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5章 세 번째의 관상(觀相)
①
유성장원에 들고 한 달 지났을 때.
사흘 후면 원단(元旦)이 되는데, 하운비는 침식을 잊고 무공 연마
에 몰두했다. 그는 이 날이 그의 아버지가 역적 모의를 쓰고 죽은
날인지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안개.
"후우!"
하운비는 안개를 아주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 안개보다도 흰 백령무(白
靈霧)가 고리 모양으로 떠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원정지
기(元精之氣)가 유형화된 모습이었다.
하운비는 숨을 오랫동안 참으며 십이주천(十二周天) 운기조식(運
氣調息)을 했다.
그가 운기행공을 마쳤을 때, 소칠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허리
숙이며 말했다.
"수부(水府)로 가라는 영주의 명이 내렸소!"
"수부라니?"
"훗훗… 따라오시오! 흥미 있는 것을 볼 것이외다!"
소칠은 하운비를 정중히 안내했다.
수부(水府), 급류의 물을 볼 수 있는 동굴(洞窟)이 수부였다.
동굴 끝에는 철정(鐵釘)이 하나 박혀 있었다. 쇠못에는 천잠사(天
蠶絲)가 묶여 있었다. 천잠사는 물 속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천잠사 끝, 사람 하나가 묶여 급류 위를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그는 배에 단도(短刀) 하나를 꽂고 있었다.
"웨에엑……!"
그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떠들어 대며 물 속을 돌아다녔다. 그는
죽을 정도로 다친 상태인데, 수공(水功) 하나만은 능수능란했다.
모태랑(毛太郞).
그는 왜국(倭國) 제일수공사(第一水功士)였다.
나이 칠십, 일흔두 명의 손자와 더불어 살고 있다가 중원에 삼보
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금릉으로 왔다가 이런 꼴이 된 것이다.
하운비는 손에 쪽지 한 장을 쥐고 동굴 끝에 있었다.
<모태랑의 수공을 배워라! 그의 수공은 천하제일이다!
다 배운 다음, 수장(水葬)시켜라.>
신비영주가 명한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모태랑은 천잠사에 꿰어 수공의 사부(師父) 노릇을 하게 된 것이
다.
"훗훗… 그다운 짓이다!"
하운비는 그리 놀라지도 않고 모태랑이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것을
구경했다. 차가운 눈빛으로…….
모태랑(毛太郞)은 생존(生存)하기 위해 계속 헤엄쳤다.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수단은 오직 수영밖에 없었다.
"이 돼지 같은 떼놈들!"
그는 자기네 말로 욕설을 해 댔다.
그의 팔다리는 아주 능수능란히 움직였다
우르르릉- 꽝-!
장강(長江)의 지류(支流)에서 흘러드는 거센 물보라는 그에게 밧
줄이 되어 달라붙곤 했다.
하나, 모태랑은 악을 쓰며 물 위로 솟아올랐다. 그는 배에 단도
하나를 꽂고도 물 한 모금 먹지 않았다.
"떼놈들! 살아나면 다 죽여 버린다. 으드득!"
그는 은발(銀髮)을 휘날리며 헤엄쳐 나갔다.
쏴아아… 쏴아……!
물은 그를 거침없이 유린했다.
삶에 있어 꼭 필요한 물(水). 하나, 모태랑에게 물은 지옥(地獄)
이었다.
그는 물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②
부사수성자(富士水聖者).
그의 고향 부사산(富士山)에 가면 모태랑이라는 이름 대신 부사수
성자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른다. 하나, 지금 모태랑의 꼴은 다리
가 잘려 물에 빠진 늙은 자라에 불과했다.
하운비는 천잠사를 쥐고 있었다. 그는 간간이 천잠사를 잡아당겼
다.
핑-!
천잠사가 팽팽해지며 모태랑의 몸이 물 속으로 쑥 들어간다.
"웨엑!"
모태랑은 발악을 해 대며 물 위로 기어올랐다.
하운비는 그의 동작을 살피다가 다시 줄을 낚아챘다.
핑- 핑-!
월척어(越尺魚)를 문 낚싯줄이 이러할까? 모태랑은 줄에 묶인 고
기 꼴이었다.
"제… 제발 살려 다오. 나의 손녀딸을 모두 주마. 시집간 아이라
도 데려다가 너의 첩으로 주겠다!"
모태랑은 울며 하소연했다. 그의 두 손 두 발은 여전히 물을 갈랐
고.
"훗훗……!"
하운비는 웃으며 줄을 교묘히 조종했다.
모태랑은 다시 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천잠사가 당기는 힘을
이기며 물 위로 나서기 위해, 있는 수공(水功) 재간을 모두 다 발
휘했다.
하운비는 그것을 유심히 살펴봤다.
하루가 지났다. 모태랑은 거의 다 죽게 되었다. 출혈(出血)이 심
하기 때문이지, 수공이 딸려서는 아니었다.
한순간.
"입을 벌려라!"
하운비가 처음으로 일어(日語)로 말했다.
"어엇? 우리나라 말을 알다니?"
모태랑이 입을 딱 벌릴 때.
핑-!
하운비의 손가락이 퉁겨지며 보혈청심단(補血淸心丹) 한 알이 모
태랑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모태랑은 그것을 먹고 어느 정도 기력을 찾을 수 있었다.
"헉헉… 말을 아는데, 왜 이제껏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
모태랑은 물살을 이겨 가며 하운비에게 물었다.
"훗훗……!"
하운비는 나직이 웃을 뿐이었다.
"지독한 놈! 내게 몸을 바친 다음, 암산한 한란(寒蘭)이라는 기생
보다도 더욱 지독한 놈이 네놈이다! 오라질 놈!"
모태랑은 다시 욕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생존의 욕구를 잃은 후였다. 그는 살기 위해 헤
엄치지 않았다. 다만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을 듣기 싫어 헤엄치
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하루.
모태랑은 아무 말 않고 수공을 보이다가 문득 물에 정지했다.
"멍청한 놈! 백 년 간 나를 조롱한다 해도 수공을 배우지 못한
다!"
"흠, 무슨 말이오? 나는 벌써 백오십 가지의 재간을 배웠는데?"
하운비가 말하자.
"흐흐… 그 정도라면 굳이 모태랑에게 배우지 않아도 된다!"
"으음……!"
"네가 본 것은 시시한 어부(漁夫)라도 다 하는 물재간이다. 진짜
재간은… 흐흐,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모태랑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두 발만을 놀려 떠 있는 것이었
다.
꽈르르릉- 꽝-!
수부(水府)로 흘러드는 물살이 아무리 급해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
다.
"훗훗… 이것이 바로 진짜 재간이다. 일컬어 수룡잠형수공(水龍潛
形水功)이라는 것이다!"
모태랑은 어깨를 으쓱였다.
'골치 아픈데? 그것을 배우려면 봐서는 아니 되고, 잡아 캐물어야
하지 않는가?'
하운비가 자신에게 물을 때.
"훗훗… 이 절기는 천하에서 나와 또 한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
다!"
"……!"
"그는 중원수왕(中原水王)이요, 천하수절(天下水絶)이지. 훗훗,
그는 건곤오절(乾坤五絶)의 하나이지!"
"흠……!"
"훗훗… 노부가 중원 땅에 온 이유는 두 가지다. 삼보를 찾는 것
이 하나이고, 수절(水絶)을 찾아 수공을 비교해 보는 것이 또 하
나다!"
모태랑은 하운비를 아주 유심히 바라봤다.
사실, 며칠 간 관찰한 사람은 하운비가 아니었다. 관찰한 사람은
모태랑이었던 것이다.
"너는 천하제일근골(天下第一筋骨)을 가졌다!"
"……."
"너는 어떠한 상승절기라도 쉽게 익힐 수 있다. 훗훗, 내게 한 가
지만 약속하면 심장이라도 토해서 전하겠다!"
"수공절기를 전수하겠단 말이오?"
하운비의 왜국어는 아주 유려했다.
"훗훗… 그야 물론이다!"
모태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서 있는 곳의 물 깊이는 열 길 이상이다. 하나, 얼핏 보면
무릎까지 찰 정도로 얕게 보인다.
③
모태랑은 모래밭에 발을 찔러 넣고 서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가
히 수신(水神)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었다.
"약속해 다오. 수절을 찾아 수공을 비교해 준다고. 그의 수공이
뛰어난가, 노부의 수공이 뛰어난가 인증해 보겠다고!"
"……."
"약속하면 모든 것을 전하겠다. 수공은 물론, 왜국 비전 인자술
(忍者術)까지도!"
"글쎄……!"
"글쎄라고?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냉막한 놈이군!"
"훗훗… 나의 목숨은 내 것이 아니오. 한 사람이 나의 목숨을 맡
아 갖고 있소. 그의 허락이 있어야 나는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
오!"
"으으음, 허깨비 같은 놈!"
모태랑은 화를 내며 물 속으로 쑥 들어갔다.
"흥, 자결할 수 없다!"
하운비는 얼른 줄을 잡아당겼다.
핑- 핑-!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요동을 치는 줄.
하나, 모태랑은 끌려 나오지 않았다.
'고래라도 줄에 걸린 듯하다. 이렇게 무겁다니……!'
하운비는 천잠사를 더 세게 잡아당겼다.
하나, 모태랑은 물 밖으로 끌려 나오지 않았다.
우르르릉-!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운비의 힘을 이겨 내는 것은 바로
그 소용돌이였다. 모태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끄는 힘을 분쇄시
키고 있는 것이었다.
하운비도 보통 고집은 아니었다. 그는 손이 베어져 피가 나는 것
도 간과하며 줄을 잡아당겼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내공을 십이 성(成)으로 끌어올리려 하는데,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모태랑을 터져 죽게 하고 싶으냐? 어서 놔라!"
"영주……!"
하운비는 얼른 말하며 줄을 놓아 주었다.
피이이잉-!
천잠사는 풀릴 때까지 풀렸고… 소용돌이는 그 끝, 줄과 수면이
닿는 곳에 만들어졌다.
"마영, 모태랑의 조건에 수긍한 다음 그에게서 수공과 인자술을
배워라! 그 말을 하기 위해 직접 온 것이다."
신비영주는 지난 며칠 간 숨어 지켜본 듯했다. 하운비는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라면 하겠소!"
하운비는 보이지 않는 신비영주에게 말한 다음,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술이 벌어지며 사자후(獅子吼)가 토해졌다.
"모태랑, 조건 응낙이다. 그러니, 나와라!"
우르르릉-!
그의 목소리로 인해 물보라가 더욱 심해졌다. 한순간.
쏴아아……!
소용돌이가 갈라지며 모태랑의 백두(白頭)가 나타났다. 그의 얼굴
은 아주 희었다. 꽤 오랫동안 물 속에 있었는데도 숨이 차지 않은
듯.
"헤헤… 진작 그럴 일이지! 하여간 너는 운이 좋은 놈이다. 노부
의 수법을 배우면, 목숨이 세 배는 질겨질 테니까!"
그는 득의만만해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수룡잠형수공(水龍潛形水功).
그 비결은 놀랍게도 피부호흡(皮膚呼吸)에 있었다. 모태랑이 물에
서 한 달 넘게 살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운비는 그것을 자세하게 전수받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그가 배운 것.
인자술(忍者術).
그것은 신비영주가 그에게 전수해 준 살수십절공(煞手十絶功)에
뒤지지 않는 자객의 술법이었다.
소리 없이 걷는 법,
소리 없이 칼을 던지는 법,
오랫동안 숨어 기다리는 법,
죽여야 할 자의 경각심을 일으키지 않고 다가가는 법,
살인한 다음 몸을 빼내는 법,
암기를 만드는 방법…….
모태랑의 작은 머리에 그렇게 많은 재간이 들어 있을 줄이야.
모든 것은 왜국의 말로 전수되었다. 신비영주는 듣고 있다 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④
닷새 후, 모태랑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전했다. 그는 몹시 기쁜
표정이 되어 처음으로 한어(漢語)로 말했다.
"네 이름이 뭐냐?"
"마… 영(魔影)!"
"마의 그림자라… 훗훗, 너의 관상은 아주 훌륭하다. 너는 세 가
지 상(相)을 타고났다!"
"……."
"하나는 천인살(天刃殺)이다. 그것은 초년 고생이 심하다는 것이
다. 몇 차례 죽을 고비가 있다는 상이기도 하다!"
"흠, 그럴 듯하오!"
"훗훗… 둘째는 도화살(桃花煞)이다. 너는 항상 계집을 조심해야
한다."
"훗훗……!"
하운비도 따라 웃었다.
"셋째는 꽤 흥미 있는 것이다! 궁금하지 않느냐,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되오!"
"훗훗… 너는 정말 비정하고 잔혹하구나. 하나, 네게 호감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죽더라도 말하지 않을 비결을 네게 전
한 이유는, 너의 세 번째 관상 때문이다!"
모태랑은 꽤나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동해(東海) 너머 야만국 왜국의 기인(奇人), 그가 본 천기(天機)
는 무엇인가?
그가 본 세 번째의 상(相)은 무엇이란 말인가?
"네게는… 천존지상(天尊之相)이 있다!"
"천(天)의 존(尊)?"
"그렇다. 너는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고로, 너의 사부는 천존
사부(天尊師父)가 되는 것이다. 훗훗, 노부는 너의 장래를 알기에
네게 모든 것을 심어 준 것이다. 물론, 네가 빚을 잊지 않을 놈이
라는 것을 안다는 것도 중대한 이유의 하나이지!"
모태랑은 몹시 지친 표정이었다.
하운비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정(情)이라는 것, 그가 끊은 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모태랑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와 보낸 며칠이 가장 즐거웠다. 사실, 노부의 재간을 터득할
만한 초기재(超奇才)를 만났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흠……!"
"네가 건곤오절(乾坤五絶) 중 수절을 죽여 주기 바란다. 그는…
동정호(洞庭湖) 와룡도(臥龍島)에 숨어 있다!"
그의 말이 거기에 이를 때.
핑-!
파공성과 함께 허공을 가르는 비도(飛刀). 비도는 한 줄기 작살이
되어 그대로 모태랑의 두개골을 관통해 들어갔다.
퍽-!
모태랑의 두개골에 큰 구멍이 났다.
"……!"
모태랑은 눈을 부릅뜬 채 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누… 누가 모태랑을 죽였느냐?"
하운비가 돌아설 때, 또 한 자루의 비도가 날아들어 천잠사를 끊
었다.
팍-!
천잠사가 끊기며 모태랑의 시신은 물살따라 멀리 흘러갔다. 그의
몸은 장강과 통하는 수동(水洞)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모습이 사라질 때, 신비영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게 배울 것은 딱 하나였다."
"으으, 그… 그대가 죽였군."
"후후… 그에게 배울 것은 바로 수절의 거처뿐이었다. 다른 것은
배울 필요조차 없는 시시한 것이었지."
신비영주는 휘어진 곳에 있었다.
하운비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나, 그의 숨소리만은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외에 느껴지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향(香)… 그윽한 향기가 신비영주 있는 곳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
다.
"모태랑은 수절의 거처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를 잡은 이
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는 말하며 멀어져 갔다.
"마영, 너는 운이 좋은 놈이다. 후후……!"
신비영주는 거칠게 말하며 진짜 사라졌다. 하운비는 조금 허탈감
을 느꼈다.
⑤
- 목숨을 팔아라!
신비영주가 오래 전에 한 말이 뇌리에 가득 찼다.
'판 이상, 값을 치루겠다. 하나, 언제고 되사서… 빠드득! 모든
것을 배로 갚아 줄 것이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걸음을 옮겼다.
아침, 하운비는 이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석옥 안에서 아침
을 맞이했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석문이 저절로 열리며 신비영주의 목
소리가 들렸다.
"너는 운이 좋았다. 자아, 받아라. 네게 주는 선물이다."
툭-!
붉은 덩어리 하나가 하운비 발 아래 떨어졌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이… 이것은?"
하운비는 핏덩어리를 보고 크게 놀랐다.
간(肝), 피가 질퍽한 덩어리 간이 발 아래 있기 때문이었다.
"먹어라!"
신비영주가 차게 명했다.
"먹으라니?"
"먹어라, 영약이 될 것이다."
"으음, 설마… 사람의 간은 아닐 테지?"
"왜 아니겠느냐?"
"그럼 사람의 간이란 말이오?"
"그렇다, 이 주인의 간이다. 내가 뺐다."
팍-!
문 밖에서 책자 한 권이 날아들었다.
<빙백강기보록(氷魄 氣寶錄)>
고색창연한 비급! 그것은 장백파(長白派)의 진산비급(鎭山秘 )이
었다.
"빙수사(氷秀士)의 간(肝)과 비급이다. 그의 간을 취한 이유는,
그의 간에 그가 오십 년 익힌 빙백강기(氷白 氣)의 원정(元精)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으으음, 그럼… 내게 전수한 수법 중 하나인 귀인취령(鬼人取靈)
의 사술(邪術)을 쓴 것이구려?"
"그렇다."
말과 함께, 석문이 아주 큰소리를 내며 닫혔다.
하운비는 고독 속에 빠져들었다. 그는 빙수사라는 사람을 몰랐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중원사기(中原四奇) 이후의 후기지수(後起之秀)이고, 천하십
대고수(天下十大高手) 중 하나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그의 간이 발 아래 있는 것이다.
"으드득! 하라면 하마!"
하운비는 이를 갈며 간 덩어리를 집었다. 직후, 그는 간을 입에
틀어박고 소리내어 씹었다.
"으적으적……!"
그것은 뜨겁고 비렸다. 하나, 뱃속에 들어가서는 실로 지독한 한
기(寒氣)를 일으켜 하운비의 오장육부를 꽁꽁 얼리는 것이 아닌
가?
⑥
아름다운 뜨락이다. 꽃이 계절을 잊고 뜨락을 뒤덮고 있었다.
꽃밭 가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의 손에
는 섭선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백종마경(百種魔經)을 연무하며 살 때 가장 그리웠던 것은, 바로
꽃 내음이었다. 물론 한 잔의 차도 그리웠다."
그가 중얼거릴 때.
"맹주(盟主)시여, 제가 왔습니다!"
청수하게 생긴 노인이 의자 뒤쪽으로 다가섰다.
"핫핫… 마군사(魔軍師)! 일은 어찌 되어 가고 있소? 아직도 내가
출도(出道)할 때가 아니란 말은 제발 말고!"
앉아 있는 사람은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섭선이 얼굴을 가려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유감이었다.
"속하, 사공명(邪孔明)! 드디어 세 가지 계략을 이룩했습니다!"
노인은 넙죽 절을 했다.
사공명, 그는 무림의 여우라고 불린 바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
타가 공인하는 천상천하고금제일지(天上天下古今第一智)였다.
그의 머릿속은 천하에서 가장 복잡한 동굴보다도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을 것이다.
"부운신의(浮雲神醫)를 찾을 방도가 그 첫째입니다!"
"그는 떠돌아다니는 구름(雲)이라, 잡지 못한다고 군사가 말하지
않았소?"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말해 보오!"
"그를 위한 덫이 나타났습니다!"
"덫?"
"예에!"
"……!"
"과거 그와 절친하던 사람 하나가 있다는 것을 개방에 잠입한 첩
자의 입을 통해 알아 냈습니다!"
"……!"
"그는 무이초옹(武夷樵翁)이라 합니다. 그가 쓰러지면, 천하가 무
너져도 나타나지 않을 부운신의라도 모습을 나타낼 것입니다!"
사공명은 자신의 계략을 소상히 이야기했다.
젊은 맹주, 그는 마마대총 앞에서 복수를 맹세한 마마대공(魔魔大
公)이었다. 그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윗사람으로 명하지 않고 아랫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그
것이 바로 그의 대단한 장점이었다.
사공명의 말이 계속되었다.
"둘째 계략은 새석숭(賽石崇)을 포섭하는 일입니다."
"흠, 황금 억만 냥이 걸린 일이지. 그 일은……?"
마마대공은 담담히 말했다.
"후후… 그는 구리돈 한 닢에도 벌벌 떠는 수전귀(守錢鬼)이나,
한 가지에 있어서는 천만금(千萬金)을 아끼지 않습니다!"
"……!"
"바로 그의 딸, 화혼(花魂)입니다. 훗훗, 그 아이를 잡으면 새석
숭은 자연히 맹주 밑에 올 것입니다."
"다 알아서 처리하시오!"
마마대공은 빙그레 웃었다. 사공명도 따라 웃었다.
이심(以心), 그리고 전심(傳心)!
무엇이 통하는지 모르나, 서로를 아는 듯했다.
"셋째는 제일 묘법(妙法)입니다!"
"무엇이오?"
"환룡(幻龍)을 잡는 그물을 만들었습니다!"
"무엇이오?"
"보시겠습니까?"
"좋으실 대로!"
"속하를 따라오시지요."
"핫핫… 재미있는 일이 있는가 보오!"
마마대공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얼굴, 그것은 마종사(魔宗師)의 얼굴답지 않게 섬세(纖細)하
고 온화했다.
마(魔)를 넘은 마(魔)!
그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⑦
고풍(古風)스러운 방 안.
동경(銅鏡) 하나가 걸려 있다. 거울은 아주 거대했다. 거울 표면
은 아주 매끄러웠다. 그 위에는 모든 것이 다 비쳐 보이고 있었
다.
그 가운데, 입술이 새빨갛고 코가 오똑한 미녀의 얼굴이 있었다.
특히 눈썹이 아름다운 여인은 눈을 감고 있었다.
여인의 뒤쪽, 사공명과 미장부(美丈夫) 한 명이 서 있었다.
"어떻습니까?"
"흠, 마서시(魔西施)를 이렇게 바꿔 놓다니… 군사(軍師)의 재간
은 정말 대단하오."
마마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서 아주 잔잔한 혈광이 뿌
려졌다.
"애란(艾蘭)이라는 계집의 얼굴입니다. 천무곡(天舞谷)이란 소문
파(小門派)의 소곡주이지요. 애란이 바로 천무곡의 소곡주였다는
사실을 알아 내기 위해… 후후, 그리고 일환룡이 무가장(武家莊)
무소구(武少丘)임을 알기 위해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사공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마대공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빛은 더욱 강해졌다.
"군사의 뜻에 따라 일단 패(覇)보다는 계략(計略)에 따라 행동할
것이오. 하나, 내가 어젯밤 본 천기(天機)에 의하면… 대혈겁(大
血劫) 없이는 뜻을 이룰 것 같지 않소!"
그가 말하자, 사공명이 흠칫 놀랐다.
"그… 그럼 그것을 보셨습니까?"
"후훗… 군사도 그것을 보았단 말이오?"
대체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마마대공이 본 것, 사공명이 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군사가 그것을 못 본 줄 알았는데… 훗훗……!"
마마대공은 아주 야릇한 소리를 냈다.
"아아, 저는 속하가 잘못 봤다고 여겼는데… 맹주도 보셨다면, 그
것은 저의 착각이 아니라 완전한 사실인 듯합니다!"
사공명은 맹주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마마대공은 조용히 뇌까렸다.
"두려워할 것 없소. 천기(天機)에 천살(天煞)의 복마성(伏魔星)이
나타났다 해도… 훗훗, 이렇게 부서질 테니까!"
그의 손이 갑자기 앞으로 쳐들려졌다.
꽈르르르릉-!
순간, 시뻘건 기류(氣流)가 혈룡(血龍)같이 일어나더니… 이십 장
안의 모든 경물(景物)이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
"으하하하… 천살복마성(天煞伏魔星)이 나타난다면, 이렇게 박살
이 나고 말 것이다. 으하하하……!"
마마대공의 목소리는 지축을 뒤흔들었다.
"아이쿠우, 고막이 터지는 듯하다!"
사공명은 현기증을 느끼고 몸을 휘청였다. 그는 지극한 아픔을 느
끼는 동시에, 태산(泰山)의 도움을 받고 있는 듯한 안도감을 느끼
며 감루를 흘리기도 했다.
흑야(黑夜).
섬광(閃光)이 은사(銀沙)가 뿌려지듯 묵궁을 밝히고 있다.
삼경(三更), 돌연 밤하늘을 가르는 혜성(彗星)이 나타났다. 시뻘
건 불의 흐름, 하늘을 활활 태워 버릴 듯한 혜성 출현.
북두성(北斗星)의 빛이 찰나지간에 흐려지고, 은한(銀漢)이 벌겋
게 물들어 흔적마저 남기지 못한다.
갑자기 나타나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는 붉은 혜성(彗星)!
저주(詛呪)가 있으리라는 천기(天機)인가?
아아, 그 붉은빛이 우내(宇內)에 장막(帳幕)을 치듯 드리워지며
이제 모든 것이 혈세(血洗)되는 것인가?
장방형(長方形) 석실(石室) 한가운데.
우르르릉-!
바람이 들어올 만한 창문이 없는데,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방 가운데, 백무(白霧)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주 차가운 기운
을 담고 있는 안개.
휘휙휙-!
흰 기류는 살아 있는 백룡(白龍)처럼 꿈틀꿈틀거리는 가운데, 석
실 천장에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달게 한다.
극음지기(極陰之氣).
현음빙백풍강살(玄陰氷魄風 煞)이 솟구치며 모든 것이 얼음덩이
로 변해 가는 것이다.
빙무(氷霧)는 한 사람의 모공(毛孔)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정좌(正坐)하고 있는 청년, 그는 합장(合掌)한 자세로 운기조식
(運氣調息)하는 중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의 입가에 혈흔(血痕)이 있다는 것이었다. 피를
쏟을 만한 내상(內傷)이 있단 말인가?
아아, 이제 보니 그의 두 손바닥 또한 피에 물들어 있지 않은가?
피, 그것은 그의 몸에서 흘러 나온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남의
피였다(他人之血).
⑧
오랜 시간이 지났다.
우르르르릉-!
우레 소리가 나며 흰 기류가 청년의 콧속으로 빨려들었다.
청년은 천천히 눈을 떴다. 한순간, 말할 수 없이 잔혹한 한광(寒
光)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찰나의 순간 사라졌으며, 그의
눈빛은 다시 담담해졌다.
"훗훗… 말할 수 없이 묘한 기분이다. 나의 피가 냉혈(冷血)이 된
기분이다!"
그는 중얼거리다가 한 곳을 봤다. 다른 곳과 다를 것이 없는 석
벽, 그는 한 곳을 노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 같지 않소, 영주(令主)?"
그가 차게 말하자, 벽 속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으으음… 이제는 암문(暗門)이 어디에 있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정확히 알아 내는군!"
"훗훗… 나는 더 이상 길들여지지 않을 것이오. 훗훗, 그대가 길
러 준 마성(魔性)은 이제 폭발 직전이오!"
말하는 청년은 하운비였다.
"마영(魔影)! 빙수사(氷秀士)의 간(肝)에는 만년설삼(萬年雪蔘)의
기운이 들어 있었다. 그는 약관 나이에 그것을 복용했었다. 하나,
그는 내공이 모자라 그것을 다 녹이지 못했었다!"
신비영주는 암문 뒤에 서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차갑고
나직했다. 매우 지독한 살기를 갖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지
금 하운비의 눈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차고 지독한 기운에 비한다
면 오히려 따뜻하다 할 수 있었다.
"그가 만년설삼을 먹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하나, 바로
나였다. 그래서 삼보가 나타났다는 헛소문을 내어 그를 금릉성으
로 끌어들여 죽인 것이다!"
"……."
"이제 너는 모든 것을 다 배웠다. 이제는… 내가 너에게 배워야
할 정도다!"
"훗훗……!"
하운비는 비웃듯 웃었다.
"마영! 너를 기르는 데에는 무한한 노고가 들었다. 너는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흥!"
하운비는 차게 냉소쳤다.
신비영주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너는 살수(煞手)이다. 너의 손은… 나의 손이다. 아느냐? 너는
나를 대신해 사람을 죽이기 위해 길러진 것이다!"
"누구를 죽여 줘야 만족하겠소? 나의 생명값을 하기 위해… 훗훗,
어떤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오?"
"죽일 사람은 다섯이다. 하나, 그들 다섯을 죽이기 위해서는 아주
무서운 일을 겪어야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이 행할 수 없는 일이
다. 그러나… 마영, 너라면 능숙히 해낼 것이다!"
"그들이 누구요?"
"성급하게 알려 하지 마라!"
끼르르륵-!
쇠사슬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파팍-!
언뜻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이더니, 하운비 앞에
보따리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신비영주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그것이 네게 주는 마지막 물건이다. 어서 풀어 봐라!"
신비영주는 말하며 멀리 사라졌다.
검은 보따리, 하운비는 그것을 무감각하게 보다가 천천히 끌러 봤
다.
우선 한 벌의 흑삼(黑衫)이 보였다. 그리고, 수건 한 장, 금불이
약간, 세 권의 소책자(小冊子), 두루마리 한 장.
하운비는 우선 세 권의 소책자를 살펴봤다.
귀인십팔절식(鬼人十八絶式),
섭혼교진전보록(攝魂敎眞傳寶錄),
파천황검보(破天荒劍譜).
소책자는 모두 비급이었다. 하운비는 비급을 살피다가 두루마리를
펴 봤다. 그것 역시 절기를 수록하고 있었다.
화마환락무(花魔歡樂舞).
하나의 그림인데, 그림 내용은 바로 절기였다.
그림 안에는 열여덟 명의 나녀(裸女)가 그려져 있었는 바… 벌거
벗은 여인들은 쌍수(雙手), 쌍각(雙脚)을 흔들며 각기 다른 자세
로 춤을 추고 있었다.
"절묘한 장초(掌招)다!"
하운비는 그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마십팔환락무(花魔十八歡樂舞).
그림 안에는 그러한 초식이 들어 있었다.
그림 맨 아래, 누가 썼는지 모를 주해(註解)가 붙어 있었다.
글씨는 꽤나 명필(名筆)이었다.
<이것은 신비금지(神秘禁地) 적녀교(赤女敎)의 물건일 것이다. 우
연히 이것을 얻게 된 것은 내게 있어 기연(奇緣)이다.
이것은 인생 최대의 환락을 알려 주고 있다.
십팔 초(招)는 장초(掌招)인 동시에 검초(劍招)이고, 동시에 권초
(拳招)이고, 보초(步招)이다.
하나, 뛰어난 자라면 이것이 바로 적녀교의 교주만이 쓴다는 비전
의 십팔방중비기(十八房中秘技)임을 알 것이다.
뛰어난 자만이 얻으리라.
나는 삼 년 공부해 오 성(成)을 터득했다. 하나, 나의 적수는 흔
치 않았다!>
⑨
서명은 없는 글.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모든 소감을 피력하고 있었다.
하운비는 주해와 더불어 그림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
다.
"만화난락(萬花亂落)보다 복잡하고 허허무영수(虛許無影手)보다도
경쾌하다. 그리고 군화산혼장(群花散魂掌) 정도의 변화를 지니고
있다."
하운비는 그것을 보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십오 주야(晝夜) 후, 하운비는 흑삼(黑衫)을 걸치고 연공관을 나
섰다. 그가 걸친 옷은 천잠사(天蠶絲)로 만든 보의(寶衣)였다.
연공관 밖, 소칠(少七)이 흑삼을 입고 등에 쌍검(雙劍)을 진 채
기다리고 있다가 하운비를 보고 절을 했다.
"마영공자(魔影公子), 출관(出關)을 경축합니다!"
그는 매우 정중히 인사를 했다.
"소칠! 영주는 어디에 계시느냐?"
"아니 계십니다! 그러니, 찾지 마십시오. 그분은 때가 되면 나타
나실 것입니다. 영주는 이것을 드리라 하셨습니다!"
소칠은 쪽지 한 장을 건네 주었다.
<와룡도(臥龍島)로 가서 그를 죽여라! 죽일 때에는 환락무(歡樂
舞)로 죽여야 한다!
죽인 다음, 다시 명을 받게 될 것이다.>
신비영주가 남긴 쪽지는 아주 짧았다. 그리고 한순간, 쪽지는 하
운비의 손에서 재가 되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
죽여야한다
즐독 ㄳ