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7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사울과 다른 아들들은 그렇다 쳐도 그 죽음이 한없이 안타까운 것은 바로 요나단의 죽음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그가 어찌 그리도 허망하게 죽었는지요?
허나 목숨은 주께 달려 있음을 믿사오니 그의 육신은 비록 죽으나 그의 생명은 영원히 주와 함께 함을 믿습니다.
태풍 힌남노로 인하여 아까운 목숨을 잃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 있을 가족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이 죄인 역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에 연연해하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에 마음을 두어 늘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되기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하여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오늘 하루도 넉넉히 살아내는 영적 하루살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창 20:1-18
제목 : 잠시잠깐의 실수나 일탈이 아니라 큰 틀에서 언약적 믿음을 보시는 하나님.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8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라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 나의 묵상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있다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는 것을 본 후에 그랄 땅으로 옮겨가서 거기에 살면서 아내 사라를 또 자기 누이라 하였다.
이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시켜서 사라를 데려다가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하였다.
도대체 사라가 얼마나 예쁘기에 90이 넘은 여자를 아내로 삼고자 데려간단 말인가?
그런데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셔서 경고를 하신다.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인하여 죽을 것인데 이는 그 여자는 남편이 있는 여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아비멜렉이 하나님을 향하여 한 마디 한다.
나는 그 여자와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았는데 의로운 백성도 멸하십니까?
게다가 그 남자가 나에게 이 여자는 자기의 누이라고 하였고 이 여자 또한 그 남자가 자기의 오라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에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행한 것을 내가 알았기에 너를 금하여 범죄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제 그 여인을 그 남자에게 돌려보내라고 하시면서 그 남자는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그러면 네가 살 것이고 돌려보내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한편 아비멜렉이 아침 일찍 모든 종들을 불러서 꿈에 하나님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더니 모든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하였다.
또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네가 왜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이 곳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내 아내의 아름다운 미모로 인하여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내 아내는 진짜로 나의 이복누이이기도 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 아내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가는 곳마다 당신은 나를 당신의 오라비라고 하면 그것이 곧 당신이 내게 베풀 은혜라고 하였노라고 하였다.
이에 아비멜렉은 양과 소 그리고 종들을 아브라함에게 주었고 그의 아내도 그에게 돌려보냈다.
게다가 아브라함에게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취하여 그 땅에 거하라고 하였고 또한 사라에게는 은 1,000개를 네 오라비 곧 네 남편에게 주었으니 그것을 여러 사람이 보았으니 네가 당한 수치를 벗게 하였노라고 하였다.
이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 그리고 여종의 태의 문을 여시고 출산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라의 일로 인하여 아비멜렉에 속한 여인들의 태를 닫으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유명한 인물이라고 해서 미화하거나 비중이 떨어지는 인물이라고 해서 비하하거나 하지 않는다.
단지 각 인물들의 다양한 개성과 그들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따라서 성경은 한 인간이 동시에 갖고 있는 선과 악, 진실과 허상, 용기와 비겁 등의 양면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특히 성경에 그의 행적이 상당한 분량으로 기록된 주요 인물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 여러 사사들, 모세와 다윗 그리고 솔로몬이나 신약의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이 그러하다.
아브라함의 경우, 사실 그의 생애만큼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위대한 품성과 함께 수치스러울 정도로 유약한 양면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오늘 본문 20장은 영광스러운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직계조상이면서 신약을 넘어 오늘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조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에 범했던 신앙의 일시적 일탈과 그로 인해서 드러난 비겁함이나 기만으로부터 파생한 치욕적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이 무슨 이유에서인가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고자 블레셋 땅에서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다가 다시 한 번 24년 전에 애굽 왕 바로에게 당했던 것과 똑같이 자신의 아내 사라를 빼앗길 뻔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 본문에 나타난 블레셋 그랄에서의 아브라함의 실수와 위기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강권적 개입에 의한 구출이라는 사건의 전과정은 그 지역만 다로 다를 뿐 예전의 애굽에서의 사건과 동일한 패턴으로 재발생한 것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실수는 더욱 치명적이고도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예전에 애굽에서의 실수는 소명을 받고 이제 막 가나안으로 이주했던 초기에 발생한 것이었으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블레셋 그랄에서의 실수는 이미 소명을 받은 후 사명자로서의 삶을 24년이나 살아오며 숱한 경험을 쌓은 후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심각성은 더욱 증폭된다.
특히 오늘 본문은 언약의 후손이며 언약의 계승자가 될 이삭의 출생에 대한 확증적인 약속을 받은 이후에 발생한 실수라는 것으로 볼 때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신약성경 로마서 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겨주신다.
이는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여기신 것임을 알 수 있다.
(롬 4:2-3)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무엇보다 잠시 잠깐의 인간적 실수와 일탈행위로 하나님의 언약이 일그러지지 않는다.
이런 실수와 일탈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다.
그래서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께 의로 여겨진 것이다(롬 4:18-22절).
여기서 의로 여겨졌다는 것은 헬라어로 ‘로기조마이’라고 하는데 이는 추정이나 상상이 아니라 사실임을 확증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곧 오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도 언약적인 의로 여김을 받는 것임을 의미한다.
(롬 4:23-24)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우리의 유일한 믿음은 나의 범죄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로기조마이) 하시기 위하여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나는 아브라함의 실수와 일탈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그를 평가하곤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작은 실수와 일탈행위를 보시면서도 큰 틀에서 그를 통하여 그의 자손을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한 언약적 의를 이끌어 가셨음을 알지 못하였다.
물론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조그마한 실수나 일탈도 행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언약적 의는 그런 실수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고 새롭게 주의 신부로 세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할 때 진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이 하루를 주님이 주신 생명으로 언약적 의를 이루며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와 사귐을 나누기를 원한다.
내 평생에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를 것을 믿으며 나를 보호하시는 언약적 의 안에서 영원한 생명수를 마실 것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사람은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로울지라도 순간순간 실수와 일탈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렇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실수와 일탈행위를 낱낱이 다 점수로 매긴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없는 죄인 중의 괴수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러할진대, 오늘 나는 두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하지만 믿음의 실체요 확실한 약속의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은 나로써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보다 더 귀하고 온전한 자임을 믿습니다.
(히 11:39-40)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예수 그리스도)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믿음으로 언약적 의(로기조마이)를 이루어 늘 주님과 연합한 자로 동행하는 자로 세워주소서.
태풍이 진한 상흔을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 주님의 함께하신 은혜의 손길을 보게 하시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따스한 주의 손길로 보듬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