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끝나겠습니까?
오랜 시간 함께 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지인이 있다.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것은 그러나,몇 년이 안 되었다. 사람들이 모 이면 얼마나 잘 웃고 분위기를 띄우는지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부러워 했다.
그런 능력은 내겐 1도 없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나와 동갑이었고 아들 하나만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말해주지 않으면 어떤 것도 묻지 않기에, 그냥 남편과 함께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사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었다. 몇 년 전, 그녀와 함께 무언 가를 할 때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떤 일이 생겼는데 오백만원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아들의 말에 나는 기가 막혀 서 이유를 물었다. 그런 통화를 꽤 길게 마치고 한숨을 쉬는데,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나는 웃으며 아들의 흉을 살짝 보았다. 그런데 내 말을 듣고 난 그녀는 놀라운 말을 했다.
"사실 영심씨가 부러워서 나도 모르게 그냥 보고 있었어요. 울 아들도 그렇게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떼 쓰고 돈 달라고 전화하고..."
나는 영문을 몰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말 끝이 눈물로 번지는 그녀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아들이 정상인이 아님을 깨달았 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소문을 들은 적 이 없고, 그럴 거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너무나 잘 웃고 행복해보이는 사람이었고 그 웃음에서 가식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봉사단의 어떤 누구도 모른다면서 옷소매를 걷더니 팔을 보여 주었다. 양쪽 팔 전체에 여러 색 깔의 멍 자국이 선명했다.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그녀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경악할만 했다. 그녀의 아들은 내 아들보다 다섯 살이 어렸고 결혼 7년 만 에 얻은 귀하디귀한 아이였다. 그러나...심한 정신지체장애아로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겪은 곤욕 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이가 5세 때 시모의 강권으로 이혼했고, 그나마 남편의 배려로 상가 하나를 받아서 아들만 돌보며 살수 있었다고 했다. 병원이며 학교에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고, 돌보미도 있으나 모든 고통스 런 과정을 겪는 몫은 오로지 그녀의 것이었다. 특히 배변과 목욕 시중은 날이 갈수록 험악한 전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들에게 폭행당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했다. 먹을 것에 집착하는 아들은 배변도 엄청났고, 절제나 억제를 모르는 생태 그대로의 아들의 힘은, 날이 갈수록 세어져서 이젠 감당하기 힘들다면서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없는 이 이야기를 한 번은 털어놓고 싶었 단다. 대체 무슨 위로나 격려가 필요할 까? 그저 같이 진심으로 울어주고 껴안 고 기도할 뿐이었다. 견딜 힘을 달라고도, 고통을 덜 하게 해달라고도, 아들을 고쳐 달라고도 하지 않고, 다만 이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평온의 시간이 곧 오기를...그 기도외에 대체 무슨 말을 할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동안 그녀를 봉사 현장에서 볼 수 없 었으나 난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었다 . 오로지 함께 어울리며 봉사하는 시간만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 번 안부 문자를 보냈더니, 신문에 날 일을 저지를 까봐 무섭다고 했다. 매일 밤 아들에게, 처방받은 강력한 수면제를 먹이는데 그내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수면제를 먹여 재우지 않으면 밤새 지옥이 되풀이되었고 어느 누구도 그녀의 옆에 있지 않았다. 아들과 어미의 잔혹하고도 슬픈 전투를 그 누구도 몰랐다. 그건 차마 글로 쓸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 그녀가 병원에 있다고 전화가 와서 단숨 에 달려갔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녀는 폭삭 늙어 있었고, 치아가 많이 빠진데다 다리와 팔이 부러져서 꼼짝도 못 하는 상태였다.
간병인을 내보내고 커텐을 친 다음, 그녀는 흐느끼면서 이제 아들은 영구적으로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으로 들어 갔다고 말했다. 아들의 폭행으로 그 지경이 되었 고 의사의 소견으로 아들이 그런 조치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아들은 아마도 약물 치료를 받으며 살게 될텐데, 24시간 내내 잠을 잘 것이라고 하면서 몸부림치며 울었다. 나는 그녀가 기진해서 침대에 누울 때까지 안고 있으면서 한 마디의 기도만 했다. 수없이 되풀이했다.
"이토록 가혹한 시간들을 멈추어 주십시오..."
그녀는 자신이 먼저 죽어서 끝내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살아야 한다고! 살아서 아들의 마지막까지 여밈을 해주고 잘 보내주고 나머지 생을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 이 연을 순연 으로 만들 수 있음을 정말 진정을 다해 말했다. 그녀의 아들의 시간은...
이제 곧 끝날 것이다. 이 세상은 어떤 이에겐 영원한 형벌의 지옥이기도 하다.
(권영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