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장
절대지존(絶代至尊)의 탄생(誕生)
기영천은 두 손으로 전문을 밀기 시작했다.
쿠―루―릉―
요란한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하는 육중한 전문,
풍진일선은 기영천의 대담한 행동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 정녕 일세를 풍미할 기협이로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활짝 열린 전문을 통해 살벌한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왔다.
기영천은 우뚝 버티고 선 채 앞으로 뚫어져라 응시했다.
웅대한 대전을 등진 반원형으로 나열해 선 일대마두들,
그들은 기영천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대(前代) 일성(一省)을 독패(獨覇)했던 광세마두들!
그들은 광마수라생 기영천의 전시에서 풍기는 태산같은 위압감과 기도(氣度)에 억눌림을 배제할 수가 없었다.
"…"
기영천은 눈가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미소,
아!
기영천이 피의 도륙을 자행할 때 띠었던 그런 미소였다.
이내,
기영천의 입에서 나직하면서도 위압감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대들은 마승통천회의 마지막 인물들인가?"
억양없이 내뱉은 음성,
듣은 이로 하여금 부담감을 지니지 않게 하면서도 굴복시키는, 말하자면 기(氣)가 내포된 음성이었다.
일순―
섬전살수가 차가우면서도 까마귀가 우짖는 듯한 냉성을 토했다.
"광마수라생! 네놈의 무공이 어떠한지 시험해 보겠다."
섬전살수의 냉성이 끝나는 순간,
번―쩍!
차가운 검광이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후훗! 무모한 행동을 하는군."
기영천이 냉소를 흘리며 비검을 뽑았다.
아니, 뽑는가 했는데…
휘스스스 사사사삭!
심혼을 앗아갈 듯한 파공성이 허공을 어지럽게 뒤흔들었다.
살수(殺手)라는 일명을 얻을 정도로 쾌검을 구사하여 기영천에게 짓쳐가던 섬전살수의 신형이 중간에서 멈칫하더니 한 차례 부르르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부릅떠진 두 눈에서는 경악, 불신, 그리고 의혹에 가득찬 사영(死影)이 어른거렸다.
"으으으으… 방금 네 놈이 전개한 일검은?"
기영천은 언제 비검을 뽑았었냐는 듯,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후훗… 검강(劍剛)!"
그 말에 섬전살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으으으으… 과연… 허전은 아니었구나."
섬전살수는 모로 곱게 쓰러졌다.
그의 삼백육십 군데 혈도에서 피화살이 쭉 뻗쳤다.
일순,
"하―앗!"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있던 염왕광승이 일성 기합을 토하며 오 장 허공으로 그림자처럼 떠올랐다.
허공에서 정좌를 하는 염왕광승,
그의 전신에서는 핏빛 광채가 뻗치며,
가슴 위에 모은 쌍장에서 아홉 개의 혈불(血佛)이 뻗쳤다.
우우우우웅!
아!
소림의 실전된 연대구불.
신부절예의 위력을 지닌 불공(佛功)이 염왕광승에 의해서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기영천은 흠칫하며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연대구불! 그렇다면… 수라멸천신공을 펼쳐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굳힌 기영천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쩌쩌쩌쩡!
전신에서 시꺼먼 운무가 잔뜩 피어 오르더니 아홉 개의 환무(環霧)를 형성하며 앞으로 뻗쳤다.
쿠―꽈꽈꽈꽈꽝―
천붕지괴할 굉음,
뒤따라 이어지는 처절한 비명,
"크아악!"
쿵!
허공에 떠 있던 염왕광승이 십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는데 순식간에 몸이 재로 변하는 것이었다.
실로,
절륜가공할 광세마공(曠世魔功)인 수라멸천신공이었다.
나머지 대마들은 기가 질려 엉거주춤거렸다.
기영천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대들이 모두 황천으로 가야만 회주가 나올 것인가?"
이에,
십여 명의 대마들이 일제히 폭갈을 토하며 덮쳐 들었다.
"제공멸사!"
"이혼―대천―수!"
"잔마―구림지!"
각자 지닌 최고의 절예를 펼치는 것이었다.
우우우웅!
찌러러러―러러러―렁!
흑, 백, 혈기(血氣)가 요동치며 허공을 빽빽이 메웠다.
가히,
천지를 멸할 것만 같은 강맹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일순,
기영천의 입에서 차가운 여러 마디의 폭성이 터졌다.
"광열적양! 비폭천리! 잔독냉혼!"
꽈―르르르―르르―르릉!
꽈과꽈꽈꽈꽝!
주위의 저각들이 폭삭 가라앉고 괴멸되었다.
태양의 빛이 소멸되었고,
암흑천지가 되었다.
돌먼지가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거센 진동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아!
고깃덩어리가 되어 널부러진 대마들…
광마수라생 기영천의 연수삼장에 모두 무참히 짓뭉개진 시체롤 변한 것이다.
항마불사신(降魔不死神)!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
기영천을 두고 하는 존어(尊語)가 아니면 그 무엇이겠는가?
기영천,
그는 저무는 잔양(殘陽)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직이 뇌까렸다.
"회주… 저 태양이 저물기 전에 끝을 보아야 하지 않겠소? 어둠은 매우 싫은 존재이니 말이오."
기영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동공에 풍진일선이 들어왔다.
"풍진일선… 피곤하오."
"예…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기영천은 갑자기 눈 앞이 흐릿해짐을 느꼈다.
마지막…
종(終)―
이 순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던 그,
이제…
기영천은 절대지존이 되기 위한 알전을 치루어야만 한다.
그 때,
"광마수라생… 본 회주는 감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회주의 천리회음이 들려왔다.
기영천은 대전 입구를 응시했다.
"회주, 그대의 원대한 꿈은 깨어졌소."
"그럴지도 모른다… 하나, 광마수라생, 그대가 죽어 준다면 한 가닥 희망을 지닐 수 있다."
"후훗… 저기… 불타오르고 있는 천혈마성의 빛은 이미… 쓰러져 간다는 것을 알고 있소?"
"아니다. 천혈마성은 영원하다."
"…"
기영천은 서쪽 창공을 붉게 물들이며 타오르는 천혈마성을 바라보았다.
저주의 마성(魔星).
이내,
기영천은 대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풍진일선이 뒤에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기주님, 함정일지도…"
하나,
기영천은 대전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전,
수백의 천하 개세마두들이 마도천하통일(魔道天下統一)을 꿈꾸던 곳,
하나,
그 마두들은 모두 저승의 심판을 받으러 떠났고,
덩그런히 빈 채 음산한 공기만 흐르고 있었다.
뚜벅… 뚜… 벅…
기영천은 마치 자신의 집을 들어가듯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은은히 대전을 메아리쳤다.
마치 사신(死神)의 괴소(怪笑)처럼…
기영천은 중앙에서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회주, 열굴 좀 봅시다!"
"…"
그러나 누구의 답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정적!
그 자체가 소리없이 대답할 뿐,
기영천의 두 눈에 엷은 웃음이 어렸다.
순간,
"아―우―우―우―우―우―"
또 다시 마극파천혈후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르―릉―
꽝!
거대한 대전이 지진을 만난 듯 요동치더니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우르릉… 꽝…
대전은 벽부터 허물어지면서 천장이 내려앉았다.
하나,
박살난 천장의 암석은 기영천의 전신 일 장 밖에서 퉁겨 나갔다.
수라멸천신공(修羅滅天神功)이 강기로 변해 감싸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그 거대한 대전은 뜻밖에도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푸석푸석한 먼지만 남고…
아―
무저혈봉의 정상에 자리잡았던 천혈마성의 대전은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기영천은 이제 입을 굳게 다문 채 석상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흑의중년인이 소리없이 나타나 있었다.
첫 대면,
천 년 전, 이미 예언된 그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대가 참혼령기주인가?"
기영천이 담담히 되물었다.
"당신이 회주요?"
그리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서편 하늘의 천혈마성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광마수라생 기영천, 그리고…
멸겁지존,
그들은 지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삷이냐, 죽음이냐?
그들에게는 수백 초, 수천 초의 긴 혈전을 필요치 않았다.
단,
한 번의 신부절공을 교환하면 둘 중 하나는 죽는다.
그렇기에 혼신의 전력이 필요했다.
"광마수라생, 노부 나이 삼백오십 살이다. 너와의 대결은 매우 부끄러운 사실이다."
"하나 그 누구도 등을 돌릴 수 없는 운명! 펼쳐라. 받아주겠다."
멸겁지존은 쌍장을 천천히 가슴 위로 치켜올렸다.
그의 눈빛은 공허하기만 했다.
기영천은 멸겁지존의 열 손가락이 가늘게 떨림을 보았다.
"멸겁지존, 그대는 칠선녀의 무공을 견식해 보았소?"
일순,
멸겁지존의 두 눈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럼 네놈이 칠선녀의 무공을?…"
"후훗… 그렇소."
일순,
파라라―라라라―랑!
기영천의 전신으로 자색 기류가 은은히 흘렀고,
두 눈에서 묵광이 눈부시게 발산되었다.
바로 그 때,
"천―혈―마―성의―저주 마기(魔氣)여!―나 멸겁지존에게―백팔수라마혼기를 불어 넣어 주시오!"
멸겁지존이 부르르 떨며 악령의 광성(狂聲)을 토했다.
다음 순간,
츠―츠―츠―번―쩍!
쉐―쉐쉐―츠―아앙!
멸겁지존의 몸이 혈무덩어리로 변하는가 했는데,
천지를 핏빛으로 물들였고…
자광, 혈기(血氣), 묵광십지(墨光十指)가 허공을 갈랐다.
아!―
천지광마통천록의 세가지 기공,
멸겁진천쇄혼장―
혈루무정살지―
제혼우멸무위신공―
그 모든 기공이 한꺼번에 천지개벽할 듯한 기세로 펼쳐진 것이다.
일순간,
"칠선녀파천합진혼돈류!"
기영천의 입에서 폭갈이 터졌다.
번―쩍! 파츠츠―츠츠―츠츠―츠츳!
섬전같은 오색광망이 심혼말살(心魂抹殺)의 파공성을 내며 자광을 감싸고…
쿠―쿠쿠―쿠―쿵!
용틀임하듯 담황색 기류가 뻗쳐 혈기를 집어 삼켰으며,
수천 수만 줄기의 노을빛 광채에 섞여 수십여 장 방원 내를 포획한 안개가 밀려갔다.
동시에,
꾸꽈꽈꽈―꽈꽈꽈―꽝!―
파―팟! 파파파팟!
하늘(天)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굉음이 오랫동안 진동했다.
하늘 끝까지 치달아 올랐던 황사가 바람결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영천,
그는 입가에 가느다란 피를 흘리고 서 있었다.
그의 두 다리는 무릎까지 땅에 깊숙이 박혔고 안색은 파리했다.
두 눈의 초점이 흐트러졌다.
멸겁지존,
그는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눈빛,
차라리 독사의 눈이라고나 할까?
증오와 저주에 찬 눈빛!
그리고,
경악과 의혹, 불신에 휩싸였다.
"광… 마… 수라… 생, 펼쳤던 그 절공은?…"
기영천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칠선녀의 모든 무공을 하나로 합친 칠선녀파천합진혼돈류!"
"으으으으… 과연, 개세적이었다. 그리고, 너는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대… 지… 존이다."
쿠―웅!
멸겁지존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그의 몸은 서서히 재로 변해갔다.
기영천!
그를 절대지존이라 칭하며…
스스스…
그제야,
한 줌의 재는 바람결에 흩어졌다.
아!…
이 흩날리는 재가 그 무시무시한 멸겁지존의 사후 흔적이란 말인가?
무상(無常),
기영천은 저 멀리 스러져가는 천혈마성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멸겁지존, 다시 태어난다면 … 다시는 지금과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너무나도 허무하지… 않소?"
천혈마성은 완전히 빛을 잃었고, 십오야 둥근달(滿月)이 기영천의 어깨에 월광(月光)을 잔잔히 뿌려주고 있을 뿐…
이제 모든 것은 끝나 버렸다.
천혈마성의 사기(邪氣)를 안고 마도천하통일(魔道天下統一)을 꿈꾸던 멸겁지존(滅劫至尊)의 죽음과 더불어 고금미증유의 대혈전(大血戰)은 막을 내렸다.
아!…
광마수라생 기영천,
참혼령기주(斬魂令旗主) 기영천,
그는 마도의 천 년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강호(江湖)는 영원한 정토(正土)로써 번성(繁盛)하리라.
영원히,
(멸겁지존!… 그대의 죽음과 더불어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소.)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려는가?
그 때,
"아버지…"
한 어린아이의 낭랑한 외침이 들려왔다.
기영천의 굳었던 얼굴이 스르르 풀어지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
열 명의 절세미녀가 춘풍(春風)에 꽃잎이 날리듯 달려오고 있었다.
한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기영천은 활짝 웃었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껏 웃는 웃음이었다.
얼마 후 열 명의 미녀가 그의 면전에 내려섰다.
어린아이가 여인의 품을 떠나 기영천에게 매달렸다.
기영천은 어린아이를 번쩍 안아 들며 기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소군. 엄마 말 잘 들었느냐?"
아!
그녀들은 칠선녀, 화설경, 몽화란, 운설애였다.
소군은 그의 품에 안기며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엄마하고 아줌마들 말 잘 들었어요. 한데…"
기영천은 빙그레 웃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
"한데, 무엇이냐?"
소군은 더욱 바짝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엄마하고 아줌마들은 아버지 말을 안 들었어요!"
"호오… 무엇이냐?"
소군은 커다란 비밀을 털어놓듯 신중하게 속삭였다.
"엄마랑 아줌마들은 지금까지 식사 한 번 안했어요."
그리고 소군은 힐끗 열 명의 미녀들을 훔쳐보았다.
마치 이제 아버지에게 혼날 거라는 듯…
기영천은 얼굴을 활짝 피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그럼 혼나야지?"
열 명의 미녀들은 소리없이 웃으며 행복에 찬 시선으로 그를 주시했다.
기영천은 두 팔로 소군을 번쩍 쳐들고 낭랑하게 외쳤다.
"소군아,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제 너희 세대부터는 천한(天恨)의 슬픔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영원히 말이다!"
아!…
그것은 바로 정도무림의 밝은 앞날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
"지존…"
"오… 지존!"
어느새 수천, 수만의 무림인이 나타나 무릎을 꿇으며 격동에 찬 외침을 토했다.
하나 그들은,
오… 지존!
이란 단어 외에는 더 이상 생각나는 말이 없는 듯 그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기영천은 소군을 품에 안으며 천공을 우러러 보았다.
은빛 찬란한 월광(月光)이 무저혈봉을 따사로이 비추고 있었다.
기영천은 월광을 바라보며 내심 외쳤다.
(소군아, 내 아들아, 너만은 내 전철을 밟게 하지 않으리라. 내 어린시절의 고통을…)
소군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욕(世慾)을 씻는 듯 맑은 웃음을 머금고…
<완결>
첫댓글 그동안 잘 보았습니다. 감사.
연재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즐독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