랫만에 들어봅니다.
저도 어릴때 토끼 많이 키웠는데 숫자가 늘어나니 먹이를 감당 못해서 처분했어요
가끔 한마리 꺼내와서 장난 치고 하다가 손가락도 물린적이 있어요
한 오십마리 정도 되니까 소 먹이는것 보다 풀을 더 많이 먹더라구요
집에서 소는 항상 키우기기에
소 보다 더 먹고
소득은 없었어요
60년대초에 형님이토끼한쌍을 가져다주며 키워보라해서 키우게 되었는데
처음엔 동생과 신이나서 아카시아잎과 풀을베어다주며 키웠는데 6개월쯤지나 새끼를 낳으면서
고난의 세월이 되었습니다.
식욕이 얼마나 좋던지 숙제하기도 어려울만큼 풀과의 전쟁이였고 토끼장을 새로만드는게 일이였습니다.
일년반만에 150마리를 돌파했거든요.
생일때마다 토끼고기로 파티를 했는데도 감당이 안돼서 장사꾼불러서 처분핬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산의상징이라는 돼지보다 더욱 많이 생산력이 있습니다.
어릴 적 시골 초등학교에 토끼장이 있었지요.
누가 키우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먹이를 가져다 주고
토끼가 받아먹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토끼의 해.
토끼처럼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한 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학생들이 집에서 먹었던 과일 껍질이나 감자 껍데기 등,
소소한 채소류 찌꺼기 조금씩만 가져오면 충분히 먹이는 되겠다고,
수업 중에 간간이 이야기 하였지만 별로 호응이 없더군요.
보고 즐기지만 먹이 가져다 주는 것은 일이라 하여 피하는 모양입니다.
서울대공원에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요.
각자 자기 구역을 정하고 조그만한 상자 집에 사료와 물을 가져다 놓고,
정해진 시간에 와서 부르면 고양이 한 두 마리는 어디에서 오는 지,
어김없이 와 비비고 드러누우며 아는 체 하는 것이 보기가 좋아 보입니다.
굉장히 많아요.
많아도 너무 많아요.
사람이 가까이 가도 겁내지 않네요.
작년 일인가 봅니다.
눈이 많이 내리고 적설량이 상당하여 대공원 산림욕장 가는 길을 막아 놓았는데
나도 평소 가는 길을 우회하여 가다보니 한 아낙이 눈길을 헤매기에
자기는 여의도에서 와 '생각의 숲' 테크 아래 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가는데,
이 길로 가면 갈 수 있을 것 같아 가다가 헤매고 있다기에
내가 잘 아니 가자고 하여 한 시간이나 눈길을 헤쳐 도착하여 밥을 주고 같이 내려 왔어요.
날씨도 차고 길이 멀어 애를 먹었는데 요사이도 다니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