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에 걸쳐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별것 아닌 선의>란 책이었고
14회차에 걸쳐 지정된 단락을 읽고 몇 분이서 단상도 나누었습니다.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올리고 작은 부분이나마 바람재에 공유합니다.
6일차
누가 내 옆구리를 곡괭이로 콱 찍기 전까지는 나는 결코 옆구리를
곡괭이로 찍혔을 때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런 것이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김영승 <처음이자 마지막> <<취객의 꿈 >>,청하, 1988
위의 시에서 말하듯, 타인에게 온전히 공감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상대방이 되는 길뿐이다. 자신의 손과 발에 타인들의 아픔을 못 박은 이의 그 상처처럼 말이다.미자가 현실이 용인해준 시가 아닌 자신이 갈망하던 시를 비로소 쓸 수있게 되는 것은, 이렇듯 스스로 상처받은 타인이 됨으로써였다. 말로만 혹은 글자로만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난간 위에 자기 발로 올라서서, 사람의 벼랑에 스스로 섬으로써.
우리는 성자가 아니며 그 난간에 서기란 너무 어렵다.이창동 감독 또한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카메라를 통해 대상을 올려다본게 아니었을까.미자처럼 직접 난간을 밟고 설 수 없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신은 그저 담아내는 것뿐이라고 전하고 싶은 듯했다. 타인의 삶을 위에서 굽어보며 답을 제시하는 대신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이를 담아내는 것, 세상 누구에게도 감지되지 못한 채 스러져가는 아름답고 선한 영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말하자면 그것은 담아냄의 윤리가 아닐까.살아가면서 내가 하는 일 또한 담아냄의 윤리를 실천하는 다양한 길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별것 아닌 선의> 125쪽~126쪽, 이소영,어크로스
<단상>
몇 년전 만난 진옥씨는 아주 젊어서부터 남편이 죽고 혼자서 아들과 살았다. 외롭고 이프고 쓸쓸한 나날을 살았을 거라고 짐작만 하지만, 그녀가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혼자 살았던 것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녀의 옆구리에 달린 ‘장루’에 대해서, 그녀가 밤에도 잠을 전혀 못 잘 때마다 뜨개질을 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팔고 있는 설거지용 수세미를 보면, 그 것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면 마음이 아렸지만, 할 수 있는 건 수세미 몇 개를 사기도 하고, 사서 내가 다 쓰지 못하면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정도였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커피를 함께 마시고 1회용 믹스 커피를 탈 때, 커피가 녹는 모습을 보며 ‘와! 커피가루들이 좋아라하고 싸르륵 녹는다’며 천진하고 까르르 웃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한 번도 커피가루가 춤추며 녹는다고 생각해 본적 없던 나는 ‘수세미를 파는 여인’으로만 알았을 그녀를 통해 그녀의 삶이 슬프기만 했던 거 아니라고 알게 되었다. 외롭고 이프고 쓸쓸한 것만이 아니라 키우고 있는 물고기와 함께하니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알게 되었다. 소독하고 관리하기가 얼마나 번거롭고 힘들텐데도, 옆구리의 장루와도 친구처럼 수시로 이야기하는 그녀를 어떤 위대한 사람보다도 높이 보게 되었다.그녀를 보고 이야기하던 한 순간을 그대로 가감없이 담았더니 한 편의 시가 되었다.몇 년전엔 화장을 이쁘게 하던 그녀가 이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지만 명랑한 웃음소리와 표정은 여전하여 안심이 된다. 수세미를 사지도 않고 그냥 "진옥씨, 안녕!" 하며 지나쳐도 마음에 걸리지 않는데, 그녀는 아직도 그녀에게 써준 시를 벽에 걸어두고 있다는데...
초록 물고기
햇빛은 짱짱하고,
물고기 덕분에 진옥 씨의 기분은 초록이다
발소리 알아채고 꼬리 흔드는 행렬들
볼펜으로 콕,
찍은 점보다
작은 물고기의 눈짓 손짓 발짓
저렇게 작은 것이
어미를 닮아 조금만 먹어야 하는 게 운명인가
진옥 씨가 기르는 물고기는 명랑하고
여러 해 전 대수술 끝에
옆구리에 찬
진옥씨의 부레 같은 장루
보옹 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명랑한 공기에 밥을 준다
8일차
“넌, 좀 사람을 질리게 하는 데가 있어.”
단짝친구와 이유없이 멀어진 적이 있다.여고생들이 종종 그렇듯 나는 관계에 대해 예민했고, 친구에 대한 집착은 강했지만 그걸 주장할 자신감은 갖지 못했다.불안한 표정으로 언저리를 서성이며 대화를 이어가려던 내게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20여년이 지났는데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왜 그 아이가 질리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다시 질리지 않는 것인지나는 몰랐다.“왜”라는 물음에 친구의 표정은 얼음처럼 단단해질 뿐이었다.난 이해할 수 없었다.다만 내가 그애를 질리게 했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어색해진 웃음과 문어체의 말들은 친구에게 가닿지 못한 채 용수철처럼 튕겨 나왔다.
<별것아닌 선의> 이소영, 어크로스
--147쪽
*단상*
몇 년전이었다.
난 대화를 주고 받다가 무심히 말했다.
“엄마는 이제보니 정말 옹졸한 사람이야.”
엄마의 삶과 관계없는 사람들에게도 표현이나 지적을 하고 싶으면서도 현실에선 그렇게 하질 못해서 내게 사람들에 대한 평가나 기준을 말하곤 했다.
방탕한 사람이나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지, 등등 이런 식의 말이었는데,
그런 말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엄마 신경 쓰지마, 엄마가 그 사람들 부모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그런 사람을 어떻게 고쳐줄 수도 없는데, 하는 마음이 들다가 어느 순간 툭 튀어 나온 말이었다.
엄마의 표정이 얼음처럼 굳어 있는 것을 보니 아차, 싶었다. 너무 많이 나간 말이었다.그 말 이후 대화가 뚝 끊어지고 그 시간 이후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가 먼저 말했다.
옹졸, 옹졸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밥새도록 잠이 오질 않았다 했다. 처음 듣는 말인데 아주 안 좋은 말임은 분명ㅎ 느꼊져서 너무 화가 나고 어떤 뜻인지 이해를 못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어떻게 해서든 옹졸이란 말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해석하고 이해시켜 들여야했다.
짧은 한자 실력이었지만 각종 검색을 통해 “옹졸”이란 단어가 옹기할 때의 옹이고 졸은 가득찼음을 의미한다. 엄마는 엄마의 성숙한 생각이 엄마의 마음 항아리가 가득찼다. 엄마의 지식과 생각이 가득 채운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일 빈 틈이 없는 것이지만, 난 순전히 그 뜻보다 평소의 엄마가 너무나 대인 기질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을 베풀고 살지만 순간적으로 그런 엄마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게 부족함이 화가 낫다고 말했던가. 평소 글을 쓴다고 하면서도 말을 잘 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런 실수를 했다는 등, 세상엔 비슷한 말이 많지만 가장 적합한 단어는 한 단어인데 그 단어를 몰랐다는 등, 엄마, 화장실을 뒷간, 변소라고 하는데 화장실이라 하면 더 좋은 것 같지, 등등 말하다가...
마침내 엄마의 어휘실력을 뽐내는 자릴 만들어드렸다.
엄마는 유창하게 화장실, 뒷깐, 통시, 변소, 똥통, 그짝이란 대명사적인 단어까지 말했다.그쪽이란 뜻의 경상도 사투리, 그짝!
화장실 간다고도 말하기 부끄러울 때 그짝 갔다온다하면 된다는 것.
돌아가신 아버지를 부를 때도 ‘그짝“이라 했다면서 분위기기 풀리고 웃게 되고
바보를 등신, 멍텅구리, 멍청이,라 하면서 10개쯤 말했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 다 기억 못하는 게 보니 아무래도 엄마에게 어휘 실력이 딸리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이해까지는 아니어도 요즘엔 내가 나를 빗대어 대화하다가
“엄마, 내가 참 옹졸한 사람이네.”라고 하면
“어디가, 네가 옹졸한 사람이고! 너만치 늪늪한 사람이 어디 있나?”하신다.
작가처럼 엄마가 옹졸하다는 내 말에 왜 그렇게 얼음공주가 되었는지 이해는 못해도 적어도 그 말에 얽힌 불편함은 해소 하게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11일차
살아 있었다.
설령 세상에 가장 흔한 식물이 토끼풀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내 토끼풀임을 알았다. 하루라도 물 주는 걸 잊거나 창가에 두지 않으면 시무룩해지던,그러다 마음을 써주면 이내 환하게 피어나던 그 식물,이제는 야생풀이 되어 예전의 여릿함은 덜했지만 이파리가 넓적해지고 줄기도 단단해진듯했다. 연약해 보였으나 생명력이 강했던 것이다.
<별것 아닌 선의> 이소영,어크로스,216쪽
12일차
각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캄캄한 데 버려졌다고 낙담했을 날들이 도리어 그들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이었다.당시엔 미처 알지 못했겠지만, 아니 인정할 수 없었겠지만,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당위적인 그리움에 갇힌 채 무협소설 운운하며 애써 마음을 부정하던 그때,둘은 화양연화를 관통 중이었던 거다.어두운 터널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깨닫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 터널이야말로 찬란했음을.그리움에 사로잡혀 뒤돌아보던 우리 머리 위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했었다는 사실을.
이 역시 훗날 또 다른 그리움으로 남을 것임을.
별것 아닌 선의/이소영/ 어크로스
240쪽~241
14일차-따뜻한 무언가 내면에서
우리가 세상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지금 저 모습으로 저 사람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더 많이 만났으면 한다.
그런 사소한 게 무슨 소망이야 할 테지만,
일생동안 품을 바람 중 하나다.
272쪽,<별것 아닌 선의>,이소영,어크로스
첫댓글 저도 이 소영교수의 이 책를 정말 잘 읽었어요. 책을 읽으며 메모하고 책 속에 나오는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느라 분주한 책읽기였답니다.
단상을 쓰시면서 읽으셨으니 더욱 풍부한 책읽기가 되셨겠어요.
안다미로님도 이 책을 읽으셨군요.
이 책내용들이 강물위의 잔잔한 윤슬을 보듯 그런 느낌이었어요.
음악에 대해 무지한 사람인데 이 책을 계기로 음악과 음악에 얽힌 스토리도 찾아보고
해당되는 곡을 듣기도 했답니다..
올려 주신 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사 본지가
꽤 되었네요
르 클레지오의 홍수도 사 놓고오래 방치하고 있네요
나이드니 편안함에만 젖어 드는 것 같아요
열심히 읽고 올려 나누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좋은 책을 혼자서 읽으면 제 마음에만 담아 두게 되지만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요.
책을 더러 사기는 하지만 소설책을 읽지 않은 지 정말 오래 되었습니다.
아, 강명희 소설 『65세』를 읽은 적이 있군요.
독후감 얘기라 이 방으로 옮겼습니다.
아, 독후감 게시판을 생각 못했군요.
퇴근길 지하철 한시간 동안
올려주신글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두어번 더 정독해야 겠습니다
차후에도 이런 좋은글 읽을기회 자주 주시길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물빛 눈동잔ㅁ!
내용이 길어서 조금은 죄송했는데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운데 출퇴근시 옷 따시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셔요.
지하철 출근길 한번더 읽게되네요
감사히읽었습니다 내릴시간 이네요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